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자의 모든 것 167화
“미리 소식을 들으셨겠지만 최설화 씨는 사망했습니다.”
복도를 걸으면서 병원장이 말했다.
선우는 병원장과 함께 걸으면서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내뱉었다.
“죽기 전에 남긴 말은 없습니까?”
선우가 물었다.
병원장이 고개를 저었다.
“없었습니다만, 미소를 짓고 있었어요.”
선우가 병원장을 보았다.
“마치 자신의 할 일을 다 마친 것처럼.”
병원장의 이어진 말에 선우는 생각이 많아진 얼굴로 영안실 앞에 섰다.
“그런데 이런 일이 일어나서 당황스럽기도 하고 죄송스럽기도 하고. 면목이 없습니다.”
병원장을 따라 영안실 안으로 들어갔다.
그는 텅 비어 있는 최설화의 자리를 보여 주며 얼굴을 가로저었다.
“갑자기 사라졌어요. CCTV를 모두 확인해 봤지만 누군가 침입한 흔적도 카메라나 영상에도 문제가 없었습니다. ……말 그대로 사라진 겁니다.”
병원장이 심각한 얼굴로 말했지만 선우는 가벼운 미소를 입가에 걸고 있었다.
“고향으로 돌아갔을 겁니다.”
“네?”
“형이 그랬거든요.”
영문 모를 표정으로 서 있는 병원장에게 선우가 고개를 저어 보이곤 영안실을 나왔다.
“최설화 힐러의 장례는 파천 길드 쪽에서 진행할 겁니다.”
“하지만 시신이 없는 상태라.”
“그냥 진행하시면 됩니다.”
“아, 알겠습니다.”
병원장이 안경을 고쳐 쓰며 대답했다.
선우는 병원에서 나와 차를 타고 캐슬로 돌아갔다.
“형은 이미 떠났죠?”
선우의 물음에 지우가 콧잔등을 찡그리며 웃었다.
“네. 얼마나 아쉽고 걱정되던지. 에너지 넘치는 척하느라 혼났어요.”
선우는 창밖을 보며 웃었다.
날씨는 화창했다.
이렇듯 푸른 날씨와 달리, 형과 신수들은 어두운 세계 속에서 마지막 악과의 싸움을 위해 치열한 전투를 이어 가고 있을 것이었다.
“하루라도 빨리 돌아왔으면 좋겠네요.”
지우가 눈가의 눈물을 닦으며 웃었다.
“네. 저도 그래요, 협회장님.”
“형과 신수들이 열심히 하는 만큼, 우리도 열심히 해야겠죠. 곧 협회의 공식 발표가 있을 겁니다. 매니저님께서도 사람들이 동요하지 않도록 홈페이지와 SNS 관리 좀 잘 부탁드려요.”
“네. 맡겨 주세요.”
귀환자와 신수가 아우터 갓을 상대하기 위해 차원을 넘는 것에 대해서는 발표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귀환자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은 전 세계를 불안 속으로 던지는 일이었다.
선우는 귀환자가 돌아왔을 때의 경우를 대비해 그림을 그려야 할 때였다.
* * *
선두에 선 준혁이 걸을 때마다 첨벙거리는 소리가 났다.
물은 발목 정도까지 차올라 있었다.
주변은 온통 어둠이었다. 큐브가 주변을 밝히긴 했지만 끝을 알 수 없는 어둠이 사방에 펼쳐져 있었다.
신수들은 어둠을 두려워했다.
잔뜩 긴장했고, 미지의 불안이 신수들의 마음을 작아지게 만들었다.
그에 반해 준혁은 거침없이 걸음을 옮기며 앞으로 나아갔고 신수들은 혹여나 준혁과 멀어질까 두려워 서둘러 간격을 좁혔다.
“아무것도 안 보여.”
백호가 팔을 문지르며 기분 나쁘다는 듯이 말했다.
“호들갑 떨지 마라.”
청룡이 주위를 경계하며 말했다.
현무는 지루한 듯 하품을 했고 기린은 주작에게 찰싹 달라붙어 있었다.
끝없이 펼쳐진 길을 걸으면서 준혁은 천리안의 미니맵이 나타나지 않는 걸 보고 더 월드의 시스템이 이곳에서는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주작의 능력으로 차원을 넘어 아우터 갓들이 살고 있는 세계를 찾아내는 것은 드래곤 케일조차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 탓에 지금도 케일은 주작에게 공간계 마법에 대한 이야기를 끊임없이 나누고 있었다.
물론 주작은 주변의 분위기 때문에 겁 없는 케일과의 대화에 집중하고 있진 못했다.
“이렇게 가다간 계속 걷기만…….”
그때 물 위로 검은 손이 올라와 케일의 발목을 잡았다.
“흐읍!”
숨을 삼키는 소리와 함께 물 아래로 끌려 내려갔다.
바로 옆에 있던 주작은 눈을 찢어질 듯이 크게 뜨며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분명 발목까지밖에 차올라 있는 검은 물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이런 얕은 물 아래로 들어갈 수 있단 말인가?
주작이 놀라서 뒷걸음질 칠 때, 준혁은 곧장 물속의 땅에 손을 대고 마력을 흘려보냈다.
“주작, 정신 차리고 케일을 찾아. 마력의 흔적을 쫓아라.”
주작이 침을 꿀꺽 삼키곤, 곧바로 자신의 능력을 사용했다. 주작의 손에서 흘러나온 새파란 빛이 검은 물속으로 들어가 이내 땅을 파고들었다.
주작의 마나가 가진 힘은 엄청난 속도로 탐색을 시작했다.
희미하게 잡히는 케일의 흔적.
주작만이 알아차릴 수 있는 아주 미미한 양이었지만 주작은 곧 그 근원을 느낄 수 있었다.
“이동합니다.”
주작의 말과 함께 모두가 긴장한 상태에서 빛을 뿌리며 준혁과 5인의 신수가 공간을 이동했다.
의식의 터널을 지나 다시 눈을 떴을 때 끔찍한 광경이 그들의 눈앞에 있었다.
고차원의 마법 능력을 가진 케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수십 개의 검은 줄기에 의해 팔다리와 몸통이 꽁꽁 묶여 있었다.
케일은 괴로운 듯이 질식할 것 같은 얼굴로 몸부림쳤다.
백호가 도와주기 위해 달려나가기 직전.
“멈춰!”
청룡이 소리쳤다.
백호의 앞으로 솟구쳐 오르는 날카로운 마력 덩어리.
조금만 늦었다면 치명상을 당할 수 있었다.
첨벙거리는 물은 시커먼 먹물 같아서 전혀 시야를 잡을 수 없었다.
때문에 어디서 공격이 들어 올지 예측할 수 없기에 반사적으로 대응해야 했다. 하지만 청룡은 이미 덫이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옅지만 그림자가 있습니다. 뭔가가 있는 것 같았어요.”
“대기해라.”
준혁이 신검을 들고 홀로 케일을 향해 신형을 날렸다.
수십 개의 날카로운 송곳 같은 마력체들이 준혁을 향해 날아들었지만 준혁이 360도 방향으로 한 바퀴 회전하며 휘두른 검에 의해 그 검은 덩어리들은 가볍게 잘려 나가며 우수수 떨어졌다.
첨벙거리는 소리를 내며 가볍게 공격을 막아 낸 준혁은 괴로워하는 케일 앞에 섰다.
케일을 주시하던 준혁의 얼굴이 굳어졌다.
“케일이 아니야. 진짜 케일을 찾아라, 주작!”
준혁이 가짜 케일에게 검을 찔러 넣자 검은 파편이 사방으로 차르륵 흩어졌다.
그 사이 주작은 케일을 찾기 위해 광범위한 영역의 탐색 마법을 펼쳤다.
순식간에 사방으로 뻗어져 나간 후, 주작은 전과 같은 형태의 흔적을 찾아냈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속임수일 수 있었기 때문에 암호를 해독하듯 계속해서 가장 확실해 보이는 흔적을 찾기 위해 탐색 마법을 지속적으로 진행했다.
그리고 이내 일반적인 마나의 흔적과는 결이 다른 위치를 찾아낼 수 있었다.
주작이 눈을 번쩍 뜨며 다시 전체 공간이동을 실행했다.
신수들이 다시금 새로운 공간에서 눈을 떴을 때 준혁은 이미 브레스를 뿜으며 싸우고 있는 케일에게 가담하고 있었다.
거대한 뿔 두 개가 머리에 달려 있다.
마치 산을 보는 듯한 크기의 생명체는 아주 약간이지만 인간처럼 머리와 팔이 달려 있었는데 물 위로 상반신만 드러나 있었다.
그의 손에는 수백 개의 촉수가 달려 있었는데 그 촉수는 하나하나 살아 있는 것처럼 따로 움직이며 준혁과 케일을 향해 날아들었다.
시키지 않았음에도, 청룡과 현무는 각각 좌우로 흩어지며 측면이나 후면을 노리기 위한 움직임을 시작한 후였다.
준혁은 정면에서 아우터 갓 중 하나일 녀석을 마주하며 신검을 고쳐 잡았다. 그러곤 날아드는 촉수들을 베어 내며 현무와 청룡이 포지션을 잡고 공격할 수 있는 여유를 만들어 주었다.
두 신수의 공격이 시작되자 케일의 브레스에 의해 타오르고 있던 아우터 갓은 고통스러운 듯 상체를 뒤흔들었다.
아우터 갓으로부터 검은 마법의 힘이 광범위하게 퍼져 나갔지만 그 암흑 공격은 기린의 방어 마법에 의해 역으로 스스로를 공격하는 자폭과도 같은 결과를 만들어 냈다.
청룡과 현무는 기린의 마법을 눈치채고 이미 뒤로 물러서고 있던 중이었다.
자신의 공격에 자신이 당한 아우터 갓이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며 꺼지지 않는 화염에 의해 타들어 갔다.
불 속에서 고통받는 아우터 갓을 지켜보던 준혁이 냉정하게 감정을 담지 않은 신검으로 놈을 베어 냈다.
커다란 황금빛의 궤적이 아우터 갓을 두 동강 냈다.
마치 무너져 내리는 빌딩처럼 아우터 갓이 쓰러졌다.
아우터 갓의 세계에 진입한 후로 더 월드의 시스템은 작동하지 않았다.
오직 지금 가지고 있는 힘만으로 놈들을 쓸어 내야 했다.
아우터 갓은 꽤 많은 수가 있었고, 그의 분신들이 가득하다고 멸마의 서에 기록되어 있었다.
환영마저 존재하는 세계이기에 전투의 끝이 어디까지 이어질지는 알 수 없으나 인간계에서 치명상을 입은 아우터 갓은 놈들 중 핵심 인물이 틀림없어 보였다.
그 아우터 갓을 찾는다면 보다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둔다고 볼 수 있었다.
때문에 준혁의 명령에 의해 전투를 벌이는 동안에도 주작은 공간계의 힘을 이용해 끊임없는 탐색을 이어 가고 있었다.
암흑세계로 넘어온 이후 주작의 능력은 엄청난 속도로 성장 중이었다.
주작이 빛나는 눈을 번쩍 뜨며 공간 이동 능력을 사용했다.
어둠 속에서 찬란한 빛을 뿌리며 마법진이 형성되었다. 그 마법진을 통해 먼 공간을 이동할 수 있는 워프 게이트가 생성되었다.
“찾았어요.”
주작이 준혁을 보며 말했다.
준혁이 고개를 끄덕여 보이곤, 곧장 가장 먼저 워프 게이트에 몸을 실었다.
* * *
초승달 아래 갈대 수풀이 바람에 누워 흔들렸다.
그리고 그 갈대 수풀의 중심엔 촉수를 수염처럼 달고 있는 4미터 정도의 비교적 작은 키를 가진 아우터 갓이 서 있었다.
그는 인간처럼 두 팔과 두 다리를 가진 채로 창을 들고 있었다.
창은 암흑의 힘으로 만들어져 검게 일렁였다.
가면을 쓴 듯한 머리 아래로는 검은 털이 온몸에 덮여 있었다.
새빨간 피가 묻어난 상처가 있는 걸 보니 인간계에서 만났던 그 아우터 갓인 듯했다.
작은 수풀 지역의 주변의 절벽 아래는 온통 바다였다.
거친 파도가 몰아쳤고 하늘에 뜬 먹구름에서는 끊이지 않는 벼락이 사정없이 떨어져 내렸다.
폭풍 같은 비바람을 맞으며 준혁은 거침없이 그 아우터 갓을 향해 걸어갔다.
적당한 거리를 두고 대치했을 때 나머지 신수들도 모두 갈대 수풀의 땅에 발을 디뎠다.
신수들은 긴장한 얼굴로 아우터 갓을 바라보았다.
드래곤 케일까지 나타나자 땅을 보고 있던 아우터 갓이 천천히 머리를 들었다.
“네가 크툴루구나.”
준혁이 말했다.
자신의 이름을 알아맞힌 걸 보고 크툴루는 고개를 갸웃했다.
“어떻게 나를 알고 있지?”
“멸마의 서에 기록되어 있었지. 너에 대한 내용이 특히 많더군. 인간계의 악을 구성하는 원천이었으니 그럴 수밖에. 멸마의 서는 천계가 인간계를 위해 남겼으니까.”
“여기는 인간계가 아니다. 사지로 직접 걸어들어올 줄이야.”
“사지가 아니라 사냥터가 맞는 말이겠지.”
준혁은 두려움 없는 눈동자로 크툴루를 직시했다.
“한낱 마계의 영혼 하나가 이곳까지 흘러들어오다니. 어처구니가 없군.”
크툴루가 한없이 여유로운 웃음을 흘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