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자의 모든 것 139화
“흐음.”
팔마트가 콧수염을 쓰다듬으며 지나갔다.
천리안의 맵에 의하면 분명 경매장 안에 뭔가가 있었는데, 아마 신물일 가능성이 높았다.
때문에 준혁은 입찰 신원 확인서를 작성하고 경매장 안으로 들어섰다.
가장 넓은 곳에서 경매가 진행 중이었다.
그들을 잠시 구경하던 준혁은 미니맵을 보며 이동했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미니맵의 위치와 준혁 자신의 위치가 가까워지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쯤인가?’
지도를 따라가자 거대한 창고가 나타났다.
창고를 지키고 있는 병사만 4명이었는데 그 앞으로 사람들이 줄을 서고 있었다.
미니맵은 여전히 창고 안에 뭔가가 있음을 반짝이는 점으로 알리고 있었기 때문에 준혁도 그곳으로 가서 줄을 섰다.
‘뭐 하는 곳이지?’
준혁은 팔짱을 낀 채로 자신의 차례가 되기를 기다렸다.
줄이 꽤 긴 편이긴 했지만 기다리는데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았다.
준혁의 차례가 되어 경비의 안내에 따라 창고 안으로 들어갔다.
‘맙소사.’
준혁은 창고 내부의 충격적인 광경에 혀를 내둘렀다.
철창 안에 갇혀 있는 노예들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문명의 차이가 있다는 건 이해하지만 실제로 보게 되니 눈살이 찌푸러졌다.
진열되어 있는 무기나 마법 액세서리류도 그 규모가 대단했지만, 노예들의 규모 역시 그에 준했다.
끝도 없이 이어진 철창 안에 노예들이 갇혀 있었다.
“노예 처음 봐요?”
낯선 목소리에 준혁은 옆을 보았다.
젊은 여자가 노예들을 보며 웃고 있었다.
사냥복 차림의 긴 머리의 여성이었다.
“이방인인 것 같아서.”
여자가 준혁을 보며 말했다.
“이 근처에 금을 팔만한 곳이 있을까요?”
“제가 안내해 드릴까요?”
“사례하죠.”
“엘레나예요.”
그녀가 자신의 이름을 밝히며 악수를 청해 왔다.
준혁은 가볍게 그녀와 악수했다.
“한 가지만 확인하고 바로 출발하죠.”
엘레나가 아무래도 좋다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준혁은 천리안을 보며 넓은 공장을 이동했다.
북적거리는 인파를 지나 미니맵에 표시된 위치 앞에 도착했다.
철창 안에는 분명 사람의 모습이었지만 고양이 귀에 꼬리를 달고 있는 여자가 있었다.
약 17세 정도로 어린 나이.
그녀는 겁에 질린 얼굴로 준혁을 응시했다.
기린을 처음 만났을 때가 떠올랐다.
기린은 신수였지만, 지금 보고 있는 묘인족도 크게 달라 보이지 않았다.
노예라는 증거로, 목에는 파란 목줄이 채워져 있었다.
겁을 먹고 물러설 때마다 목줄과 연결된 쇠사슬 소리가 울렸다.
천리안의 미니맵이 가리키는 위치는 현재 준혁이 보고 있는 노예가 있는 곳이었다.
‘왜 여기를 가리키는 거지?’
땅 아래에 숨겨져 있기라도 한 건가?
그렇게 생각하던 준혁의 눈에 묘인족 노예의 손등에 새겨진 문양을 보고 준혁의 눈이 빛났다.
그 문양이 가진 마력의 힘을 알아차린 것이다.
아주 미세한 마력이라 처음엔 몰랐지만 뒤늦게나마 발견한 것이었다.
“묘인족으로 사려고요?”
엘레나가 옆에 서서 물었다.
“여기 이 노예를 사려면 얼마 정도가 들겠습니까?”
“흐응, 이런 쪽 취향이셨구나.”
그녀는 이상한 쪽으로 오해를 하고 있는 듯 실망감이 역력하게 드러나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얼마가 필요합니까?”
준혁은 신경 쓰지 않고 다시 물었다.
“묘인족 노예의 평균 가격은 2천 페니지만 자세한 가격은 거래를 해 봐야 알겠죠?”
준혁이 근처에 있는 상인을 불렀다.
“이 노예를 예약하고 싶은데, 가능하겠습니까?”
준혁이 묻자 상인이 미소 지었다.
“물론이죠. 단 예약은 2시간밖에 되지 않으니 그 점은 기억해 두셔야 합니다.”
준혁이 고개를 끄덕이고 엘레나에게 돌아가 눈짓했다.
“출발하죠.”
엘레나가 뒷짐을 진 채 웃었다.
“묘인족은 꽤 사나운데, 그런 호리호리한 몸으로 감당할 수 있으시려나?”
그녀가 음흉하게 웃으며 말했다.
준혁은 개의치 않고 엘레나와 함께 창고 밖으로 나왔다.
“어디로 가야 합니까?”
“이쪽으로.”
준혁은 앞서가는 그녀를 따라가며 큐브를 손아귀에 쥐었다.
큐브 안에는 엄청난 양의 금덩어리가 있었다. 모두 던전 안에서 큐브가 자동 채굴했던 금이었다.
다른 물질을 제외하고 준혁이 현재 큐브 안에 가지고 있는 금으로만 이 경매장 전체를 사고도 남을 양이 있었다.
큐브를 만지며 엘레나를 따라가던 중 점차 인적이 드문 곳으로 가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설마 하는 생각을 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으슥한 골목 쪽으로 들어서게 되자 장정 다섯이 몽둥이를 들고 나타났다.
“미안해요.”
엘레나가 찡끗 윙크했다.
준혁은 앞뒤로 나타난 사내들을 힐끔 보았다.
하나같이 이죽거리는 웃음을 입가에 머금고 있었다.
“하여튼 멍청한 이방인들. 여자라면 사족을 못 쓰고 경계를 풀어 버린다니까.”
“엘레나라면 그럴 수밖에.”
“잘했어. 엘레나.”
“돈 꽤나 있어 보이는군. 저 녀석 손에 들고 있는 걸 봐.”
점점 가까워져 오는 사내들이 킬킬 웃으며 말했다.
준혁은 짧은 한숨을 뱉었다.
“엘레나.”
준혁의 부름에 엘레나가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묘인족이나 사려 했던 변태 새끼가 내 이름을 입에 담아?”
엘레나가 팔짱을 낀 채로 얼굴을 절레절레 흔들었다.
“무릎 꿇고 전 재산이나 내놔. 그럼 적어도 멀쩡한 몰골로 돌아갈 수 있을 테니까.”
준혁이 작게 웃음 짓자 엘레나가 입매를 비틀었다.
“형제들. 저 변태자식, 정신 차릴 수 있게 흠씬 두들겨 패 줘야겠어.”
엘레나의 말에 사내들이 낄낄 웃었다.
“자. 시작해 볼까?”
“맞고 울지 마라.”
“곱게 말을 들으면 좋았을 것을.”
사내들이 흉흉한 표정으로 준혁을 향해 앞뒤에서 달려들었다.
그들이 몽둥이를 휘두르기 직전, 준혁이 살짝 어깨와 허리를 흔들었다.
투투투투투!
준혁의 양손 주먹이 강도들의 몸에 한 대씩 꽂혔다.
마력을 섞지 않은 순수한 체술의 힘이었다.
만약 조금이나마 마력을 썼다면, 모두 죽었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 정도로 평범한 인간들이었다.
칼을 들고 있었다면 처음 만난 도적떼처럼 죽였겠지만 이런 강도들은 이 정도만으로 충분했다.
유연하고 부드러운 움직임에 의해 준혁을 중심으로 사방에 쓰러진 다섯 강도들이 신음을 흘렸다.
엘레나는 입을 쩍 벌린 채 준혁과 자신의 형제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준혁이 그런 엘레나를 향해 걸어갔다.
그녀는 분노와 떨림이 섞인 채로 준혁을 노려보았다.
굴복하지 않는 눈빛을 보며 준혁이 미소 지었다.
“이제 제대로 된 거래소로 안내해.”
준혁이 말했다.
엘레나는 여전히 일어나지 못하고 있는 형제들을 한심하게 노려보다가 어쩔 수 없다는 듯 일그러진 얼굴로 앞장섰다.
“평범한 남자가 아니었네.”
엘레나가 말했다.
“입 닥쳐. 날려 버리기 전에.”
준혁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엘레나는 식은땀을 흘리며 입을 다물었다.
으슥한 골목에서 빠져나와 사람이 붐비는 곳으로 다시 돌아왔다.
이번엔 제대로 된 안내였다.
“금 시세가 어떻게 되지?”
보석 거래소 앞에 도착한 준혁이 물었다.
“한 돈에 500페니야.”
“수고했다. 당연한 얘기지만 약속했던 수수료는 없어.”
엘레나는 발끈하는 표정으로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사이 준혁은 거래소 안으로 들어갔다.
“어서 오십시오!”
뚱뚱한 체구의 수염이 가득한 사내가 우렁찬 목소리로 환대했다.
준혁은 미리 큐브에서 조각내어 챙겨 둔 작은 금덩이 하나를 내려놓았다.
금덩이를 보고 보석상의 눈이 반짝 빛났다.
같은 무게의 금이라도 이렇게 큰 덩어리는 더 비싼 값에 처분할 수 있어서였다.
“한 돈에 500페니로 들었습니다. 처분해 주시죠.”
“확인되는 대로 정상가에 처분해 드리겠습니다.”
보석상이 금덩이를 가지고 분석을 하고 돌아왔다.
“금이 맞군요. 열두 돈이니 6천 페니로 드리면 되겠습니까?”
준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보석상이 주는 6천 페니를 받고 준혁은 다시 노예를 사기 위해 창고로 향했다.
창고 앞에 이르러 처음 찾았던 노예가 있던 곳으로 돌아왔다.
철창 안에 있던 묘인족은 사라져 있었고 이에 대해 따지자 노예상은 뜬금없는 소리를 해 왔다.
“……그게 죄송하지만, 팔렸습니다.”
“분명 2시간의 여유가 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경매장의 주인. 팔마트님이 사 가시는 바람에, 어쩔 수 없었어요. 그가 곧 이곳에서 법이니까요.”
의아했다.
많고 많은 노예 중에서 하필이면 지금 타이밍에, 굳이 경매장 주인이 묘인족을 사간다?
뭔가 이상했다.
“그를 만나려면 어디로 가야 합니까?”
“그 노예를 사시려고요?”
“가능하다면.”
“흐음, 그럼 제가 한 번 알아보고 올 테니 잠시 기다리시죠. 어쩔 수 없었다고는 해도 제게도 책임이 있으니.”
노예상이 팔마트를 찾기 위해 자리를 떠났다.
그 사이 준혁은 비어 있는 철창을 보았다.
묘인족이 있던 자리는 텅 비어 있었다.
* * *
“꽤 고집 있는 작자로군.”
경매장 주인 팔마트는 노예상의 말을 전해 듣고 혀를 찼다.
강도짓을 취미로 하는 외동딸 엘레나 때문에 골치가 여간 아픈 게 아니었는데 하나밖에 없는 딸이다 보니 비위를 맞춰 주는 편이 혼내는 것보다 훨씬 쉬운 일이었다.
애초에 노예 장사를 하는 아비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딸이었다.
화가 잔뜩 난 채로 이방인에게 당한 굴욕에 대해 떠들며 절대로 묘인족을 팔면 안 된다고 난리를 피우는 통에 어쩔 수 없이 그 묘인족을 매대에서 빼야만 했다.
그런데 그 묘인족을 찾던 사내가 자신과 거래를 하고 싶다고 노예상이 전해 온 것이다.
“팔 수 없다고 해.”
노예상이 찜찜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예, 나으리.”
노예상이 나가려고 할 때, 팔마트가 머물고 있는 천막 안으로 준혁이 들어왔다.
준혁의 등장에 팔마트와 노예상이 깜짝 놀랐다.
분명 경호 병사들이 천막 입구를 지키고 있을 터였다.
기사급은 아니라도 충분히 실력 있는 녀석들이었는데, 멀쩡히 들어온 준혁을 보고 팔마트는 물론 노예상도 어안이 벙벙했다.
준혁이 이곳을 찾을 수 있었던 건 노예상의 뒤를 미행했기 때문이었다.
이미 묘인족 노예를 빼돌린 이상, 쉽게 내어 줄 거라 생각하지 않아서였다.
노예나 팔아먹는 놈의 입장 같은 건 생각해 줄 필요도 없는 문제였다.
“이게 뭐 하는 짓인가?! 감히 내 처소에 마음대로 들어오다니!”
준혁이 팔마트의 앞으로 걸어갔다.
팔마트의 콧수염이 부들부들 떨렸다.
준혁이 가진 위압감 때문에 팔마트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이 그저 그 자리에서 가늘게 떨 수밖에 없었다.
굴욕적인 순간이었다.
“이 경매장의 주인이라지? 명색의 상인이 원칙도 없이 장사를 하면 그 대가를 치러야지.”
준혁의 눈이 차갑게 빛났다.
당장이라도 죽일 수 있다는 냉정함이 준혁의 눈에서 어른 거리고 있었다.
“지, 진정하시게.”
“묘인족만 처분하면 그 이상 개입할 생각은 없다.”
외동딸이 거느린 부하들을 처치했다는 이야기도 전해 들은 팔마트였다.
평범한 이방인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그도 알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