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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의 모든 것-157화 (157/175)

귀환자의 모든 것 157화

뉴스는 생중계되었다.

한국에서 생중계된 이 사건은 순식간에 해외 뉴스를 타고 전 세계로 퍼져 나갔다.

시민들은 혼란에 빠졌고 한국의 협회와 귀환자를 향한 질문이 끝없이 쇄도했다.

어떻게 대응할지에 대한 답을 요구하는 것이었다.

한선우 협회장은 침묵했다.

시민들은 불안에 떨었으며 그 시간이 조금 길어짐에 따라 분위기는 안 좋은 쪽으로 기울어져 갔다.

예민해진 사람들이 피켓을 들고 공격적으로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전 세계에서 몰려온 기자들이 한국 기자들과 함께 캐슬 앞에 진을 쳤다.

귀환자의 대답을 듣기 위해서였다.

비가 내렸음에도 불구하고 기자들은 우비까지 입은 채로 대기 했다.

중요한 사안이었고 그들은 대답을 전까지는 돌아갈 생각이 없다는 듯 강경한 태도로 캐슬 입구 부근에 뿌리를 내렸다.

그런 기자들이 몰려 있는 곳에 선우의 차량이 나타나자 기자들이 굶주린 들개처럼 달려들었다.

“한선우 차량이야.”

“한선우 협회장이다!”

경적을 세게 울려도 기자들은 비켜서지 않고 길을 막았다.

그들은 번쩍이는 카메라를 들이밀면서 길을 틀어막았다.

“더 이상 갈 수가 없습니다. 강제로 들어가려고 하다간 사고가 날 것 같아요.”

운전수가 당황한 표정으로 뒷자리에 앉은 선우를 돌아보며 말했다.

답답한 표정으로 빗물이 묻어나는 창문 밖을 내다본 선우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번쩍이는 카메라를 들고 있는 기자들이 던전 속의 마수처럼 느껴졌다.

“어, 어떻게 할까요?”

선우는 문을 열고 차에서 내렸다.

기자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달려들려고 할 때 마나를 개방했다.

그 힘에 의해 기자들이 벽에 막힌 듯이 선우에게 더 이상 다가가지 못했다.

“아직 귀환자님의 대답을 듣지 못했습니다. 또한 이 문제는 국가 기밀에 해당하는 것이며 더 이상 문제가 불거진다면 파천 길드가 공식적으로 나서게 될 겁니다.”

선우가 강하게 얘기했지만 기자들은 물러서지 않았다. 평소라면 입맛을 다시고 돌아갔을 기자들의 눈이 붉게 충혈되어 있었다.

“국민들이 불안에 떨고 있습니다!”

“이렇게 시간이 흐르다간 더 큰 사고가 벌어질지도 몰라요!”

“귀환자님은 왜 대답을 회피하고 있는 거죠?”

사방에서 쏟아지는 공격적인 질문에 선우는 두통을 느꼈다.

“곧 답을 드릴 수 있을 겁니다. 기다려 주시죠.”

기자들이 포기하거나 길을 트지 않자 선우는 어금니를 깨물었다.

“빠른 시일안에 답을 드릴 겁니다. 비켜주시죠.”

마나가 실린 목소리가 울려 퍼지자 그제야 기자들은 하나둘 길을 터주기 시작했다.

선우는 비에 젖은 채로 차에 다시 차에 탑승했다.

“기자들 때문에 문을 열 수가 없어서 우산도 씌워 드리지 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괜찮아요. 어서 들어가죠.”

운전수가 핸들을 꺾으며 캐슬의 입구를 간신히 통과했다.

캐슬은 커다란 정원을 지나 캐슬 본관 건물의 앞에 주차되었다.

선우는 창문을 살짝 내리고 담배를 물었다.

운전수가 불을 붙여 주었다.

선우는 담배를 피우며 공허한 눈으로 떨어지는 빗물을 응시했다.

지긋지긋하다는 감정이 짜증과 함께 가슴을 타고 올라와 간지럽혔다.

그만큼 이번 일이 쉽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마수들을 상대하는 것과 이번 일은 전혀 그 의미가 달랐다.

포악하게 인간을 공격하는 마수보다, 훨씬 우월한 능력과 지성으로 이 세계를 공격하는 존재는, 훨씬 더 위험하고 두렵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전 세계의 시민들이 이토록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이다.

- 귀환자가 잡을 수 있었다면 진즉 잡았겠지.

- 뭔가 잘못되어 가고 있는 거야.

- 분위기가 이상해. 예전 같지 않아.

- 그 자식 봤어?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았어. 그런데도 방송국 놈들이 아무것도 하지 못했잖아.

커뮤니티의 반응만 봐도 불안이 얼마나 빠른 속도로 번지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형은 자세히 얘기하지 않았지만 선우는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큰 각오를 아로새기고 있음을.

그 짓눌리는 무게감이 너무 절절하게 느껴져서 더 이상 뭔가를 물어보기도 어려울 정도였다.

자신이 생각하는 것.

그 이상의 상상을 초월하는 무게감을 느끼고 있을 터였다.

형제여서일까? 굳이 설명해 주지 않아도 그 묵직한 감정이 전해져왔다.

하지만 자신은 형제이기 이전에 한 협회를 책임지는 협회장이었다.

힘을 행사하는 쪽과 국가를 관리하는 것은 전혀 다른 개념이다. 국민의 불안을 지우는 것이 협회의 존재의 이유였다.

그렇기에 선우 자신으로서도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었다. 뾰족한 수가 없다고 해도 답을 찾으려 노력해야 했다.

형이 답을 찾고 있는 것처럼, 자신 역시 협회장으로서 답을 찾아야 했다.

그건 형이기 이전에 귀환자의 답변이 필요한 일이었다.

형제이기에 훨씬 더 쉽고 편하게, 그리고 더 확실하게 대답을 들을 수 있는 확률이 높은 것이다.

“먼저 퇴근해요. 내일 오전에 캐슬에서 출근할 겁니다.”

“어? 협회장님!”

선우는 비를 맞으며 캐슬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우산을 씌워 주기 위해 급히 내렸던 운전수는 안타까운 표정으로 지켜보다가 차량으로 돌아갔다.

캐슬에는 일하는 사람들밖에 보이지 않아 선우는 거실에서 두리번거렸다.

마침 2층에서 준혁의 매니저인 지우가 테블릿을 보며 내려오고 있었다.

“이지우 매니저님.”

선우가 불렀다.

“어? 협회장님. 언제 오셨어요?”

“방금이요.”

“귀환자님 보러 오셨죠?”

“네.”

“지금 연무장에 계실 거예요.”

선우는 의아한 표정으로 손목시계를 보았다. 자신이 시간을 잘못 알고 있나 해서였다.

현재 시간은 밤 12시가 막 넘어가고 있었다.

“이렇게 늦게까지요? 신수들도 안 보이는데, 그러면…….”

“네. 요즘은 꽤 무리하고 있어요. 귀환자님은 귀환자님대로. 신수들은 신수들대로.”

지우가 걱정이 담긴 표정으로 말했다.

“그보다 협회장님. 많이 젖으셨는데, 물을 데울까요?

“아니요. 괜찮습니다.”

선우는 캐슬에서 나왔다.

출입문을 통해 나오자 빗줄기가 굵어지고 있었다.

지우가 우산을 들고 뛰어나왔다.

“협회장님, 여기요.”

지우가 검은 우산을 내밀었다.

“답답해서요.”

선우는 웃으며 고개를 저어 보이곤 걸음을 옮겼다.

굵은 빗줄기가 빠르게 몸을 적셔왔다.

빗물을 맞으면서 선우는 느릿하게 걸었다.

시간이 더 흐를수록 세상은 귀환자에게 더 많은 것을 요구하게 될 것이다.

그동안 기대와 응원을 받은 만큼 비난의 화살 역시도 한순간에 쏟아질 수 있다.

세상이 그렇게 생겨 먹었다는 것에 대해서 선우는 이미 경험한 바가 많았던지라 새삼스럽진 않았다.

다만 힘이 빠지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이렇듯 적응이 되지 않는 것들이 있다.

과정보단 결과를.

힘을 더하기보단 희생을 강요하는 세상.

연무장 앞에 다다른 선우는 무거워지는 머리를 비운 후, 안으로 들어갔다.

준혁은 벽에 등을 기대고 앉아 있었다.

청룡과 현무가 대련 중이었고, 주작과 기린은 마법 수련 중이었다.

물기를 짜내고, 잠들어 있는 백호를 지나 준혁의 옆에 앉았다.

청룡과 현무가 꾸벅 인사했다.

주작과 기린은 눈을 감고 마법 수련에 열중하고 있는 터라 선우가 왔는지도 모르고 있었다.

“어떻게 왔어. 연락도 없이.”

준혁이 주작을 응시하는 채로 말했다.

“바깥이 소란스러워. 사람들은 불안에 떨고 있고 점점 그 화살은 형에게 향하는 중이야.”

“…….”

“사고가 몇 번 더 일어나면 폭동이 일어날지도 모르지. 열리는 던전 숫자는 줄어가는데, 영문 모를 사고가 일어날 때마다 사람들은 형을 떠올릴 거야. 제발 그 방송국에 나타난 놈을 처치해 줬으면 하고 바라겠지. 그리고 시간이 더 흐를수록 형을 원망할 거야.”

“상관없어.”

“하지만.”

“어차피 설명한다고 해서 달라질 것도 아니고 오히려 당장 뾰족한 수가 없다고 하면 더 불안해하겠지. 차라리 모르는 게 나을 수도 있어. 판단은 협회장인 네가 하는 거겠지만.”

“형이 찾던 그놈들인가? 방송국에 나타났던 자식 말이야.”

“맞아.”

공기가 달라졌다.

준혁의 분위기가 바뀐 것이다.

형에게선 강렬한 감정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신기했다.

보통 헌터는 감정만큼이나 마력이 분출되기 마련이다.

그래서 분노를 가지면 주변의 평범한 사람들은 몸이 굳어지곤 했다.

준혁에 비하면 자신은 평범한 사람들이나 다름없었다. 아니 훨씬 더 예민하다는 게 맞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자신의 감정과 육체를 분리시켜 놓고 있었다.

존재감만이 피부를 얼릴 뿐인 것이다.

“나도 생각을 더 해 봐야겠어. 무턱대고 지른다고 해결되는 일도 아니니까.”

“시간이 얼마나 더 걸릴지 몰라. 주작이 깨어나야 해. 잠재력을 깨고, 차원의 힘을 사용할 줄 알게 되면 그땐 기회가 올 거야.”

선우는 주작을 보았다.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참 평범하다고 생각할 만큼, 순수함이 묻어나는 외모의 청년.

선우는 다시금 연무장 안의 신수들을 훑어보았다.

꼬맹이나 다름없던 신수들은 고작 1년 만에 청년이 되었다.

성장의 룬을 사용했다는 준혁의 말을 듣긴 했지만, 그래도 이렇게 훌쩍 커 버린 건 신기했다.

꼭 타임머신이라도 탄 것 같았다.

“힘이 되지 못해 미안하다.”

준혁이 말했다.

선우는 쓴웃음을 지었다.

“넘치게 든든했고. 충분히 힘이 되고 있어.”

“몰골을 봐선 그런 것 같진 않은데.”

“답답해서 비 좀 맞은 것뿐이야.”

“…….”

“다들 늦게까지 열심이네. 벌써 새벽인데.”

“모든 게 끝장나선 안 되니까.”

선우가 살짝 놀란 눈으로 준혁을 보았다.

형이 그런 말을 할 거라곤 생각지 못해서였다.

“최선을 다해서, 끝내야지.”

고개를 끄덕인 선우는 잠시 신수들을 보다가 준혁의 어깨를 짚으며 일어섰다.

“캐슬에서 자고 내일 오전에 출근할 거야.”

“편하게 자.”

“마치 벙커처럼 느껴지네. 세계에서 가장 강한 존재들이 지켜 주는 곳이라 그런지.”

선우는 태평하게 배를 긁으며 자고 있는 백호를 보며 피식 웃다가 연무장을 나갔다.

자리를 비켜 주는 게 형에게도 신수들에게도 괜한 피해를 주지 않을 일이었다.

캐슬로 돌아온 선우는 다이닝 룸으로 들어가 술병을 챙겨 식탁 앞에 앉았다.

안주는 필요 없다고 했지만, 직원이 간단한 안주를 내주곤 말없이 다이닝 룸을 조용히 나갔다.

비에 잔뜩 젖은 채로 술잔에 술을 따르고 마셨다.

꽤 많은 양을 한 번에 들이켰더니 머리가 핑 돌았다.

취기가 올라오는 걸 느낄 때, 스마트폰이 진동으로 울렸다.

선우는 불안감에 자기도 모르게 침을 삼키곤 스마트폰을 꺼냈다.

나쁜 소식이 아닌, 그저 평범한 전화이길 바라며.

하지만 새벽 1시에 걸려온 전화의 발신자는 파천 길드를 책임지고 있는 백인호 군단장이었다.

크게 심호흡을 하고 선우는 전화를 받았다.

- 파천 길드 서울지부 건물이 타격받았습니다.

선우는 잠시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인명 피해는?”

- 길드 경비들이 조금 다친 것 말고는 괜찮습니다만.

“……?”

- 제가 첨부 메시지 하나 보내드리겠습니다.

선우는 전화를 끊자마자 백인호 군단장으로부터 전달받은 메시지를 열었다.

한 장의 사진이었는데, 3분의 1 정도가 파괴된 건물의 벽면에는 피로 칠한 듯한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선우는 그 글자를 낮은 목소리로 읊조렸다.

“……신을 경외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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