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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의 모든 것-170화 (170/175)

귀환자의 모든 것 170화

마음으로 만들어 낸 검.

심검.

검의 묘리의 정점에 이른 심상의 결정체가 준혁의 손에 있었다.

심검의 에너지가 준혁의 잃어버린 신성력과 마력을 채워 주었고, 그 힘을 바탕으로 준혁이 크툴루를 향해 뛰어들었다.

준혁의 심검과 크툴루의 검은빛 덩어리들이 충돌했다.

암흑 구체를 베어 내고 안쪽으로 깊숙이 파고든 준혁이 검을 찌르자 심검이 크툴루의 가슴을 뚫고 들어갔다.

하지만 크툴루는 기다렸다는 듯 암흑의 힘을 끌어 올렸다.

그러자 땅에서 9개의 비석이 솟구쳐올랐다.

비석은 서로 녹빛의 에너지를 주고받았고 그와 함께 크툴루에게 박혔던 심검은 순식간에 녹아버리며 심검에 담긴 힘이 크툴루의 에너지로 변환되었다.

허망할 정도로 간단하게 심검을 잃어버린 준혁은 급격히 체력이 빠지는 걸 느꼈다.

남아 있는 모든 전력을 집중시켜 만든 최후의 검이었다.

그럼에도 크툴루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이곳은 크툴루의 세계였고 그를 넘어서기엔 너무나 현격한 차이가 있었다.

“마지막 발악치곤 제법이었다. 나름 재미있었어. 하지만 우리 아우터 갓은 평범한 생명체처럼 재미나 지루함에 반응하진 않지. 우리가 원하는 것은 오직 혼돈과 절망. 공포로부터 시작된 재앙의 씨앗.”

크툴루가 탐욕에 젖는 눈으로 준혁을 바라보며 가까이 다가갔다.

“네 사지를 자른 다음, 지구의 종말을 보여 줄 생각이다. 죽지도 살지도 못한 상태에서 인류가 사라져 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건 어떤 기분일까? 한준혁?”

준혁은 신성력을 끌어올리려 했지만 이미 힘이 다 빠진 상태라 마력조차 한 줌도 느껴지지 않을 정도였다.

지금 이렇듯 간신히 서 있는 것만으로도 기적에 가까운 정신력을 필요로 했다.

준혁은 땀에 흠뻑 젖어 있었고 늘어진 어깨에는 힘이 전부 빠져 있다.

꺾이지 않은 의지만이 준혁의 눈에 깃들어 있을 뿐이었다.

“봐도 봐도 마음에 들지 않는 눈이야.”

크툴루가 불쾌하다는 듯 말했다.

휘청거리던 준혁이 두 무릎을 꿇었다.

서 있기도 힘들 만큼 모든 에너지가 고갈된 상태였다.

크툴루의 촉수가 준혁을 향해 출렁이며 움직였다.

“놀이는 이쯤 하도록 하고 파티를 시작하도록 하지.”

크툴루의 촉수가 준혁을 휘어 감으려고 할 때 빛이 번쩍이며 사방에서 신수들이 튀어나왔다.

크툴루는 즉각 암흑 장막을 세웠다.

청룡과 현무의 물리 공격이 시작되고 주작의 불꽃과 드래곤 브레스가 크툴루를 훓고 지나갔다.

그 사이 기린은 준혁의 체력과 신성력을 채워 주고 있었다.

생기를 잃었던 준혁의 얼굴과 눈빛이 점점 다시 살아나기 시작했다.

백호가 사자후를 터트리며 달려들 때.

“귀찮게 구는구나!”

크툴루가 분노를 담은 암흑 파장을 퍼트렸다.

청룡과 현무, 그리고 백호가 크툴루의 힘에 의해 훌쩍 날아가 바닥을 뒹굴었다.

크툴루의 전신에 타오르고 있던 케일의 드래곤 브레스는 암흑의 힘에 의해 소멸되어 사라졌다.

“한낱 버러지 같은 놈들이 감히!”

크툴루가 순식간에 이동해 케일의 목을 틀어쥐었을 때, 신수들의 버프를 받은 준혁의 검이 크툴루의 허리를 베었다.

허리의 일부가 잘려 나갔음에도 불구하고, 크툴루는 그대로 손에 쥐고 있던 케일의 복부를 가격하고 땅으로 집어 던졌다.

순간이동으로 충격을 피하고 착지했지만, 크툴루에게 맞은 충격이 강한 듯 케일은 무릎을 꿇고 이내 철퍽 쓰러졌다.

“쿨럭!”

케일이 한 움큼의 피를 토하며 바닥을 기었다.

일어서려고 노력했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크툴루가 준혁을 돌아보며 광소를 흘렸다.

“차라리 잘 됐다. 신에 대항한 너희들을 뼈와 살을 천천히 발라 인간계에 뿌려 줘야겠구나. 너희들의 피와 살이 너희들이 살고 있는 세상에 떨어져 내릴 것이다.”

크툴루의 등에서 몸집보다 큰 날개가 돋아나 펄럭거렸다.

암흑의 힘은 훨씬 더 강해지며 검은 구체들이 마치 탄환처럼 쏘아져 나갔다.

사방으로 암흑 폭발이 연쇄적으로 이어졌다.

주작의 힘으로 체력과 신성력을 회복하긴 했지만 여전히 전력상으로 크툴루에게 밀리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신과의 격차에 좌절해라. 그리고 절망해라. 이제 모든 것이 끝난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너희들에게 희망은 죽어 가는 시간뿐일 것이니.”

청룡과 현무가 기합을 지르며 크툴루를 향해 달렸다.

준혁도 포기하지 않고 크툴루에게 다가가 신검을 휘둘렀다.

크툴루의 촉수가 가지고 놀 듯이 준혁과, 청룡 그리고 현무와 백호의 공격을 막아 냈다.

크툴루는 팔짱을 낀 채로 여유롭게 서 있었다.

그럼에도 준혁과 신수들의 총공격은 전혀 크툴루에게 통하지 않았다.

“정말 실망이군. 겨우 이 정도로, 고작 천 년의 세월로, 이 나를 넘어서려 했더냐?”

크툴루의 빨간 눈이 준혁에게 향했다.

준혁은 이를 부서질 듯이 깨물며 전력을 쏟았다. 하지만 암흑 파장을 터트리는 순간 준혁과 신수들은 사방으로 날아가 바닥을 뒹굴었다.

휘몰아치는 벼락 아래, 땅을 딛고 서 있는 존재는 오직 크툴루뿐이었다.

몰아치는 비바람마저, 몸을 일으키기 힘들게 만들 정도로 지쳤다.

준혁은 신검을 땅에 찍고 일어섰다.

“의지는 제법이다만 결국 그뿐인 것이다.”

크툴루가 날갯짓으로 이동해 준혁의 복부에 주먹을 꽂아 넣었다.

“커헉……!”

등이 새우처럼 구부려지며 준혁의 입에서 피가 왈칵 쏟아져 나왔다.

충혈되는 눈과 붉어지는 얼굴.

이 정도의 고통을 느껴 본 게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크툴루의 촉수가 준혁의 머리를 후려쳤다.

허공에 피가 훅 뿌려지며 준혁이 비틀거리며 뒷걸음질 쳤다.

“조금 더 힘을 써봐. 시간을 더 줄까?”

크툴루의 촉수가 달려드는 청룡과 현무 그리고 백호를 꿰뚫었다.

피를 흘리며 쓰러지는 세 신수에게 기린이 황급히 회복 마법을 걸었지만 치유되는 속도는 한없이 더뎠다.

크툴루는 주변을 한 차례 훑어보곤 느긋하게 걸음을 옮겨 쓰러져 있는 준혁을 내려다보았다.

준혁의 얼굴은 이마가 찢어져 피로 가득했고 흐릿한 눈동자 안에는 크툴루를 향한 적개심이 남아 있었다.

“이 꼴을 하고도 그런 눈을 하는 것이냐 너는.”

크툴루가 준혁의 다리를 밟았다.

뼈가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준혁이 이를 악물며 고통에 떨었다.

“주인님!”

준혁을 구하기 위해 주작과 기린이 마법을 썼지만 그들의 마법으로 크툴루를 막기란 불가능한 일이었다.

크툴루가 팔을 한 번 휘두르자 땅에서 암흑 불꽃이 솟구쳐 올랐다.

엄청난 속도여서 미처 대응할 새도 없이 당해 버렸다.

기린과 주작은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며 바닥을 굴렀다.

덜덜 떨리는 몸을 일으키기 위해 바닥을 기면서 일어서려고 했지만 이미 한쪽 다리가 망가져 있었고, 신성력과 마력은 바닥 난 지 오래였다.

크툴루가 준혁을 걷어찼다.

준혁이 허공을 날았다가 바닥을 굴렀다.

준혁은 편안하게 누우면서 시야를 가리는 눈가의 핏물을 닦아냈다.

하늘의 먹구름에서는 벼락이 치고 점차 굵어지는 빗줄기가 떨어져 내렸다.

준혁은 오래전부터 이미 알고 있었다.

아우터 갓의 세계에서 자신과 크툴루와는 너무나 현격한 차이가 난다는 것을.

그럼에도 끝까지, 크툴루를 쫓아 암흑세계로 진입했다.

그 모든 건 마계에서 시작된 출발이었다.

“지겹구나. 이제 그만 신수들을 정리하고, 인간계를…….”

크툴루가 마무리 단계에 들어서려던 순간 찬란한 빛이 생성되었다.

그것은 마치 게이트처럼 길쭉한 원형의 형태로 공간을 찢어 내듯이 만들어졌다.

“……?”

크툴루가 의아한 표정으로 그 빛을 바라보았다.

한준혁과 5대 신수. 그리고 드래곤 한 마리까지.

자신을 노리는 건 이 정도뿐이었다.

크툴루는 묘한 불안감을 느낀 듯 어깨를 움찔 떨었다. 그것은 본능적인 감각에 기인한 반사적인 행동이었다.

눈부시도록 새하얀 빛의 게이트를 통해 은빛의 부츠 하나가 빛을 뚫고 나타났다.

누구지?

크툴루는 의아심이 가득한 채 그 존재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이내 다리가 드러나고 은빛 갑옷을 입었으며, 화려한 투구를 쓴 존재가 눈부신 빛을 뚫고 나타났다.

그의 등에는 빛이 일렁이는 날개가 달려 있었다.

크툴루는 그 존재를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바라보며 몸을 파르르 떨었다.

절대로 마주하고 싶지 않은 존재.

대천사 아니르였다.

크툴루는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 치며 대천사 아니르를 손가락질했다.

“……대, 대체, 당신이 어떻게!”

아니르가 여유로운 걸음으로 크툴루에게 다가갔다.

크툴루는 감히 대항할 생각을 하지 못 하고, 몸서리를 쳤다.

대천사 아니르는 멸마의 서에 천계의 문자를 남겼던 자이며 또한 우주의 지배자들을 봉인시킨 전적이 있는 전설 그 자체였다.

공을 많이 세운 만큼 악과의 전투에 물들어 타락한 천사라고도 불린 아니르의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 크툴루는 아자토스에게 익히 들어 잘 알고 있었다.

“네가 크툴루구나.”

대천사 아니르가 말했다.

그 목소리에 크툴루는 절로 어깨가 움츠려졌다. 상대가 가진 존재감은 가까이하기조차 싫을 정도로 찬란한 힘으로 가득했다.

“이건 말이 안 돼. 암흑세계 안으로 들어온다는 건 천계의 규율을 어기는 것!”

크툴루가 감정적으로 소리치자 대천사 아니르가 웃었다.

“네 말이 맞다. 규율에 어긋나는 일이지. 하지만 규율을 어긴 건 천계의 나뿐만이 아니지.”

크툴루의 눈동자가 불안하게 흔들렸다.

“인간계의 영향력을 행사한 네놈 덕분에, 천계의 문이 열린 것이니 기쁜 마음으로 나를 환영해야 하지 않겠나?”

“아무리 균형을 깨었다고 해도, 네가 날 건드린다면 아자토스의 봉인이 풀릴 것이다. 그럼에도 나를 칠 수 있단 말이냐?”

“애초에 아자토스를 봉인한 것이 난데, 내가 아쉬울 게 뭐가 있지?”

말문이 막힌 크툴루는 전신을 바들바들 떨었다.

“하지만 천계 심판을 피할 수 없지 않느냐!”

“그건 걱정하지 마라. 다 방법이 있으니까.”

“……뭐라고?”

대천사 아니르가 곧 반투명하게 변했다.

잠깐 바람이 분다 싶던 순간 아니르는 준혁의 육신 속으로 스며들었다.

그 순간 준혁은 눈을 번쩍 뜨며 등에 빛의 날개를 단 채 허공으로 서서히 떠올랐다.

크툴루는 충격에 빠진 채 벌벌 떨며 공중에 뜬 채 자신을 내려다보는 준혁을 올려다보았다.

“……이, 이건 말도 안 돼.”

준혁이 아주 느릿하게, 그리고 사뿐히 지상에 발을 디디고 섰다.

무기도 들지 않고 준혁은 차분한 표정으로 크툴루를 응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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