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자의 모든 것-135화 (135/175)

귀환자의 모든 것 135화

“어떻게 된 거지?”

“나 벌레에 물렸었는데…….”

“왜 여기에 이렇게 모여 있는 거야?”

“우리가 원래 있던 곳이 아닌데?”

헌터와 시민들이 섞여 있는 가운데, 하나같이 모두 영문 모를 표정으로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중이었다.

‘성공했군.’

준혁은 한시름 덜었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어? 귀환자님이다.”

“귀환자님!”

“귀환자가 우릴 살린 거야!”

엉망으로 무너진 도시와, 영문 모를 위치.

그리고 귀환자의 등장.

그들은 어느 정도 상황을 눈치채고 있었다.

사방에서 인사를 건네고자 시끄럽게 말을 걸어왔다.

준혁은 그들을 무시하고 인파 사이를 걸었다.

수백 명을 지나 찌그러진 차량 위에 걸터앉아 있는 사내가 보였다.

청룡이었다.

여기저기가 피로 물들고 옷은 넝마처럼 찢어져 있었다.

찢어진 입술과 눈두덩이에는 검붉은 피가 맺혀 있었다.

청룡이 자신의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 얼마나 고생했는지 여실히 알 수 있는 모습이었다.

“고생했다.”

준혁이 찌그러진 차량 위에 앉은 청룡의 앞에 서며 말했다.

청룡이 움직이려고 하는 걸 준혁이 어깨를 잡았다.

“무리할 필요 없어.”

청룡이 옅은 미소를 지었다.

“주인님이 상황을 종결시킬 거라 믿고 있었습니다.”

청룡이 이 정도로 다칠 정도였다면, 평범한 헌터가 아닌 리더보더 역시도 이 중에 섞여 있었다는 얘기였다.

준혁은 주변을 훑어보았다.

이쪽을 지켜보던 한 사내가 몸을 돌려 떠나는 게 보였다.

건틀렛에는 핏자국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아마 그인 듯했다.

투투투투투!

헬기 프로펠러 소리가 들렸다.

뒤를 보자 헬기가 착륙하고 있었다.

“현장 복구 작업이 진행될 예정이니 부상자들께서는 병원에서 치료를 받길 바라며 부상이 없더라도 치료를 원하는 분들은 병원으로 가십시오. 무료로 치료가 지원될 것입니다.”

헬기에 장착된 스피커에서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현장 복구와 던전 지대 조사를 위해 모두 리야드 외곽으로 떠나주시길 바랍니다.”

사람들이 하나둘 흩어지기 시작했다.

그사이 착륙 된 헬기에서 수트 차림의 흑인이 내려 준혁과 청룡이 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귀환자님, 모시러 왔습니다. 왕자께서 뵙고 싶어 하십니다.”

흑인의 눈길이 청룡에게 향했다.

“힐러들이 궁에서 대기 중이라 곧바로 치료가 가능할 겁니다.”

준혁이 고개를 끄덕이곤 청룡에게 손을 내밀었다.

청룡이 준혁의 손을 잡으며 일어섰다.

준혁은 청룡을 부축해 주며 헬기 쪽으로 이동했다.

짝짝짝짝짝!

박수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는 점점 커지더니 사방에서 쏟아졌다.

준혁은 잠시 멈추어 주변을 훑어봤다.

수많은 사람들이 준혁과 청룡을 향해 박수를 보내고 있었다.

그들을 보던 준혁은 다시 청룡과 함께 걸음을 옮겼다.

헬기에 청룡을 먼저 부축하여 앉히고, 준혁도 탑승했다.

헬기는 사우디 왕자가 있는 궁을 향해 비행을 시작했다.

준혁은 옆자리에 앉아 눈살을 구기고 있는 청룡을 보았다.

“견딜 만해?”

“문제없습니다.”

준혁은 피식 웃으며 창밖을 내려다보았다.

폭격을 맞은 듯 부서지고 무너진 리야드의 도시는 복구되려면 한참 동안의 시간이 소요될 듯했다.

* * *

왕자의 궁에 도착하자마자 청룡을 힐러진들에게 보내고 준혁은 흑인의 안내를 받아 사우디 왕자를 만나기 위해 이동했다.

그는 응접실에서 준혁을 만나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다.

준혁은 엉망진창으로 변해 버린 복도를 걸었다.

수많은 일꾼들이 준혁이 나타나자 청소를 멈추고 머리를 조아렸다.

그들을 지나 응접실에 도착하자 흑인이 문을 열어 주었고, 방 안의 소파에는 왕자가 차를 마시고 있었다.

그는 준혁이 도착하자 찻잔을 내려놓고 일어서서 수트 단추를 잠갔다.

왕자가 사우디식으로 가벼운 인사를 하고 서로 마주 보며 자리에 앉았다.

안내를 맡았던 흑인은 방을 나가 천천히 문을 닫았다.

왕자가 찻잔을 가리켰고 준혁은 뜨거운 김이 나는 찻잔을 들어 목을 축였다.

“믿기지가 않는군요. 지금 이렇게 당신과 함께 마주 보고 있다는 것이.”

왕자가 말했다.

그의 얼굴은 초췌해 보였다.

왕자는 자신의 손가락을 내려다보았다. 그는 지난 시간을 떠올리고 있었다.

“지금도 이 손에 권총을 쥐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에요. 잊히지가 않거든요. 그 순간이.”

준혁이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는 표정으로 그를 보며 차를 마셨다.

“처음엔 말이죠. 이해가 가질 않았습니다. 대체 왜 내가 있는 곳부터 지원해 주지 않는지. 왜 우리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인지. 이해하기 어려웠죠. 사실 귀환자의 자존심 같은 건 줄 알았습니다.”

“자존심?”

“높은 위치에 앉은 자가 자신의 권세를 내세우는 그런 거 말입니다.”

준혁이 소리 없이 웃었다.

왕자는 어깨를 으쓱였다.

“사우디 왕자라고 해 봐야 이런 순간에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마치 그렇게 알려 주는 듯했죠. ……당신이.”

준혁은 별 관심없다는 듯 흘려 들었다.

“사우디를 지키기 위해 온 헌터들이 마수에 감염되어 이성을 잃고 미쳐 날뛰었습니다. 그 사이 당신은 던전 지대로 갔고 미쳐버린 헌터들은 궁까지 밀고 들어왔죠.”

사우디 왕자가 악몽이었다는 듯 얼굴을 절레절레 흔들었다.

“정말 무서웠어요. 살아생전 그런 공포는 처음이었죠.”

“…….”

“미쳐버린 헌터들이 철문을 뚫고 내가 있는 이 방까지 올라와 마법 장치가 떡칠 된 문을 두드리는 동안에도. 기도했습니다. 어쩌면 당신이 나타날지도 모른다고.”

준혁은 대답 없이 목을 긁적였다.

“하지만 그런 기적이 일어날 확률이 없다는 걸 깨닫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어요.”

사우디 왕자가 일어서더니 테이블 서랍을 열어 권총 하나를 들고 돌아왔다.

그는 다시 자리에 앉으면서 권총을 테이블에 올려 두었다.

“죽으려고 했습니다. 난 내가 미쳐 버린 헌터들처럼 이성을 잃고 날뛰는 꼴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었으니까요.”

왕자가 고개를 갸웃하며 말을 이었다.

“근데 탄약이 없었습니다. 방아쇠를 당긴 후였고 그 순간, 마치 꿈을 꾸듯이 미쳐버린 헌터들은 그대로 석고상처럼 굳어 버렸죠.”

“…….”

“신이 나를 살린 겁니다.”

“…….”

“당신이 아니라.”

준혁은 왕자를 보며 피식 웃었다.

“왜 웃습니까?”

왕자가 딱딱한 표정으로 물었다.

무표정했지만 화난 것처럼 보였다.

“무슨 말을 하는지 알 것 같아서.”

“무슨 뜻인 것 같습니까?”

준혁은 한숨을 내쉬었다.

잠시 침묵 후, 입을 열었다.

“세상 사람들을 구하고 있다는 착각에 도취되지 말라. 뭐 그런 겁니까?”

준혁이 묻자.

“비슷합니다.”

사우디 왕자가 기다렸다는 듯 말했다.

“그 말이 그렇게도 하고 싶었나?”

준혁이 담담한 어조로 물었다.

“당신의 선택이 언제나 옳을 수 없다는 뜻입니다.”

왕자가 준혁의 눈을 보며 말했다.

준혁은 그의 말을 듣자마자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내 선택이 매 순간 정답일 수는 없겠지. 그래서?”

“스스로를 영웅이라 생각지 마십시오. 큰 실수를 맞이할지도 모르니.”

“그렇게 생각 안 해.”

“…….”

“그리고. 수치와 불명예. 자존심. 그런 것들 때문에 스스로 자결을 선택한 주제에. 누군가를 함부로 평가하지 마. 그냥 겁 먹은 것 뿐이야. 그게 전부라고.”

왕자의 호흡이 살짝 빨라졌다.

준혁이 말을 이었다.

“내가 볼 때 당신은 지금 환자야. 심리 치료를 받아야 할 그런 사람. 병원에 가 봐. 난 심리 치료사가 아니니까.”

준혁이 찻잔을 마시고 내려놓았다.

“몸 잘 챙기세요. 왕자님.”

준혁이 일어서자 왕자가 부들부들 떨면서 일어섰다.

“네가 뭐 그렇게 잘났다는 거야!”

사우디 왕자가 핏대를 세우며 소리 질렀다.

준혁은 그를 보며 웃었다.

“잘났다고 생각한 적 없는데? 난 그냥 내가 해야 할 일을 할 뿐이야. 그 일에 넌 조금도 도움이 안 되는 사람이고.”

왕자가 흥분한 듯 숨을 크게 내쉬었다.

입을 앙다물고 내쉬는 콧김이 꼭 코뿔소 같았다.

“부끄러운 줄도 모르는군.”

준혁이 혼잣말처럼 읊조리곤 왕자의 방을 나갔다.

왕자의 시선이 준혁의 등으로 향했다.

준혁은 얼굴을 절레절레 흔들며 사라지고 있었다.

왕자는 아랫입술을 꽉 깨물며 황금 찻잔을 들어 집어던졌다.

찌그러진 잔이 바닥을 굴러갔다.

“……빌어먹을.”

왕자는 땀에 젖은 머리를 쓸어 올리며 맥 빠진 욕설을 웅얼거렸다.

* * *

“원하시던 건 찾으셨어요?”

전용기 안에서 옆자리에 앉은 청룡이 물었다.

“찾았지.”

“다행이네요.”

“다행이라면 다행이지.”

청룡은 준혁을 빤히 보았다.

창밖을 보는 준혁의 비스듬히 보이는 얼굴에서 어지러운 심상이 어려 있는 듯했다.

“청룡.”

준혁이 눈을 감으면서 불렀다.

“예, 주인님.”

“내가 어비스로 가면 신수들을 백호를 데리고 사냥을 시작해. 낮에는 백호로 사냥을. 그리고 저녁엔 기린을 가르치는 걸로.”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몸은 좀 어때?”

“많이 좋아졌습니다.”

“캐슬로 가면 최설화 힐러에게 정밀 치료를 받아.”

“그 정도까지는…….”

“치료받아. 일을 믿고 맡길 수 있는 사람은 너뿐이다.”

청룡은 대답하지 못하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곧 결론에 이른 듯 청룡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 주인님.”

“한국까지 비행이 길어. 푹 쉬어 둬.”

“운기하고 있겠습니다.”

준혁이 잠을 청하는 동안 청룡은 스튜디어스를 불렀다. 운기를 하는 동안 접촉이나 말을 걸지 말아 달라고 당부했다.

이후 청룡은 시트에 편안히 기대어 눈을 감고 운기에 들어갔다.

수면보다 운기하는 것이 훨씬 더 회복에 좋았기 때문이다.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 안.

고요한 침묵이 기내에 감돌았다.

* * *

사흘 동안 TV 뉴스에서는 쉬지 않고 준혁의 활약에 대해 떠들었다.

희망이란 존재하지 않는 듯 마치 지옥처럼 변해 버린 사우디의 리야드 도시에서 이성을 잃고 미쳐 날뛰는 헌터들의 모습이 생생하게 중계되었다.

그리고 그들 중 단 한 명도 해치지 않고, 신수 청룡과 함께 이번 일을 해결한 준혁에 대한 이야기가 끊임없이 보도되고 있었다.

그로 인해 현재 준혁뿐만이 아니라, 청룡의 인기가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첫날을 제외하고 뉴스의 대부분은 신수 청룡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했다.

희생을 감수하고 헌터들을 해치지 않으면서 끝까지 준혁이 내린 명령을 완수해 가는 모습이 누군가 몰래 드론으로 촬영한 영상으로 퍼졌기 때문이다.

대중들은 불안에 떨면서도 점차 준혁과 준혁의 신수에 대해 의지하기 시작했다.

그 감정들이 커뮤니티를 도배했고, 귀환자 없이는 이 세상은 끝을 보게 될 거라고 모두 입을 모아 이야기했다.

전 세계 모두의 관심이 캐슬을 향하고 있는 사이 준혁은 어비스로 떠날 채비를 하고 있었고, 청룡은 백호와 기린을 연무장에서 가르쳤다.

캐슬의 정원에서 호수를 바라보며 준혁은 조금씩이지만 아우터 갓과 가까워지고 있음을 느끼고 있었다.

마치 심연이 속삭이듯 보일 듯 보이지 않는 거리에서, 그들이 점차 희미하게 보이는 듯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