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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의 모든 것-124화 (124/175)

귀환자의 모든 것 124화

리더보더들은 신경도 쓰지 않았다.

어차피 이렇게 팀을 제멋대로 이탈했다는 소문이 돌면 헌터로서 그만큼 대우를 받지 못하게 되니까.

단발머리가 뒤이어 돌아오자 주변에서 헌터들이 물었다.

“야, 쟤 왜 저래?”

“네 친구 아니야?”

“집에 불이라도 났대?”

단발머리가 곱슬머리에게 들은 이야기를 전해 주었다. 그러자 무신경하게 곧 출발하려던 리더보더들이 그제야 제대로 된 반응을 내보였다.

“친구의 불안감이 대체로 적중하는 편이긴 했지만. 아닐 수도 있으니까요.”

불안을 품은 침묵이 레이드팀 헌터들 사이로 바람처럼 스쳐 지나갔다.

“내가 확인하지.”

리더보드 9위의 탱커가 방패를 챙겨 들고 움직였다.

그가 움직이자 자연히 헌터들이 조심스레 그를 뒤따랐다.

자리를 지키는 건 느긋하게 담배를 피우고 있는 마법사뿐이었다.

리더보드 9위의 탱커 헤르모드는 골드 던전 게이트 부근으로 다가가면서 눈매를 좁혔다.

방금 전해 들은 소식대로 분명 게이트 옆으로 이상 현상이 발생되고 있었다.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색을 띠고 있는 녹색빛의 에너지였는데 골드 던전의 게이트와 비교해 보면 아주 작은 규모의 게이트 형태를 띠고 있었다.

팀을 떠난 헌터의 말대로다.

블랙 던전이 없었다면 모를까 던전의 변화와 확장이 우려되고 있는 가운데 이런 이상 현상은 충분히 경계해야 할 만한 것이었다.

하지만 아직은 아주 작은 에너지에 불과했기 때문에 이 에너지가 완전해지기까지는 더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할 것 같았다.

때문에 골드 던전을 클리어하는 데에는 전혀 문제 될 게 없어 보였다.

그 점에 대해 설명하자 헌터들 모두 동의했다.

이 작은 에너지 때문에 골드 던전 클리어 일정을 취소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던 것이다.

“하여튼 겁은.”

“그 자식, 그런 심장으로 그동안 어떻게 사냥을 다닌 거야?”

“겨우 이만한 걸 가지고 호들갑은.”

헌터들이 저마다 레이드에서 빠진 곱슬머리에 대한 험담을 늘어놓았다.

다들 한 마음이 되어 곱슬머리를 비웃었지만 웃고 있지 않은 건 두 명의 리더보더들뿐이었다.

하지만 두 명의 리더보더들 역시 내심 던전 레이드 일정 자체에는 무리가 없을 거라고 판단하고 있었다.

“레이드는 예정대로 진행한다.”

탱커가 말했고, 그의 눈짓에 마법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탱커의 판단에 이견이 없다는 뜻이었다.

녹색의 에너지를 자세히 살펴보던 헌터 하나가 팀을 돌아보며 히쭉 웃었다.

“자, 이제 슬슬 골드 던전 사냥하러 가 볼까요? 정비들 끝나셨죠?”

쾌활한 표정으로 묻는 헌터의 등 뒤로, 녹색의 에너지 게이트가 급격한 속도로 불어나기 시작했다.

이에 헌터들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졌다.

“……응?”

녹색 게이트 앞에서 레이드 팀 동료들을 보고 있던 헌터가 의아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했다.

그때, 녹색의 게이트에서 2미터가 훌쩍 넘는 거구의 사내가 걸어 나왔다.

기계와 마나가 합쳐진 마법공학으로 만들어진 전신 갑옷 수트를 입은, 긴 금발의 올백 머리를 한 사내였다.

갑자기 예고 없이 불어난 게이트를 통해 나타난 낯선 인물의 사내가 등을 보이고 서 있는 헌터의 머리통을 손으로 움켜잡았다.

“흡……!”

헌터가 깜짝 놀라며 눈을 크게 치켜떴다.

그리고.

퍽-!

헌터의 머리가 그대로 땅콩 껍질이 부서지듯이 으깨졌다.

그 충격적인 살인을 지켜본 레이드 팀 헌터들의 얼굴에서 핏기가 싹 빠졌다.

비교적 침착한 얼굴은 리더보더 두 명뿐.

“뭐, 뭐야 저놈은?!”

“저 자식이……!”

“설마 게이트에서 나타난 거야?”

“미친……!”

잠시간 패닉에 물들었던 헌터들의 얼굴에 분노가 어렸다.

그에 반해 다수의 상위 헌터들을 상대로, 녹색의 게이트에서 튀어나온 사내는 머리를 쓸어 올리며 미소 지었다.

여유가 가득한 얼굴이었다.

“□■□□■□□□■■■!”

사내가 목소리를 냈다.

무언가를 말했지만, 전혀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였다.

가지런하고 하얀 이를 내보이며 웃고 있는 거구의 사내는 느릿하게 헌터들을 향해 움직였다.

거대한 오러의 힘이 그의 전신에서 휘몰아쳐 나오고 있었다.

끔찍한 기세를 피부로 느낀 탓에 헌터들은 본능적으로 뒷걸음질 쳤다.

“우리를 공격한 이상, 마수나 다름없는 적이다. 처치해야 한다!”

리더보드 9위의 탱커가 소리쳤다.

헌터들이 하나같이 병장기를 꺼내 들었다.

채채채채챙!

게이트에서 나온 긴 금발 머리의 사내를 향해 무기를 겨누자 그는 두꺼운 손으로 자신의 눈가를 덮더니 웃음을 터트렸다.

마력이 실린 웃음소리가 퍼지자 땅이 진동하는 듯했다.

엄청난 힘이 느껴지는 오러가 사방으로 휘몰아치자 탱커가 자세를 낮추며 사나운 눈초리로 사내를 쏘아보았다.

탱커인 만큼, 전방에서 방어력으로 자리를 지키는 것만큼은 자신 있었다.

그는 마법사와 눈짓으로 신호를 주고받고는 방패를 앞세운 채 하체를 낮추었다.

놈으로부터의 공격에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눈에 흐르는 눈물을 닦은 사내가 느슨해진 눈빛으로 탱커와 헌터들, 그리고 리더보더의 마법사까지 훑어보더니 의식을 치르듯 혀로 손등을 핥고는 하늘의 태양을 향해 손등을 비춰 보였다.

“■■□■■■!”

마치 주문을 외우는 것처럼 보이는 목소리.

“온다.”

탱커가 말했고, 헌터들이 진형을 잡았다.

마법사는 이미 공격 주문을 외우고 있었다.

헌터들의 예측과 달리 금발 사내는 마법을 사용하지 않았다.

그저 오러가 깃든 순수한 힘을 사용했다.

득달같이 달려든 사내의 주먹이 탱커의 방패와 충돌했다.

가격을 매길 수 없는, 엄청난 성능을 자랑하는 방패였지만 사내의 주먹 한 방에 탱커의 방패가 산산조각이 나며 박살 났다.

탱커의 눈동자가 커짐과 동시에 다음 주먹이 탱커의 복부를 강타했다.

둔탁한 울림과 함께 탱커가 눈이 휘릭 돌아갔다.

허공을 날아 바닥을 데굴데굴 구른 탱커는 이미 죽어 있었다.

리더보더 9위를 단 두 주먹만으로 방패를 깨고 죽여 버린 사내의 등장에, 헌터들은 경악에 물든 채 의지가 꺾였다.

리더보더조차 한 방으로 죽이는 괴물.

그 것이 자신들이 상대하는 눈앞의 사내였다.

헌터들이 몸을 떨면서 움직이지 못하는 동안 리더보더 마법사의 마법이 발동했다.

하늘에서 내리꽂는 벼락과, 수십 개의 에너지 볼트 다발이 금발 사내에게로 향했다.

마법사가 캐스팅한 마법이 모두 적중했지만 효과는 없었다.

그가 입고 있는 갑옷이 마법사의 마법을 무효화시켜버린 것이다.

그는 조금의 상처도 없이 멀쩡한 모습으로 웃음 짓고 있었다.

마법사가 놀란 얼굴로 그를 보고 있는 동안 학살이 시작됐다.

주먹질 한 방에 얼굴이 터져 나가고, 머리를 붙잡아 바닥에 박아 버리자 땅이 깨져 나갔다.

스치는 주먹에조차 뇌가 흔들리며 쓰러져 나갔다.

그사이 마법사는 마법을 쓸 생각도 하지 못 하고 얼어붙어 있었다.

도망가야 한다는 생각이 뇌리를 지배했지만 그동안의 사냥 경험이 두려움에 맞서 싸우라고 소리치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만큼은 싸울 대상이 아니라고, 감정이 소리치고 있었다.

절망감이 뇌리를 짓누르는 동안, 어느새 레이드 팀 헌터들은 단 한 명도 예외 없이 차가운 주검이 되어 있었다.

“흐흐흐흐흐…….”

금발 사내가 귀신 같은 웃음소리를 흘리며 시체 사이에 서 있었다.

“아아……!”

유일한 생존자.

리더보더 마법사는 공포에 질린 채, 입술을 떨면서 뒷걸음질 쳤다.

도저히 이길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지 않는, 지독한 괴물이었다.

리더보더조차 공포에 떨게 만드는, 살아 움직이는 재앙이 혀를 날름거리며 걸어왔다.

‘도망가야 해. …… 죽는다!’

뒤늦게 덜덜 떨리는 손으로 큐브에서 워프 주문서를 꺼냈지만 안타깝게도 사내의 속도가 훨씬 더 빨랐다.

눈 깜짝할 사이에 코앞으로 이른 사내가 마법사의 목덜미를 움켜잡았다.

“……?”

사내가 마법사를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그리고 이내 진한 웃음이 그의 입가에 그려졌다.

쿠궁!

오러의 힘이 마법사에게 흘러 들어가기 시작했다.

“……크으윽!”

마법사의 팔에 새파란 핏줄이 솟아오르더니 이내 핏줄이 어깨를 타고 목을 이어 머리 쪽으로 올라갔다.

꾸드득!

끔찍한 소리가 울리는 데 이어 마법사가 입을 쩍 벌리며 비명을 내질렀다.

“끄으아아아아악!”

마법사의 기억과 정보가 금발 사내에게 흘러 들어가기 시작했다.

이내 현대의 문명과 정보, 더불어 마법사의 기억까지 사내에게 흘러 들어가기 시작했다.

완전한 정보는 아니었지만 일부의 정보를 취득할 수 있게 되었다.

사내는 축 늘어져 이미 죽어 버린 마법사를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귀환자.”

금발 사내가 낮게 중얼거리며 진한 미소와 함께 어디론가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가 떠난 자리에는 골드 던전을 공략하기 위해 모여든 레이드 팀의 끔찍한 죽음이 남아 있었다.

* * *

이탈리아 협회장 지오반니는 시가를 문 채 해변에서 멍한 눈길로 바닷가를 바라보고 있었다.

“……빌어먹을.”

바다를 응시하는 지오반니의 입에서 차분한 어조의 욕이 흘러나왔다.

지난 이벤트로 인해 적자를 조금 메우긴 했지만 여전히 유럽의 상황은 좋지 않았다.

귀환자가 골드 던전을 다시 매각하는 걸 훨씬 비싼 값에 다시 사들여야 했고 그로 인해 유럽연합은 전체적으로 재정이 파탄 나고 있었다.

정부의 도움이 없었다면 유럽연합은 막장으로 가면서 벼랑 끝에 내몰려 결국 연합이라는 조직 자체가 무너졌을 것이다.

정부의 도움으로 한고비 넘겨 연합은 생명줄에 다시 숨이 붙었지만 협회장 자리에 앉아 있는 지오반니는 현재 위태로운 상태였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협회장 직위 박탈에 대한 이야기가 오가고 있었다.

이 큰 흐름은 바뀌지 않을 것이고 오래 걸리지 않아 제명당하는 수모를 겪게 될 것이었다.

“이참에 다 때려치우고 가족을 돌보는 것도 나쁘진 않지.”

돌이켜 보면 나쁘지 않은 삶이었다.

가난한 집안에서 시작해, 협회장 자리까지 꿰찼으니 이만하면 그럴 듯한 성공을 이룬 셈이다.

명예로운 퇴직이 아니라는 게 가슴을 묵직하게 누를 뿐이다.

“부귀영화가 다 무슨 소용이랴.”

지오반니는 캔맥주를 들이켜곤 노래를 흥얼거렸다.

높은 곳에서 떨어질수록 더 아픈 법.

“젠장.”

아무리 좋게 생각하려고 해도 씁쓸함이 가시질 않았다.

퇴임 후, 평범한 삶을 과연 자신이 잘 살아갈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섰다.

성공이 아니면 죽음을 선택하겠다는 맹세로 한 평생을 살아왔으니 평범한 삶은 오히려 지오반니에게 수감생활이나 다름없을 일이었다.

‘욕심만 내려놓으면 돼. 욕심만.’

스스로의 마음을 다잡던 지오반니는 쯧 하고 혀를 찼다.

“그놈의 귀환자만 아니었어도 이 꼴은 안 났을 것을.”

철학자가 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또 다시 후회스러움의 비탄이 입 밖으로 나오는 지오반니였다.

“협회장님.”

모처럼의 휴일을 보내고 있던 오후.

들리지 않아야 할 목소리가 지오반니의 귓속으로 파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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