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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의 모든 것-158화 (158/175)

귀환자의 모든 것 158화

다음 날 아침.

신수들이 하나둘 식사를 하기 위해 거실에 나타났다. 메이드들은 식사 준비 막바지에 있었고 선우는 거실 소파에 늘어지게 앉아 TV를 보고 있었다.

TV에서는 아침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

아침부터 새벽에 있었던 빌딩 사건에 대해 떠들고 있었다.

“대체 저게 뭐죠?”

백호가 혐오스럽다는 듯이 TV속의 빌딩을 보며 말했다.

“너희들이 싸워야 할 적이 보내는 메시지야.”

“신을 경외하라는데요? 그런 게 있어요?”

백호가 어처구니없다는 듯 묻다가 선우의 얼굴을 보고 깜짝 놀랐다.

“혀, 협회장님. 얼굴이 많이 안 좋은데요.”

“당연하지. 며칠 동안 잠을 못 잤거든.”

“아니, 좀 쉬시지…….”

선우가 빤히 보자 백호가 흠칫 어깨를 떨면서 뒤로한 발자국 물러났다.

“왜 그렇게 보세요?”

“신기해서.”

“…….”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 정도밖에 되지 않는 꼬맹이였잖아. 무서운 건 네가 아니라 나야.”

선우가 백호의 작았던 키를 손으로 보여 주며 말했다.

“우린 인간이 아니기도 하고 주인님이 성장이 빨라지도록 키워 주고 있으니까요.”

“이럴 줄 알았으면 캐슬에 자주 올 걸 그랬어. 네가 귀여울 때 많이 봐 놓을 걸 싶어서.”

백호가 얼굴을 절레절레 흔들며 다이닝 룸으로 향했다.

청룡이 꾸벅 인사하고 지나갔고, 현무는 선우를 힐끔 쳐다보고는 다이닝 룸으로 들어갔다.

선우의 옆에 앉는 건 기린뿐이었다.

아이돌처럼 예쁘장한 미소년이 되어 버린 기린은 똘망똘망한 눈으로 뉴스를 보면서 입을 열었다.

“우리가 저 신이랑 싸우는 거예요?”

“아마도.”

선우가 힘이 하나도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기린은 전혀 모르겠다는 얼굴로 그저 머리를 긁적였다.

2층에서 지우가 내려와 선우를 보고 깜짝 놀랐다.

“협회장님 아직 계셨네요?”

“보시다시피.”

“빌딩 문제로 진즉 나가셨을 줄 알았거든요.”

“새벽에 나간다고 해결할 수 있는 것도 없으니까요. 하지만 날을 샌 의미는 찾아냈죠.”

“응원하겠습니다.”

지우가 미소를 지으며 말할 때 선우는 벌떡 일어섰다.

“차고에 있는 차량 중 아무거나 열쇠 하나만 부탁해요.”

선우는 지우를 지나치면서 욕실로 들어가 찬물에 세수를 했다.

샤워는 진즉에 했지만 냉수 마찰이 필요했다.

거울 속의 자신을 잠시간 마주하던 선우는 손으로 대충 얼굴의 물기를 닦아내며 거실에서 대기 중인 지우에게 차 키를 받으며 캐슬을 나갔다.

지우는 긴장한 표정으로 선우가 캐슬을 나간 방향을 바라보았다.

“뭔가 엄청난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죠?”

백호가 지우의 옆에 서서 물었다.

“얼른 밥 먹고 연무장으로 갈 준비해. 지금 귀환자님을 도울 수 있는 건 그것뿐이야.”

백호는 잠깐 생각에 잠겼다가 바로 다이닝 룸으로 쑥 들어갔다.

지우는 피식 웃으며 오늘의 업무 시작을 준비했다.

* * *

선우는 핏빛 글자가 새겨진 빌딩을 올려다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기자들은 모두 물렸고 현장 조사 진행은 마무리 단계입니다만.”

“나오는 것 없지?”

“그렇습니다.”

“그렇겠지.”

형이 어마어마한 괴물을 상대하게 될 거라고 어렴풋이 생각한 적이 있다.

하지만 이렇듯 신을 상대로 싸움을 벌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

스스로를 신이라고 표현한 그는 진짜 신일까? 형은 한낱 악마 중 하나일 뿐이라고 했지만, 이유야 어떻든 더 유리한 포지션에 위치한 건 귀환자가 아니었다.

팔짱을 낀 채 기이한 분위기를 풍기는 빌딩을 바라보던 선우는 빗물이 조금씩 떨어지는 걸 느꼈다.

얼굴에 묻은 물기를 닦으며 하늘을 보자 어느새 먹구름이 끼이고 있었다.

곧 자리를 떠나려던 때 선우는 1시 방향을 보고 그 자리에서 그대로 몸이 굳어 버리고 말았다.

구체의 형체를 가진 검은 덩어리에는 외눈 하나가 작게 박혀 있었다. 그리고 그 시선은 자신을 향하고 있었다.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압도당해 움직일 수 없을 만큼 태어나 한 번도 경험해 본 적 없는 새로운 형태의 공포감이 선우의 마음 안으로 파고들었다.

마치 악몽을 꾸는 듯했다.

악몽이 현실화된 것 같은 기분은 실로 끔찍했다.

그제야 선우는 자신의 형인 준혁이 어떤 존재와 대치하고 있는지, 어떤 싸움을 해야 하는지 아주 조금이나마 감을 잡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진실을 피부로 느끼게 된 순간 절망감이 무겁게 뇌리를 짓눌렀다.

손가락 하나 까닥할 수 없을 만큼 악마라는 이름이 씌어진 악신의 존재는 선우에게 있어 의지를 뿌리 뽑을 만큼의 두려움을 자아내게 만들었다.

선우뿐만이 아니라 현장에 있던 사람들도 하나둘 그 존재를 넋을 잃은 채 올려다보며 공포에 휩싸였다.

고요한 침묵이 흘렀다. 공포에 의해 소음은 사라진다. 충격과 절망을 전하는 존재는 서서히 먹구름 속으로 사라져 그 자취를 감추었다.

하늘에 떠 있던 존재가 사라진 후에도 한참 동안 그곳으로부터 시선을 뗄 수 없었다.

하나같이 모두 입을 벌린 채, 마치 최면에라도 걸린 것처럼 넋을 잃었다.

스스로가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를 실감하며 그저 몸을 가늘게 떨 뿐이었다.

굳어 있던 자들 가장 먼저 움직인 건 선우였다.

차량으로 돌아와 시동을 켜고 차를 출발시켰다.

운전을 하는 내내 머릿속이 텅 빈 것 같았다.

“……빌어먹을.”

무의식적으로 욕이 튀어나왔다.

협회장으로서 시민들이 불안에 떨지 않게 만드는 것은 당연히 해야 할 일이자 책임이다. 하지만 지금 같은 경우는 상황이 달랐다.

신을 상대로 국민을 지킨다는 게 가당키나 하단 말인가?

예민함이 불쑥불쑥 올라와 신경을 자극했다.

어쩌면 귀환자가 패배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등골이 오싹했다.

그러고 싶지 않아도 디스토피아의 세계가 눈앞에 펼쳐지는 듯했다.

선우는 마른침을 삼키며 얼굴을 흔들었다.

머릿속의 부정적인 상념을 털어냈다.

“형은 할 수 있을 거야. 형은…….”

선우는 최면처럼 혼잣말을 읊조렸다.

콰아앙!

멀리서 폭음이 울려 퍼졌다.

선우는 멍한 얼굴로 창밖을 보았다.

창문을 내리자 저 멀리 빌딩 하나가 폭발하여 불이 타오르는 게 보였다.

선우는 차량을 갓길에 세우고 천천히 빗물을 맞으며 차에서 내렸다.

시선은 폭발한 빌딩을 향한 채였다.

마치 멸망이 한 걸음 한 걸음 다가오고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시민들 역시 서서히 느끼게 될 것이다.

이 세상이 끝장날 수 있다는 것에 대한 현실감을.

“…….”

저 멀리 새빨간 불길에 타오르는 빌딩이 선우의 눈동자에 비치고 있었다.

* * *

준혁은 연무장 입구 계단에 걸터앉아 있었다.

비는 지겨울 정도로 그치지 않고 사흘 내내 내렸다.

준혁이 떨어지는 빗물을 바라보고 있을 때, 매니저 지우가 우산을 쓴 채 준혁이 있는 곳으로 오고 있었다.

그녀의 얼굴은 어두웠다.

분명 나쁜 소식을 들고 온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 예측은 빗나가지 않았다.

아우터 갓 토텝은 점점 압박을 가하고 있었다.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도 흔적을 남기지 않고도 토텝은 이 세상을 파괴하고 있다.

그리고 그만큼 인터넷에서는 불안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었다.

매니저의 말을 들어 보면 오프라인에서 사람들은 이에 대해 심도 깊게 이야기를 나누긴 했지만 결국 지나가겠지 하고 태평하게 구는 사람들도 적진 않았다.

분위기를 따져 보면 반반으로 나뉘는 느낌이었다.

불안에 시달리는 자들과 헌터를 믿는 자들.

하지만 준혁이 예상하건대 이대로라면 그 양극단은 하나로 합쳐질 것이다.

아우터 갓과 제대로 싸움을 벌이려면 주작의 차원계 힘이 필요했다.

토텝은 전면전을 피하고 있으니 강제로 그들의 세계 안으로 들어가든 소환을 하든 놈들을 제거하려면 주작의 차원계 마법만이 그 길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하지만 가장 성장 속도가 느린 것이 주작이다.

주작이 힘을 쓸 수 있게 되기까진 이 세계는 토텝이 마음껏 주무를 수 있는 것이었다.

게다가 던전은 확장이 아니라 축소 국면에 들어서고 있었다.

최악의 상황이 한순간에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몰려들었다.

준혁이 생각하기에 아마 이 모든 것은 아우터 갓의 계획하에 있었던 것이라 추측했다.

그 특유의 여유로움과 오만한 태도는 확실한 근거를 바탕에 두고 있을 테니까.

그렇다면 신수의 성장과 잠재력까지 꿰뚫고 있다는 건가?

말이 안 될 것도 없었다.

무엇이든 가능성은 열린다.

아우터 갓은, 악마의 창조자니까.

준혁은 연무장으로 돌아가 주작에게 좌선하라고 지시했다.

연무장에서 수련 중이던 신수들의 이목이 쏠렸다.

준혁은 개의치 않고 주작의 등 뒤로 앉았다.

“이대로는 너무 오래 걸려. 내가 도와주마.”

위험할 수도 있다.

아직 힘을 깨닫지 못한 주작에게 강제로 기운을 돌리는 건, 그만큼 리스크를 동반하는 일. 하지만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릴 지 알 수 없는 상황 속에서 무작정 기다릴 수만은 없는 일이었다.

오랫동안 고민했지만 결국 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최설화 힐러가 도착하기 전까지 가볍게 시작해 주작의 상태를 살펴야 했다.

“늘 하던 대로, 집중해서 마나 감응에 집중해.”

“네, 주인님.”

주작이 눈을 감았다.

준혁은 오른쪽 손바닥을 주작의 등에 신성력을 불어넣었다. 일반적인 마나나 마력보다는 신성력 쪽이 좋다고 판단했다.

신성력은 가장 순수한 힘이라 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대자연이 가진 마나의 힘보다 훨씬 상위의 개념이다.

준혁은 그 기운을 천천히 주작에게 밀어 넣었다.

조금씩이지만 준혁의 신성력이 주작이 가진 잠재력이라는 알의 껍질을 건드리기 시작했다.

자칫 너무 큰 힘을 쓰다간 껍질이 아니라 알 자체가 파괴될 수도 있었다.

때문에 조심스럽게, 아주 미량의 신성력을 주입하는 것부터 시작했다. 그리고 주작은 그것만으로도 힘겨운지 식은땀을 뻘뻘 흘렸다.

오랫동안 드래곤 레어에서 움직이지 않았던 탓에 근육과 마나감응 그리고 잠재력 개방에 퇴화 과정을 겪고 있었다.

그 퇴화 과정의 잔여물들이 주작에게 보이지 않는 끈이 되어 전체적인 능력을 묶어 놓은 듯했다.

준혁은 인내심을 갖고 마치 무너지기 직전의 모래성을 상대하듯이 심혈을 기울였다.

그 과정에서의 엄숙함 때문에, 신수들은 더 이상 수련을 할 수가 없었다.

혹여나 자신들의 수련에 의해 방해가 될 것 같아서였다.

신수들은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하나둘 연무장을 나가기 시작했다.

신수가 모두 연무장을 나가고 준혁과 주작만이 자리에 남았다.

준혁의 손끝에서 피어오른 금빛의 신성력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점 그 빛깔이 미약하지만 더 진해져 갔다.

* * *

도쿄에 위치한 한 문구점에서 나온 일본의 청년이 무심코 본 하늘의 불빛에 의해 눈살을 찌푸렸다.

그는 의아한 표정으로 하늘을 주시했다.

새파란 하늘에 빨간 불빛이 반짝이고 있었다.

“……저게 뭐지?”

청년이 고개를 갸웃할 때 그 불빛은 점점 더 커지고 있었다.

“오오이치군, 미안! 늦었지?”

청년의 여자 친구가 합장한 채 두 손을 싹싹 빌면서 말했다.

“유카 짱, 저기 저거 보여?”

청년이 하늘을 가리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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