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자의 모든 것 146화
준혁은 바람을 가르며 황량한 대지 위로 마치 날 듯이 뛰었다.
천리안의 미니맵을 보며 이동하다 보니 어느새 지도가 보여 주는 산과 가까워지고 있었다.
만약 마차를 타고 이동했다면 한 달이 넘게 걸렸을 거리였다.
[드래곤 레어 지대에 도착했습니다.]
더 월드의 시스템이 거대한 산의 이름에 대해 알려 주었다.
황량한 벌판 끝에 암석 지대를 지나 나타난 산.
이곳은 드래곤이 살고 있는 곳인 듯했다.
더 월드의 시스템을 통해 그 지명을 알 수 있기도 했지만 그 전에 이미 왕궁 도서관에서 이곳에 대한 정보를 습득한 후였다.
드래곤은 마법을 쓰는 고지능의 생명체.
준혁은 드래곤에 대한 호기심을 품으며 드래곤 레어의 산 깊은 곳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해가 지고 달빛이 비추는 어두운 산속.
준혁은 망설임 없는 걸음으로 쭉쭉 나아갔다. 날씨는 서늘했고 마력의 기운이 전체적으로 산에 깔려 있었다.
평범한 사람은 이 산에 들어오게 되면 알 수 없는 떨림을 느꼈고 이에 달아나거나 미쳐 버렸다.
책에 나와 있는 대용대로 인간의 접근을 허락하지 않는 산이었다.
산의 기운은 마치 드래곤의 더 이상 접근하지 말라는 경고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경고에 순순히 따라 줄 것이라면 애초에 드래곤의 레어에 발을 들이지도 않았을 준혁이었다.
신수를 찾기 위해 온 만큼 준혁은 오히려 그들을 불러내기 위해 발을 강하게 굴렸다.
쿵!
준혁이 땅을 밟자 거대한 울림이 드래곤의 산에 울려 퍼졌다.
화답하듯이 뭔가 어떠한 반응이 있을 거라고 기대했지만 산은 조용했다.
어떠한 소리도 없었다.
바람에 의해 나뭇가지가 흔들리는 소리만이 났을 뿐이었다.
‘결국 레어 안까지 들어가야 하는 건가?’
천리안이 산의 위치는 알려 주었지만 드래곤 레어 속에 숨어 있는 드래곤의 위치까지 잡아내지는 못했다.
때문에 직접 드래곤의 처소라 할 수 있는 드래곤 레어를 찾아내야 했다.
산의 규모는 천리안이 잡아내기 어려울 만큼 아주 넓어 꽤 오랫동안 헤매어야 할 듯싶었다.
속도를 내서 빠르게 이동하며 흔적을 찾아내기 위해 바삐 움직이던 준혁은 전혀 다른 성질의 마력을 느낄 수 있었다.
준혁은 속도를 줄여 새로운 유형의 기척이 느껴지는 곳으로 향했는데 그 결과 뜻밖의 무리를 발견할 수 있었다.
드래곤의 레어라 하여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을 거라 생각했었는데 아니었다.
약 다섯 명의 사람들이 로브를 뒤집어쓴 채 작은 동굴 앞에서 원형으로 모여 있었다.
그들은 동그랗게 원형을 이루어 무릎을 꿇은 채 중앙에 놓인 비석을 향해 합장한 채로 뭐라 중얼거리고 있었다.
얼핏 보니 마법과 관련된 언어인 듯했고, 그들이 바라보고 있는 중앙의 비석에는 룬어가 새겨져 있었다.
그들의 주문에 따라 룬은 에메랄드 빛을 내며 반짝였다. 그 빛의 주변으로 오로라 같은 신비스러운 빛이 사방으로 뻗어져 나가고 있었다.
준혁은 혹시 드래곤 레어가 있는 곳을 알까 싶어 그들에게 걸어갔다.
준혁의 발소리를 듣고, 한 로브의 사내가 목소리를 멈추고 준혁을 돌아봤다.
“누구냐!”
로브 사내가 소리쳤다. 그에 주문을 외우던 다른 사람들도 모두 입을 닫고, 준혁을 응시했다.
위협을 품은 시선이었으나 준혁은 아랑곳하지 않고 그들의 앞에 가까이 섰다.
“길을 좀 묻고 싶은데, 드래곤의 레어가 어딥니까?”
준혁이 허리에 손을 얹으며 물었다. 그러자 그들 중 가장 덩치가 좋고, 키가 큰 사내가 일어서서 준혁의 앞으로 걸어왔다.
그는 준혁을 위아래로 훑더니 머리 위로 덮고 있던 로브의 후드를 내렸다.
민머리에 문신이 새겨져 있었다.
“그건 왜 찾는 거요?”
문신 사내가 물었다.
“신수를 찾고 있거든요.”
문신 사내는 피식 웃음을 흘렸다.
“혼자서?”
준혁이 그게 뭐 어떻냐는 듯 어깨를 으쓱여 보였다.
“머리가 어떻게 된 사람이든, 분에 넘치는 용기로 이 산을 찾았든, 뭐가 됐든 간에 더 이상은 산에 들어갈 생각은 마시오.”
“들어가겠다면?”
“우리를 상대해야 할 것이오.”
머리 문신 사내가 그렇게 말했을 때 그의 등 뒤로 로브의 사내들이 양손에 소형 마법진을 만들고 있었다.
어떤 이의 손에는 전류가 튀었고 어떤 이의 손에 의해서는 허공에 얼음이 얼어붙고 있었다.
준혁의 눈에는 그저 귀여운 재롱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수준이었다.
“비켜서지 않으면 다칠 텐데.”
준혁이 꼭 이런 번거로운 싸움을 해야만 하는 것이냐고 돌려 말했지만, 그들은 자신의 실력과 수적 우위를 믿는 모양이었다.
물러설 생각이 없는 듯 그들의 눈은 결연한 의지로 가득했다.
드래곤의 산을 수호하는 건가?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길을 막는다면 준혁으로서도 방법이 없었다.
“내 길을 막은 건 너희들이다. 잊지 마라.”
준혁의 말에 문신 사내가 코웃음을 쳤다.
“감히 드래곤의 성지에 발을 들이려 하다니. 무슨 자신감인지는 몰라도 죽음을 원망하지 말아야 할 것은 네놈일 것이다.”
문신 사내가 뒤로 물러서자 약속된 것처럼 뒤에서 마법진을 만들어 둔 네 명의 사내들이 준혁을 향해 총공세를 쏟아부었다.
각각 다른 계열의 마법들이 준혁을 향해 날아갔지만 그들의 마법은 준혁에게 닿지 못했다.
준혁이 만들어 낸 마력의 장막이 그들의 마법 공격을 모두 막아 냈기 때문이었다.
그들의 공격 마법은 준혁의 마력의 장막에 막혀 허공에서 폭발했다.
콰콰콰쾅!
자신들의 강력한 공격 마법이 통하지 않자 마법사들은 당황한 듯 얼굴이 흐려졌다.
특히나 문신 사내는 경악한 표정으로 준혁을 바라보았다.
무려 네 명의 공격 마법을 이런 식으로 쉽게 막아 내는 자는 그들의 경험상 대륙에 흔치 않았기 때문이다.
“끝이야?”
준혁이 도발했다.
그러자 마법사들은 이미 싸움이 시작된 이상 돌이킬 수 없다는 사실을 인지하고서 자신들이 가진 모든 마나를 사용해 준혁을 공격했다.
다채로운 형태의 마법들을 마치 불꽃놀이 구경하듯이 바라보았다.
그들의 공격은 절대 준혁에게 닿을 수 없었다. 편하게 만들어 낸 마력의 장막조차 뚫을 수 없는 힘의 차이가 있었기에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체내에 남아 있는 마나를 쥐어 짜내는 것만이 그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준혁은 그들의 마법 공격으로부터 자유롭고 편안한 상태로 걸음을 옮겼다.
준혁이 한 걸음 한 걸음을 옮길 때마다, 그들의 얼굴은 일그러지고 점차 공포에 질려 갔다.
“머, 멈춰!”
문신 사내가 그만 다가오라는 듯 손을 뻗으며 소리쳤다.
준혁은 그의 말대로 멈추었다. 그리고 고개를 갸웃했다.
“왜?”
문신 사내가 말을 잇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그의 표정을 보아하니 머릿속으로 열심히 잔머리를 굴리고 있는 듯했다.
“죽이려고 덤빌 땐 언제고 멈추라 마라야?”
문신 사내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답이 없는 상황에 내몰렸다는 것을 인지한 모양이었다.
그가 뭐라 말하기 위해 입을 달싹였을 때 순식간에 빛이 깜빡이듯이 이동한 준혁이 문신 사내의 복부에 주먹을 꽂아 넣었다.
둔탁한 소리와 함께 사내가 허공을 날아 마법사들 사이로 떨어져 바닥을 굴렀다.
“으으윽……!”
문신 사내가 신음을 흘리며 고통으로 꿈틀거렸다. 마법사들은 리더와 준혁을 번갈아 보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방황했다.
“드래곤의 레어 위치를 말해. 그럼 살려 준다.”
준혁의 차갑고 냉정한 눈빛이 마법사들에게 떨어졌다. 그들은 이미 준혁을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을 인지한 후였다.
“알려 줄 수 없소.”
마법사 하나가 무력한 어조로 어깨를 축 늘어트리며 말했다.
“너희들은 드래곤들과 무슨 사이길래 내 길을 막는 거지?”
“우린 드래곤에게 제물을 바치고 그 대가로 마나를 쌓는 마법사들이오. 그런 우리들이 어찌 드래곤에 반하는 짓을 할 수 있단 말이오.”
준혁이 피식 웃었다.
지독하게 이기적인 작자들이었다.
“그럼 어쩔 수 없지.”
준혁이 헬바인의 장검을 꺼내 손아귀에 칼자루를 쥐었다.
“목숨보다 중요하다면 존중해 주마.”
그들을 놀리기 위해 한 말이었다. 자신을 죽이려고 한 것도 재수 없었지만, 목숨보다 드래곤과의 관계가 더 중요하다는 듯이 말하는 건 더 짜증 났다.
“너희들이 그토록 따르는 드래곤이니. 너희들을 죽이다 보면 드래곤이 나타날지도 모르지.”
먼저 공격해 온 것들은 저 마법사들이었다.
칼을 쓰는 데 있어 주저할 필요는 없었다.
준혁의 뜻을 읽어서일까? 그들은 공포에 질린 채 주춤주춤 뒤로 물러났다.
바닥에 쓰러져 있던 문신 사내도 비틀거리며 일어서고 있었다.
빠르게 걸음을 옮긴 준혁이 칼을 찌르려 하자 문신 사내는 태세를 변환했다.
“알려 드리겠소. 그러니 멈춰 주시오.”
문신 사내가 뒷걸음질 치며 소리치듯이 말했다.
문신 사내를 비롯해 뒤에서 지켜보고 있는 마법사들 모두 준혁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말로는 그럴듯한 소리를 해 대지만 결국 죽음의 두려움을 이기지 못한 마법사들이었다.
“직접 안내해라. 너희들을 믿지 못하겠어. 앞장서라.”
이미 마음이 꺾인 후였다. 직접 안내하는 것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못한 그들이었지만 마법사들로서도 방법이 없었다.
다른 선택지는 오직 죽음뿐이었으니까.
“……그리하겠소.”
문신 사내가 침음하며 고개를 숙였다. 명백히 굴복의 뜻을 알려오고 있었다.
“시간 없다. 뜸 들이지 말고 출발해.”
잠시간 망설이던 마법사들이 마지못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들은 가기 싫은 내색이 가득한 등을 보여 주며 앞장서서 나아가기 시작했다.
준혁은 헬바인의 장검을 어깨에 걸친 채, 그들을 따라갔다.
“느리잖아. 서둘러.”
준혁이 채근했다. 엉덩이라도 차 버리고 싶은 굼뜬 동작이었다. 준혁이 한 소리 하자 그제야 마법사들은 걷는 속도를 올렸다.
준혁은 그들과 함께 이동하면서 속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만약 이들이 없었다면 드래곤 레어를 찾는 데 엄청난 시간을 할애해야 할지도 몰랐다.
그들을 만난 건 행운이었고 이로써 곧 드래곤 레어를 찾을 수 있을 것이었다.
예측대로 그들과 꽤 오랫동안 이동한 끝에 깊은 산 속에 위치한 드래곤 레어의 초입을 찾을 수 있었다.
거대한 바위로 이루어진 산등성이가 보일 때쯤 거대한 동굴이 나타났다.
나무에 가려져 있는 데다, 벼랑 아래에 위치해 있어 만약 순수하게 수색으로 찾으려고 했다면 얼마나 긴 시간이 걸렸을지 아찔했을 정도였다.
“여기가 드래곤 레어의 초입이오. 그리고 우리는 더 이상은 들어갈 수 없소.”
문신 사내가 땀 흘리는 얼굴로 단호하게 말했다.
“들어가.”
준혁의 눈에는 협상이 없다는 뜻이 그들 이상으로 단단하게 뿌리 내려 있었다.
그들을 믿고 움직일 수는 없다. 그들은 드래곤을 찾을 열쇠였으니까.
“안으로 들어가려면 횃불이 있어야 하오.”
“필요 없으 니까 들어가.”
문신 사내는 자포자기한 표정으로 먼저 드래곤 레어의 동굴로 향했다.
마법사들도 잔뜩 그늘진 얼굴로 문신 사내를 따라 이동했다.
동굴 입구는 대형 빌딩만 한 크기였다.
자연적으로 만들어질 수 없을 만큼 큰 규모였다.
문신 사내와 마법사들은 동굴 안으로 들어가자 빛이 없어 넘어지거나 비틀거렸다.
준혁은 큐브를 이용해 빛을 비춰 주었다.
그러자 그들이 깜짝 놀랐다가 이내 다시 진입을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