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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의 모든 것-169화 (169/175)

귀환자의 모든 것 169화

진흙으로 된 땅을 걷던 준혁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곳에는 거대한 탑이 있었다.

어둠 속에서 구름을 뚫을 듯이 높게 솟은 탑은 빌딩을 닮아 있었다. 탑에서 흘러나오는 수천 개의 불빛은 은은했다.

안개에 반쯤 가려진 탑 위로는 검은 벼락이 뿌려지고 있었다.

준혁은 축축하게 떨어지는 빗물을 맞으며 탑의 입구로 향했다.

출입구를 통과하자 아주 넓고 어두운 통로가 나타났다. 기괴한 문양들이 잔뜩 그려져 있는 벽면이 보였다.

그 문양들을 보면서 준혁은 빠르게 복도를 걸었다.

복도를 지나 커다란 홀에 이르렀는데 그곳엔 수십 마리의 아우터 갓 군단병들이 서 있었다.

마치 준혁이 오리라는 걸 알고 있었다는 듯 하나같이 무기를 든 채 대기하고 있는 모습들이었다.

준혁은 담담하게 신검을 들고 그들의 중앙으로 걸어 들어갔다.

각양각색의 군단병들이 준혁을 원형으로 포위한 체 무기를 들었다.

분명 크툴루는 이 성안에 숨어 있을 것이다.

우주의 지배자라고 하더니, 탑에 숨어 부하들을 보내는 꼴이 참 비열한 욕망 덩어리답다 싶었다.

준혁은 고개를 젖혀 높은 천장을 올려다보며 심호흡을 했다.

기운을 갈무리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이내 군단병들의 일제 공격이 쏟아지는 순간 준혁은 부드럽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느린 듯 보이지만 아우터 갓의 군단병들의 무기는 준혁을 스칠 수도 없었다.

준혁의 몸놀림은 마치 이어져 있는 선을 타는 것처럼 부드러웠다.

군단병들의 무기 혹은 갈퀴나 발톱, 그리고 신체와 연결된 촉수들이 준혁은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갔고, 그 사이 준혁의 신검을 군단병들의 사지를 절단하고 몸통을 찌르고 베어 내 내장을 쏟게 만들었다.

목을 잘라 머리가 튕겨져 올라갔고, 준혁을 중심으로 서 있는 공간 주변으로 순식간에 군단병들의 사체로 가득했다.

커다란 홀의 중앙, 편안한 자세로 신검을 늘어트린 채 서 있는 준혁의 아래 군단병 사체들은 완전한 죽음에 이른 채 미동도 하지 않고 죽어 있었다.

준혁은 칼자루를 고쳐 잡으며 나선형 계단을 밟고 올라갔다.

처음 인간계로 돌아오기 전에 마신 케르니안을 만나기 위해 들렸던 악마성을 닮은 구조였다.

계단 위에서 군단병들이 뛰어 내려왔다.

단체 합공으로도 이길 수 없었던 준혁이었던 만큼 군단병들은 무력하게 준혁의 신검에 의해 피를 뿌리며 해체되었다.

준혁은 서서히 속도를 높여, 바람처럼 이동하며 눈앞에 나타나는 모든 적들을 신검으로 베어 넘겼다.

계단과 벽, 그리고 천장을 향해 치솟아 오르는 핏물.

그들 역시 결국은 감정 에너지를 통해 종속하는 물질적 생명체에 불과했다.

스스로를 신이라 칭하며 마치 물질이 아닌 듯 굴었지만 그 모든 건 결국 거짓이었음이 판명 나는 순간이었다.

또한 이는 준혁의 확신에 찬 믿음이 결과를 이루어가는 것이기도 했다.

계단을 오르고 또 오르면서 나타나는 모든 군단병들을 해치우고, 탑의 정상으로 올라왔다.

옥상은 아주 넓었다.

축축한 빗물이 떨어져 내리는 넓은 옥상의 공간 중앙에는 에메랄드를 닮은 커다란 룬석이 있었다.

약 10여 미터에 달하는 높이와, 큰 넓이를 가진 룬석에는 수십 개의 굵은 전깃줄 같은 촉수들이 붙어 있었고, 룬석은 탑의 지면과 연결되어 있었다.

탑을 양분으로 삼고 있는 룬석 같았다.

그리고 그 룬석 앞에 크툴루가 있었다.

콰르릉!

쏟아지는 빗물 위로 룬석의 빛이 비치는 하늘에 검은 벼락이 연이어 스쳐 지나갔다.

수시로 번쩍이는 벼락 아래 크툴루는 왼손에서 출렁이는 촉수를 룬석에 박아넣었다.

그러자 룬석이 마치 심장이 뛰듯이 박동하며 반짝이는 불빛과 함께 크툴루에게 에너지를 공급했다.

룬석은 그동안 크툴루가 모아 온 감정 에너지의 결정체였다.

인간의 절망과 혼돈을 모아 놓은 악의 정수.

그 힘을 충족하자 망가져 있던 크툴루의 신체가 순식간에 회복되며 덩치가 점점 불어나더니 이내 5미터 정도에 육박하는 정도의 크기가 됐다.

크툴루의 몸 주변으로 검은 벼락이 휘감겼고, 그의 다리는 오징어처럼 수십 개의 촉수로 꿈틀거렸다.

괴기스러운 악귀의 얼굴을 한 채 존재 자체가 검은 벼락이 되어 가만히 서 있음에도 불구하고 잔상을 남겼다.

조금씩 움직일 때마다 눈으로 좇기 어려울 정도의 속도감을 보이며 허공에 암흑의 힘을 뿌렸다.

그 힘들은 아우터 갓의 부근에 머물러 있었고, 언제든지 준혁을 삼킬 준비가 되어 있었다.

준혁은 주눅 들지 않고 신검을 고쳐 잡았다.

“네놈을 죽이고…… 네놈이 살고 있는 행성에…… 끔찍한 재앙을 내릴 것이다.”

“해 봐. 할 수 있다면.”

준혁이 크툴루를 향해 달렸다.

크툴루의 수십 개에 달하는 촉수가 휘어지면서 준혁에게 꽂혀 들어갔으나 준혁은 점멸 권능으로 순간 이동하여 크툴루를 베었다.

하지만 크툴루는 잔상을 남기며 준혁의 신검을 피해 촉수가 겹쳐진 덩어리를 준혁을 내리쳤다.

육중한 타격감과 함께 준혁의 중심 자세가 휘청 흔들렸다. 땅에서 올라온 검은 구체 덩어리들이 마치 거머리처럼 준혁의 다리에 달라붙었다.

크툴루의 촉수가 둔화된 준혁을 후려쳤다.

전신을 뒤흔드는 타격감에 준혁은 어지러움을 느끼며 땅을 굴렀다.

“절망과 혼란을 새로이 삼켰으니, 난 내가 잃은 모든 손상을 회복했다. 신수 없이 너 혼자 완전체인 나를 상대하는 건 이미 예정된 결과임을 모르지 않겠지.”

준혁이 빗물에 젖은 얼굴을 들어, 신검을 땅에 찍으면서 일어섰다.

“간지러울 정도야.”

준혁의 대꾸에 크툴루가 웃었다.

“오기까지 부리는 걸 보니, 네 감정이 저기 성전에 담기기까지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 같구나.”

준혁이 하늘에서 떨어진 벼락을 신검으로 쳐 내고 황금빛 궤적을 날렸다.

하지만 준혁의 공격을 크툴루는 암흑의 장막으로 가볍게 삼키곤 뱉어 내듯이 역공을 가했다.

검은 안개가 사방으로 뿌려지자 준혁은 시야가 가려지는 것과 더불어 감각 능력이 떨어지고 신체가 둔화되는 걸 느꼈다.

귓가를 울리는 파공음.

준혁은 반사적으로 어깨를 틀었다. 커다란 촉수 덩어리가 어깨를 스쳐 지나갔다. 만약 피하지 못했다면 치명상을 입었을 것이다.

준혁은 격노의 권능으로 속박의 굴레를 벗어나 땅을 차고 뛰어올라 떨어지며 검을 내리그었다.

준혁의 신검과 크툴루의 단단한 촉수가 충돌했다.

충격에 의해 사방으로 암흑 파장이 터지며 준혁과 크툴루 모두 데미지를 입고 서로 뒤로 충격파에 의해 주르륵 밀려났다.

준혁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다시 크툴루를 향해 돌진했다.

크툴루가 비웃듯이 암흑의 장막을 펼쳐 냈을 때 준혁은 멸마의 서를 펼쳤다.

커다란 묵빛의 책이 나타나는 걸 보고, 크툴루의 파충류 같은 눈동자가 당혹감으로 물들었다.

차르륵 소리를 내며 펼쳐진 멸마의 서에서 천계의 천사들이 새긴 문자들이 쏟아져 나와 크툴루의 몸통의 주변을 회전했다.

그 찬란한 빛의 문자를 보고 당황한 크툴루가 머뭇거리는 사이 준혁은 격노를 유지한 채로 전력의 공격을 쏟아부었다.

신검이 마치 춤을 추듯 유려하고 빠른 속도를 뿌리며 크툴루의 전신을 베어 냈다.

두껍고 단단한 크툴루의 껍질은 파편만 떨어져 나갈 뿐 피해를 입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천계의 문자가 폭발하는 순간 크툴루를 덮고 있던 피부가 잿빛으로 변하며 곧 물렁해졌다.

준혁은 신성력을 머금은 신검을 크툴루의 가슴에 찔러 넣었다.

검이 크툴루의 가슴을 관통했을 때, 준혁은 승기를 잡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크툴루는 오히려 눈을 빛내며 촉수로 준혁을 휘감고는 날카로운 이빨로 준혁의 목을 덥석 깨물었다.

“크으읏……!”

준혁이 고통스러운 얼굴로 몸을 흔들었다. 마력을 터트리고 신성력으로 촉수를 밀어내려 해 봐도 마치 뱀파이어처럼 이빨에서 튀어나온 촉수가 준혁의 피부 안으로 더 깊게 파고 들어갈 뿐이었다.

고통스러워하던 준혁이 쿨이 돌아 겨우 점멸로 빠져나와 거리를 벌렸을 때, 벼락을 뿌리는 수십 개의 암흑 구체들이 준혁을 노렸다.

데미지가 누적되어 있어 피할 수 없는 상태라 신성력과 마력을 이용해 방어 장막을 만들었지만 크툴루의 검은 구체는 너무나 쉽게 준혁의 방어막을 뚫었다.

암흑 폭발과 함께 준혁의 중심이 흔들렸는데 일순 손에 들고 있던 신검을 놓칠 뻔할 정도였다.

“쿨럭!”

준혁은 한 움큼의 피를 뿜으며 간신히 서 있을 정도로 진이 빠졌다.

크툴루에게 당한 피해가 너무 커서였다.

시야가 흔들려 크툴루가 셋으로 보였다.

준혁은 손등으로 눈가를 닦으며 숨을 훅 밀어내고 허리를 세웠다.

크툴루의 웃는 목소리가 사방에서 천둥처럼 울려 퍼졌다.

“내 단언했었지. 너를 죽이고, 인간계를 파괴할 것이라고.”

준혁은 가쁜 숨을 내쉬며 자신의 검을 내려다보았다.

손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한계의 벽이다.

준혁은 늘어진 채 이를 악물었다.

설령 한계에 부딪혀, 끝이 보인다 하더라도 포기할 생각은 없었다.

한계는 익숙했다.

천 년이 넘는 습관이 배였다.

준혁은 눈을 감고 검의 경로를 떠올렸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검을 이미지화시켜 심상으로 떠올렸다.

흐릿한 하나의 형체가 보였다.

단 한 번도 경험해 본 적 없는 순간.

준혁은 그 심상 속의 무언가를 구체화하기 위해 집중했다.

그러자 조금씩 그 형체가 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쿠웅!

육중한 충격감과 함께 준혁은 자신의 신체가 허공에 부유하는 것을 느꼈다.

이내 땅에 떨어진 충돌의 감각을 느꼈고, 손끝에서 신검이 떨어져 나가는 걸 느꼈다.

머리를 얼얼하게 만드는 크툴루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일어설 힘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지만 준혁은 머릿속에 떠오른 심상의 이미지를 마음으로 놓지 않았다.

“식량은 썩어 문드러지기 시작할 것이다. 인간은 굶주림과 갈증에 죽어 갈 것이며, 잉태되는 아이는 모두 악마가 될 것이다.”

크툴루의 힘에 의해 준혁의 육체가 축 처진 채 허공으로 둥둥 떠올랐다.

크툴루는 준혁을 한입에 삼킬 것처럼 입이 찢어지는 미소를 지었다.

수백 개의 이빨이 탐욕스럽게 번들거렸다.

“황폐해진 땅에서 인간들의 고통으로 울부짖으며 멸망해갈 것이다. 아주 천천히, 최소한의 희망을 놓지 않도록 하며, 남은 모든 혼돈과 절망을 내 입에 넣을 것이다.”

준혁이 천천히 눈을 떴다.

크툴루는 준혁의 눈빛을 보고 못마땅한 듯 어두운 감정을 흘렸다.

“도무지 포기를 모르는 인간이군. 이 와중에도 너는 희망을 갖는 것이냐?”

비웃음으로 가득 찬 웃음이 짙어질 때, 묘한 기류가 형성되었다.

그 보이지 않는 변화에 괴기스러운 크툴루의 얼굴이 꿈틀거렸다.

익숙한 공간이 아주 미미한 새로운 존재의 영역이 탄생하고 있음을 감지해서였다.

“남아 있는 필살의 수라도 있는 건가? 그래 봤자 이 영역에서 너의 힘은…….”

크툴루가 말을 잇지 못했다.

투명한 검이 점점 형태를 갖추며 생성되고 있었는데 그 힘은 최종적으로 완성되기도 전에 크툴루가 가진 암흑의 힘을 약화시키고 있어서였다.

천천히 고통스럽게 준혁을 죽이고자 했던 크툴루는 상상도 못 했던 새로운 검의 등장에 계획을 바꾸기로 했다.

괜히 시간을 끌다가 낭패를 볼 수도 있을 것 같아서였다.

조급해진 크툴루가 준혁을 공격하려 할 때, 검은 선명한 형체를 이루어 마치 자석처럼 준혁의 손아귀로 끌려갔다.

검을 잡은 준혁이 일순 생기가 솟구치며 몸을 비틀었다.

허공에서 지상으로 낙하한 준혁이 다시 전투를 준비하며 신성력을 끌어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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