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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의 모든 것-142화 (142/175)

귀환자의 모든 것 142화

준혁은 으리으리한 저택을 올려다보았다.

왕가의 핏줄이라 그런지 저택을 빌리는 수준이 남달랐다.

“제가 모신 동안 불편함은 없으셨는지요?”

“덕분에 편하게 왔습니다.”

“부디 로디스 도시에서 좋은 기억을 갖고 가시기를 바라겠습니다.”

경비대장이 밝은 미소를 지으며 인사하곤 떠났다.

준혁은 저택 건물 쪽으로 발길을 옮겼고, 묘인족도 준혁을 따라 움직였다.

준혁은 허겁지겁 문을 열고 뛰어나오는 렉프레드를 발견했다.

“혹여나 홀로 길을 떠나는 건 아닌지 얼마나 걱정했는지 모릅니다!”

“그럴 리가요.”

애초에 왕자와 함께 도시로 온 것은 왕궁 안의 도서관에 가기 위해서였다.

떠나고 싶어도 떠날 수가 없었다.

“헌데 어째서 묘인족을 데리고 오신 겁니까?”

렉프레드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이 아이가 안전하게 자신의 자리로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요?”

만약 평범한 자의 요청이라면 가당치도 않은 부탁이라며 거절했겠지만 상대는 생명의 은인이었던 준혁이었다.

“이 사항에 대해서는 왕자 전하에게 허락을 받아야 하지만 아마도 허락하실 겁니다.”

왕자 아르혼을 말하는 듯했다.

“자 일단 안으로 드시지요. 식사는 하셨습니까?”

“네, 간단히.”

“아르혼 왕자 전하께서 준혁 님을 위해 귀환 와인을 준비했습니다. 이따가 저녁에 괜찮으시다면 자리를 함께해 주시지요?”

준혁은 렉프레드와 함께 건물 안으로 들어가며 웃었다.

“술이라면 마다할 이유가 없죠.”

“하하. 목욕물을 준비해 두었습니다. 갈아입으실 옷은 어떤 종류가 괜찮으시겠습니까? 지금의 복장은 아무래도 구하기가 어려워서.”

“옷은 됐습니다.”

“아, 예. 알겠습니다.”

굳이 환복하지 않는 게 이상했지만 렉프레드는 곧 뜻이 있겠거니 하고 고개를 조아렸다.

* * *

‘이번 어비스는 생각보다 길어질지도 모르겠군.’

욕조 안에서 나른하게 눈을 뜬 채로 편안하게 호흡했다.

뜨거운 물이 몸을 노곤노곤하게 만들어 주고 그동안 쌓인 피로를 풀어 준다.

뿌연 수증기 속에서 창밖으로 보이는 초록빛의 잎을 보았다.

햇빛에 반사되어 싱그럽게 흔들리는 나뭇잎을 보고 있으니 여기가 바로 극락이었다.

나른한 편안하게 온욕을 즐기면서 준혁은 캐슬을 떠올렸다.

새로운 게이트의 출연으로 캐슬의 위기가 있을지도 몰랐지만 청룡을 믿는 수밖에 없었다.

‘잘하고 있겠지.’

준혁은 머릿속의 상념을 털어 버리며 목욕을 마치고 방으로 돌아왔다.

침대에 앉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시종이 들어와 식사할 시간이라 전했다.

준혁은 앞서가는 시종을 따라 이동했다.

창밖을 보자 어느덧 밤이 찾아와 컴컴했다.

* * *

묵빛의 어두운 문 앞에 도착했다.

시녀가 노크한 뒤 문을 열어 주었다.

방 안에는 긴 식탁에 화려한 음식들이 줄지어 있다.

“오셨군요!”

아르혼 왕자가 반가움이 가득한 얼굴로 일어서서 준혁을 반겼다.

식당으로 쓰는 이 공간에는 상석에 아르혼 왕자. 그리고 그 바로 옆에 렉프레드가 있었다.

시종이 문을 닫고 나간 사이 셋은 자리에 앉았다.

“작은 소란이 일었다고 들었습니다. 알아보니 알랭드롱이라는 귀족이더군요.”

아르혼 왕자가 말했고 그 뒤의 말을 기사 렉프레드가 이었다.

“조치를 해 놨으니 앞으로 준혁 님을 귀찮게 하는 일은 없을 겁니다.”

렉프레드가 직접 와인을 따라 주었다.

그 사이 렉프레드가 어디선가 물건 하나를 가져왔다.

“이건 아르혼 왕자 전하께서 전하는 선물입니다.”

렉프레드가 보자기를 풀자 고급스러운 상자 하나가 나타났다.

상자 안에는 두 개의 물건이 들어 있었다.

하나는 보석이었고 다른 하나는 유물처럼 생긴 오래된 세공품이었다.

보석은 평범하게 비싼 값에 팔 수 있는 것이었지만 함께 들어 있는 세공품은 더 월드의 시스템이 귀한 물건이라는 것을 알려 주었다.

[여왕의 세공품을 획득했습니다.]

성장의 룬에 이서 두 번째 신물을 이렇게 쉽게 구하게 될 줄은 몰랐다.

<여왕의 세공품>

: 여왕이 정성스럽게 만든 세공품 중 하나이다. 이 세공품에는 신비한 영혼의 힘이 깃들어 있어 추출을 통해 룬을 만들 수 있다.

룬을 통해 대상은 마법적 성장이 가능해진다.

준혁은 놀란 눈으로 여왕의 세공품을 바라보았다.

“……정말 받아도 되는 겁니까?”

준혁이 세공품을 들어, 왕자 아르혼을 보며 물었다.

“그대는 나의 생명의 은인이 아닙니까? 외려 보잘것없는 선물이라 여길까 걱정했습니다만 귀하게 여겨 주시니 기쁩니다.”

준혁이 손에 들고 있는 세공품을 보며 미소 지었다.

“감사히 쓰겠습니다.”

아르혼이 정말로 기분이 좋은 듯 준혁을 보며 미소 지었다.

“하하하. 은인께서는 화려한 보석보다 그 세공품이 더 좋으신가 봅니다.”

렉프레드가 커다랗게 웃으며 말했다.

준혁은 일어서서 아르혼 왕자에게 다가갔다.

그는 의아한 눈으로 준혁을 보았다.

준혁은 큐브 안에 들어 있는 엘릭서 하나를 꺼내 아르혼 왕자 앞에 놓아주었다.

“신기하군요. 그렇게 작은 물건 안에서 이렇게 큰 물건이 나오다니.”

“오오. 저도 놀랍습니다. 아르혼 전하.”

아르혼과 렉프레드는 마치 마술을 보는 듯 신기해했다.

“아픈 몸이 있다면 어느 누구든 어떠한 상태에 있든, 회복시킬 수 있는 신비한 약입니다.”

준혁의 말에 아르혼 왕자와 렉프레드가 멍한 표정을 지었다가 이내 웃음을 터트렸다.

“몸에 좋은 약이라는 거지요?”

아르혼 왕자가 웃으며 엘릭서를 손에 들었고, 렉프레드도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 죽은 사람도 살릴 수 있는 약인가 봅니다.”

시원하게 웃던 두 사람은 준혁의 표정을 보고 어색한 얼굴이 되었다.

“아, 저희는 놀리려고 한 말이 아니라.”

렉프레드가 수습하려고 할 때.

“죽은 사람은 살릴 수 없을지 몰라도 어떠한 병도, 어떠한 상처도. 살아만 있다면 고칠 수 있는 약이라는 겁니다.”

엘릭서를 들고 있는 아르혼의 손이 가늘게 떨렸고, 렉프레드는 턱이 빠질 것 같은 얼굴로 엘릭서를 바라보았다.

“어머니가 매우 아프십니다. 이번에 궁 밖으로 나게 된 것도 어머니의 병을 고칠 수 있는 약을 구하기 위해서였지만 구할 수가 없었어요.”

아르혼이 떨리는 눈동자로 준혁을 보았다.

“정말로. 정말 그런 힘이 있는 약이란 말입니까?”

준혁이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이 약이면 충분히 회복하실 겁니다.”

아르혼이 벌떡 일어나 준혁의 손을 양손으로 잡았다.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이방인시여.”

옆에서 지켜보던 렉프레드가 눈물을 펑펑 흘렸다.

그는 눈물로 가득한 얼굴로 흐느꼈다.

“생명의 은인인 것도 모자라 여왕님을 회복시킬 수 있는 약까지 주시다니.”

렉프레드는 아이처럼 울면서 팔뚝으로 눈가를 닦았다.

“어찌 이 감사를 표해야 할지.”

준혁은 렉프레드를 보며 웃었다.

“저 역시 귀한 선물을 받았지 않았습니까?”

준혁이 세공품을 보며 말을 이었다.

“레, 렉프레드 경. 나는 떨려서 가지고 있질 못하겠으니, 이걸 좀 맡아 다오.”

아르혼의 명령에 렉프레드는 바들바들 떠는 손으로 엘릭서를 받았다.

“귀한 물건이니 제가 보관하는 게 좋겠습니다. 왕궁에 들어가서 여왕님을 만나게 되면 그때 제가 꺼내 드리면 될 듯 한데.”

“그, 그, 그리해 주시겠소?”

렉프레드가 벌벌 떠는 손으로 엘릭서를 준혁에게 주었다.

준혁은 웃으며 엘릭서를 받아 가볍게 큐브 안에 넣었다.

“보면 볼수록 참 신비한 아티펙트입니다.”

아르혼이 큐브를 빤히 보며 말했다.

“말로 설명하긴 어렵죠.”

아르혼이 숨을 크게 내쉬었다.

“오늘은 아주 의미있는 날로 기억될 겁니다.”

아르혼이 와인잔을 들며 건배했다.

준혁은 아르혼과 렉프레드와 건배를 하고 와인을 한 모금 마셨다.

대체 얼마나 고급스러운 걸 가져온 건지 삼킨 후에도 콧속을 스치는 잔향과 여운이 참 길었다.

“왕궁으로 바로 돌아가지 않고 이곳에 머물고 있는 이유를 들을 수 있을까요?”

준혁이 와인잔을 내려놓으면서 말했다.

준혁에게 가장 중요한 건 왕궁의 도서관이었다.

신수의 비밀을 품은 곳.

그러니만큼 시간 끌 것 없이 본론을 꺼낸 것이었다.

“왕실 내의 첩자들에게 들었습니다. 만약 전하와 우리 경비대원이 왕궁으로 돌아가게 되면, 암살단이 움직이게 될 것이라고.”

“암살단이요?”

“제1왕자가 2왕자를 죽이고, 3왕자인 아르혼 왕자까지 위협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직 경비대원들이 몸을 회복하지 못했고, 왕자님의 호위 군사를 더 응집시켜야 할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준혁은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며 생각했다.

……암살단이라.

그 부분이야 자신이 지켜 주면 그만이지만 언제 신수를 구하러 떠날지 알 수 없었기 때문에 막연히 이 부분에 대해서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 있게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럼 이 저택에서 머무는 기간이 얼마나 될까요?”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겁니다. 대부분 크게 다친 이들은 없기도 했고, 전하 편에 설 군사 쪽으로도 좋은 소식을 들어서요. 내일 오후쯤이면 바로 왕궁으로 들어갈 수 있을 겁니다.”

괜한 걱정이었다.

하루라면 기다려 주지 못할 이유가 없었다.

“그렇군요. 그럼 내일 오후에 같이 궁으로 들어가면 되겠군요.”

아르혼과 렉프레드가 기분 좋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모든 게 완벽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듯했지만, 준혁의 생각은 달랐다.

암살단을 준비한 1왕자 쪽이라면 현재 아르혼이 이 저택에 머무르고 있는 걸 모를 리가 없었다.

암살단은 오늘 밤 높은 확률로 이 저택에 숨어들 것이다.

‘조용히 정리해야겠군.’

준혁은 창밖을 보았다.

곧 저녁이 오는 듯 석양이 드리우고 있었다.

* * *

암살자들의 단장 ‘루크’는 멀리서 저택을 응시하고 있었다.

이미 자신의 수하들은 저택 안으로 진입하기 위해 사방에서 포지션을 잡아 놓은 상태였다.

새벽이 되면 암살자들은 아르혼 왕자를 죽이기 위한 작전에 나서게 될 예정이었다.

‘너희들이 왕궁에 첩자를 심어 놓은 걸 모를 줄 알았더냐.’

이미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첩자를 죽이지 않은 건 역으로 이용하기 위해서였다.

그를 통해 아르혼 쪽이 얼마나 준비가 안 되어 있는지 알 수 있었다.

현재의 아르혼 쪽 수준이라면 굳이 암살이 아닌 전면전을 벌여도 될 만큼 수준에서 차이가 났다.

하지만 암살은 최선을 다해 그 결과를 완벽히 이끌어 내는 것이 원칙이었다.

압도적으로 유리한 환경에서조차 방심하지 않는 것이 자신의 암살단이 지금까지 명맥을 이어 올 수 있었던 이유였다.

물론 정치적인 전략 역시도 중요하긴 했지만 암살단의 명성을 1왕자에 인정받기 위해선 암살단의 실력이 우선이었다.

오늘 새벽 아르혼 3왕자는 죽게 될 것이다.

이로써 적통은 1왕자만의 것.

만에 하나의 가능성조차 지워 버리는 것이 권력의 차가운 심판이었다.

그들이 잠들 무렵, 새벽이 오면 칼날은 피를 머금을 것이었다.

냉정한 눈으로 저택을 응시하던 루크가 자리를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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