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자의 모든 것 133화
[던전에 진입했습니다.]
준혁은 헬바인의 장검을 쥐면서 앞으로 나아갔다.
어두운 동굴형 던전은 아주 넓고 천장이 높았다.
어두운 색감의 동굴 벽과 바닥에는 드문드문 야광석이 박혀 있었다.
그 야광석이 빛을 밝혔다.
야광석이 은은하게 비추는 길을 걸으면서 준혁은 주변을 훑어봤다.
바닥에 애벌레 같은 것들이 기어 다녔는데 빠른 속도로 탈피를 하고 있었다.
이미 사우디 측에서 벌레 형태의 마수에게 물린 이후로 헌터들이 이성을 잃고 짐승처럼 변했다고 했으니 이런 벌레 하나하나를 조심해야 했다.
준혁은 벌레를 짓밟으면서 전신에 마력을 겹겹이 둘렀다.
보이지 않는 작은 마수들의 공격에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평범한 헌터라면 상상도 할 수 없을 수준의 능력이었다.
마력을 전신에 두른다는 것은 그것만으로도 엄청난 마나를 소실하기 때문인데 준혁은 마나도 충분했을 뿐 아니라 신성력까지 갖추고 있었기 때문에 신체에 마력을 두르고도 충분한 여유가 있었다.
‘서둘러야 해.’
천리안으로 지도를 켜고, 마수의 위치로 추정되는 곳을 향해 달렸다.
청룡이 던전 밖에서 유인을 하고는 있지만, 모든 헌터가 청룡을 쫓을 수는 없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전염성은 일반 시민을 통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수 있었다.
던전 안에서 그들을 정상화시킬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 베스트였고 만약 실패한다면 최악의 상황을 맞이할 수밖에 없다.
도시를 봉쇄하는 것만으로는 전염성을 막을 수 없다.
그렇게 되면 자칫 감염된 모든 헌터와 시민을 죽여야 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는 것이다.
쉬이이이이익!
바람을 가르며 이동한 준혁이 마수를 발견했다.
거대한 애벌레였다. 이제 막 탈피를 하고 있는 듯 껍질이 찢어지고 있었다.
준혁이 가까워지자 애벌레는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뭔가를 뱉어 냈다.
초록 액체가 사방으로 거미줄처럼 퍼져 나왔다. 엄청난 독성이 사방을 잠식했다.
준혁은 마력의 장막으로 독성을 밀어내면서 헬바인의 장검을 휘둘렀다.
마수가 두 동강으로 찢겨져 나가며 피를 뿌렸다.
피는 바닥에 뿌려지는 즉시 땅을 시커멓게 태워 버렸다.
전신이 지독한 독성으로 이루어져 있는 마수였다. 공기를 타고 준혁의 기관지를 통해 그 독성이 흡입됐다.
충격이 살짝 준혁의 몸을 흔들었지만, 곧장 마력에 신성력을 더하여 체내로 들어온 독성을 소각시켰다.
준혁은 호흡을 멈추고, 다음 마수를 찾아 나섰다.
‘청룡을 데려왔으면 큰일 날 뻔 했어.’
청룡은 고강한 무공 실력을 갖추고 있긴 했지만, 내공의 힘으로 독성까지 이길 수는 없었다.
청룡에게는 마법보다 상대하기 까다로운 적들이었다.
정보가 있다면 최대한 피해갈 수는 있겠지만 천적이나 다름없는 독성의 마수를 상대로 나서기엔 아직 너무 위험했다.
‘층별로 나뉘어져 있는 건가?’
준혁은 눈에 보이는 독성을 가진 마수들을 찢어 죽이면서 천리안을 통해 다음 층으로 이동이 가능한 장소로 유추되는 곳을 발견했다.
마수를 죽이는 것보단 이 던전의 실체를 파악하는 것이 우선이었기에 준혁은 다음 층으로 넘어갈 수 있는 게이트를 향해 신형을 날렸다.
* * *
사우디 왕자의 얼굴에 핏기가 가셨다.
좀비 헌터들이 틀어막았던 문을 뚫고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이젠 다 끝장이야.”
왕자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읊조리듯 말했다.
죽음이 코앞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이렇게 하루아침에 절망이 내려앉을 것이라곤 상상도 못 했던 그는 눈을 지그시 감고 침음했다.
창밖으로 헌터들의 괴성과 비명이 빗발치고 있었다.
‘귀환자를 데려올 수만 있었다면 살 수 있었을텐데.’
사우디 왕자는 귀환자를 데려오지 못한 자들을 책망하다가 그 불만은 귀환자에 대한 원망으로 이어졌고, 그 원망은 다시 전 세계 협회장들에 대한 분노로 이어졌다.
이미 미쳐 버린 헌터들을 죽이지 않고 그들을 살릴 수 있는 방법을 찾는다는 것 자체가 이해가 되지 않아서였다.
자신의 나라에서 통제하고 있는 지역의 감염된 헌터들을 왜 모두 죽이지 않는단 말인가?
죽음의 공포로 사우디 왕자의 머릿속은 온갖 부정적인 생각으로 가득 찼다.
이성을 잃은 미쳐 버린 헌터들이 자신이 있는 안방까지 들이닥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으리라.
사우디 왕자는 의자에 털썩 주저앉아 눈물을 흘렸다.
죽음의 공포가 왕자의 머릿속을 아득하게 지배하고 있었다.
안방에 모인 사령관과 고위 간부는 안방 문을 잠그기 위해 마법 장비를 설치하고 있었다.
그저 시간 끌기에 불과할 마지막 저항이었다.
사우디 왕자는 얼굴을 일그러트리며 눈물로 서랍을 열었다.
서랍 안에는 권총이 들어 있었다.
왕자가 권총을 손에 들자 마법 장치를 설치 중이던 사령관이 깜짝 놀랐다.
“왕자님! 포기하지 마십시오!”
왕자가 쓴웃음을 지었다.
“귀환자는 던전 지대에 있어. 그가 이곳에 나타나 우리를 구할 가능성이 얼마나 있을 거라 보나?”
“귀환자가 던전 안으로 들어갔다고 전해 들었습니다. 어쩌면 그가 방법을 찾아낼지도 모릅니다. 포기하지 마십시오. 왕자님!”
사령관의 외침에도 왕자의 얼굴에 어린 우울한 감정은 사라지지 않았다.
“저런 저급한 마수들에게 죽음을 맞이하고 싶지 않다.”
“왕자님!”
사령관이 목에 핏대를 세우며 소리쳤다.
“걱정하지 마라. 마수들이 문을 부수면, 그때 내가 내 머리를 날려 버릴 것이니.”
사령관이 거칠어진 호흡을 내쉬며 왕자를 보다가 이를 악물었다.
“이 문. 그 누구도 넘을 수 없도록, 반드시 막아 내겠습니다.”
왕자는 텅 빈 눈으로 먼 곳을 보았다.
그는 이미 희망을 잃은 눈동자였다.
* * *
“……!”
청룡이 놀란 표정으로 3시 방향을 보았다.
일반적인 헌터들과 달리 엄청난 기세를 보여 주고 있는 헌터가 접근해 오고 있었다.
바글거리는 인파를 뚫고 금빛 눈동자를 빛내며 야수처럼 달려드는 사내.
리더보드 7위의 사내 ‘아발론’이었다.
근접 전투 계열의 특성을 가진 그의 양손에는 싯누런 건틀릿이 장착되어 있었다.
콰콰콰콰-!
건틀렛을 중심으로 소용돌이치는 힘이 주변의 헌터들을 날려 버릴 정도였다.
마치 파쇄기처럼 모든 것을 갈아버릴 것 같은 기세를 양손에 쥔 채로 청룡에게 돌진하는 아발론의 기세는 상당해서 청룡도 긴장해야 했다.
청룡은 그의 정체를 몰랐지만, 결코 평범한 헌터들 중 하나가 아니라는 것 정도는 본능적으로 인지할 수 있었다.
청룡은 신법을 최대한으로 펼쳐 빌딩 옥상 위로 뛰어올랐고 아발론 역시 그런 청룡을 따라 옥상 위로 도달했다.
나머지 헌터들은 청룡을 쫓기 위해 빌딩 벽을 기어올랐지만, 그 속도가 매우 더뎠다.
“크르르……! 크륵!”
아발론이 상체를 수그린 채 야수처럼 소리를 내며 구부린 손가락에 힘을 모았다.
강대한 힘을 머금은 손을 휘두르자 강기를 머금은 금빛 궤적이 청룡에게로 향했다.
청룡은 창날로 자신에게 날아온 강기를 쳐 냈다.
폭발과 함께 강한 충격이 청룡을 흔들었다.
두 다리로 단단하게 자리를 지키며, 뿌연 마나 폭발 사이로 적의 위치를 눈으로 좇았다.
청룡의 감각이 아발론의 위치를 이미 감지하고 있었다.
뿌연 연기를 뚫고 뛰어든 아발론이 갈고리 휘두르듯이 손을 휘둘렀다.
마치 발톱을 가진 짐승의 공격 같았다.
청룡은 아발론의 공격을 흘리듯이 피해 내며 놈이 먼저 체력이 떨어지기를 기다렸다.
그는 이미 이성을 잃어버리고 본능밖에 남지 않은 상태였다.
마음대로 마나를 쓰게 하고 고갈된 마나 때문에 움직임이 더뎌지는 때가 오면 반격을 가할 생각이었다.
다만 문제는 아발론이 아닌 조금씩 빌딩 위로 기어 올라오고 있는 헌터들이었다.
그들까지 가세하게 된다면 아발론의 공격은 자칫 치명적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최대한 시간을 끌어 보자.’
청룡은 던전에 들어간 준혁을 떠올리며 아발론의 공격을 피해 그의 체력과 마나를 빼앗기 위한 싸움을 이어 나갔다.
아발론의 공격이 실패할 때마다 빌딩 옥상 바닥이 움푹움푹 깨져 나갔다.
이러다간 자칫, 시간을 끌기도 전에 빌딩이 무너져 수백에 달하는 헌터들의 집단 공격에 당할지도 몰랐다.
죽일 수 있다면 차라리 쉬운 싸움이겠지만, 청룡에겐 그들의 목숨을 빼앗을 결정권이 없었다.
주인의 명령을 따라는 것이 최우선.
콰아아앙!
청룡의 창이 아발론의 건트렛과 격돌했다.
청룡과 아발론이 동시에 서로의 힘에 밀려 뒷걸음질 쳤다.
청룡은 창을 휘리릭 고쳐 잡으며 눈을 빛냈다.
“단 한 명도 죽이지 않을 것이다.”
청룡이 주인의 명을 떠올리며 이어질 아발론의 공격을 기다렸다.
* * *
‘몇 층까지 있는 거지?’
준혁은 엄청난 속도로 던전 속 길을 달리고 있었다.
주변 배경이 마치 그래픽처럼 스쳐 지나갔다.
천리안을 통해 이동하며 마수를 쓰러트렸고 현재의 위치는 4층.
끝이 어디인지 알 수 없는 굉장히 큰 규모의 맵을 가지고 있는 던전이었다.
분명 던전을 이루고 있는 던전핵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준혁은 최대한 속도로 사냥과 동시에 길을 찾아 나섰다.
쏴아아아아!
검붉은 마력이 헬바인의 장검에서 뿜어져 나와 마수들을 갈라 냈다.
머리가 터지고 내장이 비산하며 벌레의 형태를 가진 마수들은 비명도 없이 찢겨져 나갔다.
순식간에 한 층을 마무리하고 다음 층으로 올라간 순간 준혁은 그동안 본 적 없던 전혀 새로운 공간을 마주하게 됐다.
수만 개의 녹색 알이 바닥에 깔려 있었고, 알로 도배되어 있다시피 하는 거대한 홀의 중심에는 인간을 닮은 존재가 눈을 감고 서 있었다.
2미터 정도의 키에 녹색 피부.
얇은 팔다리를 가졌고 외계인과 같은 두상을 가졌다.
곤충을 닮은 얼굴이다.
마치 낫을 닮은 날카로운 칼날이 팔과 합쳐져 있었는데, 아마도 그것을 무기로 쓰는 듯했다.
[테이니]
더 월드의 시스템이 마수의 이름을 알려 주었다.
“대체 누가 너희 같은 놈들에게 이름을 지어 주는 건진 모르겠지만.”
준혁이 헬바인의 장검을 어깨에 걸치며 테이니라는 이름의 보스몹을 향해 걸어갔다.
“죽어라.”
준혁이 땅에 헬바인의 장검을 꽂았다.
콰아아아앙!
검이 땅을 뚫고 들어가자 균열이 생겼다.
그 균열에서 불길이 솟구쳤다.
불길은 멈출 생각이 없는 듯 사방으로 번져 나가며 순식간에 땅에 널려 있는 알들을 불태웠다.
알들이 찢어지고 깨지는 소리가 사방으로 퍼져 나감과 동시에 보스몹이 비명과도 같은 괴성을 내질렀다.
마치 순간이동을 하는 듯한 속도로 준혁의 앞에 나타난 마수 테이니가 팔을 휘둘렀다.
준혁은 땅에 박힌 헬바인의 장검을 뽑아 테이니의 팔을 쳐 냈다.
불꽃이 튀면서 뒤로 살짝 밀려난 테이니가 준혁에게 파고들며 준혁의 머리를 이마로 들이박았다.
준혁은 테이니의 이마를 손으로 움켜쥐면서 신성력을 주입했다.
신성력에 휘감긴 테이니가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며 전신을 뒤흔들었는데, 그와 함께 놀랍게도 테이니의 덩치가 세 배 이상 커지더니 마치 사마귀를 닮은 완전한 마수의 형태로 진화했다.
□
멸마의 서.
격노.
10배로 불어난 신성력의 힘이 헬바인의 장검에 맺혀 그 기운이 춤을 추듯 넘실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