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자의 모든 것-130화 (130/175)

귀환자의 모든 것 130화

백호의 수준에 맞는 던전이었기 때문에 사냥에 무리는 전혀 없었다.

백호는 물 만난 고기처럼 마수들을 잡아 나갔다.

백호 특유의 패도적이면서도 압박이 강한 형태의 공격에 마수들은 맥을 추지 못했다.

기세에서부터 밀리니 마수들은 몸이 굳어 버리는 탓에 제대로 공격도 해 보기 전에 백호의 손아귀에 찢겨져 나갔다.

“와아……!”

기린이 그런 백호의 전투를 보고 조용히 감탄했다.

“너도 수련하면 저렇게 할 수 있다.”

“……정말요?”

“너도 신수이니 강해질 수 있다. 마음먹기 달린 일이지.”

기린이 반짝거리는 눈으로 멋지게 마수들을 용맹하게 처치하는 백호를 응시했다.

“청룡과 백호. 모두 널 도와줄 거다.”

백호도 성장해야 할 길이 까마득했지만 적어도 기린에겐 감명을 주기에 충분한 모습이었다.

오히려 청룡의 싸움은 기린의 가슴에 울림을 주지 못할 가능성이 컸다.

너무 큰 격차는 이해하기 어려운 영역이기 때문이다.

“수련을 하다 보면 네가 가진 특성이 뭔지 알 수 있게 될 거야. 백호와는 다른, 너만의 무기와 힘을 알 수 있겠지.”

기린 역시 신수인 만큼 신수의 DNA가 기린을 자극하고 있을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벌써 뿔이 부드러워지고 있는 것 같은데.’

준혁은 기린의 뿔을 힐끔 흘겨보면서 생각했다.

단단하고 뾰족했던 뿔은 미세하지만 그 끝이 조금은 뭉뚝해져 있었다.

뿔이 단단하다는 것은 스트레스에 의한 변화로 보였다.

본래의 자신을 완전히 찾게 된다면 기린으로서의 신비스러운 뿔, 그 본래의 모습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크오오오옹!”

기린에게 자신의 실력을 자랑하고 싶어 했던 백호가 마수들을 모두 쓰러트리고 포효했다.

기린이 그런 백호를 향해 진지한 표정으로 바라보며 박수를 쳤다.

“괜히 힘 빼지 말고 사냥에 집중해라. 백호.”

준혁의 한 소리에 백호가 흠칫 놀랐다가 헛기침을 하며 다시 씩씩하게 다음 마수를 찾아 나섰다.

* * *

최근 이탈리아에 있었던 사건이 여전히 선명하게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현재의 시점.

새로운 이상 현상이 또다시 발생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리야드 도시에 던전으로 추정되는 이상 현상이 발생했습니다. 도로 중앙에 생겨난 녹색의 에너지 결정체가 점차 그 크기를 더해 가고 있습니다.”

사우디의 정치 행정 수도 리야드.

그 도시의 도로 중앙에 게이트 발생 조짐으로 추정되는 현상이 일어났고 그로 인해 사우디는 발칵 뒤집혔다.

사우디의 왕자는 당장 헌터들을 사우디로 초청하고 귀환자에게 사절단을 보낼 것을 명령했다.

사우디의 사절단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즉시 전용기를 타고 한국을 향해 비행을 시작했다.

아직 특별히 게이트를 만든 것은 아니었지만, 블랙 던전의 사태를 기억하고 있었기에 발 빠른 대응에 나선 것이었다.

사우디 왕자는 어떠한 피해도 보지 않겠다며 게이트 문제를 해결하는 것에 총력을 다할 것은 선언했다.

그리고 그런 사우디의 선언은 헌터들에게 있어 뜨거운 화제에 올랐다.

그 이유는 사우디에서 엄청난 규모의 자금을 투여할 것이 자명해서였다.

사우디는 전 세계에서 던전화가 잘 일어나지 않는 편에 속하는 지역이었는데 가끔 던전이 생길 때마다 시장 가치보다 훨씬 비싼 가격에 헌터들을 고용하곤 했다.

이번의 그린 게이트가 발생될 것으로 추정되는 상황이니 사우디에서 얼마나 많은 돈을 쓸 것인지에 대해 전 세계의 이목이 쏠리기 시작했다.

* * *

사냥을 마치고 캐슬로 돌아가는 길.

준혁은 이번 사냥이 성공적이라고 생각했다.

이번 던전 사냥은 백호의 레벨 업보다 기린에게 던전을 적응시키고 신수가 이렇듯 마수를 잡아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을 피부로 느끼게 해 주기 위함이었다.

“겁먹을 필요 없어. 우린 신수라서 마수보다 훨씬 더 강하거든!”

백호가 기린에게 일장연설을 늘어놓았다.

기린은 백호가 아주 높은 산처럼 보였다.

백호의 말 한마디 한마디는 명강의가 되어 기린의 가슴에 꽂혀 들고 있었다.

“나도 정말 강해질 수 있을까?”

“당연하지! 우린 얼른 강해져서 주인님에게 도움이 되어야 해.”

기린은 차량 시트에 늘어지게 누워 떠드는 백호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백호가 기린이랑 잘 어울려서 보기 좋네요.”

지우가 운전을 하면서 말했다.

“처음 기린을 데려올 수 있었던 것도 백호 덕이 컸지.”

자신의 얘기가 나오자 백호의 귀가 왕방울만 해졌다.

“정말요?”

“경계심도 많았고, 마음을 닫고 있었으니 내가 설득하려고 했다면 쉽지 않았을 거야.”

“와, 백호 진짜 대단하다?”

지우의 칭찬에 백호의 어깨가 불쑥 솟았다.

입이 귀에 걸려 있는 미소 때문에 볼이 빵빵했다.

“그렇지만 청룡 형아처럼 되려면 더 열심히 해야 해. 기린 너도 청룡 형아한테 배워. 청룡 형이 진짜 잘 가르쳐 주거든.”

“청룡 형 무섭던데…….”

“하하. 말만 그렇게 하지 엄청 착한 형이야. 은근히 잘 챙겨 주거든.”

“정말?”

“당연하지. 우린 같은 신수잖아. 가족이라고.”

가족이라는 말에 기린이 멍한 표정을 지었다.

“……가족.”

기린이 낮게 읊조리곤 생각이 많아진 얼굴로 먼 곳을 보았다.

그 사이 백호는 희희낙락하며 창밖을 보고 있었다.

“어? 누구지?”

차량이 캐슬 입구와 가까워질 때쯤 지우가 앞을 내다보며 말했다.

캐슬 앞에는 슈퍼세단 세 대가 정차해 있었고, 캐슬 입구 앞에서 누군가 경비 헌터들과 실랑이를 하고 있었다.

“사우디 쪽 사람들 같은데요?”

“사우디?”

지우가 차량 속도를 늦출 때, 협회장 한선우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다.

지우는 스피커폰으로 전화를 받았다.

“네, 협회장님.”

- 형이랑 같이 있어요?

“지금 옆에 계세요.”

- 형, 사우디 도시에 게이트 현상이 일어난 것 같아.

“그렇지 않아도 지금 캐슬 앞에 그쪽 사람들이 보이네요.”

- 그렇지 않아도 그것 때문에 전화했습니다. 우리한테 따로 연락도 없이 파견부터 시킨 것 같거든요.

준혁은 한숨을 뱉었다.

하나같이 대책 없이 찾아오는 걸 보면 급한 마음은 이해가 가지만 일본과 달리 사우디는 경우가 달랐다.

앞을 내다보자 사우디 사람들이 경비 헌터들에게 삿대질을 하며 소리치고 있었다.

준혁은 혀를 차며 차에서 내려 그들에게 걸어갔다.

경비헌터들이 준혁을 발견하고 곧장 경례했고, 사우디 사람들은 화색이 도는 얼굴로 준혁에게 인사하고자 다가왔다.

준혁은 그들이 다가오기 전에 캐슬 입구를 틀어막고 있는 차를 발로 걷어찼다.

콰앙!

슈퍼세단이 찌그러지면서 차량이 휘리릭 돌아갔다.

그 광경을 보고 사우디 사절단은 찢어질 듯 눈을 크게 뜬 채 굳어 버렸다.

입을 쩍 벌리고 있는 그들을 무시하고, 준혁은 다시 차량으로 돌아왔다.

어쩔 줄을 몰라 하며 허둥대는 사우디 사람들을 남겨 두고, 준혁이 탄 차량은 캐슬 안으로 유유히 들어갔다.

“……하하, 사절단들 깜짝 놀랐겠네요.”

지우가 말했다.

“길 막은 것도 모자라서 누구한테 손가락질을 하는 거야.”

“잘하셨어요.”

“주인님 짱 멋있어!”

백호가 얼굴을 들이밀자 지우가 조용히 하라고 눈짓으로 사인을 보냈다.

백호는 코를 슥 닦으며 입에 지퍼를 채웠다.

준혁이 캐슬 본관으로 들어간 이후, 지우는 백호와 기린도 들여보내고 나서 곧장 바깥에서 뉴스를 찾아봤다.

백호가 사냥하는 동안 던전 앞에서 다른 일을 처리할 게 있다 보니 사우디 문제는 미처 확인하지 못했던 정보였다.

뉴스를 보니 협회장에게 전해 들은 대로 그린 게이트의 징후가 도로 위로 나타나 있었다.

현재 게이트 징후 지역 반경을 통제하고 있었고 사우디에서는 헌터들의 초청에 전력을 다하고 있었다.

수많은 헌터들이 사우디로 가기 위해 집결하고 있었는데 최근 던전 부족 현상으로 인해 일자리를 찾는 헌터들이 대부분이었다.

그 헌터들의 실력은 S급부터 C급까지 굉장히 그 폭이 넓었다.

사우디에서 모든 경비를 지원하고 있어, 던전 공략을 핑계로 여행을 가고자 나선 헌터들도 많은 탓이었다.

‘지금쯤이면 사절단의 문전박대 소식이 왕자의 귀에 들어갔겠네.’

늘 높은 위치에 있던 것이 익숙했던 사람들이라 한국문화와 귀환자를 대하는 태도에 있어 방향을 잡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어차피 아쉬운 쪽이 손을 벌리기 마련이니 시간이 해결해 줄 거라 생각하면서 지우는 캐슬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 * *

사우디 왕자는 보고를 전해 듣고는 이해를 할 수가 없었다.

사우디의 사절단을 왜 문전박대한단 말인가?

말도 섞어 보지 못하고, 심지어 귀환자가 사절단의 차량을 발로 걷어찼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는 자신의 귀를 의심할 정도였다.

귀환자와 거래를 할 수 있도록 대화 자리에 반드시 앉히라고 소리치긴 했지만 거친 태도로 나오는 귀환자를 생각하니 부아가 치밀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사절단이 캐슬을 통과하지 못하고 있자 사우디 왕자는 단순히 헌터들을 도시에 모으는 것만으로는 안심이 되지 않았다.

아무리 헌터가 많다고 해도 치안이 조금 보강될 수는 있으나 근본적인 해결을 할 수 있는 건 귀환자밖에 없었으니까.

아직 큰일이 일어난 건 아니지만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하면 일은 산불처럼 걷잡을 수 없이 커질 수 있는 게 던전이었다.

사우디 왕자는 결국 귀환자의 지속된 만남 거절에 한국 협회장에게 직접 연락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귀환자와 달리 협회장과 직접 전화를 연결하는 것은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결국 왕자인 자신이 나서야만 하는 일이었다.

한국이라는 나라가 참 많이 커졌다고 생각하며 사우디 왕자는 협회장과 통화를 하게 되었다.

“대체 왜 귀환자는 이번 일에 의욕적으로 나서 주지 않는 거요?”

사우디 왕자가 불만을 표시하자.

- 우리가 도와야 할 의무라도 있습니까?

“의무가 있는 건 아니지만.”

- 적법한 절차와 예의를 갖추란 뜻입니다.

사우디 왕자는 던전이 나타난 이상 자신 쪽에서 자세를 낮추어야 함을 깨닫게 되었다.

“우리 쪽에서 무례했다면 사과드리겠습니다. 귀환자에게도 사과를 드리고 싶고.”

- 그건 알아서 하시고.

“저희가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 답은 당신들이 찾아야지.

“거래를 제안하고 싶습니다. 귀환자를 저희 사우디로 모시고 싶어요.”

- 마음대로.

전화가 뚝 하고 끊어졌다.

차가운 대꾸였다.

사우디 왕자는 황당한 심정으로 전화를 보며 분개했다.

늘 갑의 위치에 있는 것이 익숙했던 사우디 왕자로서는 당혹스럽기 그지없었지만, 상황이 어쩔 수가 없는지라 그의 말대로 방법을 강구해 내야 했다.

사우디 왕자는 잠시 생각의 시간을 가진 후 중역들을 불러 이번 문제에 대해 회의를 해 보기로 했다.

만약 그린 게이트로 인한 피해가 크지 않다면 다행이지만 만약 일반 헌터들로서 감당할 수 없는 블랙 던전과 같은 곳이라면 귀환자를 초빙하지 못하는 것은 곧 도시의 죽음과도 직결되는 문제였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