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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의 모든 것-137화 (137/175)

귀환자의 모든 것 137화

마차를 이끄는 수행기사 단장 렉프레드는 점점 어두워지는 하늘 때문에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이제 곧 하미스 숲을 지나야 했다.

그곳은 마수의 출현은 드물지만 무려 카사디아가 있다.

상체는 인간이지만 하체는 뱀으로 되어 있는 괴물이다.

하미스 숲은 그 카사디아가 지배한다.

몇 년 동안 카사디아를 보았다는 소문은 없었지만 혹시 모를 사태를 생각해 보면 모골이 송연해진다.

게다가 카사디아가 아니더라도 마수가 나타날 가능성도 배재할 수 없었다.

마차에 타고 있는 왕자는 레메논 왕국의 2왕자.

목숨을 던져서라도 지켜야만 했다.

“히이잉!”

말이 앞발을 들면서 멈춰 섰다.

게시판이 박혀 있는 하미스 숲의 입구.

말도 숲에서 흘러나오는 마수의 기운에 놀랐는지 나아가기를 망설이고 있었다.

“신의 가호가 있기를.”

렉프레드는 동료들에게 신호를 주고 말의 엉덩이를 채찍질했다.

마차가 속도를 올렸다.

이곳을 지나면서 시간을 지체해서는 안 된다.

운이 나쁘면 해가 완전히 저물어 버려서 하미스 숲을 벗어나지 못할 수도 있었다.

* * *

마차가 멈춘 건 하미스 숲의 초입을 막 벗어날 무렵이었다.

억센 넝쿨에 마차의 바퀴가 걸렸다.

넝쿨을 잘라 내려고 했지만 무슨 일인지 단단하기가 실로 지독했다.

수행기사들이 칼로 끊어 내려 했지만 넝쿨은 전혀 풀어지지 않았다.

“환장하겠네.”

“대체 무슨 나무줄기가 이렇게 질기담.”

수행기사들이 진땀을 흘릴 때 왕자 아르혼이 창밖으로 머리를 내밀었다.

“무슨 일이냐?”

끙끙거리던 렉프레드가 이마에 맺힌 땀을 훔쳐 내면서 면목 없는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시간이 좀 더 지연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르혼이 마차와 이어진 넝쿨을 가리키며 물었다.

“저것 때문에?”

“쉽지 않군요.”

벌컥 문이 열리면서 준혁이 마차에서 내렸다.

렉프레드는 기다렸다는 듯이 마차의 바퀴를 가리켰다.

“이쪽입니다.”

준혁은 가까이 다가가 자세히 살펴보았다.

바퀴를 휘감은 넝쿨은 황록색을 띠고 줄기가 아주 굵었다.

자세히 보니 그것은 마치 살아 있는 것마냥 아주 미묘하게 꿈틀거렸다.

“뭐야 이건?”

준혁은 손으로 넝쿨을 잡고 힘껏 당겨 보았다.

파악!

뜯겨진 부분에서 새빨간 액체가 사방으로 튀었다.

준혁이 불쾌한 표정으로 얼굴과 옷에 묻은 액체를 손으로 닦아낼 때, 기괴한 소리가 들렸다.

그것은 마치 수백 명의 아기가 울어 대는 소리였다.

왕자와 수행기사들은 그 소리가 너무 시끄러워서 얼굴을 구기며 반사적으로 귀를 틀어막을 정도였다.

나무줄기에서는 수를 셀 수 없는 엄청난 숫자의 벌레들이 사방으로 퍼져 나가고 있었다.

준혁이 미간을 찌푸린 때 별안간 숲속에서 커다란 줄기가 뻗어 나오더니 마차 전체를 휘감아 버렸다.

렉프레드가 투구를 벗어 던지며 눈을 크게 떴다.

괴이한 줄기가 휘감은 마차 안에는 왕자가 있다.

렉프레드는 당장 검을 들고 달려가 있는 힘을 다해 나무줄기를 베어 보았지만 겨우 흠집만 날 뿐이었다.

뒤이어.

덜-컥!

콰콰콰콰!

나무줄기는 마차를 숲 쪽으로 끌고 가기 시작했다.

마차와 연결된 말들이 바닥에 엎어지며 몸부림쳐 댔다.

“아르혼 전하!”

렉프레드가 절망이 가득한 눈으로 뒤쫓아 가다가 갈비뼈를 붙잡고 무릎을 꿇었다.

부상으로 인한 체력의 한계였다.

‘왕자였나?’

준혁이 마차를 향해 다리에 힘을 싣고 몸을 날렸다.

순식간에 끌려가고 있는 마차 위에 착지한 준혁이 헬바인의 장검을 꺼내 휘둘렀다.

허공에 금빛이 번지며 준혁의 손 앞으로 검이 나타났다.

서걱-!

마차를 휘감은 줄기가 간단하게 끊겨 나갔다.

역시나 아까처럼 끔찍한 비명과 함께 벌레들이 튀어나왔다.

그것들은 순식간에 사방으로 흩어지며 도망갔다.

멈춰진 마차의 천장 위에 선 준혁은 멀리서 보이는 실체를 눈에 담았다.

약 50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나무가 그 줄기를 뻗어 온 것 같았다.

나무는 마치 살아 있기라도 한 듯 온몸을 출렁 댔다.

그렇게 움직일 때마다 나뭇가지와 나뭇잎들이 사정없이 흔들렸다. 그러더니 갑작스레 성난 것처럼 바람이 불어댔다.

뒤늦게 마차 옆으로 겨우 뒤쫓아 온 수행기사들은 그 강한 바람에 눈조차 제대로 뜨지 못했다.

반면 준혁의 눈은 붉게 번쩍였다.

마차에서 풀쩍 뛰어내린 준혁은 기괴하게 살아 움직이는 거대한 나무를 향해 정면으로 걸어갔다.

거센 바람이 몸을 흔든다.

준혁의 차갑고 날카로운 시선이 점점 가까이 나무에 닿자 그것은 더욱 크게 몸을 흔들어 댔다.

[다크엔트].

더 월드가 짐승이나 인간의 피와 살을 양분으로 먹고사는 나무라고 알려 왔다.

준혁이 한 걸음 더 내디딜 때, 캬아악! 하는 짐승의 소리가 귓가로 파고들어 왔다.

다크엔트라는 괴수나무 부근에는 커다란 우리 안에 뱀의 하체를 가진 괴물이 갇혀 있었다.

주인은 바로 그놈이었다.

쇠창살을 양손으로 움켜쥐고서 준혁을 노려보는 눈빛이 살벌했다.

주둥이에서 흘리는 초록색 침이 바닥에 떨어지면 매캐한 연기가 풀풀 피어올랐다.

* * *

마차에서 이마를 붙잡고 비틀거리며 내린 왕자는 괴물들을 보고는 충격을 먹었다.

이내 다리에 힘이 풀려서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왕자의 옆으로 뛰어온 렉프레드와 두 명의 수행기사들 역시 다크엔트와 옥 안에 갇힌 짐승을 보자마자 그대로 몸이 굳어 버리고 말았다.

“카, 카사디아!”

렉프레드가 굵은 침을 꿀꺽 삼켰다.

하미스 숲의 지배자.

카사디아.

옥 안에는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무수한 시체와 뼈들이 가득했다.

다크엔트가 먹이를 잡아 오면 옥 밖으로 탈출할 수 없는 카사디아가 배를 채우는 것 같았다.

“근데 저놈은 왜 저기 갇혀서 꼼짝 못 하는 거지?”

고개를 갸웃거리는 준혁의 혼잣말에 렉프레드가 떨리는 목소리를 냈다.

“소문 중의 하나입니다만 한 마법사가 가두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만, 그게 사실일 줄이야…….”

만약 저 다크엔트에게 몸이 붙들린다면 카사디아의 먹이가 되는 듯했다.

카사디아는 코에서 성난 김을 푹푹 내쉬며 화를 달래지 못해 안달이었다.

달려들고 싶은 마음이야 굴뚝같겠지만 옥 안에 갇혀 있는 상태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었다.

“저 꼴을 한 채로 배는 고픈 건가?”

준혁이 피식 웃었다.

폭풍처럼 휘몰아치는 바람 속에서 검을 천천히 들어 올리는 준혁의 모습은 지켜보는 이들에게 있어 그저 경이로운 것이었다.

왕자와 렉프레드. 그리고 나머지 수행 기사들은 지금 눈앞에서 벌어지는 광경을 단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고 눈을 부릅떴다.

본능적으로 직감했다.

이것은 하나의 전설이나 다름없다고.

어쩌면 준혁이라는 동방의 이방인이 저 유명한 카사디아를 처치할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이 들었다.

그 역사적인 광경을 바로 코앞에서 지켜보는 것이니 어떻게 눈을 깜빡일 수 있겠는가.

저벅저벅!

준혁이 거침없는 걸음으로 접근하자 다크엔트는 기묘한 움직임으로 몸을 흔들어 대더니 악질적인 기운을 가득 뻗쳐 냈다.

마치 겁을 먹은 짐승이 이빨을 드러내는 것처럼.

그럼에도 준혁은 달빛 아래 흔들림 없는 모습으로 다크엔트와 카사디아가 있는 곳을 향해 멈추지 않고 나아갔다.

뒤에서 지켜보는 모든 이들은 넋을 놓고 그런 준혁을 지켜봤다.

도움이 못 되는 건 둘째치고 저 마물들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것만 해도 버거웠다.

살 떨리는 중압감은 이렇게 멀리 떨어져 있는 거리에서도 떨쳐 내기 어려울 정도다.

‘대체 어디서 온 사람인가? 저 이방인은!’

왕자와 자신들의 운명은 그저 준혁에게 달려 있었다.

신의 가호를 그의 이름 앞에 가져다 붙이는 것이 전혀 부끄럽지 않았다.

그의 뒷모습이 너무나 든든했다.

바로 지금이 렉프레드에게 있어 강자에 대한 무한한 동경이 가슴 안에 차오르는 순간이었다.

그 사이 다크엔트의 거대한 줄기가 준혁에게로 쇄도했다.

그 나무줄기는 아무런 효용도 거두지 못하고 준혁의 검에 간단히 잘려 나갔다.

바닥으로 툭툭 떨어지며 잘린 표면에서 벌레들이 사방으로 튀어나와 흩어지고 비명 소리가 퍼지는 그 순간에 준혁은 다크엔트의 본체를 향해 뛰어들었다.

특별한 장식이 없는 검은 놀라울 정도로 부드럽게 다크엔트의 몸통을 찔렀다.

평범해 보이는 저 검이 준혁이 쓰니 날카로움의 위력은 배가 된다.

그의 동작은 마치 종이를 자르듯 부드럽고 유연했다.

검을 빼내면서 다크엔트를 네 조각으로 베어 내는 것을 보자 렉프레드는 현실감을 상실했다.

자기 자신은 다크엔트의 나무줄기마저 잘라 내지 못했는데 그는 강도를 알 수 없는 본체를 두부 썰듯 갈라 버렸으니 그 능력은 도저히 상식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었다.

현실과 이상 사이의 괴리감.

다크엔트의 수액을 온몸에 뒤덮어 쓴 그의 모습은 그 자체로 공포였다.

하미스 숲의 지배자 카사디아조차 그 파괴적인 모습에 기가 질리는 듯 주춤거리고 있었다.

준혁은 카사디아의 눈을 정면으로 보았다.

움찔움찔!

검을 수련하는 자들조차 엄두도 못 낼 카사디아를 존재감만으로 물러서게 만든다.

그 압도적인 기운이 지옥 같았던 공기를 오직 준혁의 색깔로 일순간에 지배해 버렸다.

하지만 하미스 숲의 지배자로서 가진 자존심일까?

카사디아는 이내 다시 발톱을 드러냈다.

입을 벌려 내뱉은 울음은 숲 전체를 울렸다.

“카아아악!”

뒤에서 지켜보던 렉프레드는 사지를 떨었다.

전신이 꽝꽝 울릴 정도로 무서운 소리였다.

그런데 준혁은 검을 마술처럼 사라지게 만들더니 주먹 관절을 두두둑 꺾으며 우리 안으로 들어갔다.

카사디아가 갇혀 있는 옥의 철창 사이는 인간 정도는 충분히 들어갈 수 있을 만한 폭이었다.

철창 안.

자신의 구역 안으로 들어온 준혁을 내려다보는 카사디아의 덩치는 높이가 4미터에 몸무게는 2톤이 넘는다.

렉프레드는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칼을 버리고 맨손으로 저 안으로 들어갈 생각을 하다니?! 무섭지도 않나?’

준혁라는 이방인의 간이 얼마나 큰 건지 감조차 오질 않았다.

렉프레드는 바들바들 떨리는 손으로 요동치는 심장을 움켜쥐었다.

지금 이 순간 저 두 생명체의 대치 상황은 모든 감각을 마비시키기에는 충분했다.

예측할 수 없는 현장에서 렉프레드는 심장을 졸였다.

“네가 이 숲의 지배자. 뭐 그런 거라고?”

준혁의 입가에 퍼지는 미소.

“귀엽네.”

그 여유에 카사디아가 자세를 낮추었다.

몸을 던질 태세를 갖추는 것.

“들어와.”

준혁이 손을 까딱이자 마치 말을 알아듣기라도 한 듯이 즉각 카사디아가 포효를 내뱉으며 달려들었다.

풍압감으로 바닥에 널려 있던 해골들이 날아올라 철창에 부딪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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