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자의 모든 것-143화 (143/175)

귀환자의 모든 것 143화

렉프레드는 저택을 지킬 수 있는 사병들을 삼엄하게 위치시켰다.

그 역시 암살단이 저택 안에 있는 아르혼 왕자를 노릴지도 모른다는 위협을 느껴서였다.

하지만 준혁이 보기에, 렉프레드가 준비시킨 병사들의 숫자는 많지 않았다.

렉프레드가 어째서 시간이 더 필요하다고 했는지 알 수 있을 만큼 적은 숫자였다.

왕궁에서 개인 군사를 꾸릴 수 있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역모의 가능성을 두려워하는 것이 왕의 자리였기에, 엄중한 규율을 통해 개인 사병의 숫자를 제한시키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숫자가 너무 적었다.

1왕자의 견제가 얼마나 깊고 강했는지 준혁조차 알 만할 정도였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어차피 왕자를 지키는 데 있어 숫자는 무의미하니까.

렉프레드가 아르혼 왕자의 침소에서 직접 경계를 설 예정이었고, 가장 보안에 신경 쓴 곳이 아르혼의 침소였던 만큼 4명의 병사가 아르혼의 침소 문 앞을 지켰다.

밤이 깊어 자정을 넘어갈 무렵.

아르혼 왕자는 잠에 들었고, 암살자들은 약속된 시간에 맞춰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창밖을 내다보고 있던 준혁은 예민한 기감을 통해 암살자들이 움직이고 있음을 이미 눈치챈 후였다.

‘쥐새끼들. 안 나타날 리가 없지.’

준혁이 웃었다.

부상당한 먹잇감을 포기할 리 없는 짐승들이었다.

그들은 암살자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과감하게 움직였다.

소리 없는 암살이 아닌 확실한 사살이 목표인 듯 그들은 기민하게 움직여 병사들의 뒤를 노리고 있었다.

병사들의 죽음은 안타깝지만 그들을 일망타진하기 위해선 대다수의 암살자들이 저택 안으로 들어와야 했다.

그래야만 암살자들을 단 한 명도 남기지 않고 모두 처리할 수 있을 테니까.

준혁의 속내를 모르는 암살자들은 이곳이 사지인지도 모르고 하나둘, 저택 안으로 침입해 들어오고 있었다.

그에 발맞춰 준혁 역시 놈들을 환영해 주기 위해 자신이 배정받았던 방에서 나와 여유롭게 걸었다.

이미 그들의 속도와 아르혼 왕자의 침소까지 거리, 시간을 모두 계산하고 있는 준혁이었다.

어두운 복도에서 준혁의 손아귀에 쥐어진 헬바인의 장검이 창문을 뚫고 들어온 달빛에 의해 번쩍였다.

* * *

준혁에게 저택을 침입한 암살자들을 처리하는 건 아주 손쉬운 일이었다.

암살자들이 강하다고 해 봐야 인간에 준하는 능력을 가진 자들.

신과 비견 될 만한 힘을 가진 준혁에게는 어린아이를 상대하는 것과 크게 다를 바 없는 싸움이었다.

준혁은 그런 당연한 근거를 행동으로 입증하여 펼쳐 냈다.

분명 암살을 위해 저택으로 침입한 건 암살자들이었지만, 외려 죽임을 당하는 것은 암살자들이었다.

고양이처럼 소리와 기척을 죽였지만 준혁의 귀에는 천둥처럼 크게 들리는 소리여서 그들을 찾아내는 것은 쉬운 일이었다.

“헉……!”

복면의 암살자 하나가 갑자기 나타난 준혁을 보고 깜짝 놀랐다가 뒤늦게 흉수를 썼다.

암살자들은 이름에 걸맞게 암살검을 무기로 썼다.

팔목 안쪽에 숨겨 둔 칼날이 튀어나오는 구조였는데, 준혁이 보기엔 하등 쓸모없는 무기에 불과했다.

단순히 소지하기 편하겠다는 생각이 들 뿐, 암살구조라는 걸 눈치채기도 쉬울뿐더러 상대가 검을 조금만 쓸 줄 알고, 무기를 들고 있다면 불리한 싸움을 해야만 했다.

‘이 세계의 문명에 맞는 수준의 무기이니 쓰는 것이긴 하겠지만.’

준혁은 쓴웃음을 지었다.

뒤처진 문명만큼이나 참 허세 부리기 좋아하는 작자들이라 생각하며 헬바인의 장검을 어깨에 걸쳤다.

그 여유로운 모습을 보고, 암살자는 훈련된 동작으로 준혁을 죽이기 위해 뛰어들며 암살검을 내질렀다.

한심하기 짝이 없는 속도였다.

물론 일반인이 보기엔 꽤 제법 날카로운 공격일 수 있겠으나 준혁에게는 플라스틱 장난감을 들고 휘두르는 수준에 불과했다.

검을 쓰는 것조차 사치였다.

준혁은 찔러 들어오는 암살검을 검지로 막았다.

“……!”

암살자가 찢어질 듯한 눈으로 자신의 암살검을 막은 준혁의 손가락을 보았다.

이 세계 대부분의 무인들은 마나를 사용하지 못하는 듯했다.

신수가 있는 만큼 높은 수준을 가진 자들이 있긴 하겠지만 대중적인 수준은 평범한 인간에 속하는 듯했다.

암살자가 뭐라 반응하기도 전에 헬바인의 장검이 그를 베어 냈다.

암살자 한 명이 피를 흩뿌리며 쓰러졌을 때, 준혁은 헬바인의 장검을 큐브 안에 다시 던져 넣었다.

암살자들을 상대로 검은 들고 있어 봐야 괜히 걸리적거리기만 할 뿐이었다.

준혁은 첫 번째 암살자를 쓰러트린 것을 시작으로 빠르게 암살자들을 찾아내 죽이기 시작했다.

준혁이 주먹으로 갈비뼈를 강타하자 암살자는 그대로 갈비뼈가 부러져 내장이 찔렸다.

마치 트럭에 치인 것처럼 날아가 벽에 처박고 쓰러졌는데, 그 모습을 보고 동료 암살자는 전의를 상실했다.

상상을 초월하는 속도와 힘 때문이었다.

사실 준혁은 이조차 힘을 조절한 것이었지만 암살자들에게는 그 정도만으로도 싸울 의지를 꺾는 데는 충분했다.

마치 도미노가 넘어가듯이 준혁이 암살자들을 연쇄적으로 죽이기 시작했다.

살인을 업으로 삼는 암살자들에게 손속을 봐줄 필요는 없었다.

준혁은 냉정하게 양손만을 사용하여 암살자들을 처리했다.

준혁이 때리면 뼈가 부러지거나 함몰되었다.

실수로 조금이나마 마력이 섞였을 때는 암살자의 몸에 구멍이 뚫릴 정도였다.

준혁은 암살자들을 처리함에 있어 그들이 마치 두부처럼 느껴졌다.

너무 연하고 물렁거려, 힘을 너무 세게 가했다가는 흉하게 찌푸려졌기 때문이다.

‘시신들을 처리해야 할 렉프레드가 놀라겠군.’

어차피 시신을 수습하는 건 렉프레드가 담당해야 할 일이었고, 그를 위해서 비교적 깔끔한 시체를 선물하는 것이 준혁이 할 수 있는 선물 중 하나였다.

꽤 많은 암살자들을 처리했고 준혁은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판단했다.

아르혼 왕자의 침소 쪽으로 침입한 자들이 있을 수 있었고, 그들을 렉프레드가 막지 못할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에 빠르게 그쪽으로 신형을 날렸다. 아니나 다를까, 아르혼 왕자의 침소 쪽에서도 소란이 일고 있었는데 싸움이 나고 있는 소리였다.

준혁은 열려 있는 문틀을 넘어 아르혼 왕자의 방으로 들어갔다.

렉프레드가 아르혼을 지키기 위해 피를 흘리며 다섯 명의 암살자들을 상대하고 있었다.

“뒤로 물러나세요.”

준혁의 말에 렉프레드는 지체하지 않고 아르혼 왕자의 침대 쪽으로 가 그를 보호했다.

그 사이 준혁은 큐브에서 헬바인의 장검을 꺼내 휘둘렀다.

서 – 걱!

단 한 번의 휘두름에 다섯에 달하는 암살자가 피를 뿌리며 쓰러졌다.

한 호흡에 암살자들을 정리한 준혁을, 렉프레드와 아르혼이 경이로운 듯 바라보았다.

“아직 더 남았을 겁니다. 제가 근처를 돌아보고 올 테니, 아르혼 왕자를 보호하세요.”

준혁은 방에서 나왔다.

자신이 느끼는 기감에 의하면 아직 암살자들의 숫자가 더 남아 있었다.

저택을 나가지 않았다면 그들을 모두 죽은 목숨이었다.

추적할 생각까진 없었지만 남아 있는 쥐새끼들은 모두 정리해야 했다.

* * *

암살단장 루크는 머릿속이 어지럽다 못해 속이 울렁거려 위액을 게워 내고 싶을 정도였다.

극한의 스트레스가 머리를 왱왱 울렸다.

분명 손쉬운 작업이 될 거라 생각했다.

아르혼 쪽의 전력은 이미 파악하고 있었고, 그들을 처리하여 임무에 성공하는 건 토끼를 사냥하는 것만큼이나 안전한 작업이었다.

그런데 어째서 이런 일이 일어난단 말인가?

겨우 단 한 명이었다.

루크는 단 한 명이 암살조직을 해체하고 있는 걸 두 눈으로 보았다. 그리고 그는 저택 내의 모든 암살자를 찾아내 죽인 다음, 마지막으로 저택에서 도망가려던 자신의 앞에 서 있었다.

그는 저택의 입구 앞에 서 있었다.

특이한 복장의 이방인이었다.

검은 머리에 검은 눈을 가진 이방인. 아르혼 쪽의 전력을 분석할 때 전혀 정보가 없었던 인물이었다. 그런 그가 현재 루크 자신의 눈앞에 있었다.

루크는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았다.

암살자로 훈련되어 오면서 냉철해지고 얼어붙은 심장으로 일해 왔지만 지금만큼은 마치 훈련의 경험과 그간 쌓아 온 실력이 고장 난 것처럼 느껴졌다.

죽음의 그늘이 드리워져 있었다.

그가 움직이는 순간 삶은 끝장난다.

싸워야 할 것인가 도망쳐야 할 것인가?

그 두 가지의 선택 앞에서 루크는 본능적으로 그와 맞붙는 것을 피하기로 결정했다. 암살자들을 찾아내 죽이는 그는 포식자였다. 절대 강자. 천적보다 그 상위에 있는 포식자를 상대로 이길 수 있는 방법 같은 건 없었다.

그건 누가 설명해 주지 않아도 알 수 있을 만큼 본능적인 감각이 위험을 경고했다.

암살단장 루크가 도망가기 위해 창문 쪽으로 움직이려 할 때, 준혁이 마치 잔상처럼 흔들렸다.

그는 유령처럼 이동해 암살단장 루크의 뒷덜미를 잡았다. 그리고 집어던졌다. 루크는 휙 하고 날아가 벽에 처박히곤 신음을 흘리며 무릎을 꿇었다.

몸이 덜덜 떨렸다. 인간을 마치 공 던지듯 날려 버리는 괴력에 루크는 소름이 끼쳤다.

“당신에 대해서 들어 본 적 없어. 대체 어디에서 온 누구지? 왜 3왕자 아르혼을 돕는 건가?”

죽을 때 죽더라도 이유 정도는 알고 싶었다.

“오는 길에 만났어. 우연히.”

준혁이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오는 길에 우연히……?”

“그래. 우연히.”

루크는 입가에 묻어 나오는 핏물을 손등으로 닦아 내며 웃었다. 그런 우연한 만남이 아르혼 왕자의 운명을 바꾸었단 말인가?

“역시 왕가의 핏줄이란, 하늘의 기운을 타고나나 보군.”

루크가 절망이 어린 눈길로 먼 곳을 보며 중얼거렸다. 준혁은 루크를 죽이기 위해 걸음을 옮겼다.

다가오는 준혁을 보면서 루크는 죽음을 직감했지만 이대로 쉽게 죽어 줄 생각은 없었다.

루크는 자신이 가진 최대 비기인 암살 무기를 준혁을 향해 쏟아부었다.

독성을 품은 녹색 가루와 더불어 소형 암기가 준혁에게로 향했다. 아무리 강한 자라 하더라도, 극독을 품은 암기에는 취약할 수 있었다.

자신의 비기에 마지막 희망을 걸었지만 루크는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목도하게 되었다.

자신이 뿌린 극독과 암기는 자연의 이치를 어기고 있었다.

극독을 품은 가루가 허공에서 마치 시간이 멈춘 듯이 머물렀기 때문이며 표창 암기 또한 허공에 멈춰 버린 것이다.

준혁이 만들어 낸 마력의 장막 때문이었지만, 그 사실을 모르는 루크로서는 기절할 것 같은 충격이었다.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준혁의 표정은 태연했고, 반대로 루크는 자신이 대체 누구를 상대하고 있는 건지 감조차 잡히질 않았다.

흔히 마법사조차 캐스팅을 하기 마련이건만, 그는 가볍게 팔을 한 번 휘두른 것만으로 이 기적을 만들어 낸 것이다.

루크는 넋이 나간 채로 입을 떡 벌렸다. 그 사이 자신이 뿌렸던 극독 가루와 표창은 마치 반사되듯이 날아간 방향을 역행하여 자신에게로 되돌아왔다.

“맙소사.”

루크의 마지막 목소리였다.

극독 가루가 루크의 전신을 덮쳤고, 열 개의 표창 중 7개가 그에게 적중했다. 4개는 몸통에, 나머지는 팔과 다리에 꽂혀 들어갔다. 극독의 중독 증상에 의해 지독한 고통이 솟구쳤다.

“아아아아악!”

루크가 목에 핏대를 세우며 몸부림치기 시작했다.

새우처럼 등을 굽혔다가 활처럼 허리를 비틀어 올린 루크는 새빨간 선혈의 피를 토하며 끔찍한 모습으로 죽음에 이르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