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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의 모든 것-131화 (131/175)

귀환자의 모든 것 131화

선우는 짜증이 묻어난 얼굴로 스마트폰을 책상에 툭 던졌다.

협회장실을 나와 옥상으로 올라왔다.

담배를 피우면서 선우는 피식 웃었다.

돈이 많다는 이유로 돈으로 무력을 사려는 사우디 측의 태도가 역겨웠다.

그들은 세상을 잘못 알고 있어도 한참을 잘못 알고 있었다.

세상은 변했다.

귀환자를 중심으로 변해 버린 세상이다.

귀환자가 없으면 도시가 사라질 수도 있는 시점이었다.

리더보더들조차 던전에 먹히고 있는 실정이었으니까.

그런 상황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몸속에 귀족의 피를 잊지 못하고 있는 사우디 쪽 왕실 태도를 보고 있자면 당장 욕이라도 박아 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돈으로 목숨을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그 멍청함에 신물이 다 올라올 지경이었다.

“돈이 그렇게 많아?”

선우는 웃으며 얼굴을 가로저었다.

여전히 사우디 왕자는 돈이면 뭐든지 다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담배를 다 피우고 돌아왔을 때 비서가 다가왔다.

“사우디 왕자가 거래 제안서를 보내왔습니다.”

“금액 찍혀 있었지?”

“네.”

“거절한다고 전해.”

“확인 안 하세요?”

“할 필요 없어.”

비서가 무슨 뜻인지 알겠다는 듯 고개를 숙였다.

선우는 협회장실 안으로 들어가 소파에 앉아 리모컨으로 TV 뉴스를 틀었다.

그린 게이트를 해결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사우디 관련 뉴스들 위주로 한국에서 보도 중이었다.

재난 사고라고 해서 타국에서 도와주는 것이 절대 당연해질 수 없다.

사우디 왕자가 생각을 고쳐먹지 않는 한, 선우는 그들의 제안을 쉽게 받아 주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그것은 자신뿐만이 아니라, 형 역시도 같은 마음인 듯했다.

“이번 기회를 통해 예절을 배울지도 모르지.”

* * *

백호의 사냥을 보고 큰 감명을 받은 기린은 다음 날 아침 졸린 백호를 앞세워 청룡을 찾아 연무장 앞에 도착했다.

“그냥 가서 가르쳐 달라고 하면 가르쳐 준다니까? 난 졸리다구, 하아암.”

백호가 눈을 비비면서 하품을 했다.

“난 청룡 형아 무섭단 말이야. 대신 말해 줘. 제발…….”

기린이 백호한테 코알라처럼 엉겨 붙었다.

백호는 가자미눈을 한 채로 기린을 달고서 연무장 문을 밀고 들어갔다.

청룡은 연무장의 중심에서 가부좌를 틀고 눈을 감고 있었다.

“엇, 청룡 형아 심법 중이다.”

“심법?”

“호흡법 같은 건데. 저걸 할 때는 말도 걸면 안 되고 절대 건드리면 안 된다고 했어. 너도 기억해. 저 때 건드리면 엄청 위험하니깐.”

기린이 청룡을 유심히 보면서 얼굴을 크게 위아래로 끄덕였다.

눈을 감고 심법 수련 중인 청룡의 벗은 상체에는 땀이 잔뜩 맺혀 있었다.

청룡의 입에서는 규칙적이면서도 때론 규칙적이지 않은 숨소리가 났다.

최근 캐슬에 침입한 적에게 방심하여 진 건에 대하여 청룡은 스스로 굉장한 자책감에 휩싸여 있었다.

그 자책을 달랠 수 있는 방법은 수련밖에 없었기에 청룡은 스스로를 지독하게 몰아붙이며 수련에 임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기세는 심법 수련 중에서도 자연히 그 독기와 패기가 전해져 오고 있어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압박을 느낄 정도였다.

백호가 식은땀을 흘리며 어색하게 웃었다.

“다, 다음에 오자. 오늘 형아가 집중을 많이 하는 날이네.”

백호가 경직된 표정으로 웃으며 말하자 기린이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이 같이 식은땀을 흘리며 백호의 팔을 꽉 잡았다.

“나가자.”

백호가 얼른 몸을 돌려 연무장을 나가자 기린도 백호의 팔을 잡은 채로 쫓아 나갔다.

본래의 계획을 철수하고 캐슬 본관으로 돌아가던 중 백호와 기린은 연무장으로 오고 있는 준혁을 발견했다.

“어? 주인님이다!”

백호가 우뚝 멈춰 서면서 말하자 기린도 깜짝 놀라며 멈춰 섰다.

준혁이 백호와 기린 앞에 멈춰 섰다.

“땀도 안 흘린 것 같은데, 수련들 안 해?”

준혁이 의아한 표정으로 묻자 백호가 뒤통수를 긁적이며 웃었다.

백호가 상황을 설명해 주었고 준혁이 기린의 어깨를 짚어 주며 웃었다.

“청룡에겐 내가 말해 놓을 테니 너무 신경 쓰지 마.”

“가, 감사합니다. 주인님.”

기린이 고개를 푹 숙이며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감사를 전했다.

‘시간이 흐르면 좋아지겠지.’

내성적이라 걱정스럽긴 했지만 지금처럼 배우겠다는 의지 하나면 충분했다.

나머지는 시간이 차차 기린을 변화시켜 줄 것이다.

“편하게들 쉬고 있어.”

준혁은 백호와 기린을 캐슬 본관으로 보내고 연무장으로 향했다.

아무래도 청룡은 여전히 스스로의 자책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듯했다.

연무장 안으로 들어가자 왜 백호와 기린이 창백한 표정으로 돌아 나왔는지 십분 이해가 갔다.

예민함으로 인한 송곳 같은 살기가 심법 수련 중에도 연무장을 가득 채웠기 때문이다.

준혁이 연무장으로 들어오자, 청룡이 막 심법을 마치고 천천히 눈을 떴다.

준혁을 확인한 청룡이 땀으로 가득한 몸을 일으켰다.

“언제 오셨습니까?”

“방금. 타이밍이 좋았네.”

“제가 심법에 들어가면 기척도 못 느끼는 무방비 상태라서.”

“알고 있어. 그보다 많이 심란해 보이는데.”

청룡이 땅을 보며 한숨을 뱉었다.

“좀처럼 떨쳐지지가 않네요.”

마음을 비우라고 해도, 막상 당사자가 스스로 그 마음을 비우기란 쉽지 않다.

“잘하고 있어. 결국 불안을 지우는 건 수련뿐이니까.”

청룡이 무거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경로를 단시간에 깨우치는 건 어렵지만, 네가 취약한 마법을 상대하는 법을 알려 주마.”

청룡의 눈이 번쩍 뜨였다.

강호와 달리, 이세계는 전혀 상대해 본 적 없는 마법을 쓰는 존재들로 가득했다.

경험이 없고 파훼법을 깨우치지 못한 청룡에게는 가장 까다롭고 어려운 것이 바로 마법이었다.

“지금부터 대련에서 난 마법만 쓸 테니 연습 겸 적응해둬.”

준혁의 양 손아귀에 마력이 넘실거렸다.

평범한 오러보다 훨씬 지독한 어둠이 서린 힘이었다.

마계에서 가져온 힘이었고 청룡이 마법 전투와의 경험을 통해 성장한다면 훨씬 더 강해질 수 있을 것이었다.

‘마법 한계를 극복한 청룡은 아마 날개를 단 듯 강해질 수 있겠지.’

애초에 타고난 천재 무인.

그것이 청룡이었으니 성장 속도는 굳이 가늠해 보지 않아도 충분했다.

“마법을 상대함에 있어 가장 중요한 건, 마법도 결국엔 물리 에너지라는 거다. 단지 예측하기 어려운 속도와 타이밍. 그리고 복잡한 형태라는 거지만.”

준혁이 손아귀에서 피어오른 뱀처럼 움직이는 검은 기류를 보며 말을 이었다.

“결국 마법 역시 베어 버리면 그만이야.”

가장 단순한 것이 가장 완벽한 해답일 수 있었다.

준혁은 대상이 가진 모든 형태를 파괴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다.

준혁 역시 그 믿음 하나로 한계를 극복해 왔다.

“아직 죽지 않았다면, 살아 있다면, 기회와 가능성은 언제나 존재하는 거야. 한계 같은 건 없어. 한계를 느끼고 좌절할 시간에, 돌파해 내야 한다.”

긴장한 표정의 청룡이 숨을 삼키며 집중했다.

“생각하고 또 생각해. 어떻게 하면 네가 느끼는 벽을 허물 수 있을지에 대해.”

“예, 주인님.”

서슬 퍼런 청룡의 눈빛이 준혁의 손아귀에서 피어오른 검은 마력으로 향했다.

준혁은 청룡이 마법의 속도와 패턴에 익숙해질 수 있도록 다양한 형태의 마법 전술을 사용할 생각이었다.

큰 부상이 없도록 최대한 마력의 농도를 옅게 만들었다.

청룡이라면 타고난 무재인만큼 오래 걸리지 않아, 마법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간다. 청룡.”

“예, 준비됐습니다.”

청룡의 눈이 반짝였고 준혁의 손아귀에 어른거리던 마법이 청룡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마치 뱀처럼 흔들리던 검은 기류가 마치 그물처럼 사방에서 청룡을 향해 덮쳐갔다.

청룡은 준혁의 말을 기억하며 강기를 실은 창날을 마법을 향해 휘둘렀다.

강기와 준혁의 마력이 깃든 마법과 충돌하면서 그 충격이 청룡의 무게 중심을 뒤흔들며 압력을 가했다.

청룡은 어금니를 꽉 깨물고 자세를 바로잡았다.

밸런스를 잃는 순간 치명상으로 이어질 틈이 생긴다. 마법 공격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해선 마나와 마법의 충격 패턴에 익숙해져야 했다.

준혁이 말한 대로 반복된 경험을 통한 수행만이 답을 찾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다.

끊임없는 생각과 계산을 섞으며 청룡은 준혁의 마법 공격으로부터 고행과도 같은 싸움을 이어 나갔다.

* * *

사우디의 리야드 도시에 발생한 이상 현상에서 점차 강한 마력 에너지를 뿜어내기 시작했다.

마력 에너지는 분 단위로 점점 그 힘의 크기를 더하고 있었다.

블랙 던전의 학습 효과로 인해 이상 현상이 발생한 던전 주변은 현재 접근이 금지되어 있는 상태였다.

약 2KM 반경을 통제했고, 헌터들은 그 밖에서 만에 하나 발생할 경우에 대비했다.

전투를 하지 않아도 일당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에 던전 현장 부근에는 수많은 헌터들이 대기 중에 있었다.

드론 카메라가 24시간 던전 현상 주변을 체크하고 있었는데 그린 초록색으로 물든 땅은 점차 그 규모가 사방으로 그 범위를 넓혀가고 있었다.

이에 따라 경계 범위 역시 조금씩 넓어지고 있었다.

퍽-! 퍽!

던전 지대를 맴돌던 드론 기계들이 하나둘, 터지거나 부러지는 소리를 내면서 땅으로 추락했다.

드론이 던전 지대와 접근하기 어려워지기 시작하자 촬영팀은 즉각 이 사실을 보고했다.

촬영팀은 사우디 쪽의 도움을 받아, 마력 보호가 가능한 카메라 장비를 준비해야 했다.

현장을 지켜보던 카메라가 모두 꺼진 상황.

헌터들은 여느 날처럼 별달리 긴장 없이 지원으로 나오는 음식으로 식사 중에 있었다.

일부 헌터 병력은 식사를 위해 식당을 찾아 나섰다.

촬영팀의 작업 준비와 헌터들의 식사가 이루어지고 있는 시각, 던전 지대에서는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마치 이끼처럼 퍼진 초록빛깔의 땅이 범위를 넓히는 것에 그치지 않고 새로운 현상을 일으켰다.

녹색 땅 위로 액체가 고이기 시작했고 그것은 시간이 지나 마치 용암처럼 부글부글 끓기 시작했다.

그 변화와 함께 바닥에 옅은 마법진이 새겨졌다.

흐릿했던 마법진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차 선명해졌다.

마법진이 이내 완전해진 순간 녹색의 벌레들이 하나둘, 액체 위로 꿈틀꿈틀 올라오기 시작했다.

벌레들은 액체를 벗어나 아스팔트 위를 기었다. 그리고 놀라운 속도로 탈피하며 날갯짓을 했다.

벌을 닮은 작은 마수 ‘슈비’.

슈비가 사방으로 흩어지기 시작했다.

땅에 만들어진 마법진 게이트.

단 한 번도 역사에 없었던 이례적인 게이트의 형태였다. 그 게이트를 통해, 마수들이 새로운 생명이 탄생되어 임무에 나섰다.

본능적으로 자신의 임무를 기억하며, 슈비들은 목적을 찾아 비행했다.

엄청난 속도로 이동한 슈비 몇 마리가 천막을 치고 대기 중인 헌터들을 발견했다.

슈비는 단 한 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헌터들을 향해 날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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