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자의 모든 것-156화 (156/175)

귀환자의 모든 것 156화

1년의 시간이 흘렀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

누군가가 시간에 어떤 의미를 부여했는지, 어떤 의미를 갖고 살아왔는지에 따라 그 시간은 전혀 다른 무게를 갖는다.

오늘은 악마들이 뉴욕시를 침공했던 비극적인 날로부터 정확히 1년이 되는 날이었다.

덥지도 춥지도 않은 적당히 기분 좋은 바람이 부는 날이었다.

1년이라는 시간 동안 별다른 이슈는 없었다.

블랙던전이 만들어지긴 했지만 그리 많지 않은 수였고, 그 사이 신수들은 성장했다.

엘리트 헌터들에 비해 훨씬 빠른 성장력을 갖고 있는 신수들이었고 신수들은 준혁이 구해 오는 성장의 룬을 통해 한계를 빠르게 돌파했다.

그 결과 어리고 작았던 신수들은 벌써 청년이나 다름없는 외모로 변해 있었다.

악마의 침공으로부터 1년이 지나면서 시민들은 조금씩 안정되어 갔다.

큰 사고도 시간에 따라 망각되어 가기 때문이다.

사고로 죽은 시민들의 무덤은 여전히 뉴욕시 안에 자리해 있었지만, 사람들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출근하거나 자신들의 일을 이어 가며 일상을 살아갔다.

일반 시민뿐만 아니라 헌터들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준혁은 1년 동안 단 하루도 편하게 쉴 수 없었다.

자신의 존재를 알고 있고 계획을 모두 알고 있는 아우터 갓이 여전히 자신을 지켜보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비극적인 사고는 언제든 발생할 수 있었다.

한순간이다.

평화를 깨는 지옥은 단 한순간에 찾아오곤 했다.

“날씨 좋다.”

캐슬 정원의 벤치에 앉아 있는 준혁의 옆에 동생 선우가 앉았다.

선우는 담배를 물고 불을 붙였다.

표정을 보니 얼굴에 근심이 잔뜩 어려 있었다.

“나쁜 뉴스야?”

준혁이 물었다.

선우가 하늘의 예쁜 구름을 올려다보며 이맛살을 찌푸렸다.

“응.”

선우가 그렇게 하늘을 보며 담배를 피웠다.

늘 안 좋은 소식은 급하게 전하고 빠르게 처리했던 동생이었다.

그런 동생이 이렇게 시간을 끈다는 건 최악의 소식을 들고 왔다는 얘기다.

“주작이 아직 차원계의 힘을 쓰지 못하고 있어.”

준혁의 말에 선우가 웃었다.

“알아.”

선우의 얼굴을 보자 눈빛이 흔들리고 있었다.

두려움이 배인 표정이다.

선우는 휴대용 재떨이에 담배를 넣어 닫으면서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메일을 한 통 받았어. 처음엔 무시했는데 협회 직원이 첨부된 자료를 확인하고 보고를 올렸고. 확인 결과.”

선우는 말을 잇지 못하고 한숨을 뱉었다.

“줘봐. 그 첨부 자료 내용.”

선우가 품 안에서 스마트폰을 꺼냈다.

준혁은 스마트폰을 받아 영상을 확인했다.

공장 내에 달려 있는 CCTV였다.

화질이 좋은 카메라라서 공장 안이 훤히 보였다.

4대의 카메라가 1층의 공장 내부를 모두 비추었다.

영상의 초반부까지만 해도 평상시와 같이 공장 직원들은 반복 업무에 열중하고 있었다.

사건이 일어난 건 점심시간을 10분 앞둔 때였다.

인부들이 시간을 힐끔거리며 긴장이 풀어질 때쯤 한 남자가 이상한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그는 공장 밖으로 나오더니 기름통을 들고 와 바닥에 뿌리기 시작했다.

일꾼들이 이상하게 쳐다보며 한두 마디씩 하다가 불을 지르자 도망가기 시작했다.

문은 이미 누군가 밖에서 걸어 잠근 후였다.

불을 지른 남자는 태연하게 자리에 앉아 번지는 불을 바라보았다.

2층 창문에서 뛰어내린 사람들은 살았지만, 그들은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남자에 의해 칼에 찔려 죽어 갔다.

단 두 명에 의해 벌어진 참극이었다.

밖에서 공장을 탈출한 이들을 모두 죽인 남자는 그 자리에서 자결했다.

이후 경찰이 시신을 수습할 때 그의 몸에 메시지라는 영어 글자가 상처로 남아 있었다.

“메일 내용에는 신수를 제물로 바치지 않는다면 곧 심판이 시작될 거라고 나와 있었어.”

준혁은 들고 있던 테블릿을 동생에게 돌려주며 헛웃음을 흘렸다.

이렇게 협박을 할 거라고는 생각지 못해서였다.

아우터 갓은 가장 더럽고 추악한 방식으로 나타났다.

깔끔하게 마무리할 생각은 없다는 듯 퀴퀴하고 더러운 냄새가 나는 방식으로 1년 만에 나타난 것이다.

“우선 시민들의 안전이 우선이니까. 당분간 신변 보호에 주의하도록.”

“의미 없을 거야.”

준혁이 생각이 많아진 얼굴로 먼 곳을 보며 말했다.

선우가 눈살을 찌푸렸다.

“그렇다고 해도 이대로 아무것도 하지 않고 당할 수는 없잖아?”

“악마라는 것들은 늘 오만해. 마치 한계란 없는 것처럼, 도취감에 쩔어 살 수밖에 없는 놈들이야.”

“…….”

“그런 놈들의 머리 꼭대기 위에 있는 놈들이니 오죽할까.”

“어떻게 할 생각이야?”

“혼란은 피할 수 없어.”

선우가 끔찍하다는 듯 미간을 찌푸렸다.

“피해를 감수하더라도, 그 오만함이 스스로를 찌를 수 있도록 만들어 줘야 해.”

선우는 어깨를 으쓱이곤 자포자기한 표정으로 벤치 등받이에 늘어지게 기댔다.

그러곤 하늘을 올려다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하늘은 이렇게 맑아. 아름다운 풍경도 그렇고. 오는 길에 봤던 수많은 차량들.”

선우가 구겨진 얼굴로 말을 이었다.

“세상은 이렇게 평화로운데 그런 끔찍한 재앙이 다가온다니.”

“약해지지 마. 결국 이겨내게 될 테니까.”

준혁이 선우의 어깨를 툭 짚어 주곤 자리를 떠났다.

홀로 벤치에 남은 선우는 그늘진 얼굴로 담배를 물었다.

준혁은 한없이 무거워 보이는 선우의 뒷모습을 보다가 다시 걸음을 옮겼다.

지금은 해야 할 일에 집중해야 할 때였다.

* * *

앵커 최준환은 대기실에서 생수를 마시며 목을 풀었다.

이제 곧 아침 뉴스를 앞두고 있었다.

가볍게 스트레칭을 하던 중, 스탭이 이제 곧 방송을 시작해야 한다고 알렸다.

최준환은 스튜디오로 이동했다.

뉴스 데스크에서 아나운서와 인사를 하고 함께 자리에 앉았다.

“화재 뉴스 너무 끔찍해요. 단순 화재가 아니라 살인에 자살까지.”

아나운서가 얼굴을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앵커는 피식 웃었다.

“익숙해질 거야. 뉴스는 하나같이 비관적인 소식뿐이지.”

“그래서 우리 부모님은 뉴스를 안 봐요. 제가 아나운서인데도 말이죠.”

앵커와 아나운서가 웃을 때, 곧 뉴스가 시작될 거라는 사인을 받았다.

대본을 챙기고, 뉴스 생방송을 준비했다.

신호를 받고 앵커 최준환은 인사 후 늘 하던 대로 뉴스를 시작했다.

별다를 것 없이 평범한 날이었다.

함께 자리에 앉은 아나운서 역시 신참이 아니라 경력이 오래된 여자였다.

여느 날처럼 뉴스를 진행하고 있던 중 앵커 최준환은 갑자기 스튜디오 안으로 들어오는 한 남자를 보고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낯선 남자였다.

그는 제멋대로 스튜디오의 데스크로 다가왔다.

이대로라면 방송사고였다.

대체 왜 말리지 않는 건지, 그를 막지 않는 건지 이해가 가지 않는 얼굴이던 앵커 최준환은 곧 상황을 어느 정도 깨닫게 되었다.

막지 않는 것이 아니었다.

못하는 것이다.

그들은 충혈된 눈으로 꼼짝없이 몸이 굳은 채였다.

카메라 감독도 스태프들도 모두 시간이 멈춘 것처럼 육체가 돌처럼 굳어 있었다.

목에는 혈관이 부풀어 올라 뺨까지 올라왔다.

옆을 보자 아나운서 역시 마찬가지였다.

자유롭게 몸을 움직일 수 있고 반응할 수 있는 건 이 스튜디오에서 오직 앵커인 자신뿐이었다.

남자는 태연하게 아나운서의 뒷덜미를 잡아 던졌다. 아나운서는 마치 구겨진 종이처럼 날아가 바닥을 뒹굴었다.

그 자리에 남자가 앉았다.

앵커는 충격과 공포에 물든 얼굴로 옆에 앉은 사내를 보았다.

마치 투명하다 싶을 정도로 새하얀 피부의 미남 사내는 아주 젊어 보였다. 눈은 파란색이었으며 긴 장발을 머리 위로 묶어 올린 사내였다.

그는 입가에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나쁜 일이라고는 전혀 벌일 것 같지 않은, 순수함마저 보일 것 같은 외모였으나 분위기와 상황은 대조적일 만큼 전혀 그렇지 않았다.

심장이 벌렁거리고, 가슴이 시큰거렸다.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 상황이었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누구든 죽일 수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 느낌은 점차 앵커의 목을 죄어 왔다.

“미안해. 전하고 싶은 소식이 있어서 이렇게 멋대로 자리를 빼앗았어.”

남자가 미소 띤 얼굴로 말했다.

앵커는 방금 전 이 남자가 아나운서를 한 손으로 날려 버린 순간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공포는 이미 마음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여전히 방송은 생중계로 진행되고 있었다.

그렇다는 건 방송실도 스튜디어의 주변 사람들처럼 얼어붙었다는 얘기였다.

“뉴스 방송 중이었지만 지금부터는 토크쇼가 될 거야.”

앵커가 불안한 눈초리로 그를 보았다.

그는 여전히 웃는 얼굴이었다.

“내 이름은 토텝이야. 최준환 앵커.”

아무런 말도 나오지 않았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괜찮아?”

자신의 이름을 토텝이라 밝힌 남자가 걱정스런 표정으로 앵커의 얼굴을 가까이 들여다보며 물었다.

앵커는 헛바람을 삼키며 그대로 굳었다.

마치 귀신을 마주하는 듯한 얼굴이었다.

“긴장 풀어. 죽이지는 않을 거니까.”

입 밖으로 거친 호흡이 흘러나왔다.

“심호흡해.”

시청률이 올라가고 있는 가운데 앵커는 정신을 똑바로 차리기 위해 온 힘을 다했다.

“최준한 앵커.”

“……예?”

“진정이 좀 됐나?”

앵커가 마른침을 삼키며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넌 귀환자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

잠시 생각을 정리한 앵커가 입을 열었다.

“세계에서 가장 강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난 그런 귀환자에게 제물을 요구했어.”

앵커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토텝을 보았다.

“그 제물을 바치지 않는다면, 이 세계를 망가트릴 거라고 약속했지.”

“…….”

“그는 아직까지 대답하지 않았어.”

“…….”

토텝이 카메라를 보며 말을 이었다.

“넌 잡을 수 없어. 찾을 수도 없을 거고. 그리고 설령 만난다고 해도, 넌 날 죽일 수 없지. 모두 다 내 계산대로야. 그러니 넌 내 손 안에서 놀아나는 장난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야.”

앵커가 굵은 침을 꿀꺽 삼킬 때 토텝의 시선이 앵커에게 돌아갔다.

“귀환자와 나. 둘 중에 누가 더 큰 혼란일까? 대답해봐.”

“자, 잘 모르겠습니다.”

“너희들은 혼란을 막아야 할 의무가 있어. 살고 싶다면 귀환자는 제물을 바쳐야만 해. 그렇지 않으면, 온갖 재앙들이 하나둘, 이 세계를 덮치기 시작할 거다.”

토텝의 눈동자가 묘하게 빛났다. 그는 그런 눈동자로 카메라를 보며 말을 이었다.

“그러니 절대로 잊으면 안 돼. 이 모든 재앙을 막을 수 있는 건 오직 귀환자의 선택에 달렸다는 것을.”

번쩍!

준혁이 케일과 함께 빛을 뿌리며 스튜디오 앞에 도착했을 때, 토텝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한순간에 종적을 감추어 추적조차 할 수 없었다.

순식간에 육체의 자유를 되찾은 방송국 사람들이 정신없이 웅성거렸다.

“귀, 귀환자님, 이게 어떻게 된 겁니까?”

“저 사람들은 누구죠?”

여기저기서 준혁을 향해 질문을 했지만 준혁은 케일과 함께 대답 없이 사라졌다.

방송국 사람들은 멍하니 준혁이 사라진 곳을 바라보았다.

“뭐 하는 거야? 아나운서 다친 거 안 보여? 119부터 부르란 말이야!”

누군가 소리쳤다.

스튜디오는 정신이 하나도 없던 상황 속에서 조금씩 이성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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