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자의 모든 것 132화
무방비 상태로 휴식을 취하며 대기 상태에 있던 헌터들은 슈비들의 접근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크기가 작고 그 수가 많지 않아서 미처 발견하지 못한 것이다.
세 마리의 슈비가 각각 타깃으로 잡은 헌터들의 목에 모기처럼 바늘을 꽂았다.
바늘이 피부를 뚫고 들어가자마자 슈비에게 당한 헌터들은 소리도 지르지 못하고 그대로 굳어 버렸다.
점차 혈관이 팽창되기 시작했고 눈이 피로 물들어 붉어졌다.
확장되는 동공과 벌어지는 입.
이내 신체의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송곳니가 순식간에 짐승의 이빨처럼 길게 자라났다.
손톱은 마치 칼날처럼 단단하고 날카롭게 변했으며 슈비가 마침내 죽음에 이르러 바닥으로 툭 떨어졌을 때, 슈비에게 물린 헌터는 옆에서 식사 중이던 동료의 목을 물어뜯었다.
피가 솟구치며 갑작스러운 급습을 당한 헌터가 비명을 질렀다.
그 광경을 보고 헌터들이 기겁하며 물러섰다.
“뭐야?”
“갑자기 왜 저래!?”
헌터들이 경악했다가 어쩔 줄을 몰라 했다.
마수도 아니고 헌터의 이상 행동이라 그들은 판단이 서질 않았던 것이다.
“뭘 멍청히 보고 있어! 말려야지!”
한 사내가 소리치며 달려들어 목을 물고 있는 헌터를 잡아당겼다.
몸부림치는 그를 붙잡고 있던 사내는, 헌터에게 물린 남자가 좀비처럼 변해 가는 걸 보곤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크와악!”
붙잡고 있던 헌터가 사내의 손을 뿌리치고 다시 다른 헌터들에게 달려들었다.
헌터들이 무기를 꺼내어 그를 상대하려던 때, 어디선가 비명이 솟구쳤다.
이내 현장으로 달려드는 수백 마리의 슈비떼들.
단 몇 명 만이 이상 행동을 했고, 모여 있는 헌터들의 숫자를 생각하면 충분히 상대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슈비떼의 개입에 의해 헌터들이 모여 있는 현장은 삽시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순식간에 신체의 변화를 맞이하는 헌터들.
뒤늦게 상황을 확인한 헌터 인력 담당 관리자가 이 사실을 보고하기 위해 허겁지겁 뛰면서 스마트폰으로 전화를 걸었다.
“큰일 났습니다. 대기하고 있던 헌터들이……!”
사내가 보고를 다 하기도 전에, 이성을 잃은 헌터가 기다란 송곳니로 헌터 관리자의 목을 깨물었다.
“컥……!”
목이 깨물린 관리자가 쓰러지며 스마트폰을 떨어트렸다.
평범한 인간이 아닌 각성자들이 이성을 잃고 날뛰자 슈비에 의한 바이러스가 엄청난 속도로 확산되기 시작했다.
* * *
“저건 또 뭐야?”
슈비에 의해 헌터들이 이성을 잃고 좀비처럼 사람을 공격했다.
신체가 썩거나 죽은 것은 아니었지만 강한 전염성을 가졌고 인간의 이성을 마비시켜 극단적인 공격 상태로 만드는 건 좀비와 흡사했다.
평범한 인간도 아니고 헌터들이 이성을 잃고 미쳐 날뛰고 있어 그 위험도가 매우 높았고 이 문제의 근원으로 보이는 마수 슈비에 의해 그 숫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었다.
비서의 보고를 통해 상황을 파악한 선우는 눈살을 구겼다.
“사우디 쪽에선 뭐래?”
“궁전 보호를 요청하고 있습니다.”
선우는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을 흘렸다.
“이 상황에 제 목숨이 더 중요하다 이건가?”
할 말이 없어 선우는 얼굴을 절레절레 흔들었다.
“전파 속도가 너무 빨라서 이대로라면 세계로 확장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알고 있어. 하지만…… 인간이잖아.”
선우가 얼굴을 굳히며 말했다.
마수라면 즉시 몰살에 나서야 할 일이지만 문제는 감염된 자들이 아직 인간인지 마수인지 규정하기가 어려운 상황이란 것이었다.
“형은 아직 캐슬이야?”
“상황을 전해 듣고 일단 공항으로 가고 계세요.”
선우가 스마트폰을 꺼내며 비서에게 그만 나가 보라고 눈짓했다.
비서가 꾸벅 인사를 하고 협회장실을 나갔다.
선우는 생각이 깊어진 얼굴로 비극을 전하고 있는 뉴스를 응시했다.
* * *
“상황은 알고 있지?”
전용기 안에서 준혁이 청룡에게 말을 이었다.
“아직은 변이된 헌터들을 공격하지 말고 던전 지대부터 진입한다.”
“네, 알겠습니다.”
청룡의 표정은 한결 밝아져 있었다.
준혁과의 대련을 통해 마음 안에 남아 있는 불안을 조금이나마 제거할 수 있어서였다.
“만약 던전으로 진입할 수 있는 게이트가 없다면 어떻게 됩니까?”
“피해를 각오하고서라도 던전 지대부터 파괴해야겠지.”
청룡이 무슨 뜻인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운이 좋다면 아마도 이번 던전 지대를 통해 균열의 열쇠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몰랐다.
그렇게 되면 네 번째 신수를 찾을 수 있게 된다.
“다음 어비스로 떠나게 되면 그땐 혼자 간다. 그동안 백호와 기린을 좀 키워 줘.”
“알겠습니다.”
“백호는 이제 조금 하드하게 가도 돼. 그동안 숙달된 만큼 적당히 실패를 배울 때도 됐지.”
청룡이 먼 곳을 보며 미소 지었다.
“바라던 바입니다.”
백호는 그동안 실패를 모르고 승승장구해 왔다.
당연한 것이었다.
그렇게 편하고, 승리에 도취될 수 있도록 백호가 가진 수준 이하의 던전에서 사냥을 했으니까.
하지만 계속된 승리는 육체와 감정을 느슨하게 만든다.
실패를 모르는 승리는 오만을 통한 방심으로 망가지기만 할 뿐.
백호는 이제 진짜 성장통을 배워야 할 차례였다.
“이번 기회로 백호가 조금은 장난기가 사라질지도 모르겠네요.”
“그렇다고 너무 기죽여선 안 돼.”
“……예.”
준혁은 쓴웃음을 지었다.
어련히 알아서 잘할 것이다.
청룡이 그동안 백호의 버릇을 고치기 위해 얼마나 칼을 갈아 왔는지 잘 알고 있었다.
‘백호 녀석. 꿈에도 모르고 있겠지.’
누군가를 별로 걱정해 본 적이 없었지만 벌써부터 백호가 안쓰럽게 느껴지는 준혁이었다.
“곧 도착이네요.”
청룡이 창밖을 보며 말했을 때, 곧 항공기가 공항에 도착한다고 안내했다.
“도착하자마자 긴장해. 전염력이 어디까지 퍼졌을지 모르니까.”
“예, 주인님.”
전투를 앞두자 차분하던 청룡의 눈빛이 신비롭게 빛났다.
그동안 패배의 감정에 지독하게 시달려왔던 청룡이었다.
가슴 안에 남은 불안과 패배감을 지울 수 있는 방법은 수련을 통해 실전 현장에서 결과로 보여 주는 것밖에 없었다.
그 기회를 다시 가지게 된 만큼, 청룡은 비장한 각오를 가슴에 새겨넣고 있었다.
전용기가 사우디국제공항에 도착했고, 로비를 지나자마자 공항에서 미리 준비된 차량을 타고 곧장 리야드로 향했다.
이미 리야드 도시는 아수라장이 되어 있었기 때문에 운전자의 얼굴은 잔뜩 불안에 질려 있었다.
“조금만 더 들어가면 미쳐 버린 헌터들이 나타날 거예요.”
운전자가 울 것 같은 표정으로 말했다.
“우린 여기서부터 걸어갑니다. 그만 돌아가세요.”
준혁이 말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그러자 운전자는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 곧장 차를 멈춰 세웠다.
준혁은 청룡과 함께 차에서 내려 리야드 도시의 중심지로 향했다.
저 멀리서 폭발이 일어나고 있었다.
마치 전쟁이 난 것 같았다.
마수가 아닌 헌터들의 난동. 이성을 잃은 헌터들을 제거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결정 난 문제가 아니었다.
준혁이 큐브에서 청룡의 창을 꺼내 던져 주었다.
창대를 잡은 청룡이 준비됐다는 듯 눈짓했다.
준혁이 땅을 차고 뛰자마자 청룡이 신법을 밟으며 빠르게 앞서가는 준혁의 옆으로 따라붙었다.
천리안을 통해 던전 지대로 향하는 길.
“크아아아!”
이성을 잃은 헌터들이 사방에서 나타나 달려들기 시작했다.
마치 짐승 같은 모습이었다.
청룡이 침착하게 헌터들의 공격을 쳐 냈다.
준혁은 단순히 마력만으로 덤벼드는 헌터들을 날려 보냈다.
준혁과 청룡의 이동속도가 워낙 빨랐기 때문에, 한 번의 급습 말고는 접근할 수 있는 헌터들이 없었다.
“목표 지점에 도착하면 주변을 확인하는 동안 청룡 네가 막아 줘야 한다.”
“예.”
모든 것이 시작된, 리야드 도시의 던전 지대 앞에 이르렀다.
사방에서 떼거리로 달려드는 헌터들의 공격을 청룡이 막아 내는 동안 준혁은 녹색으로 물든 마법진으로 가득 채워진 땅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마법진에 손을 대고 마력을 주입하자 준혁은 이 마법진 자체가 하나의 던전 게이트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이례적인 것은 던전이 클리어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마수가 유출되었다는 점이다.
블랙 던전 이후로 던전의 변화가 가속도가 붙고 있다는 증거였다.
“청룡. 내가 던전을 사냥하는 동안 최대한 이목을 끌어. 바깥으로 유출되지 않도록.”
“예, 주인님.”
청룡의 대답과 동시에 마법진에 손을 대고 있던 준혁의 팔에 초록빛의 에너지가 휘감겼다.
이내 그 빛은 준혁의 전신을 집어삼켰다.
순식간에 준혁은 초록빛의 게이트 안으로 진입하여 제자리에서 사라졌다.
준혁이 던전으로 진입한 후, 홀로 마법진 위에 선 청룡은 사방에서 끊임없이 달려드는 헌터들의 공격을 쳐 내면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마치 양치기 몰이를 하듯이 청룡의 신비한 움직임을 따라 이성을 잃은 헌터들이 따라붙었다.
대부분 최상위 수준의 헌터가 아닌 일반적인 헌터들이었기 때문에 그들을 유인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청룡은 방심한 틈에 마법 장비에 당했던 순간을 잊지 않고 있었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때문에 긴장을 놓지 않고,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집중했다.
청룡을 전염시키기 위한 본능에 휩싸인 헌터들은 수십 명에서 순식간에 백여 명 이상으로 늘어났다.
청룡은 리야드 도시에 존재하는 모든 헌터들을 유인하기 위해 끊임없이 신법을 펼쳤다.
마치 메뚜기 떼처럼 뛰어다니는 헌터들이 청룡의 등을 향해 커다란 송곳니를 드러내고 길게 자란 손톱을 내밀었다.
그들의 손길은 청룡에게 닿을 듯 닿지 않았다. 청룡은 그렇게 가까우면서도 먼 거리를 유지하면서 준혁의 명령을 수행해 나갔다.
* * *
사우디 왕자가 주먹으로 싯누런 황금으로 장식된 테이블을 내리쳤다.
그는 씩씩거리며 창밖을 내다보았다.
궁전 안으로 들어오기 위해 좀비 헌터들이 궁전 출입문을 들이받고 있었다.
이성을 잃게 되면서 지능이 떨어진 탓에 담벼락을 넘지는 못했지만 무지막지한 힘으로 철창문을 밀고 들어오기 위해 몰려들고 있었다.
좀비와 같이 변해 버린 그들을 질린 듯이 보던 왕자가 초조한 눈길로 입구를 바라보았다.
평범한 좀비도 아니고, 애초에 헌터였던 자들이다.
리야드 도시를 지키기 위해 불러 모은 헌터들이 오히려 독이 되어 버린 상황.
이대로라면 철창문이 무너지고 놈들이 자신이 서 있는 이 방까지 밀려드는 건 보나마나 시간문제였다.
“대체 왜 귀환자는 궁전이 아니라 던전 지대로 갔단 말이냐!”
사우디 왕자가 성난 목소리로 외쳤다.
“……그것이 말씀드린 대로 던전 지대부터 확인하고 수색에 나선다 하여.”
사우디 왕자가 진실을 전한 사령관에게 테이블 위의 물건을 집어 던졌다.
“공항에서 설득을 하든지 강제로 데려오든 무슨 수라도 썼어야지!”
사령관이 하고 싶은 말을 삼키며 사우디 왕자의 눈을 피해 고개를 돌렸다.
두려움에 질려 버린 사우디 왕자는 현재 무슨 말도 통하지 않을 만큼 흥분한 상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