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자의 모든 것 159화
“보이냐니 뭐가?”
여자 친구 유카가 남자 친구가 가리킨 방향을 따라 하늘로 시선을 돌렸다.
그의 말대로 하늘에 뭔가가 있었다.
빨간 불빛이었는데 그건 점점 그 크기가 커지고 있었다.
청년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사람들은 아직 저 이상한 현상을 눈치채지 못한 것 같았다.
모두 하나같이 평범하게 자신이 가야 할 목적지를 향해 움직이고 있었다.
그때 쿠르르 하고 공기를 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는 점차 커지기 시작했다. 그때가 돼서야 사람들은 하나둘 걸음을 멈추고 그 소리의 근원을 찾아 나섰다.
그 사이 청년은 하늘에서 다가오고 있는 빨간 불빛을 이미 바라보고 있었다.
“무서워, 오오이치군.”
청년은 입술을 파르르 떨었다. 동공이 떨렸고, 뒤이어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떨림이 진동했다.
“왜, 왜 그래?”
유카가 청년의 팔짱을 끼고서 꽉 졸랐다.
그녀는 잔뜩 긴장한 얼굴이었다.
“……끝장이다.”
청년이 떨리는 목소리로 읊조렸다.
“그게 무슨 소리야?”
“뉴스를 봤는데……. 부서진 빌딩의 벽면에 그런 글자가 새겨져 있었어.”
“글자?”
“신을 경외하라.”
유카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남자 친구의 팔을 흔들었다.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어. 일단 가자. 응?”
“종말이 온 거야. 성경에서 말했던 대로.”
“그런 농담하지 마. 무섭단 말이야.”
청년이 점점 더 그 크기가 커지면서 더 큰 파공음을 내기 시작하는 불빛을 올려다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유카 짱. 나 이제 겨우 스물셋인데. 이렇게 죽는 건 너무 억울해.”
청년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러자 여자 친구가 웃었다.
“죽긴 왜 죽어. 아까부터 자꾸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 거야. 정말.”
입은 웃고 있었지만 유카의 눈에는 눈물이 맺혀 있었다.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는 거야. 신의 분노가 시작된 거지.”
청년 오오이치는 얼마 전 한국 뉴스에서 나타난 자를 떠올렸다.
그는 스스로를 신이라 칭하며 귀환자에게 신수 제물을 받칠 것을 요구했다.
생중계가 되는 방송이었고, 그 방송은 유튜브에서 번역된 자막으로 업로드되었다.
그 영상은 순식간에 조회수가 급등했다.
처음엔 가짜인 줄 알았지만 공중파의 분위기를 확인하는 순간 그리고 연달아 큰 사고들이 이어지는 뉴스도 보게 되었다.
언제 무슨 일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미쳐가고 있는 세상이었다.
단지 뉴스에 관심이 없거나 둔감한 사람들만 눈치채지 못했을 뿐, 사실은 대부분 공포가 내재되어 있다.
“점점 커지고 있어.”
오오이치가 말할 때 하나둘, 하늘을 쳐다보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유카도 입을 닫고 그저 붉은 불빛을 올려다보았다.
붉은 불빛은 기이했다. 마치 태양 같기도 했고 인공위성처럼 빛나기도 했다.
그 불빛이 가까워짐에 따라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점점 더 명확해지며 어느 한순간 공포감을 탁 터트렸다.
그 결과 하늘을 올려다보던 아주머니 한 명이 털썩 엉덩이를 깔고 주저앉았다.
눈물을 흘리며 손을 벌벌 떨었다.
그런 주변의 반응을 확인한 유카도 패닉에 빠져 눈물을 흘렸다.
“어, 어떻게 오오이치군. 우리 죽는 거야? 아니지?”
평범한 자연재해라거나, 던전 게이트, 혹은 마수에 의한 거라면 일본 헌터팀이 먼저 대응했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런 대응도 하지 않은 상황에서 이런 일이 벌어진다는 건 TV에서 본 그 사건과 연관되어 있다고밖에 볼 수 없었다.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죽음이 떨어지고 있었다.
“유카 짱.”
“…….”
여자 친구는 대답하지 못하고 고개를 떨구었다.
공포에 질려 눈을 질끈 감고 말아쥔 양 주먹을 덜덜 떨 뿐이었다.
오오이치는 곧 머리를 감싸 쥐며 괴로워하는 그녀를 꼭 끌어안았다.
대낮에 길거리에서 술을 마시는 사람도 나타났다. 죽음의 공포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듯했는데 좋은 아이디어 같았다.
술에 잔뜩 취하면 죽음의 고통이 좀 덜하지 않을까?
뇌를 얼얼하게 만드는 거야.
잠시 그런 생각이 들었다가 문뜩 오오이치는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겨우 고작해야 20대 초반.
1초라도 더 맨정신으로 이 세상에 살아 있고 싶었다.
삶에 대한 미련이자, 삶에 대한 가치를 깨닫게 되는 순간이다.
“유카 짱. 정신 차려. 설령 죽는다고 하더라도 지금을 기억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오오이치군. 난 죽고 싶지 않아…….”
패닉에 빠진 유카에게는 말이 통하지 않았다.
그녀는 반쯤 제정신이 아니었다. 충분히 이해가 갔다.
오히려 다른 사람들이 본다면 자신 쪽이 비상식적인 반응일 것이다.
오오치는 1초라도, 0.1초라도 더 이 현실의 세상을 눈에 담고 싶었다.
지금 보고 있는 것들이 영원하길 바라며 오오이치는 주변을 훑어봤다.
공포에 떨고 있는 사람들에 이어 건물과 땅. 그리고 나무와 나뭇잎이 보였다.
이제 곧 뜨거운 여름이 다가온다는 걸 알리는 싱그러운 초록의 풀잎은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다웠다.
분명 평범하게 흔히 볼 수 있는 나무일 텐데도 감상이 달랐다.
미묘한 열기가 느껴졌다.
마치 악마가 입김을 부는 듯했다.
이제 정말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자 오오이치는 유카의 어깨를 꽉 잡았다.
유카가 깜짝 놀라며 오오이치를 보았다.
“내가 여기 있어. 그러니 너무 겁먹지 마. 괜찮을 거야.”
오오이치가 따뜻한 눈빛을 보내며 말했다.
유카는 눈물이 잔뜩 번진 얼굴로 오오이치에게 푹 안겼다.
오오이치는 여자 친구를 꽉 안아 주었다.
그녀가 겁을 많이 먹지 않도록. 안정감을 느낄 수 있도록. 하지만 그러면서도 오오이치는 최후를 준비했다.
기적이란 일어나지 않는 법이었다.
사방에서 비명을 지르는 소리가 들렸다.
하늘을 보자 도망치는 건 무의미하다는 걸 증명이라도 시켜 주고 싶은 듯이 거대한 불빛이 운석처럼 내려오고 있었다.
아주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의 과거가 파노라마처럼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가장 개인적이고 행복했던 순간들이 아주 짧게 전광석화처럼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눈이 멀 것만 같은 붉은 불빛은 곧 귀를 찢을 듯한 소리를 냈다.
머리카락와 옷이 펄럭이고 사방으로 흙먼지가 날렸다.
오오이치는 두려웠지만 죽음의 순간을 그저 여자 친구처럼 공포에 떨며 보내고 싶지 않았다.
죽음을 정면으로 마주하여 아직까지 자신이 살아 있음을 느꼈다.
오오이치는 다시 한번 주변을 훑었다.
무의미하게 도망 다니는 사람들이 보였다.
도쿄의 끝은 이런 모습이구나.
그렇게 생각했을 때, 아주 작은 바람이 불었다.
그건 이곳에서 정신력을 유지하고 있는 오오이치만이 느낄 수 있는 것이었다.
‘뭐지?’
의문을 담으며 앞을 보았을 때, 분위기를 역전시키는 존재가 서 있었다.
언제 왔는지, 어떻게 이르렀는지 보지 못했다.
그저 TV에서만 보고, 라디오에서 들었으며, 인터넷 영상으로 보았던 사람.
귀환자.
그가 오오이치의 앞에 있었다.
귀환자는 떨어지는 붉은 불빛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비스듬히 옆면으로 보이는 귀환자에게서는 눈부신 빛이 났다.
그것은 물리적인 빛이 아닌, 오오이치가 감정으로 느끼는 후광 같은 것이었다.
그가 손아귀에 쥐고 있는 헬바인의 장검은 마치 하늘을 갈라 버릴 것처럼 거대한 힘을 점점 더 크게 머금어가고 있었다.
‘맙소사. 그가 도쿄. 그것도 지금 바로 내 앞에 있어.’
오오이치는 최근 귀환자에 대한 여론의 분위기가 어떠한지 잘 알고 있었다.
사람들의 불안은 마치 전염병처럼 말을 타고 확산되어 점차 없는 이야기까지 만들어 살을 붙였다.
그 결과, 귀환자에 대한 비난과 힐책은 점점 그 도를 넘어가고 있었다.
영웅이라 칭할 땐 언제고 도움이 되는 것 같지 않자 두려움과 불안의 책임을 모두 귀환자에게 떠넘기는 것이다.
하지만 오오이치는 단 한 번도 귀환자를 의심해 본 적이 없었다.
그는 어둠을 갈라낼 유일한 빛이었다.
그 빛을 믿지 않는다면, 살아도 사는 것이 아닌 세상인 것이다. 그 빛이 질 때야말로 이 세상은 완전한 절망의 변곡점을 맞이하는 것이다.
오오이치는 품에 안겨 있는 여자 친구를 잠시 밀어냈다.
유카 짱이 어리둥절한 얼굴로 다시 달려드는 걸 손으로 또 한 번 밀어냈다.
“방해하지 마. 유카 짱.”
“왜 그래 오오이치 군!”
“기적이 일어난 거야. 난 이 순간을 놓치고 싶지 않아.”
“오오이치군. 대체 무슨 소리를…….”
더 이상 여자 친구의 목소리는 귓속으로 들어오지 않았다.
오오이치의 의식은 오롯이 귀환자에게 집중되고 있었다.
죽음을 앞둔 순간, 그 죽음을 초월하여, 해방감을 느낌과 동시에 빛의 찬란함이 어둠과 대치하고 있었다.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이 오오이치의 가슴 안에 차오르고 있었다.
죽음을 회피하고 두려워했던 이들은 절대로 경험할 수 없을, 죽음 앞에 초연했던 자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라 생각하며, 오오이치의 모든 의식은 귀환자에게로 향했다.
서서히 움직이는 헬바인의 장검.
오오이치는 스마트폰으로 동영상 녹화 버튼을 터치했다.
띠링!
녹화가 시작된다는 알림 소리가 선명하게 그의 청각을 건드렸다.
아아…… 입 밖으로 흘러나오려는 신음을 씹어 삼켰다.
그 무엇과도 견줄 수 없는 작품이 현재 이 카메라 영상 안에 저장되는 순간인 것이다.
스물셋의 나이. 영원히 회자 될 작품이 탄생하려는 순간이다.
그때 오오이치는 번뜩이는 영감을 느꼈다.
반사적으로 귀환자로부터 카메라 앵글을 옮겨 사방을 비추었다.
비명을 지르며 달아나고, 두려움에 떨고 있던 사람들의 반응은 점차 변화를 맞이하고 있었다.
숨어 있던 사람들이 하나둘, 건물 밖으로 나오기까지 했다.
여자 친구 유카 역시 넋을 놓고 귀환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오오이치는 그 주변의 모습들을 하나하나 놓치지 않고 스마트폰의 앵글 안에 담았다.
그리고 다시 카메라는 귀환자에게로 향했다.
과감하게 걸음을 옮겨, 귀환자의 얼굴을 비추었다.
귀환자의 눈빛은 가히 경이로웠다.
죽음 따위는 애초에 존재하지도 않는 것처럼 정면으로 떨어지는 재앙을 노려보고 있었다.
마치 살아 있는 악의 생명체를 단숨에 지워 버릴 것처럼 그의 눈은 뜨거운 열정과 빛나는 힘으로 눈부신 정의를 뿌려댔다.
관측자의 감정이 카메라 담길 만큼 그에게선 절대적인 힘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 것이다.
그 순간 오오이치는 자신이 살아 있으면서도 죽어 있다고 생각했다.
귀환자 역시 그렇다고 생각했다.
언젠가부터 던전 게이트와 함께, 물리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일이 시작된 이후 절대로 인정할 수 없었던 양자역학의 개념이 바로 이곳에 있다고 누군가 소리치는 듯했다.
부디 세계를 구원하소서.
오오이치는 소리 없이 응원하고, 바랐으며, 이내 믿었고, 뒤이어 확신했다.
그것이 귀환자였다.
눈앞에서 실제로 본 귀환자를 본다면 대체 어떤 누가 그를 의심할 수 있을까?
서서히 헬바인의 장검을 뒤로 당겨 악을 섬멸할 준비를 하는 귀환자.
그 순간 오오이치는 대기의 진동을 느꼈다.
흔들리는 바람에 이어 마치 경험한 적 없는 원자 혹은 분자의 입자가 피부로 휘몰아쳐 스쳐 가는 게 느껴지는 것 같은 착각이 일었다.
그 즉시 귀환자로부터 눈으로 좇을 수 없는, 육안으로는 담을 수 없는, 움직임이 이어졌다.
귀환자가 칼을 휘두르는 바로 그 순간 도쿄를 멸망시킬 재앙의 붉은빛은 눈 깜짝할 사이에 소멸했다.
물리학으로 절대 증명할 수 없는, 완전한 소멸.
그 흔한 폭발 하나 없이 그대로 사라져 버렸다.
절대적 권능을 손에 쥔 귀환자의 검이었다.
귀환자는 소리 없이 구원자가 되었다.
단 한 나의 잡음 없이. 그는 고요히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