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자의 모든 것 148화
준혁은 그녀를 따라가면서 만에 하나 있을지 모를 주변의 공격을 경계하며 이동했다.
하지만 특별한 위험요소는 없었다.
“인간이 대체 어떻게 그렇게 강해질 수 있는 거지? 넌 불가능한 수준, 그 이상에 있어.”
드래곤이 말했다.
“나 역시 내가 인간이라고 말하기엔 양심에 찔려서.”
“역시, 내가 모르는 뭔가가 있구나. 그럴 줄 알았지. 반칙이야. 난 인간인 줄 알았다고.”
“인간이긴 하지. 인간의 육체를 가지고 있으니.”
“그것도 뭔가 말이 안 되는데…….”
드래곤이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가 생각하기 머리 아픈 듯 얼굴을 휘휘 가로저었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영락없이 인간처럼 보일 드래곤이었다.
“나도 나지만, 너도 드래곤이라는 걸 잊을 만큼 인간처럼 행동해.”
“난 인간을 좋아하면서 증오하거든. 그래서 인간의 모습으로 오래 살았지. 그게 습관이 되고 익숙해졌을 뿐이야.”
깊고 거대하게 넓은 동굴 속에서 준혁의 목소리와 드래곤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후 침묵이 찾아왔고 발소리만이 소리를 내며 드래곤 레어의 내부를 울렸다.
그렇게 꽤 시간이 흘렀을 때 준혁은 이내 자신이 찾고 있던 존재를 만날 수 있었다.
아주 작은 존재.
힘없이 웅크린 채 엎드려 있는 조그마한 존재는, 드래곤도 아니었고 사람도 아니었다.
불꽃같은 붉은 빛깔을 머금었으며 긴 꼬리는 마치 불길처럼 여러 갈래로 일렁이듯이 흔들렸다.
신수, 주작이었다.
독수리를 닮아 날카롭고 강인한 외모를 가졌으나 눈빛은 반쯤 죽어있었다.
마치 처음 기린을 만났을 때처럼, 비슷했다.
그런 주작은 기력 없는 모습으로 준혁을 힐끗 올려다보았다가 이내 흥미를 잃은 듯 다시 시선을 거두었다.
준혁은 주작 앞으로 걸어가 무릎을 굽혀 앉았다.
주작이 살짝 겁먹은 듯 움찔거렸지만 그뿐이었다.
그 이상의 행동은 없었다.
“너를 데리러 왔다.”
준혁이 말했다.
하지만 주작은 반응하지 않았다. 그저 약간 신경 쓰인 다는 것 정도의 반응일 뿐이었다.
“처음부터 그랬어.”
옆에 선 드래곤이 말했다.
준혁이 드래곤을 보았다.
드래곤은 별 다른 감정이 배이지 않은 눈동자로 주작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적응하지 못하는 녀석을 데려왔고. 이곳으로 온 이후로 늘 저런 모습이었지. 마치 자신에게 자유란 없는 것처럼.”
준혁이 주작을 응시했다.
“너와 같은 동족이 있다.”
동족이라는 말에 주작이 깜짝 놀라며 머리를 들었다.
반응하는 것이다.
드래곤 역시 놀란 눈으로 준혁을 보았다.
“우리만큼이나 신기한 생명체야. 그런데 이 녀석과 같은 동족이 있다고?”
“똑같은 생명이니 특별할 것도 없지. 난 다른 세계에서 넘어오기도 했고.”
“……놀랍군.”
드래곤이 턱을 짚은 채 마치 인간처럼 생각에 잠겼다.
“동족과 함께해라. 내가 너의 주인이 될 것이고, 너의 길을 밝혀 줄 것이니.”
준혁이 친절하고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
주작의 눈빛을 보니 고민하고 있는 듯했다.
불안과 불신이 섞인 채로 그렇게 혼란 속에 잠겨 있었다.
“너와 같은 신수들이 있으니 지금 이곳보다 훨씬 마음의 안정을 가질 수 있을 거다. 그리고 네가 가야 할 길 또한 깨닫게 되겠지.”
주작이 느릿하게, 힘겨운 모습으로 엎드려 있던 몸을 일으켜 세웠다.
작은 몸체가 일어서니 길고 화려한 깃털과 꼬리 때문에 조금은 더 커 보였다.
“나와 함께 가자. 주작.”
준혁이 신수 계약을 요청했다.
[신수 계약이 이루어졌습니다.]
[신수 주작의 데이터를 습득했습니다.]
[신수 주작은 10% 이상 감정이 소모될 경우 소멸하게 됩니다.]
신수 주작은 시간을 초월의 존재.
때문에, 스스로조차 지울 수 있을 만큼의 차원계 힘을 가진 듯했다.
아마 조금만 더 늦었다면 주작을 만나지 못했을지도 몰랐다.
주작은 죽어가고 있었고 그런 주작을 살릴 수 있는 방법은 캐슬에서 지내고 있을 다른 신수들과 함께 어울리는 것밖에 답이 없었다.
“인간. 그대가 살고 있는 세상에 나도 함께 보내줄 수는 없겠는가?”
드래곤의 황당한 요청에 준혁이 어이없다는 듯 그를 보았다.
“드래곤은 아주 긴 시간 동안 지루한 삶을 살게 되지. 그 지루함에 질식할 것만 같은 건 저기 있는 주작과 나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아.”
“…….”
“말썽 부리지 않을 거야. 그러니 나도 당신의 세계에 데려가 줘.”
“내 전쟁을 도우는 건 어때?”
“전쟁?”
전쟁이라는 단어에 주작도 놀란 눈으로 준혁을 불안하게 응시했다.
“이 세계를 악으로 물들이는 신들이 있지. 아우터 갓. 그 외신들을 죽여야 하거든.”
“나에게 힘을 보태달라는 거군?”
“그렇다기보단, 그 정도가 아니면 굳이 데려갈 이유가 없으니까. 드래곤의 맹약은 목숨보다 중요하다 하더군. 그러니 그 맹약이라면 믿을 수 있잖아.”
“내 지루함을 조금이나마 달랠 수 있을까?”
“글쎄. 모르지.”
드래곤이 웃었다.
“이거 완전 도박이군.”
그 사이 준혁은 주작의 신체에 손을 가져다 댔다.
신성력과 마력을 주입하자 주작이 편안해하기 시작했다.
지쳐 있던 몸체가 회복하는 것이다.
최설화의 힐 치료만큼은 아니겠지만 고갈되어 굳어버린 마력을 부드럽게 녹이는 역할을 하는 것만으로도 주작은 한결 몸이 가벼워지는 걸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결정은?”
준혁이 드래곤을 보며 물었다.
“나를 이긴 건 네가 처음이야. 물론 본체의 마법이 아닌, 검술이었다고 해도 그것만으로도 내 흥미를 끌기엔 충분했거든.”
“그래서 답은?”
“따라가지. 너라면 아주 재미있는 일들이 많을 것 같아. 이렇듯 산속에 박혀 시간을 보내는 건 너무 끔찍해.”
“그런가?”
“맹약하지. 너를 따라가 너의 일을 도우마. 대신 너 역시 내게 재미있는 세상을 보여 줘야만 해.”
“노력하지.”
“그것만으로 충분해.”
준혁은 그 즉시 포탈 게이트를 열었다.
거대한 힘이 휘몰아치며 차원을 넘어설 게이트가 생성되었다.
“함께 같은 길을 가게 되었으니 이름 정도는 알아야겠지. 한준혁이다.”
준혁이 이름을 밝히자 드래곤이 미소지었다.
“케일, 그 이름으로 기억해 둬.”
케일이 지난 기억을 회상하는 눈동자로 먼 곳을 보며 말했다.
준혁은 고개를 끄덕이며, 포탈 게이트를 턱짓했다.
“가자, 우리의 세계로.”
준혁의 눈짓에 주작이 먼저 포탈 게이트를 넘어섰고, 그 뒤를 드래곤 케일이 이었다.
준혁은 드래곤 레어를 한 차례 훑어본 후, 포탈 게이트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 * *
드래곤 케일과 주작은 신기한 듯 이곳저곳을 둘러보았다.
차원의 힘을 가졌음에도 자신의 능력을 자각하지 못한 주작이 신기한 듯 두리번거렸다.
드래곤이 존재하는 것조차 믿지 않는 사람들이 가득한 세상에서 드래곤의 삶을 살아온 케일 역시도 호기심이 어린 눈동자로 새로운 세상을 보고 있었다.
그런 그들을 데리고 준혁은 캐슬로 돌아왔다.
“돌아오셨네요!”
매니저 지우가 활짝 미소 지으며 뛰어왔다.
가방을 메고 있는 걸 보니 어딜 다녀온 모양이다.
“어? 그런데 두 명이네요?”
신수를 데려올 거라 예상했던 지우였지만 두 명의 존재가 준혁의 뒤에 서 있는 게 예상 밖이었던 것이다.
하나는 전형적인 신수의 모습을 하고 있는 주작이라 이해가 갔지만, 눈부시게 아름다운 외모의 존재 케일은 지우가 전혀 감이 잡히질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드래곤이야. 여기는 새로 데려온 신수 주작.”
드래곤이라는 말에 지우의 입이 떡 벌어졌다.
그녀는 준혁에게 직접 드래곤이라는 말을 듣고도 믿기지 않는다는 듯 케일을 응시했다.
케일은 여유롭게 미소지으며 윙크했다.
지우가 당황한 표정으로 눈을 깜빡이고 있는 사이 준혁이 캐슬을 가리켰다.
“들어가자.”
준혁이 먼저 캐슬로 들어갔고, 주작이 하늘에 둥둥 뜬 채로 신비로운 빛을 뿌리며 준혁을 따라갔다.
드래곤 케일은 뒷짐을 진 채 케슬에 입성했다.
지우는 여전히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그들을 따라갔다.
캐슬 내의 직원들도 주작과 케일을 신기한 듯 보면서 준혁에게 인사했다.
“멋진 곳이구나.”
케일이 말했다.
“지낼 만할 거야.”
“이곳에서 그대는 왕인가?”
“이 나라에서는 그런 개념이 없어. 모두가 평등해.”
“평등이라. 놀랍군.”
케일은 그렇게 말하면서 캐슬 내의 벽에 걸린 고급 미술품들을 구경했다.
주작은 직원들의 시선을 한눈에 받으며 허공을 가로질러 캐슬 거실의 소파에 사뿐히 내려앉았다.
햇빛이 들어오는 거실 소파에 앉아 있는 주작의 모습은 그 자체로 한 폭의 명화 같았다.
화려한 붉은 깃털과 그 주변을 마치 추종하듯 따라다니는 신비한 빛들이 시선을 단숨에 빼앗는다.
가장 신수다워 보이는, 신비로운 외형을 가진 주작이었다.
“백호랑 청룡은?”
“던전에서 사냥 중이에요. 아마 30분? 정도 후쯤이면 캐슬로 돌아올 거예요.”
청룡은 준혁이 주문한 대로 백호를 잘 키워주고 있는 듯했다.
“던전 확장 상태는?”
“블랙 던전이 추가로 하나 나오긴 했어요. 현재 클리어를 위해 레이드 팀을 준비 중에 있고요.”
“블랙 던전을 클리어할 만한 팀은 없을 텐데?”
“리더보더들이 뭉쳤다고 해요. 아마 비공식적인 연락망을 통해서 모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어요.”
“던전 위치는?”
“프랑스입니다. 만약 원하신다면 던전 탐색은 얼마든지 하셔도 된다고 연락받았어요.”
준혁은 고개를 끄덕이며 소파에 앉아 동생에게 캐슬로 돌아왔다고 문자를 넣었다.
그리곤 소파에 앉아 있는 주작을 내려다보았다.
녀석은 처음 만났을 때처럼 몸을 동그랗게 말아 웅크리고 있었다.
준혁을 힐끔 보더니 주작은 졸린지 하품을 했다.
그리곤 눈을 감았다.
주작은 의외로 크게 적응하지 못하는 모습은 아니었다.
‘저 성격이면 오히려 백호 때문에 당황할지도 모르지.’
준혁은 백호를 떠올리며 조금은 걱정스런 눈길로 주작을 바라보았다.
* * *
“새친구다아아아아!”
백호는 청룡과 함께 캐슬로 돌아오자마자 캐슬이 떠나갈 정도로 목청을 높였다.
백호가 양팔을 치켜든 채로 쫓아갔고 주작은 필사적으로 날아다니며 도망 다녔다.
결국 청룡에게 꿀밤을 맞고서야 백호는 조용해졌다.
주작은 백호와 경계 거리를 유지한 채로 휴식했다.
그 사이 준혁은 정원에서 먼 곳을 보고 있었다.
‘새로운 블랙 던전이라면 균열의 틈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지.’
이제 남은 신수는 단 하나.
마지막 하나의 신수만 찾으면 모든 준비는 끝난다.
신수들의 힘을 이어받아 아우터 갓을 모두 죽일 생각이었다.
그러기 위해 귀환했고, 그 목표를 쫓아 지금에 이르렀다.
손에 닿을 듯 아주 가까운 거리에 그곳이 있었다.
마계에서 셀 수도 없을 만큼 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던 원천.
존재의 이유.
존재하는 악을 남김없이 섬멸하는 것은 준혁에게 숙명이자 운명이었다.
“귀환자님, 부르셨어요?”
지우가 다가와 말했다.
준혁이 지우를 돌아보며 미소지었다.
“프랑스로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