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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의 모든 것-166화 (166/175)

귀환자의 모든 것 166화

아우터 갓이 급격히 둔화되어 움직임이 느려졌다.

암흑의 힘이 마치 물을 탄 듯 흐려지고 있었다.

격정적으로 흔들리는 수백 개의 촉수에서 마치 보랏빛의 가루가 떨어져 내렸다.

준혁의 공격에 의해 데미지를 입고 암흑물질로 이루어진 신체의 일부가 손상되고 있다는 증거였다.

준혁은 이 기세를 밀어붙이기 위해 아우터 갓을 향해 땅을 차고 뛰어올랐다.

바람을 찢으며 몸을 회전시킨 준혁에 따라 신검 역시도 그 회전의 힘을 받으며 현란한 황금빛 궤적이 수십 갈래로 나뉘어지며 아우터 갓의 외피를 베어 냈다.

준혁은 그것에 그치지 않고 마력의 장막을 만들어 장막을 발로 차면서 아우터 갓의 거체를 향해 돌진했다.

파충류를 닮은 아우터 갓의 시뻘건 눈길이 준혁에게 향하며 대응하기 위한 암흑 마법이 마치 구름처럼 형성되어 준혁을 감쌌다.

준혁이 신성력을 극한으로 끌어올릴 때, 아우터 갓의 등을 향해 청룡과 현무의 무기가 쾌속으로 몰아쳤다.

별빛 같은 보라색 가루가 떨어져 나감에 따라 아우터 갓은 집중력을 잃고 흔들리기 시작했다.

준혁의 신검이 아우터 갓의 가슴을 뚫고 들어가는 순간 주작의 마법이 발동되어 거대한 마법진이 아우터 갓의 팔 한 짝을 날려 버렸다.

엄청난 양으로 떨어지는 보랏빛의 가루들.

아우터 갓의 비명이 천지를 울리듯 퍼져 나갔다.

지면에 부드럽게 착지한 준혁은 검을 한 차례 갈무리했다가 전력의 신성력을 담은 검을 발출하기 위해 자세를 낮추었다.

그리고, 이내 검에서 신성력이 다시금 발출되는 순간 아우터 갓의 다리 한 짝이 잘려 나가며 거체가 기울어졌다.

쿠우우우우우웅!

지진처럼 땅이 흔들리고 뿌연 먼지가 사방으로 풀풀 날렸다.

준혁이 뿌연 모래를 뚫고 들어가 아우터 갓의 상태를 확인했을 때 놈의 마법이 발동되고 있었다.

마해의 파도처럼 암흑의 결이 아우터 갓의 등 뒤에서 밀려오고 있었다.

준혁은 아우터 갓의 마법을 두려워하지 않고 눈을 똑바로 뜬 채로 정면으로 마주하며 섰다.

아우터 갓의 의문이 해결되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의 마법이 주작의 마법진에 빨려 들어가며 다른 세계로 넘어갔기 때문이었다.

한순간에 무기를 잃은 아우터 갓이 당황할 때 준혁의 검은 이미 출격을 준비 중인 상태였다.

준혁이 한 줄기의 빛이 되어 아우터 갓을 스쳐 지나가자 아우터 갓의 거체는 반 토막이 되어 잘려 나갔다.

그와 동시에 검은빛 무리가 아우터 갓을 감쌌다.

번-쩍!

검은 구체가 폭발하듯이 퍼지더니 아우터 갓은 그 자리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굵어진 빗줄기가 폐허가 돼 버린 주변으로 떨어져 내렸다.

꽤 강한 비가 내리기 시작했음에도 주변의 불길은 사라지지 않고 밝게 타오르며 준혁과 신수들을 비추었다.

준혁은 어깨를 붙잡고 의식을 잃은 최설화 앞으로 걸어갔다.

천계의 천사일 거라고는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천계에서 인간계를 돕기 위해 천사를 내릴 거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준혁은 쓰게 굳은 얼굴로 의식 잃은 최설화에게 신성력을 주입했다.

새파랗게 질려 있던 최설화의 얼굴에 조금은 온기가 생기는 듯했다.

“현무.”

“예.”

“가장 가까운 병원으로 데려가서 치료시켜. 최상급 힐러진으로.”

“알겠습니다.”

현무가 최설화를 데리고 폐차장을 떠났다.

“해치운 겁니까?”

청룡이 준혁의 앞으로 다가가며 물었다.

“아마 자신의 은거지에서 회복 중이겠지.”

청룡이 눈살을 구겼다.

그 사이 준혁은 청룡의 주변에 서 있는 다른 신수들을 보았다.

주작과 기린, 그리고 백호.

그 사이에 백호만이 고개를 숙인 채 축 처져 있었다.

“백호.”

준혁이 부르자 신수들 뒤에 숨어 있듯이 서 있던 백호가 흠칫 어깨를 떨었다.

“청룡. 곧 파천 길드가 올 거야. 현장 정리하는데 간단히 설명해 주고. 케일은 다른 신수들이랑 같이 화재 진압 좀 도와줘.”

“알았어.”

케일이 백호를 힐끔 보면서 걸음을 옮겼고, 청룡도 자리를 떠났다.

신수들이 기린과 주작은 눈치를 보다가 서둘러 청룡과 케일을 따라 움직였다.

백호에게 향하는 발소리가 울렸다.

준혁은 백호의 코앞에 섰다.

백호는 시선을 아래로 내리고 여전히 고개를 들지 못한 채 쭈뼛거렸다.

“고개 들어. 괜찮으니까.”

백호가 머뭇거리다가 겨우 얼굴을 들어 준혁의 눈을 보았다. 백호는 준혁의 강한 눈동자를 보고 곧바로 다시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마주할 용기가 없어서였다.

“네가 잘못은 한 건 맞지만, 이건 결국 내 책임이다.”

백호가 놀란 얼굴로 준혁을 보았다.

“……네?”

준혁은 저 멀리 쉽게 꺼지지 않을 것 같은 불길을 바라보며 숨을 크게 내쉬었다.

“시간이 없었고, 그래서 무리하게 사냥터에 보내기로 결정한 건 나야.”

준혁이 백호를 보며 말을 이었다.

“네가 이성을 잃은 건 네 의지와 상관없이 벌어진 사고였고.”

“하지만 사람을 해쳤어요. 그러면 안 되는 건데.”

백호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누구나 실수할 수 있다. 나 역시도 실수를 해. 하지만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면 되는 거다.”

백호가 조금 진정이 된 듯한 얼굴이 됐다.

“실수였고 사고였어. 네가 의도적으로 벌인 일이 아니잖아. 난 그렇게 믿는다. 아닌가?”

“……맞아요.”

“반성하고, 같은 실수를 하지 않도록 오늘의 일을 잊지 마. 그럼 된 거야.”

“네, 주인님.”

“강해진 만큼 여유를 가져야 한다. 백호.”

준혁의 백호의 어깨에 손을 짚으며 말했다.

백호는 눈가에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폐차장 뒷문 쪽으로 가면 지우가 있을 거야. 같이 캐슬로 가서 쉬고 있어.”

“저도……!”

준혁의 눈빛을 보고 백호는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

“그럴게요.”

준혁이 등을 쳐 주자 백호는 축 처진 채로 폐차장 뒷문으로 향했다.

그 사이 준혁은 엉망진창으로 변해 버린 도심을 보고 한숨을 뱉었다.

망가져 버린 현장과 백호의 사고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해결할 방법이 있었다.

무너진 동네야 고치면 그만이고, 백호의 사건 역시 병원에 실려 간 헌터도 목숨을 건지고 살았으니까.

다만 이번 아우터 갓의 등장으로 인한 인명피해가 더 큰 일이었다.

부디 많은 사람이 다치지 않길 바라며 준혁은 건물 안에 갇혀 있는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신형을 날렸다.

* * *

사고 현장의 정리는 본래의 흐름보다 훨씬 빨리 진행되고 있었다.

신수들의 도움이 컸다.

건물에 갇혀 있는 사람들을 구하는데 가장 큰 공을 세운 건 공간계 능력을 사용할 수 있는 케일이었다.

건물들을 무너지지 않게 하면서 구출 작전을 펼칠 수 있는데 신수들의 능력이 빛을 발했다.

신수들의 활약에 대해 좋은 반응도 있었지만 그 반대의 반응 역시 적지 않았다.

백호가 사람을 해친 것으로 신수들의 이중적인 면모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 * *

“신수는 위험합니다.”

“예? 대체 무슨 논리로 그런 말씀을 하시는 거죠?”

“며칠 전 백호 사건. 기억나지 않으십니까?”

“피해자 헌터의 말에 의하면 자기들이 먼저 시비를 걸었다고 인정했던데요.”

“흥, 그야 권력자의 입김에 의해 굴복한 것일지도 모르죠.”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신수가 사람을 해쳤는데도 각성자 재판을 받지 않아요. 왜? 법이 없으니까요.”

“법이야 만들면 되는 거고. 자꾸 귀환자님의 신수를 걸고넘어지시는데. 이거 다 정치인들 표 때문에 하는 선동 아닙니까?”

“이 사람이! 당신 말 다 했어?!”

“왜 갑자기 반말이야!? 그리고 당신은 뭐 목숨이 열 개라도 돼?!”

삐빅!

선우는 케이블 방송에서 신수를 주제로 하는 토론 방송을 보다가 TV 전원을 껐다.

신수에 대한 이야기가 점점 시간이 흐름에 따라 확산되고 있었다.

비단 이런 토론 프로그램이 문제가 아니라, 실제로 신수에 대한 부정적인 의견이 나오고 있다는 게 문제였다.

평화는 곧 사회문제로 이어졌고 그보다 더 빠르게 정치와 연결되었다.

선우는 창가로 가서 창문 밖을 내다보았다.

늦은 저녁. 기자들이 잔뜩 모여 있었다.

- 귀환자님 들어가십니다.

스피커폰을 통해 비서의 목소리가 들렸다.

문이 열리고 준혁이 협회장실로 들어왔다.

준혁이 눈인사를 하고 소파에 앉을 때, 동생 선우는 셔츠 소매를 걷으며 준혁의 맞은편에 앉았다.

“백호는 좀 어때?”

선우가 물었다.

“괜찮아. 신경 쓰고 있는 것 같긴 하지만.”

“요즘 분위기는 알고 있지?”

준혁이 인테리어 소품을 만지며 고개를 끄덕였다.

“당분간 신수들 던전 사냥이 어렵겠어.”

“신경 쓰지 마.”

고양이 모양의 인테리어 소품을 내려놓으면서 준혁이 말했다.

“당분간 쉴 생각이야?”

준혁이 작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이제 슬슬 떠날 때가 된 거지.”

“무슨 의미야?”

선우가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준혁이 주먹을 꽉 쥐었다 폈다를 반복했다.

“형.”

“끝을 내야 하니까.”

“차원을 넘는다는 뜻이야?”

“어쩌면…….”

준혁이 말끝을 흐렸다.

이런 경우는 잘 없었던 터라 선우는 심호흡을 크게 하고서 다시 준혁을 주시했다.

“말해, 형.”

“어쩌면 못 돌아올지도 몰라.”

“뭐?”

“회복 중인 아우터 갓을 노린다고 하더라도, 어쩌면 준비가 안 된 쪽은 우리일지도 모르지. 즉, 결과는 판을 열어 봐야 알 수 있는 일인 거니까.”

“그럼 돌아올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말은…….”

“여러 가지의 경우의 수야 있겠지만.”

“장난치지 마. 확실하지 않은 베팅은 하지 않는 게.”

“지금까지도 충분히 넘치도록 많은 시간을 부여받았어. 이 정도로 여유 있게 준비할 줄은 몰랐거든. 신수를 모두 모을 수 있을 거라고도 사실 확신하지 못했었고.”

“……너무 위험해, 형.”

“머뭇거릴 수 없어. 마계에서 그랬듯 언제나 피할 수 없는 순간이 있지.”

“이건 그때랑 경우가 다르잖아.”

“다르지 않아.”

선우는 준혁의 눈빛을 보고 놀란 얼굴이 됐다.

설득할 수 없는, 결연의 의지와 각오가 새겨진 눈빛은 감히 건드릴 수 없는 영역의 선이 존재했다.

“해낼 거다.”

“…….”

“반드시 돌아올 거야. 하지만 오랜 시간이 걸릴지도 모르니까. 그래서 그런 말을 한 거야.”

선우는 무거워진 얼굴로 허공을 보았다.

“형을 믿어. 하지만 자꾸 형이 사라졌을 때가 생각이 나. 그때처럼 또 먼 곳으로 간다고 생각하니까. 조금 무섭네.”

“만약 어느 순간 던전이 사라진다면.”

준혁이 먼 곳을 보며 미소 지었다.

“그때, 우리가 다시 돌아올 거야. 더 이상 마수의 위협이 존재하지 않는, 여기. 바로 네가 있는 이곳으로.”

선우는 마음을 정리한 듯 한숨을 내쉬곤 웃었다.

준혁도 피식 웃었다.

“전 세계 사람들한테 신수 문제니 던전 문제니. 어떻게 공식 발표를 해야 할지 골치 아팠는데. 한 번에 해결이 됐네.”

“당분간 잠수? 뭐 그런 걸로 발표하면 되겠네.”

준혁이 웃으며 일어났다.

“다녀올게.”

준혁이 악수를 위해 손을 내밀었다.

선우는 천천히 일어나 우애가 가득 담긴 눈길로 준혁을 바라보다가 준혁의 손을 잡았다.

“기다리고 있을 게, 형.”

준혁이 선우를 가볍게 안아 주고 협회장실을 나갔다.

텅 빈 협회장실 안에서 선우는 집무 테이블 앞에 털썩 앉았다.

가슴이 텅 빈 것처럼, 허전함이 가슴을 물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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