귀환자의 모든 것 171화
“대천사 아니르가 인간의 육신을 빌려 인간계를 돕겠다? 아니르. 너의 그 힘을 저 한낱 인간 따위가 버틸 수 있을리 만무하지. 헛된 망상이다!”
크툴루가 검은 날개를 펄럭이며 힘을 끌어올렸다.
수십 개의 암흑 구체가 날아들고 마력 파장이 안개처럼 뿌려졌으며 솟구쳐 오른 비석이 검은 벼락을 머금고 준혁의 발아래 거대한 마법진을 만들었다.
그 마법진에 솟아오른 암흑 파동까지.
크툴루의 전력이 휘몰아쳤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서 있는 준혁에게는 전혀 통하지 않았다.
반투명한 빛이 완벽한 암흑 내성을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떨리는 눈동자로 준혁을 보던 크툴루는 준혁이 천천히 다가오자 뒷걸음질 쳤다.
“……이럴 수는 없어. 이럴 수는 없다고.”
크툴루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준혁을 보며 머리를 가로저었다.
“이런 식으로 상황이 뒤집힌다고? 대천서 아니르에 의해서? 이런 말도 안 되는……!”
비명 같은 분노의 외침이 터지기 직전 눈 깜짝할 사이에 접근한 준혁이 크툴루의 몸통에 주먹을 꽂아 넣었다.
“키에에에에에에엑!”
소름 끼치는 비명을 터트리던 크툴루가 자신의 촉수로 준혁의 팔을 휘어 감았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촉수는 마치 잿더미처럼 변해 버리더니 이내 가루가 되어 바닥으로 후두둑 떨어져 내렸다.
파충류를 닮은 타오르는 듯한 크툴루의 새빨간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크툴루의 촉수가 준혁을 향해 육안으로 쫓을 수 없을 만큼 빠른 속도로 공격했으나 준혁은 느린 듯하면서도 빠르게 팔을 써서 그 공격을 막아 냈다.
그리고 곧 준혁의 주먹이 크툴루의 몸통 쪽 갈비뼈를 부러트렸다.
살점이 떨어져 나가고, 보랏빛의 파편이 허공으로 흩어졌다.
“크히이이이익!”
분노와 공포를 넘어 광기에 찬 크툴루가 입을 쩍 벌려 수백 개의 이빨을 드러냈으나 준혁이 주먹으로 턱을 올려쳐서 깨부쉈다.
혀가 잘려 나가고 수십 개의 이빨이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크툴루가 정신을 못 차리며 비틀거리다가 이내 등을 보이고 날갯짓을 하며 달아나기 시작했다.
공간계 마법으로 이동하려던 크툴루의 등에 준혁이 날린 심검이 놈을 꿰뚫고 통과했다.
“퀴에엑!”
짧은 비명을 지르며 거구의 크툴루가 땅으로 추락해 떨어졌다.
쿠웅.
크툴루가 지렁이처럼 꿈틀거렸다.
준혁은 자신의 손과 몸을 보았다.
대천사의 힘이 깃든 이 육체는 압도적이다 못해 한계를 알 수 없는 힘으로 넘쳐 흘렀다.
지금 크툴루를 상대하는 데 약 10퍼센트도 쓰지 않은 힘이었다.
아자토스를 봉인시켰던 대천사 아니르의 힘이 얼마나 강대한지 전율이 돋을 만큼의 전력이었다.
“이,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이야…… 이 시점에, 이 순간, 대천사, 아니르가 나타날 확률은 불가능한…….”
크툴루가 바닥을 벅벅 기면서, 공포에 질린 눈으로 준혁을 돌아보며 중얼거렸다.
“100퍼센트다.”
준혁이 말했다.
크툴루가 멍한 눈길로 준혁을 보았다.
“……뭐?”
“대천사 아니르가 나타날 확률은 100퍼센트였다고.”
“무슨 미친 소리를…….”
“멸마의 서에 기록되어 있었지. 대천사 아니르가 직접 남긴 글이.”
“그, 그럼 넌 설마…….”
“그래. 나 역시 나 혼자서 너를 잡겠다는 생각한 적 없어. 그러기에 암흑세계는 내 천 년의 세월로 극복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대천사 아니르의 힘이라면 이야기가 달랐지.”
배신감에 치를 떠는 크툴루의 눈이 준혁을 쏘아보았다.
“……모든 게 이 순간을 위한 것이었단 말이냐?”
“그래. 처음 마계에서 인간계로 내려왔을 때부터. 줄곧 이 순간을 기다려왔다.”
준혁이 차분한 눈빛으로 쓰러진 크툴루를 내려다보며 말을 이었다.
“멸마의 서에 기록되길, 네가 인간계를 향해 규율의 선을 넘는 순간 대천사 아니르는 너뿐만이 아니라 아우터 갓 전부와 마계를 멸망시킬 것이라고. 그렇게 천계의 문자를 남겼다. 그 조건을 실현시키기 위해 신수들의 힘이 필요했던 거고.”
크툴루가 인정할 수 없다는 듯 머리를 휘저었다.
“그럴 수는, 그럴 수는 없어…… 암흑을 지우면, 태양계는 그대로 타 버리고 말 거야. 네 행성조차도 고온에 녹아 사라지고 마는 것이다.”
“넌 암흑이 아니야. 그저 더러운 악의 생명체일 뿐이지.”
“……!”
“그러니 걱정하지 마라. 넌 아무것도 아니니까.”
“자, 잠깐……!”
준혁이 만들어 낸 천계의 검이 크툴루의 머리를 꿰뚫었다.
단 한 방에, 저항 없이 죽음에 이른 크툴루가 축 늘어졌다.
준혁이 천계의 검을 뽑아내자 불꽃처럼 타 버리며 크툴루의 육신은 그 자리에서 서서히 바람에 날리듯 사라졌다.
그리고 그 자리엔 보랏빛의 영혼만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길고 길었던 싸움이 끝났다.
크툴루를 죽였으니 남은 아우터 갓을 정리하고 마계를 파괴하면 악은 종결을 맞이한다.
인간계에 더 이상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악은 존재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준혁은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사납게 몰아치던 벼락은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구름 한 점 없는 암흑의 하늘만이 있을 뿐이었다.
천 년이 넘는 세월 동안 하나의 목표만을 쫓았다.
그리고 마침내 결착을 지은 것이다.
만감이 교차하는 순간이었다.
“……주인님.”
뒤를 돌아보자 신수들이 얼떨떨한 표정을 한 채 일렬로 서 있었다.
준혁은 신수들을 보며 미소 지었다.
“난 여기서 남은 아우터 갓들을 정리할 거다.”
“그, 그럼 저희는요?”
백호가 찢겨져 나간 어깨를 붙잡은 채 비틀거리며 물었다.
“여기서 천천히 회복하고 마계로 넘어가라. 그리고 마신과 남은 악마들을 정리해. 시간은 충분하니 충분히 휴식을 취하도록 해.”
준혁이 주작에게 걸어가 머리를 짚었다.
“마계와의 싸움이 끝나면, 먼저 캐슬로 돌아가.”
준혁이 신수들을 보며 말을 이었다.
“오래 걸리지 않아 나도 곧 돌아갈 테니.”
신수들이 이내 정말 이제 모든 것이 끝나 가고 있음을 깨닫고서 환한 미소를 지었다.
“네, 주인님!”
신수들의 미소를 받은 준혁은 한 점의 빛이 되어 사라졌다.
탑의 옥상.
신수들은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이내 준혁이 완전히 떠났음을 깨닫고 하나둘, 쓰러졌다.
“으아아. 진짜 무서웠어. 꼼짝없이 이대로 죽는구나 싶었다니까.”
백호가 떨어지는 빗물을 시원하다는 듯 맞으면서 힘을 쭉 뺀 채 편안한 얼굴로 말했다.
곧 잠들 것 같은 얼굴이었다.
“아직 할 일이 남았어.”
청룡이 바닥에 엉덩이를 깔고 앉은 채, 검은 하늘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주인님이 쉬라고 했잖아. 회복하려면 오래 걸릴 거야.”
현무가 신음을 흘리며 피로 물든 복부를 붙잡으면서 말했다.
기린은 열심히 다친 신수들을 회복시키기 위한 마법을 쓰고 있었다.
“쉬었다가 해 기린. 우리 살리려다가 네가 죽겠다.”
기린이 창백한 얼굴로 헤헤 웃었다.
“괜찮아. 아직 충분히…….”
기린이 말하다 말고 눈을 까뒤집으며 기절했다.
“어? 기린!”
백호가 후다닥 달려갔을 때.
“괜찮아. 잠들었을 뿐이야. 그대로 둬.”
청룡이 흘끗 보며 말했다.
“저, 정말?”
“그래.”
“휴.”
백호가 살았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가 통증에 의해 으악 하고 발랑 누웠다.
“아, 싸움이 끝나니까 점점 더 아프네. 싸우는 동안은 아픈지도 몰랐어.”
백호가 데굴데굴 구르듯이 하며 말했다.
청룡이 그런 백호를 보며 피식 웃었고, 현무는 기린을 따라 단잠에 빠져 있었다.
청룡은 하나둘, 꿈나라로 가는 신수들을 보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잠이 몰려왔다.
긴장이 풀린 탓이리라.
전력 그 이상을 쏟아부었던 터라 청룡도 땅에 누우며 눈을 감았다.
도저히 이 달콤한 단잠을 포기할 수 없었다.
* * *
마신 케르니안은 악마성에서 축배를 들고 있었다. 그는 연신 들썩거리는 어깨를 붙잡고 웃음을 멈추지 못했다.
“크히히히. 크흐흐하하하하!”
케르니안은 이마를 붙잡고 또다시 웃음을 터트렸다.
명계 구체를 통해 한준혁이 암흑세계로 넘어간 것을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해서였다.
“멍청한 놈. 직접 그 두 다리로 사지를 걸어 들어가다니. 크흐흐! 흐하하!”
케르니안의 핏물을 벌컥벌컥 마시며 기분 좋은 얼굴로 입가를 닦았다.
고작해야 천 년간 쌓은 마력과 신성력 따위로 아우터 갓에 대항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아우터 갓은 수를 셈할 수 없을 만큼 오랜 시간 동안 생명의 기운을 먹으며 자라난 악의 결정체였다.
암흑세계로 들어간 이상 한준혁은 크툴루 앞에 그저 먼지 같은 존재일 뿐이었다.
“인간계였다면 최소한 기회라도 있었을 것을. 멍청한 놈. 대체 어떻게 암흑세계로 들어갈 생각을 했을까? 정말이지……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구나.”
낄낄 웃던 케르니안이 왕좌에 앉았을 때 케르니안의 전신을 감싸고 있던 비늘이 힘없이 물렁해지기 시작했다.
그 변화에 케르니안은 살짝 놀란 얼굴로 자신의 몸을 돌아보았다.
신체의 약화는 가속화되더니 순식간에 비늘이 썩어 나가기 시작했다.
“……아니.”
케르니안이 왕좌에서 벌떡 일어나 자신의 몸을 보았다.
전신을 감싸고 있던 단단한 껍질이 부패되어 썩더니, 비늘이 후두둑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이내 살갗이 찢어지고 핏물이 흘러내리며 마력이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악마성 바깥으로 악마들의 고통스러운 비명 소리가 울려 퍼졌다.
케르니안은 걸음을 옮겨 창밖을 내다보았다.
수십만에 달하는 악마들이 참혹한 비명을 지르며 죽어 가고 있었다.
난데없이 갑작스러운 죽음의 폭풍에 케르니안은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크으윽……!”
케르니안 역시 신체가 망가져 가는 걸 느끼면서 당혹감에 몸서리쳤다.
“……이게 어떻게 된.”
일그러진 얼굴로 비틀거리던 케르니안은 악마성의 홀 중앙에 빛을 뿌리며 나타난 존재를 보고 소름이 끼쳤다.
늘 명계 구체로 지켜보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이 누구인지 잘 알고 있어서였다.
한준혁의 5대 신수들이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여유로운 표정들이었다.
“여기가 악마성이구나. 와. 꽤 멋진데?”
백호가 허리에 손을 얹은 채 관광 온 것처럼 악마성의 그랜드 홀을 구경했다.
주작은 불꽃을 뿌리며 날아다녔고 기린은 마법의 구름을 타고 둥둥 떠다녔다.
반면에 청룡과 현무는 강한 눈길로 마신 케르니안을 주시하고 있었다.
창밖으로 보이는 죽어 가는 악마들.
그리고 자신의 신체의 변화.
그리고 암흑세계에 있어야 할 신수들이 나타난 걸 보고 케르니안은 혼란 속에서 극한의 공포를 느꼈다.
환영이 아니었다.
그들은 분명 차원을 넘어 암흑세계로 진입했다.
암흑세계로 들어간 이상 절대 그들은 이렇듯 자신의 앞에 나타나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들이 자신 앞에 지금처럼 존재할 수 있는 방법은 단 하나.
크툴루의 침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