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자의 모든 것 161화
비서의 피부 껍질이 벗겨지더니 완전히 다른 외양으로 변했다.
마치 허물을 벗듯이 변화한 토텝의 모습은 기괴했다.
선우는 굳은 얼굴로 토텝을 노려보며 테이블을 짚고 일어섰다.
수십 개의 검은 다리가 허리 아래로 출렁였다.
인간 정도의 키였지만 본체의 외양을 가진 터라 보는 것만으로도 압도당할 만큼 무시무시한 외모를 가진 채로 선우에게 느릿하게 접근했다.
선우는 질린 얼굴로 뒷걸음질 쳤다.
소름이 끼쳤다.
단순히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전신의 뼈가 욱신거리고 피부는 불에 타는 듯했다.
심장은 터질 듯이 쿵쾅거리며 가슴이 뜨거워졌다.
뱃속이 울렁거려 헛구역질마저 올라왔다.
눈은 충혈되었으며 피부의 혈관이 울긋불긋 올라왔다.
숨쉬기가 힘들어져 선우의 호흡이 점차 거칠어졌다.
토텝은 아무런 힘도 행사하지 않았다.
그저 본체의 존재감이 만들어 낸 육체의 반응이었다.
“제법이구나? 평범한 수준의 놈들은 본디 이 나를 보자마자 미쳐서 죽어 버리는 것이 정상이거늘.”
선우가 일그러진 얼굴로 간신히 테이블을 짚은 채로 서서 토텝을 노려보았다.
휘리릭!
여러 개의 촉수가 선우의 몸을 밧줄처럼 꽁꽁 묶었다.
“네 형이 나타나면 네 육체는 폐차가 되듯이 찌그러지며 피 분수를 뿜게 될 거야.”
토텝이 섬뜩한 눈동자로 선우를 응시하며 말을 이었다.
“형제를 잃은 귀환자에게 남는 것은 뭐지? 그의 복수는 내게 닿을 수 없을 것이며 절망과 분노로 뒤섞인 광기가 오히려 날 더 강하게 만들어 줄 것이다.”
토텝의 괴기스러운 웃음소리가 선우의 귓속으로 파고들었다.
“형이 고작 너 같은 놈에게 휘둘릴까? 웃기지 마.”
토텝이 선우를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이상하군. 네게선 전혀 절망이나 공포의 감정이 느껴지지 않아. 어째서지?”
“너 따위는 두렵지가 않은 거지. 보고도 몰라?”
토텝이 음흉하게 웃었다.
“그럴 리가.”
꾸드득!
촉수가 선우의 살갗을 파고들었다.
선우의 코와 입에서 핏물이 흘러내렸다.
눈은 터질 것처럼 붉어졌으며 전신이 바들바들 떨렸다.
그런 선우를 지켜보면서 토텝은 뭔가 석연치 않은 반응이라고 생각했다.
본디 인간은 죽음을 앞두면 그 죽음과 관련 감정을 느끼기 마련이었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한선우로부터는 그런 감정이 전혀 전해지지 않았다. 감정을 먹고 사는 토텝으로서는 이토록 맛없는 인간은 처음인 것이다.
머리가 잘못된 녀석인가 싶었지만 관측 결과 뇌는 신선도가 매우 높았다.
평범한 인간보다 오히려 더 깨끗하고 좋은 뇌를 가진 녀석이었다.
전혀 앞뒤가 맞지 않는 반응.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점점 확신으로 굳어지고 있던 때, 선우가 피를 흘리는 얼굴을 천천히 들어 미소 지었다.
토텝은 그 미소가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 잘 알았다. 누구보다 감정을 잘 캐치해 내고 그 감정을 삼키는 토텝이었다.
“……너 지금 무슨.”
화르륵!
선우의 몸을 감싸 묶고 있던 토텝의 촉수가 불에 타오르기 시작했다.
토텝의 눈동자가 커졌다.
평범할 불길이 아니었다. 꺼지지 않는 불꽃. 어딘가 익숙하게 느껴지는 이 불꽃의 근원이 어디인지 토텝은 곧 알아차렸다.
드래곤 브레스였다.
“……대체 어떻게.”
불이 붙은 촉수를 바로 풀어 버리자 불꽃이 터졌다. 불길이 약해지긴 했지만 여전히 촉수에는 불이 붙어 있었다.
뜨거운 불빛이 협회장실 내부를 벌겋게 비추었다.
그 사이 선우는 자신의 수트 상의와 셔츠를 손으로 찢어 냈다.
맨몸의 상체에는 마법 문자가 빈틈없이 새겨져 있었다.
드래곤이 마법의 힘을 담아 새긴 룬어였다.
토텝은 그제야 자신이 함정에 빠졌다는 사실을 자각할 수 있었다.
계획된 덫에 걸린 토텝은 어처구니없다는 듯 황당함에 물든 채로 턱을 치켜들었다.
“감히 날 상대로 함정을 파? 너희들이 그럴 주제나 되더냐!”
토텝으로부터 거대한 기운이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그 힘은 숨결만으로도 도시를 날려 버릴 수 있을 만큼 강했다.
건물이 지진이 크게 난 것처럼 우르르 떨렸다.
천장에서 분진이 떨어져 내리고 사물들이 사방으로 흔들리며 쓰러졌다.
토텝은 고민했다.
저 귀환자의 핏줄을 어떤 식으로 괴롭혀야 가장 큰 고통을 느낄 수 있을지. 그리고 곧 수많은 고문법 중 하나로 결론을 내렸다.
“그럼 이제 우리 놀아 볼까?”
토텝이 공중에 뜬 채로 선우에게 다가갔다.
시커먼 손과 칼날 같은 손톱에서 검은 연기가 풀풀 날렸다.
그 순간 선우의 상체에 새겨진 드래곤의 룬 문자에서 눈부신 금빛이 줄기줄기 뿜어져 나왔다.
단순히 브레스 마법뿐만이 아니라 남은 마법이 있다는 사실에 토텝은 웃음을 터트렸다.
“고작 드래곤의 힘으로 나를 막을 수 있을 것 같더냐?”
선우의 피부에 새겨진 룬 문자는 토텝을 향하지 않았다.
그 금빛의 마력 파동은 바닥과 천장 그리고 벽면까지.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뒤이어 협회장실 내부 사면에 룬 문자가 새겨졌다.
그 것은 준혁과 드래곤 케일이 신성력과 드래곤의 순수한 성력을 합쳐 만든 마법진이었다.
천계의 힘이 묻어나 있어 토텝조차 건드릴 수 없는 완전한 영역이 만들어졌다.
그 순간 섬광 같은 빛을 뿌리며 케일이 나타나 선우를 데리고 사라졌다.
케일이 선우가 떠난 후, 발소리가 협회장실에 울려 퍼졌다.
협회장실 안을 걷고 있는 건 준혁이었다.
토텝이 어두운 검은 기류를 줄줄 뿜으며 준혁을 돌아봤다.
“더 이상 장난은 없어. 너와 나. 여기서 결판이다.”
토텝이 고개를 모로 꺾으며 웃었다.
“이렇게 사방을 막으면 내가 너한테 질 거라고 생각한 건가?”
토텝의 촉수 다리에서 암흑의 힘이 흘러나왔다.
“체크메이트다. 토텝.”
준혁의 손에 헬바인의 장검이 소환되었다.
드래곤 케일의 마법에 의해 준혁이 들어온 출입구마저 단단히 봉쇄되었다.
공간계의 힘을 사용할 수 없도록 만들어 둔 덫이었다.
“나와 싸운다는 건, 우리 둘 중 하나는 반드시 죽는다는 뜻인데. 이건 새로운 자살 방법이로군.”
“이런 걸 두고 사냥이라고 하는 거다. 멍청한 오징어야.”
토텝이 준혁의 눈동자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차분하게 가라앉아 흥분하지도 않고 냉정하게 자리를 잡은, 힘 있는 시선이 토텝에게로 박혔다.
토텝은 정말 재미있다는 듯이 웃었다.
“신을 사냥하는 인간이라.”
콰지지지직!
토텝에게서 재앙의 힘이 마치 전류처럼 스파크를 튀기며 암흑 계열의 마력이 쏟아져 나왔다.
“그래. 어디 한번 그 대단한 실력을 구경해 보자.”
준혁이 다리를 굽혀 토텝을 향해 사뿐하게, 튕기듯이 신형을 날렸다.
커다란 암흑 방패가 생성되었지만 놀랍게도 준혁은 헬바인의 장검으로 유리를 깨트리듯 가볍게 그 방패를 파괴했다.
검은 파편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토텝은 곧장 권능의 손길로 준혁을 향해 발톱을 휘둘렀다.
보랏빛과 검은빛이 뒤섞인, 퀴퀴한 색이 준혁을 향해 뿌려졌다.
콰콰콰콰콰콰콰쾅!
반경 1km 정도는 흔적도 없이 날려 버릴 만한 폭발이 일었지만 그 파괴의 힘은 벽면과 같은 사면에 새겨진 마법 문자가 모조리 흡수했다.
“호오.”
토텝은 감탄했다.
단순히 마법으로 이 정도의 힘을 흡수하는 것은 초월적인 마법 능력을 필요로 했기 때문이다.
“……그렇군. 폭발을 흡수하여 가둔 것이 아니라 다른 세계로 보내 버린 건가?”
드래곤 케일의 의도를 알아차린 토텝이 수백 개의 이빨이 돋아나 있는 괴이한 얼굴로 미소를 지을 때, 준혁의 검은 새로운 궤적을 그리고 있었다.
5대 신수를 모두 모아 그 보상으로 가지게 된 권능의 힘이 토텝을 향해 폭발했다.
여유만만했던 토텝은 상상했던 것 이상의 힘이 휘몰아치자 급격히 방어 태세를 구축하며 신력을 끌어 올렸다.
이로써 토텝의 암흑 계열의 권능과 준혁의 신성력이 정면으로 충돌했다.
힘의 파장이 생성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벽에 새겨진 마법 문자는 그대로 충돌의 여파를 모조리 흡수했다.
그 사이 서로의 힘을 한 번 주고받은 준혁과 토텝의 대치 중에서 먼저 2차 공격을 실행한 것은 준혁 쪽이었다.
장검의 칼날이 토텝의 다리 중 하나인 촉수 하나를 잘라 내자 검은 입자가 허공으로 마치 핏물처럼 뿌려졌다.
“감히 인간 주제에……!”
토텝이 노성을 터트리며 손에 쥔 암흑 덩어리를 바닥으로 집어 던졌다.
그러자 땅에 떨어진 검은 덩어리는 순식간에 수십 개의 줄기가 뻗어져 나와 준혁을 휘감기 위해 쏘아져 나갔다.
준혁이 헬바인의 장검을 대각으로 긋자, 신성력을 머금은 검강이 그 살아 움직이듯 출렁이는 검은 줄기들을 베어 냈다.
촤르르르르!
마치 수백 개의 구슬이 구르는 듯한 소리를 내며 토텝의 암흑 마법이 찢겨져 나갔다.
“제법이다만.”
악에 물든 웃음소리를 흘리며 숨겨 둔 힘을 드러냈다.
우주를 지배하는 권능이 발현되어 검은 벼락이 사방으로 뻗어져 나갔다. 준혁은 그 검은 벼락을 헤쳐 나가며 토텝을 향해 칼을 휘둘렀다.
토텝은 준혁의 생기와 마력을 자신에게 빨아 당기면서 여유롭게 준혁의 공격을 맞받아쳤다.
검은 벼락과 준혁의 신성력이 충돌함에 따라 천둥보다 커다란 파괴음이 끊임없이 터져 나왔다.
수천 개의 촉수 다리가 준혁을 향해 쇄도했다.
준혁은 헬바인의 장검으로 촉수를 잘라 내면서 검에 끊임없는 신성력을 주입했다.
암흑의 정점에 서 있는 토텝에게 마력을 쓰는 공격은 전혀 의미가 없었다.
천계로부터 이어져 온 힘만이 토텝을 상대할 수 있는 유일한 상성의 힘이었다.
준혁은 전신을 때리는 검은 벼락을 온몸으로 맞으면서도 이를 악물고 앞으로 나아가며 징그럽게 흔들리는 촉수 다리를 베었다.
신성력의 힘이 깃든 만큼 촉수는 재생되지 않았고, 암흑의 힘도 점차 조금씩 그 힘을 잃어 가는 듯했다.
아우터 갓은 스스로를 신이라 일컫지만 놈들 또한 하나의 생명체일 뿐이었다.
불가능한 영역에 있는 것은 악의 생명체가 아닌 천계의 신성한 혼만이 신의 자리를 대신할 수 있다고 멸마의 서에는 기록되어 있었으니 준혁은 그로부터 악의 끝을 멸할 수 있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천 년이 넘는 세월을 머금어 온 칼에 깃든 혼이 마치 울분을 토하듯이 토텝을 향해 파상공세를 이었다.
준혁은 모든 사물의 물체를 빨아당기는 블랙홀과도 같은 힘을 신성력으로 밀어내며 몸체에 검을 찌르기 위해 촉수를 베면서 조금씩 거리를 좁혀 갔다.
살을 베고, 뼈를 잘라 냈으며 내장을 가르기 위해 준혁의 검은 거침없이 전진했다.
후퇴란 없는, 죽음을 불사한 전진이었다.
하나의 도시마저 단숨에 파괴할 수 있을 만큼 강한 힘이 촉수와 마법에 서려 있었지만 검의 정수를 깨달은 것뿐만 아니라 5대 신수의 권능이 깃든 육체였기에 초월체를 상대로 이상적인 검의 경지를 통해 토텝을 압박해 벽으로 밀어붙였다.
한 번 한 번의 베기가 매끈한 절삭력을 만들어 내며 마법과 벼락까지 밀어내기 시작하자 그 신들린 검에 토텝이 당황하기 시작했다.
“인간 놈! 놀이는 이걸로 끝이다.”
하나의 별을 그대로 소멸시켜버릴 만한 힘이 모여들고 있었다.
토텝이 가진 암흑의 정수가 핵을 이루며 그 부피를 더해 갔다.
준혁은 끝없이 출렁였던 촉수들을 베는데 속도를 올렸다. 가속을 통한 현란한 검의 춤사위가 암흑의 생체를 베고 가르며 코앞에 당도했다.
준혁이 검 헬바인의 장검이 토텝의 몸통을 찔렀다.
꿰뚫고 관통하는 칼.
하지만 토텝은 이에 저항을 포기하지 않으며 준비시킨 힘을 열기 위해 권능을 펼쳐 냈다.
“영원한 암흑의 노예가 되어라.”
거대한 파충류의 눈알을 연상시키는 핵이 먹물과도 같은 빛을 뿜어냈을 때 협회장실의 벽면에서 주작을 제외한 4대 신수들이 벽을 통과하고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