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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의 모든 것-150화 (150/175)

귀환자의 모든 것 150화

준혁은 시간이 흘러 설령 그들이 지쳤다 하더라도 직접 손을 써 줄 생각은 없었다.

오직 리더보더 팀의 힘으로 던전을 클리어해야 최소한의 희망이 더해지는 것이었기에.

“블랙 던전에서 나온 장비는 프리미엄 없이 필요한 사람에게 시장가로 넘겨 드리겠습니다. 사각지대에서 접근하는 마수들을 주의하세요.”

두 번째 전투를 앞두고 있던 때.

그제야 리더보더들은 준혁의 의도를 알아차렸다.

전투에 가담하지 않고 지켜보고 있는 이유에 대해서 알게 된 것이다.

오히려 준혁의 의도를 알아차리게 되자 그들은 기분 나빠 하기보다는 한결 마음이 가벼워진 얼굴들이 됐다.

리더보더들은 준혁의 가르침대로 시야를 훨씬 더 넓게 쓰면서 전투에 임했다.

확실히 최상위 리더보더들이라 그런지 지금까지 봐 온 헌터들과는 격이 다른 수준의 움직임을 갖고 있었다.

리더보더들은 마치 하나의 유기체처럼 호흡을 맞추며 마수들을 상대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블랙 던전 안에서의 전투 경험이 쌓일수록 그들의 실력은 일취월장하고 있었다.

* * *

“허억. 허억!”

“젠장……!”

“후우…….”

“빌어먹을.”

여기저기서 욕설이 섞인 가쁜 숨소리가 흘러나왔다.

무릎을 꿇은 자들도 있었고 바닥에 벌렁 누워 버린 자들도 있었다.

그들은 마수의 피를 뒤집어쓴 채로 숨을 몰아쉬었다.

리더보더들이 쓰러진 자리 주변으로는 거대한 마수들의 사체가 널브러져 있었다.

신체의 일부들이 조각나고 내장들이 흘러나와 비릿한 냄새가 사방으로 가득했다.

그런 그로테스크한 환경 속에서도 리더보더들은 후련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블랙 던전을 클리어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과 두려움 속에서 출발 된 레이드였다.

그래서인지 무사히 끝을 맺었다는 사실에 리더보더들은 그 결과 하나로 만족하고 있었다.

그에 비해 별다른 감흥 없이 현장에서 멀쩡히 서 있는 건 오직 한준혁 혼자였다.

던전이 완전히 클리어되었다는 더 월드의 시스템 알림이 떴고, 엑시트 게이트까지 떴으니 더 이상 자리를 지킬 이유는 없었다.

“수고하셨습니다.”

준혁은 인사 한마디를 남기고 엑시트 게이트를 통해 블랙 던전을 나왔다.

준혁이 블랙 던전을 나오자 대기하고 있던 기자들이 일제히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사방에서 새하얀 카메라 불빛이 쉴 틈 없이 번쩍였다.

에펠탑을 배경으로 준혁을 향한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졌다.

던전을 클리어한 건 팀을 이룬 최상위 리더보더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조명은 모두 준혁을 향하고 있었다.

“이번 블랙 던전에서 더 월드 라이브를 진행하지 않았는데, 이번 레이드에 대해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기자 한 명이 소형 마이크를 내밀며 대답을 요청했다.

수많은 기자들의 시선을 받으며 준혁이 입을 열었다.

“이번 블랙 던전에서 리더보더들의 사냥으로 클리어가 가능하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기자들이 깜짝 놀랐다.

준혁의 대답이 전혀 뜻밖이어서였다. 분명 준혁이 리더보더들과 함께 블랙 던전으로 들어갔으니 함께 사냥할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 이상의 대답이 준혁의 입에서 흘러나온 것이다.

“리더보더의 전력만으로 블랙 던전 클리어가 가능했다는 건가요?”

“그렇습니다.”

기자들은 이제 새로운 상황이 펼쳐지게 되었음을 직감했다.

한준혁은 인류의 유일한 희망으로 대두되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새로운 전력이 만들어졌다는 것은 모두가 기뻐할 만한 소식이었다.

이례적으로 최상위 리더보더들이 팀을 이루게 되었고 그 전력이 블랙 던전에서 통한다는 사실은 던전으로부터의 리스크로부터 조금 더 안전해진다는 의미였다.

추가적인 기자들의 질문이 이어졌지만, 준혁은 더 이상 할 얘기가 없었기 때문에 기자들을 뚫고 이동했다.

대기 차량으로 향하는 준혁을 향해 기자들의 카메라 세례가 끊임없이 이어졌다.

그 카메라 불빛에 의해 준혁의 얼굴이 번쩍번쩍 빛났다.

* * *

준혁을 에펠탑을 떠난 후, 엑시트 게이트를 통해 리더보더들이 세상 밖으로 나왔다.

기자들은 새로운 전력으로 탄생 된 팀을 향한 관심은 폭발적일 수밖에 없었다.

“앞으로도 이 팀이 유지되어 계속될 수 있는 겁니까?”

한 기자의 질문에 리더보더 중 한 명이 대답했다.

“어쩔 수 없잖아요? 귀환자 한 명에게만 짐을 씌울 수는 없는 일이니.”

리더보더들은 앞으로도 계속 이 팀을 유지시켜 활동할 것이란 메시지를 발표했고 전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환호했다.

귀환자 혼자 모든 세계를 지켜 낼 수 없다.

더 많은, 힘 있는 전력이 필요한 시기였으니까.

블랙 던전을 클리어한 리더보더 팀의 탄생.

이에 대한 기사로 모든 헤드라인이 도배되고 있는 가운데, 준혁은 전용기를 타고 한국으로 귀국 중이었다.

고요한 전용기 안에서 준혁은 균열의 세트를 손에 들고 응시했다.

하나의 세트로 이루어져 있는 이 아이템은 사용 즉시 가장 빠르게 어비스의 문을 열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이제 남은 신수는 하나.

마지막 퍼즐을 맞추고 나면 녀석들의 성장에 모든 초점을 맞춰야 했다.

캐슬로 돌아왔을 때, 청룡과 백호, 기린과 주작은 연무장에 있었다.

청룡의 가르침 아래, 모두 교육을 받고 있었는데 유일하게 청룡의 가르침을 따라가지 못하는 건 주작이 유일했다.

인간의 모습을 하지 않고, 신수 본연의 모습을 유지한 채 그저 수련을 지켜볼 뿐이었다.

“수련에 대한 의지가 전혀 없어요. 말을 걸어도 대답도 잘 안 하고.”

그동안 모든 신수들이 서로 유대감을 가졌지만 주작은 섞이지 못했다.

그저 수련을 구경하는 드래곤 케일과 대화를 조금 나누는 게 전부였다.

주작은 오히려 신수들을 피하는 기색까지 내비쳤다.

준혁은 팔짱을 낀 채 주작을 가만히 응시했다. 반쯤 죽어 있는 듯한 눈동자. 빛나지 못하고 외려 그 빛깔을 잃어 가고 있는 깃털.

이대로라면 시스템이 알려왔듯 주작은 소멸하고 만다.

블랙 던전을 커버할 수 있는 리더보더 팀까지 꾸려졌으니 편하게 마지막 신수를 찾기 위해 떠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그건 욕심이었다.

“모든 신수가 같을 수는 없지.”

준혁이 말하자 청룡은 답을 모르겠다는 듯 주작을 바라보았다.

“교육 마무리하고 캐슬로 복귀하겠습니다.”

“그렇게 해.”

청룡이 신수들을 담당하기 위해 걸음을 옮길 때 준혁은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 부드러운 방석 위에 앉아 있는 주작에게 다가갔다.

주작은 준혁이 다가왔음에도 별달리 반응이 없었다.

준혁은 주작의 옆에 앉아 수련 중인 신수들을 보았다.

모두들 열정적으로 구슬땀을 흘리며 수련에 집중하고 있었다.

주작이 갖고 있지 않은 것은 열정이었으며 그건 목적성이 결여되어 있다는 것과 이어질 것이라 준혁은 생각했다.

무엇이 주작에게 목적을 갖게 할 수 있을까?

강함을 추종하지 않는다면, 무엇이 스스로를 살게 하는가?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것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나쁜 게 아니야.”

준혁이 말했다.

주작이 머리를 살짝 들어 준혁을 힐끔 올려다보았다.

“원하지 않는 일을 할 수는 없지.”

“…….”

“하지만 시간이 해결해 줄 수 있는 문제도 아니야. 너한텐 시간이 많지 않거든. 시공간을 초월하는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게 무슨 뜻이죠?”

“이대로라면 소멸한다. 신수로서 가진 영력이 떨어지는 건 수명과 직결되지. 네가 살고 싶은 마음이 없는 것만큼이나 빠르게 진행되었을 거고.”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요.”

참 머리 아픈 대답이었다.

의지가 없는 존재에게 목적성을 부여하는 것은 신이 하나의 피조물을 창조하는 것만큼이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주작은 스스로 깨우치지 않으면 나올 수 없는 공간에 갇혀 있었다.

강한 변덕과 의욕 없는 저기압 상태.

같은 동족인 신수를 만났음에도 변화가 없는 주작이었다.

지키고 싶은 것도, 이루고 싶은 것도 없다는 의미.

“우린 왜 살아 있는 걸까?”

주작이 물었다.

텅 빈 눈으로 먼 곳을 보며.

“삶에 이유는 없어. 태어났으니까 사는 거야. 특별하게 생각할 것도 없지. 자연의 이치니까.”

“…….”

“주어진 삶을 살아가는 것. 할 수 있는 건 그것뿐이야. 그런데 그 당연한 자연의 이치를 망가트리려는 존재가 있지.”

“주인님이 죽이겠다던 신이요?”

“그래.”

“그건 조금 이해가 가요.”

“최소한의 자유조차 갖지 못하게 할 악을 무너트리는 것 역시 자연의 이치야. 그 일에 너희들의 힘이 필요했고.”

신수들의 수련을 지켜보던 준혁이 주작을 보며 말을 이었다.

“네 힘이 필요해, 주작.”

조금이지만 주작의 눈동자에 생기가 올라왔다.

“그렇게 하면 삶의 의미가 생기는 걸까요?”

“적어도 네가 이렇게 편하게 고민하고 말하는 일을 앞으로도 할 수 있게 되겠지. 너뿐만이 아니라, 이 세계에 살고 있는 모두가.”

준혁이 먼 곳을 보며 한숨 쉬었을 때 주작의 외형이 변화하기 시작했다.

다른 신수들처럼 인간을 닮은 외형으로 변했다.

새빨간 머리카락이 길게 자라난 13세 정도의 외형이었다.

새빨간 도포 형태의 의류와 붉은 머리가 묘하게 조화를 이루어 아주 잘 어울렸다.

수련을 하던 신수들도 그런 주작의 외형 변화에 놀란 표정으로 쳐다봤다.

“잘은 모르겠지만, 조금은 알 것 같아요. 누구와 함께 어디로 가고 있는 건지.”

주작이 읊조리듯 말했다.

준혁은 웃으며 주작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성장했구나.”

준혁이 그렇게 말했을 때, 주작이 신수들에게로 걸어갔다.

“저도 배워야 할 것 같아요. 아니 배우고 싶어.”

준혁의 귀엔 주작의 말이 삶의 의미를 알고 싶다는 것으로 들렸다.

“바람이 불었군.”

준혁은 소리 없이 웃으며 신수들과 섞이기 시작한 주작을 바라보았다.

* * *

어쩌면 오래 걸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던 주작의 문제를 해결한 이상, 더 머뭇거릴 필요는 없었다.

빨리 마지막 신수를 구해 퍼즐을 완성하고 싶다는 열망이 준혁의 가슴에서 뜨겁게 타올랐다.

신수들의 스탯을 상향시켜 주었고 이번에도 청룡에게 교육을 부탁했다.

“모든 걸 네게 맡기마.”

연무장에서 어비스의 문을 열면서 준혁이 말했다.

“몸 조심히 다녀오십시오.”

청룡이 걱정 말라는 듯 인사를 전했다.

준혁은 청룡의 어깨를 짚으며 옅게 웃었다.

“마지막이야. 마지막 신수가 남았다.”

청룡이 고개를 갸웃했다.

“만약 돌아오시면, 바로 시작하는 겁니까? 놈들을 찾으러?”

“그러기엔 아직 신수들이 너무 어려. 시간이 필요하겠지.”

청룡이 한시름 놓았다는 듯 웃었다.

“저도 그게 걱정이었습니다.”

“캐슬 잘 지켜라.”

“예, 주인님.”

청룡이 있기에 믿고 어비스의 문을 넘을 수 있었다.

준혁이 마지막 신수를 찾기 위해 차원을 넘는 어비스의 문을 향해 발을 내디뎠다.

거대한 힘을 가진 빛이 준혁을 집어삼켰고 연무장에서 준혁은 한순간에 사라졌다.

준혁이 사라졌을 때, 연무장 문이 벌컥 열렸다.

“뭐야? 벌써 간 거야?”

드래곤 케일이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물었고.

“네.”

청룡은 짤막하게 답하며 케일을 지나 연무장을 나갔다.

홀로 남은 케일이 억울한 표정으로 텅 빈 연무장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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