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자의 모든 것 165화
축축한 비가 내렸다.
내리는 듯 내리지 않는 빗속의 폐차장.
백호는 찌그러진 차량 사이에서 무릎을 끌어안은 채로 웅크려 앉아 있었다.
그런 백호의 뇌리에는 지난 기억들이 스쳐 지나가고 있었다.
처음 주인을 만나 캐슬에서 뛰어놀던 때부터 지금까지. 단 하루도, 단 한순간도 행복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새로운 식구들을 만나는 것도 즐거웠고, 주인의 기대에 부흥하기 위해 수련과 사냥으로 성장했던 기억이 선명했다.
하지만 그 모든 행복했던 기억들은 단 한순간의 실수로 산산조각 나듯 깨져 나갔다.
주인을 볼 면목도 없었고, 세상의 손가락질도 두려웠다.
신비로운 생명체이자 수호자와도 같았던 이미지였던 신수는 인간을 해치는 짐승이 된 것이다.
백호는 머리를 감싸 쥐며 괴로워했다.
아무도 없는 곳으로 사라지고 싶다는 생각만이 머릿속을 가득 지배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백호는 무릎에 얼굴을 파묻으며 흐느꼈다.
경험한 적 없는 전혀 새로운 형태의 두려움과 공포감이 백호의 가슴을 검게 물들이고 있었다.
추적추적 내리는 비와 쥐 소리만이 들리는 폐차장에서 백호는 점점 더 자신의 공간이 작아지는 걸 느꼈다.
곧 끝없는 벼랑 아래로 떨어질 것만 같은 불안이 지속됐다.
두근거리는 심장의 고동은 빨라지고 전신이 땀에 젖어 손끝이 바들바들 떨렸다.
목소리가 들려온 건 그쯤이었다.
[넌 그저 이용당했을 뿐이야.]
갑작스럽게 들려온 목소리에 백호는 당황하여 얼굴을 바짝 들었다.
백호는 사방에 찌그러진 차량에 둘러싸여 있었다.
전방의 틈새로 들어온 곳이었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자 검은 하늘이 빗물을 뿌리고 있었다.
어디서 들려온 목소리인지 가늠할 수 없었다.
백호는 잔뜩 긴장하여 차량에 등을 바짝 기댔다.
[신수와 인간의 관계에 의미가 있을까?]
백호는 눈살을 찌푸리며 소리에 집중했다.
[인간들을 너를 미워하고, 증오하며, 살해하고 싶어 한다.]
백호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귀환자는 목적만 이루면 너희 같은 것들은 필요 없어. 처치 곤란의 짐짝일 뿐인 것이다.]
백호의 눈동자가 흔들리고 호흡이 거칠어졌다.
[처음이 어려울 뿐. 넌 또다시 인간을 해치게 될 거다. 그리고 인간들과 싸우며 네 정체성을 찾기 위해 더 폭주하기 시작하겠지.]
“……아, 아니야. 아니야!”
백호가 울분 섞인 목소리로 소리쳤다.
[나와라. 내가 너에게 진실을 보여 줄 것이니.]
그 목소리를 끝으로 고요함이 찾아왔다.
진실이라는 단어가 백호의 머릿속에서 천둥처럼 반복되어 울려 퍼졌다.
이에 백호는 홀린 듯이 웅크리고 있던 몸을 천천히 일으켰다.
폐차 사이에서 바깥으로 나가자 빈 공터에 거대한 파충류의 눈을 닮은 불꽃 같은 형체가 떠 있었다.
백호는 입을 벌리고 넋을 잃은 채로 바라보았다.
압도당하는 강렬한 포스가 백호를 집어삼켰다.
그 순간 순식간에 주변이 암흑으로 변하였다.
마치 우주에 떠 있는 것처럼 백호는 암흑 속에서 거대한 눈과 마주해 있었다.
주변을 두리번거려 봤자 보이는 것은 오직 어둠뿐이었다.
“놀라지 마라. 이곳이 너의 안식이니.”
백호는 눈을 끔뻑이며 타오르는 눈동자를 보았다.
“결국 모두가 너를 이용하고 버릴 것이다. 이기심은 인간의 자연스러운 본능. 그들은 신이 아니며 너의 주인 또한 신이 아니다. 신의 권능이란 네게 안식을 줄 수 있는 유일한 너의 편이다.”
백호는 혼란스러웠다.
갑자기 이런 상황이 일어난 것도 그렇지만 이상하게 잠들어 있던 분노가 조금씩 깨어나고 있는 것을 느껴서였다.
인간들의 더러운 이기심과 욕망이 떠올랐다.
도움을 받을 때는 천사 같은 얼굴을 하지만, 필요가 없어지면 오히려 불편해하며 악마처럼 변해 버리는 인간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내가 잘못한 게 아니야.”
백호는 자신이 상처 입힌 헌터를 떠올리며 낮게 읊조렸다.
“그래. 너의 잘못이 아니지. 인간들의 탐욕과 공포가 순수한 너를 이용하고, 버리는 것뿐이다.”
“주인님은, 주인님은 날 버리지 않아.”
백호가 타오르는 눈동자를 향해 말했다.
“그럴까? 정말?”
의문을 받자 백호는 바로 대답할 수 없었다.
한 번 자라기 시작한 의심은 걷잡을 수 없는 화마처럼 번지고 있었다.
아우터 갓의 권속 계약이 시커먼 연기를 뿌리며 백호에게 뱀처럼 스멀스멀 다가갔다.
백호는 방어 능력이 상실되어 있는 상태였다.
아우터 갓의 검은 권속이 가진 힘이 백호에게 스며들게 되면 훨씬 더 주도적으로 백호의 감정을 뒤흔들 수 있었다.
그렇게 완전히 감정을 망가트리게 되면 이는 정신계의 공격으로써 인간계에 대한 저항을 최소화하며 신수를 어둠으로 삼킬 수 있었다.
때문에 아우터 갓은 마치 뱀이 먹이를 조이듯이 느리면서도 가속을 머금고 백호의 감정을 파고들었다.
아우터 갓의 권속이 백호에게 침투하기 위해 피부를 타는 순간 반대편에서 찬란한 빛이 어둠을 갈랐다.
타오르던 눈동자는 갑작스러운 빛의 등장에 그 즉시 본체를 드러냈다.
아우터 갓은 수염처럼 달린 수백 개의 촉수와 거체를 드러내며 빛에 대한 적개심을 드러냈다.
그도 그럴 것이 인간계에서 볼 수 없는 힘이 빛과 함께 섞여 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절대로 귀환자 1인이 만들 수 있는 빛의 성질이 아니었다.
아우터 갓은 어둠의 힘을 한계치까지 끌어 올리며, 어둠 속으로 들어와 확장하려는 빛을 향해 권능을 쏟아냈다.
그 사이의 혼돈 속에 머무르고 있던 백호는 빛과 어둠의 충격 사이에서 죽음이 다가오고 있음을 직감했다.
이 거대한 충돌 사이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 같은 건 없었다.
그들 사이에서 자신은 그저 한없이 약한 알갱이에 지나지 않았다.
파괴의 압력이 백호를 짓누르려 했으나 투명한 빛이 신체를 포근하게 감쌌다.
빛의 일부였다.
소리 없는 충격이 백호를 감싸고 있는 투명한 막을 휩쓸고 지나간 후, 찬란한 빛이 곧 암흑을 걷어냈다.
백호는 땀이 비 오듯 흐르는 얼굴로 폐차장을 훑어보았다. 그리고 이내 아우터 갓과 마주한 한 존재를 볼 수 있었다.
백호가 충격을 먹은 눈으로 그 존재를 바라보았다.
“누…… 누나?”
백호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굳은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며 떨리는 목소리를 냈다.
찬란한 빛으로 어둠을 지워 버리고 아우터 갓과 대치한 존재가 백호를 돌아보며 미소 지었다.
“괜찮니?”
백호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그녀를 응시했다.
백호가 혼란스러운 얼굴로 바라보는 이는 힐러, 최설화였다.
아무리 뛰어난 힐러라고 하더라도 무시무시한 아우터 갓을 상대로 이렇게 비견되는 힘을 쓸 수 있는 건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어떻게 이렇게?”
“어서 안전한 곳으로 피해.”
최설화가 그렇게 말한 순간 아우터 갓은 이미 권능의 힘을 발현하고 있었다.
최설화는 어둠의 힘을 똑바로 응시하며 아우터 갓을 향해 달렸다.
마치 시간을 거스르듯 빛의 힘은 어둠을 찢으며 아우터 갓을 향해 나아갔다.
섬광과도 같은 한 줄기의 빛이 아우터 갓을 관통했다.
아우터 갓은 괴로운 듯 거체를 한 차례 출렁였다. 하지만 곧바로 자세를 잡아 다시 반격에 나섰다.
“감히 한 마리의 천사 따위가……!”
아우터 갓의 분노가 최설화를 향해 떨어져 내렸다.
콰르릉!
어둠의 벼락이 프로텍트 보호벽을 깨부수고 마치 창처럼 내리꽂혔다. 최설화는 어깨를 관통당하고 마력에 지져지면서 뒷걸음질 치며 쓰러졌다.
힐 치료를 했지만 어둠은 마치 중독된 것처럼 어깨를 시작으로 전신에 서서히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땅에 십자가 형태의 불길이 확 번져 수 키로 반경의 건물들이 순식간에 잿더미가 되며 불에 타올랐다.
쿠르릉-!
땅에 금이 가며 벌어졌다.
어둠의 힘은 최설화를 관통한 것에 그치지 않고 서서히 그 파장을 만들어 주변을 망가트리기 시작하고 있었다.
어둠은 마치 태초로 돌아가고자 하듯이 물질들을 암흑으로 삼켜나가고 있었다.
흔들리는 땅과, 치솟는 불길.
사방으로 휘몰아치는 암흑의 힘들이 마치 종말을 예고하는 듯했다.
“설화 누나!”
백호가 우는 얼굴로 달려가 쓰러져 있는 최설화를 부축했다.
그녀의 얼굴은 창백했다. 곧 숨을 거둘 것처럼 동공의 빛이 희미해져 가고 있었다.
“정신 차려. 정신 차리라고!”
백호가 어쩔 줄 몰라 하자 최설화가 쓰게 웃었다.
“너무 걱정하지 마. 곧 그분이 오실 테니.”
최설화가 가쁜 숨을 내쉬며 말했다.
“병원으로 데려갈게. 아파도 조금만 참아.”
백호가 눈물범벅이 된 얼굴로, 점점 암흑 성질에 의해 어깨부터 빠르게 괴사되어 가는 최설화의 상처를 보며 말했다.
백호가 최설화를 안아 들고 일어섰을 때, 암흑 기류가 마치 채찍처럼 날아와 백호와 최설화를 한 번에 묶었다.
강하게 조여 오는 힘에 의해 백호는 고개를 젖히며 비명을 질렀다.
[천계의 천사가 어리석은 인간과 어울려 신에 대항하려 하다니. 어리석은 짐승과 함께 암흑 속으로 사라져라.]
시커먼 구체 덩어리들이 최설화를 안고 있는 백호 주변으로 회전했다.
마치 우주의 별처럼 떠도는 구체들은 투명한 빛의 막을 갖고 있었는데 그 막이 점차 진한 어둠으로 물들어감에 따라 주변의 공간이 마치 일그러진 것처럼 왜곡되기 시작했다.
이 힘이 완전해지는 순간 세계에서 사라지게 된다.
전신이 찢겨져 나가 암흑 속에 영원히 머물게 되는 끔찍한 권속의 힘이었다.
극한의 공포와 고통이 백호와 최설화를 삼키기 직전 드래곤 케일이 본체의 모습으로 아우터 갓을 향해 꺼지지 않는 불꽃, 브레스를 뿜었다.
화르르르르륵!
시뻘건 초고온의 불길이 아우터 갓을 휘감았다.
뒤이어 질풍처럼 바람을 뚫고 온 준혁이 신검을 휘둘렀다. 커다란 궤적이 황금빛을 뿌리며 아우터 갓을 베기 위해 현혹적으로 날아들었다.
아우터 갓이 암흑으로 방어벽을 만들었지만 신검에서 뿜어져 나온 힘은 암흑의 벽을 파괴하고 아우터 갓의 피부를 찢어 냈다.
드래곤 브레스에 의해 불타는 채로 준혁의 일검에 적중당한 아우터 갓은 괴성을 지르며 몸을 뒤흔들었다.
역설적으로 인간계로 내려온 아우터 갓은 차원을 넘은 것에 대한 대가를 이미 지불함으로써 자신의 능력에 70퍼센트 이상이 발현하기 어려운 상태였다.
암흑 속에 있어야 가장 완전한 존재가 될 수 있는 아우터 갓에게 인간계에서 준혁을 만난 것은 재앙에 가까운 일이었다.
물론 40퍼센트의 힘만으로도 준혁과 충분히 겨룰 수 있는 힘을 갖고 있었지만 문제는 준혁 하나가 아니었다.
그동안 준혁이 아우터 갓을 상대하기 위해 준비한 것은 비단 자신 개인의 힘만이 아니다.
신수들이 폐차장에 집결함에 따라 준혁의 신검은 더 큰 힘을 받아 황금빛의 벼락이 쉬지 않고 휘몰아쳤으며 신수들의 마법은 아우터 갓에게 적용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