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자의 모든 것 168화
“천 년이 넘는 세월 동안 단 한 번도 의심하지 않았다.”
“……?”
준혁이 손에 들고 있는 신검으로 크툴루를 겨누었다.
“영생을 끊어 주마.”
준혁의 눈에서 차가운 한기가 풀풀 흘러나왔다.
크툴루는 검은 창을 내려다보며 웃었다.
“여긴 인간계가 아니야. 네 오만함이 통할 곳이 아니다. 시궁창 속으로 돌려보내 주지.”
붉게 타오르는 파충류를 닮은 눈동자가 준혁에게 향했다.
그 사이 신수들은 서서히 크툴루 주변을 포위하듯 포지션을 잡아 나가고 있었다.
크툴루는 그런 신수들을 흘겨보며 비웃음을 흘렸다.
그가 쥐고 있는 검은 창에서 생명을 빼앗는 힘이 지독하게 나풀거렸다.
이곳은 암흑세계였고, 크툴루의 주 무대였다.
아마도 크툴루가 외형을 인간처럼 변형시킨 이유는 가장 효과적인 전투를 하기 위해서인 것으로 보였다.
육체가 클수록 타격받을 수 있는 면적이 넓어지며 움직임 또한 둔화될 테니까.
그것은 곧 크툴루가 진심으로 준혁과 신수 무리를 상대하기 위해서라는 것 역시도 알 수 있었다.
준혁은 인간계처럼 쉬운 싸움이 될 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질 거라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늘 심장에 확신을 새겨넣으며 한 걸음 한 걸음을 나아갔다.
그렇게 천 년을 넘어 이 자리에 온 것이다.
끝을 맺기 위한 각오가 새겨진 신검을 들고 준혁은 크툴루를 향해 신형을 날렸다.
신검이 유려한 궤적을 그리며 크툴루에게 향했다.
뒤이어 대기하고 있던 청룡과 현무가 크툴루의 측면과 후면부를 노리고 들어갔다.
크툴루는 놀랍게도 세 명의 합공을 아주 가볍고 여유롭게 검은 창으로 막아 내면서 암흑 마법까지 섞었다.
검은 구체가 청룡의 가슴을 강타하자 청룡이 얼굴을 구기며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뒤로 튕겨져 나가려는 몸을 내공으로 견뎠다.
허리가 꺾이고 상체가 뒤로 넘어갔지만 하체는 단단히 자리를 지키려고 노력했다.
그 사이 크툴루의 검은 창은 현무의 갈비뼈를 베었다.
파를 뿜은 현무가 뒷걸음질 칠 때, 기린의 마법 줄기가 무지개빛을 뿌리며 바닥의 마법진에서 올라와 크툴루의 두 다리를 묶었다.
크툴루의 두 다리는 순식간에 촉수로 변하면서 마법을 파괴하고 거리를 벌리며 뒤로 물러났다.
준혁은 곧장 추격해서 바짝 거리를 좁히며 검을 내질렀다.
천 년이 넘는 세월이 담긴 검의 묘리였으나 크툴루는 어깨를 살짝 비트는 것으로 신검을 피하며 신체를 한 바퀴 회전했고 그와 함께 휘둘러진 검은 창의 파괴력 높은 힘이 거대한 암흑의 힘을 머금은 채 준혁의 방어 형태로 세워진 신검을 후려쳤다.
검은 폭발이 일어나며 준혁의 신검이 튕겨졌다.
이에 준혁은 왼손을 뻗어 크툴루의 촉수 수염을 움켜잡았다.
이마로 크툴루의 머리를 박아 버리고 놈의 복부에 검을 찔러 넣었다.
신검과 촉수가 서로 뱀처럼 얽혀 휘감았다.
크툴루의 훨씬 강한 힘에 의해 팔이 움직여지지 않았다.
‘이런!’
날카로운 수십 개의 촉수가 준혁의 전신에 파고들기 직전 드래곤의 브레스가 크툴루의 후면부로 불어닥쳤다.
크툴루는 움찔거렸지만 준혁을 향한 집착의 끈을 놓지 않았다.
크툴루의 등에서 전갈처럼 튀어나온 날카로운 촉수의 끝이 준혁의 목줄기를 노릴 때 준혁은 극한의 신성력으로 크툴루를 떨쳐 내며 신검으로 촉수를 베어 냈다.
뒤로 훌쩍 멀어지며 크툴루가 팔을 휘두르자 하늘에서 떨어진 검은 벼락이 준혁에게 적중했다.
전신이 진동하는 느낌과 함께 준혁은 육체가 급격히 둔화되는 걸 느꼈다.
하늘에서 몰아치고 있는 벼락들은 크툴루의 마법 그 자체였다.
이후, 쉴 틈 없이 검은 벼락이 떨어져 내렸다.
주작이 만들어 낸 커다란 마법진이 떨어지는 벼락을 막아 냈다.
아직 회복되지 않았음에도 준혁은 이를 악물고 몸을 일으켜 검은 창을 들고 다가오는 크툴루에 맞서 신검을 들었다.
검은 창이 준혁에게 향하자 검은 구체가 마치 탄환처럼 쏘아져 날아왔다.
준혁은 그 구체를 베려 했지만 갑자기 구체는 마치 환영처럼 수십 개로 나뉘어지더니 유도탄처럼 준혁을 향해 폭격했다.
준혁은 신성력을 터트려 그 폭발의 힘으로 크툴루가 보낸 암흑 덩어리들을 밀어냈다.
사방으로 터져 나가는 암흑의 힘이 연쇄 폭발을 일으키는 사이 준혁은 크툴루의 품 안쪽으로 파고들며 검을 찔렀다.
크툴루는 수풀 아래의 검은 마법진 안으로 쑥 들어가 사라지더니, 이내 수풀 아래의 땅에서 암흑의 힘이 지뢰처럼 폭발했다.
그건 비단 준혁만을 노린 것이 아니라 신수들에게 향하는 광범위한 마법 공격이었다.
기린이 신수들과 준혁에게 프로텍트 보호 마법을 걸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렬한 크툴루의 힘이 준혁과 신수들을 휩쓸었다.
겨우 자리를 지키고 서 있긴 했지만, 충격의 여파를 느낀 듯 신수들은 데미지를 견디기 위해 무너지려는 정신을 붙잡아야 했다.
준혁은 단순히 버티는 것에 그치지 않고 신성력과 마력이 섞인 전력의 힘을 담은 신검을 땅에 내리꽂았다.
숨어든 크툴루를 찾기 위한 범위 공격이었다. 이에 크툴루는 즉각 반응하여 마법진 위로 튀어 올랐다.
크툴루는 공중으로 비상하더니 하늘에서 몰아치는 벼락들을 자신의 검은 창에 모으기 시작했다.
마치 피뢰침에 떨어지는 벼락처럼 수많은 검은 벼락들이 먹이를 찾듯 크툴루의 창에 모여들고 있었다.
준혁은 그런 크툴루를 올려다보며 신검을 꽉 쥐었다.
멸마의 서□
점멸
순식간에 크툴루의 등 뒤로 이동한 준혁의 검이 크툴루의 등울 뚫고 들어갔다.
크툴루가 비명을 지르며 몸을 흔들자 창에 모여들던 검은 벼락의 힘들이 바깥으로 유출되어 흩어져 갔다.
검을 뽑아낸 준혁이 마력의 장막을 만들어 그것을 밟고 한 번 더 도약한 뒤, 하강하면서 신검을 내리그었다.
어깨부터 등허리를 훑고 지나간 신검에 의해 크툴루는 지상으로 추락했다.
드래곤 케일이 브레스를 뿜었고, 주작의 불꽃이 크툴루에게 향했다.
콰콰콰콰쾅!
새빨간 불꽃이 터지면서 크툴루가 떨어진 땅은 잿더미로 변하며 뿌연 보랏빛의 연기를 뿌렸다.
지상에 착지한 준혁이 보라색 연기가 걷힌 후, 비틀거리며 서 있는 크툴루를 향해 돌진했다.
멸마의 서□
격노.
준혁이 가진 신성력이 열 배의 힘으로 솟구쳐올랐다.
마치 안개처럼 퍼져 나가는 신성력의 힘이 해일처럼 크툴루를 향해 섬광과도 같은 황금빛을 쏘았다.
방어하기 위해 암흑 벽을 세웠지만 산산조각이 나며 크툴루의 팔 한 짝이 날아가고, 얼굴이 반쯤 무너졌으며 허리와 다리의 일부분이 찢겨져 나갔다.
크툴루가 휘청거리며 뒤로 비틀비틀 물러났다.
질린 듯한 눈동자로 준혁과 신수 무리를 보던 크툴루가 이내 등을 보이더니 검은 마법진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회복을 위해 자리를 피한 것이었다.
1차적 승리였고, 크툴루의 죽음은 코앞에 당도해 있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준혁이 명령을 내리지 않았음에도 주작은 이미 크툴루의 흔적을 쫓아 위치를 파악하기 위한 특성 마법으로 추적에 나서고 있었다.
크툴루의 위치를 잡기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거친 파도가 치는 바닷물에서 크툴루 군단이 올라오고 있었다.
그 수는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장엄했다.
아우터 갓 군단이 사방에서 절벽을 타고 올라왔다. 촉수를 달고, 괴물의 외형을 가진 군단이 벼락 치는 절벽 아래에서 빠른 속도로 올라왔다.
청룡과 현무가 놈들을 떨쳐 내기 위해 싸웠고, 케일은 하늘을 날며 브레스를 뿜었다.
브레스의 불길이 훑고 지나갔음에도 불구하고 화염 속성을 가진 물 속성의 아우터 갓 군단들은 꿈쩍도 하지 않고, 피해 없이 지상으로 올라왔다.
준혁은 수풀 위로 올라와 좀비처럼 달려들기 시작하는 아우터 갓 군단들을 신검으로 베어 내면서 주작을 보호했다.
“계속해서 찾아! 놈을 놓쳐서는 안 돼.”
준혁이 주작의 옆에 서자, 케일을 제외한 다른 신수들도 주작의 곁으로 서서 사방에서 달려드는 아우터 갓 군단들을 상대로 싸웠다.
주작은 침착하게 자신을 둘러싼 주인과 신수 동료들을 믿고 눈을 감았다.
그리고 다시 자신의 특성 마법을 통해 암흑의 경로를 수색해 나갔다.
차원의 힘으로 크툴루의 흔적을 찾기 위한 감각의 마나가 차원계 속으로 흘러 들어갔다.
하지만 긴장해서인지 좀처럼 차원의 힘에 집중하기가 힘들었다.
자신을 지켜 주고 있는 만큼 주작은 집중력을 끌어올리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준혁은 전혀 표정의 변화 없이 아우터 갓 군단을 상대하고 있었지만 다른 신수들은 점차 피로도를 느낀 듯 움직임이 더뎌지고 마력이 서서히 고갈되어 가고 있었다.
크툴루의 하위 종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대량의 숫자로 밀려드는 아우터 갓 군단의 하나하나의 전투력은 굉장히 높아서 쉽게 그 개체 수를 줄일 수가 없었다.
이 아우터 갓 군단을 상대하는 것보다는 아우터 갓을 쫓는 것이 더 효율적인 판단이었다.
“찾았습니다. 주인님.”
“워프 열어. 놈들을 버리고 아우터 갓을 쫓는다.”
준혁이 소리치듯 말했다.
하지만 주작은 워프 게이트를 열지 않고, 그늘진 얼굴로 싸우고 있는 준혁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주작이 답하지 않자 뭔가 이상함을 느낀 준혁이 주작을 돌아봤다.
“왜 그래?”
“워프할 수 있는 마력이 얼마 남지 않았어요. 워프를 탈 수 있는 건 주인님뿐입니다.”
준혁이 신수들을 돌아보았다.
밀려드는 군단을 신수들만으로 막아 내기엔 역부족으로 보였다.
그렇다고 이대로 크툴루를 놓치면 얼마나 더 긴 시간을 할애해야 할지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저희는 여기서 기다리겠습니다.”
청룡이 말했다.
“저희를 믿고 떠나세요. 본체를 개방하면 충분히 상대할 수 있습니다.”
현무가 그 뒤를 이어 말했다.
“현무 형 말이 맞아요. 신수들 모두 본체를 오픈한다면 상대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마법에 집중하고 있던 기린 역시도 덧붙였다.
이미 피로도가 쌓이고, 마력 소모로 인해 마나가 결여된 상태라 얼굴들이 말이 아니었다.
본체를 개방한다고 해도 상황은 장담할 수 없다.
“어차피 목숨을 걸고 온 곳입니다. 기회를 잡으세요. 주인님.”
청룡이 땀으로 흠뻑 젖은 채 아우터 갓 군단병 하나를 힘겹게 베어 내며 말했다.
케일은 브레스가 통하지 않자 인간의 모습을 변해 군단의 한가운데서 홀로 검을 쓰고 있었다.
“어서요. 놈을 잡아야 합니다!”
현무가 본체 개방을 준비하며 소리쳤다.
준혁은 결단을 내렸다.
“……부탁한다.”
신수들이 모두 준혁을 향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열겠습니다.”
주작이 워프게이트를 열었다.
불꽃같은 게이트 홀이 등장하자, 아우터 갓 군단이 악을 지르며 공격 속도를 끌어올렸다.
군단병들이 광기에 찬 공격을 쏟아붓고 있었다.
최단 시간 안에 아우터 갓을 잡고 신수들에게 돌아와야 했다.
무사해라. 다들.
준혁은 숨을 삼키며 워프 게이트 속으로 뛰어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