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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의 모든 것-160화 (160/175)

귀환자의 모든 것 160화

이른 새벽.

메이드 팀장은 빠른 걸음으로 캐슬 본관에 들어섰다.

그녀는 늘 일반 직원들이 출근하기 전에 가장 먼저 캐슬에 출근했다.

직급이 높다고 해서 태만을 부릴 생각은 없었다.

직급이 높은 만큼 더 완벽하게 관리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했다.

최고만이 올 수 있는 곳이 바로 캐슬이다.

자부심을 가져도 될 만한 곳이다.

메이드 팀장은 가볍게 캐슬 내부를 돌아보며 상태를 체크했다.

귀환자가 가장 편안하게 쉴 수 있도록 청결 상태와 체크되지 못한 문제점들이 있는지 꼼꼼하게 확인했다.

하루 중 가장 여유로운 기분을 느끼는 순간은 바로 지금이다.

급하지 않게, 편안히 하루 일과를 시작하면 가슴 안에 뭔가가 채워지는 느낌이 났다.

이렇듯 하루를 뿌듯하게 시작하는 것은 메이드 팀장의 오랜 습관이었다.

“흥흥.”

그녀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몸에 익은 루틴대로 한 바퀴 캐슬 점검을 마치고 다이닝 룸으로 들어가 재료 상태를 점검했다.

문제가 없음을 확인하고 곧 정원으로 나가 보려던 그녀는 그대로 그 자리에서 얼음처럼 멈췄다.

다이닝 룸 입구에 웬 처음 보는 사내가 서 있었다.

누런 런닝을 입은 노숙자로 보이는 사내였다.

머리는 구불구불한 곱슬머리였고 앞머리는 M자 탈모여서 이마가 훤히 드러났다.

등이 구부정하게 굽은 채였는데 커다랗게 뜨고 있는 눈빛이 기분 나빴다.

진한 다크서클이 눈 밑으로 내려와 있어 눈빛이 어쩐지 더 기괴하게 느껴졌다.

“여긴 어떻게 들어오셨죠?”

캐슬은 최고급 경비 인력이 지키고 있는 곳이다.

저런 노숙자가 아무렇지도 않게 출입할 수 있는 곳이 아니니만큼 어쩌면 귀환자의 초대 손님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기엔 몰골이 너무 추레했다.

“…….”

대답 없이 이쪽을 빤히 보는 남자를 보고 메이드 팀장은 자기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혹시 길을 잃으셨나요?”

말도 안 되는 질문이었지만, 그를 자극하지 않기 위해서 최대한 예의 바른 어투로 물었다.

그러자 남자는 히쭉 웃었다.

이가 누렇거나 시커멓게 썩어 있었다.

메이드 팀장은 털이 쭈뼛 서고 소름이 끼쳐 자신의 입을 틀어막으며 본능적으로 뒷걸음질 쳤다.

남자는 어슬렁거리듯이 다이닝 룸 안으로 느릿하게 걸어 들어왔다.

그는 식탁 위의 과일 바구니에서 식탁 하나를 집더니 와그작 소리를 내며 씹었다.

캐슬 안에는 경비가 없었다.

더욱이 현재 시간은 아무도 기상하지 않는 새벽 5시의 시간대였다.

직원들이 출근하려면 최소한 한 시간은 더 지나야 했다.

남자는 베어문 사과를 우물우물 씹으면서 메이드 팀장을 빤히 쳐다봤다.

“……누구신지는 모르지만, 여긴 캐슬이에요. 귀환자님께서 묶고 계시는.”

팀장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자 남자가 어깨를 흔들며 웃었다.

“알고 있어.”

남자는 그렇게 말하곤 목을 긁적거렸다.

“이 육체는 아주 더럽지. 알레르기 반응 때문인지 아주 간지러워. 냄새도 고약하고. 몸 상태도 엉망이야.”

“…….”

“날 아주 불결하게 쳐다보는군, 부인. 몇 살이지? 40? 50?”

“당장 나가 주세요. 큰일을 치르기 전에.”

남자는 걸음을 옮겨 서랍을 열었다.

그는 그곳에서 담배를 꺼내 피웠다.

연기를 뻑뻑 뿜으며 입구 쪽 근처에 있는 의자를 드르륵 소리 나게 당겼다.

그러곤 히쭉 웃으며 앉았다.

메이드 팀장은 싱크대에 허리를 대고 심호흡을 했다.

심장이 터질 것처럼 쿵쾅거렸다.

하지만 내색하지 않기 위해 애썼다.

이쪽에서 겁먹는 기색을 내비치면 아주 질이 나쁜 장난을 칠 것 같다는 예감이 들어서였다.

남자는 턱을 든 채 비웃는 것 같은 표정으로 메이드 팀장을 주시했다.

그녀는 동공을 굴렸다.

식칼이 멀지 않은 곳에 여러 개가 꽂혀 있었다.

여차하면 칼로 스스로를 보호할 생각이었다.

“난 사물을 투시할 수 있어. 그리고 인간의 마음 역시 내다볼 수 있지.”

“…….”

메이드 팀장은 그가 미친 사람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귀환자가 살고 있다는 건 알고 있어. 그와 나. 우리 둘 중 누가 더 약할까?”

“그야 당연히 당신이지요.”

“어째서?”

“귀환자님을 잘 안다면서요?”

“잘 알지.”

“그런데 어째서 그런 어리석은 질문을 하는 거죠?”

“귀환자는 한낱 인간일 뿐이야.”

“그분을 모욕하지 말아 주세요!”

메이드 팀장이 화난 표정으로 단호하게 말했다. 목소리는 떨렸지만, 감정만큼은 강하게 올라왔다.

“귀환자를 위해 목숨을 바칠 수 있나?”

“…….”

“대답을 못 하는군.”

“할 수 있어요. 그분의 캐슬의 주인이니까요. 그리고 전 지금 일을 하고 있으니 책무를 다해야죠.”

“정말 그럴까?”

화가 나자 어쩐지 용기가 생기는 듯했다.

칼이 있는 쪽으로 시선을 돌릴 때, 남자의 등 뒤에서 튀어나온 수십 개의 촉수가 메이드 팀장의 주변에서 뱀처럼 출렁거렸다.

그녀는 아찔한 공포에 입을 쩍 벌리며 그대로 굳어 버렸다.

“내가 마음 머기에 따라 넌 엄청난 고통으로 사망하게 될 거야.”

메이드 팀장은 다리에 힘이 풀려 싱크대에 등을 기댄 채 주르륵 주저앉았다.

“직원들이 도착하려면 지금으로부터 한 40분 정도는 더 지나야겠군. 신수들은 단잠에 빠져 있을 것이고, 귀환자와 드래곤은 일본에 있지.”

메이드 팀장은 전신을 덜덜 떨었다.

“너를 살려줄 수 있는 사람은 없어. 귀환자가 돌아왔을 땐 넌 사지가 갈기갈기 찢긴 채, 시체가 되어 있겠지.”

메이드 팀장의 두 눈에서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식구들 생각이 났다.

자신 없이 커 갈 애들을 생각하면 억장이 무너지는 듯했다.

“멋진 표정이야. 내가 원했던 얼굴이라고. 그것 봐. 인간은 언제나 이기적이고 거짓을 진실로 삼지. 귀환자에게 충성을 맹세하는 것처럼 굴었지만. 넌 다른 생각을 하고 있잖아 지금.”

“……살려 주세요.”

메이드 팀장이 일그러진 얼굴로 애원하듯 말했다.

“싫어.”

단호한 남자의 대답에 메이드 팀장은 자신의 어깨를 감싸 쥐며 흐느껴 울었다.

그 모습을 보고 남자의 입이 길게 찢어지듯 벌어졌다.

그는 쾌락에 젖은 듯이 웃었다.

그때.

“지랄을 떨어라.”

“……?!”

누군가 남자의 몸통을 발로 걷어찼다.

의자가 부서지면서 남자는 훌쩍 날아가 선반에 부딪혀 떨어졌다. 집기들이 우르르 떨어져 내렸다.

“귀, 귀환자님!”

준혁은 케일에게 메이드 팀장을 데리고 나가 달라고 부탁했다.

케일이 떨고 있는 메이드 팀장을 두둥실 허공에 뜨게 만들어 캐슬 밖으로 내보냈다.

남자가 비틀거리며 일어났다.

그는 코에서 나는 피를 손등으로 닦아내며 고개를 갸웃했다.

“일본에 있는 줄 알았는데? 아, 드래곤의 힘을 썼군. 그렇지?”

준혁은 고개를 삐딱하게 꺾은 채로 남자를 응시했다.

“인간의 육체가 가지는 이 고통은 너무 짜릿해.”

얼굴을 좌우로 크게 흔든 남자는 경쾌한 걸음걸이로 식탁에 앉았다.

“너도 앉아. 이 토텝이 해 줄 얘기가 있으니까.”

자신을 밝힌 토텝이 웃는 얼굴로 말했다.

“보고 싶었다. 토텝.”

준혁이 토텝과 마주 보고 앉으며 말했다.

뒤에서 케일은 문틀에 기댄 채로 지켜봤다.

케일의 눈빛은 지금까지 보인 적 없던 무게감으로 가득했다.

* * *

토텝은 담배를 물고 불을 붙이곤 준혁을 보면서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지금 보고 있는 내 모습 말이야. 엄청 인간 같지 않아?”

“…….”

토텝은 양쪽 팔꿈치를 식탁 바닥에 대고 진지한 표정으로 마치 생각에 잠긴 것 같은 얼굴을 했다.

“이렇게 인간의 육체를 빌려 들어오면 난 내가 인간인지 신인지. 헷갈리기 시작해. 이 육체가 느끼는 모든 감각이 그대로 전해지거든. 내 영혼과 이어지는 거지.”

준혁은 복잡한 감정이 담긴 눈길로 토텝을 지켜봤다.

“뭐 어쨌든 좋단 얘기야. 이렇게 오랜만에 인간계로 내려와 인간의 몸속으로 들어왔다는 게.”

“계속 도망 다닐 줄 알았는데? 쥐새끼처럼.”

“음음.”

토텝이 손을 휘휘 저으며 들고 있던 담배를 자신의 어깨 뒤로 휙 던졌다.

“그건 아니야. 신이 도망친다니 말이 안 되지.”

토텝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웃었다.

“너도 잘 알잖아? 내가 뭘 가장 좋아하는지.”

“혼돈과 절망을 말하는 건가?”

“그래. 바로 그거야.”

토텝이 검지 손가락으로 준혁을 향해 쿡쿡 찔러 보이곤 웃었다.

“단순한 육체적 고통. 죽음. 그런 건 재미가 없지. 방금 전 네 하인의 표정을 봤나? 아주 걸작이었어. 네가 제때 도착하지 않았다면 더 멋진 얼굴이 됐을 거야.”

“더러운 오징어 새끼.”

웃고 있던 토텝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방금 뭐라고?”

“오징어라고 했다.”

멍한 표정으로 준혁을 보던 토텝이 먼 곳을 보며 한숨 쉬었다.

“그건 말실수야.”

토텝의 눈빛에는 화가 번져 있었다.

“멸마의 서를 구하는 동안 여러 가지 얘기를 들었지. 근데 진짜 걸작인 건 네가 오징어랑 별반 다를 게 없다는 거야.”

“…….”

“조금 더 깊은 심해에 사는, 넌 그런 오징어 같은 거야.”

토텝의 얼굴이 분노로 상기 되었다.

그는 식탁을 검지로 톡톡 두드리더니 싱긋 미소 지었다.

“넌 상대를 잘못 골랐어. 겁이 없어도 너무 없었지. 마계를 정복한 것에서 그쳤어야 했어. 결국 네가 한 짓을 내가 알게 됐겠지만.”

토텝이 어깨를 으쓱였다.

“만약 그랬다면 이 지구라는 별에 재앙은 없었을 거야. 아주 평화로웠겠지. 너희 인간들이 벌레들이 사는 세상을 굳이 신경 쓰지 않는 것처럼 말이야.”

“넌 그냥 무해한 오징어일 뿐이야.”

“넌 아무것도 지킬 수 없어. 가장 먼저 네 동생부터 죽일 거다. 그리고 무너지는 세상을 보여 줄 거야. 네가 얼마나 무력한지 깨달을 수 있도록. 천천히. 네 정신을 파괴해 줄 거다.”

“…….”

“동생 하나 지키지 못하는 주제에 네가 세상을 구하고, 신을 죽여?”

“먹지도 못할, 아무 짝에 쓸모없는…….”

“그놈의 오징어! 오징어! 오징어 얘기 좀 그만하라고!”

토텝이 벌떡 일어서서 소리 질렀다.

“풉!”

케일이 손으로 입을 틀어막으며 웃음을 참았고 토텝은 기력이 하나도 없는 표정으로 준혁을 내려다보았다.

“신성모독죄다. 한준혁. 지금부터 네 동생이 죽어 가는 과정을 보여 주지. 넌 날 못 막아. 난 공간계고 넌 그냥 물리적인 버러지일 뿐이니까.”

토텝이 턱짓했다.

“저기 저 드래곤도 공간계 하위라 날 지배할 수는 없어. 네가 가진 멸마의 서도 내겐 소용없지.”

“…….”

“네 절망을 맛있게 먹어 주마. 한준혁.”

토텝이 걸음을 옮겨 주방에 꽂혀 있는 식칼 하나를 뽑아 들었다.

자신의 목을 그으려 했을 때 준혁이 빠르게 움직여 그의 팔을 잡았다.

그러자 마치 토텝이 가졌던 육체는 허물어지듯이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 * *

협회장 한선우의 비서의 표정이 한순간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해 버렸다.

그녀의 육체를 차지한 건 토텝이었다.

목을 뚜뚝 꺾으며 육체에 적응하면서 토텝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토텝은 또각또각 걸음을 옮기며 미소 지었다.

잔혹한 미소를 입가에 머금은 채, 토텝은 협회장실 앞에 이르러 문을 벌컥 열어젖혔다.

선우는 인터뷰를 마치고 집무 테이블 앞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비서를 보고 선우는 눈 사이를 짚으며 등받이에 기대고 있던 허리를 바로 세웠다.

“또 그 자식 일인가?”

선우가 예민함과 피로도에 의해 지친 얼굴로 비서를 보며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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