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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의 모든 것-123화 (123/175)

귀환자의 모든 것 123화

어비스를 통해 차원을 다녀온 동안 특별한 일은 없었다.

블랙 던전의 확장도 없었고 특별히 사건이라고 할 만한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전과는 다르게 신수와 신물을 찾아 본래의 세계로 돌아오기까지 거의 하루도 걸리지 않았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청룡은 캐슬로 돌아오자마자 간단히 개인정비만 마친 뒤 수련을 위해 연무장으로 떠났다.

그와 반대되게 백호는 침실에서 녹다운이 되어 잠에 빠져있었다.

“기린이 어때요? 머리 자르니까 완전 다르죠?”

커트 후, 샤워를 하고 나오자 기린은 처음 봤을 때와는 전혀 다른 이미지로 변신했다.

처음엔 머리도 긴 더벅머리에 피부도 꾀죄죄했었는데 이렇게 미용을 하고 나니 가히 아이돌 뺨치는 대변신이다.

“뿔이 없었으면 못 알아봤겠는데?”

준혁이 진심을 담아 그렇게 말하자 기린이 부끄러운 듯 고개를 푹 숙이며 뿔을 만지작거렸다.

“내성적인 성격인가 봐요. 하지만 캐슬에서 지내다 보면 곧 밝아지겠죠. 아직은 낯설테니까.”

지우가 귀엽다는 듯 움츠려 있는 기린의 잘 말린 머리카락을 흔들었다.

“기린, 같이 산책 좀 할까?”

기린이 기다렸다는 듯이 준혁을 향해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가자.”

준혁이 거실 통유리 문을 지나 나가자 기린이 곧장 따라붙었다.

다른 이들과 다르게 신수 계약으로, 준혁은 굳이 한국어가 아니라도 기린과 대화가 가능했다.

“여기 온 소감이 어때? 처음이라 낯설긴 하겠지만 그래도 생각보다 나쁘진 않지?”

“……꿈을 꾸는 것 같아요.”

“꿈?”

“이렇게 안정감 있는 기분이 든 건 처음이거든요. 항상 불안하고, 외로웠는데. ……그렇지가 않아서 너무 신기해요.”

“점점 익숙해질 거야.”

“감사합니다. 이렇게 데리고 와 주셔서.”

“고마울 것 없어. 반드시 데려와야만 했고, 오히려 내가 늦어서 미안할 뿐이야.”

기린이 얼굴을 가로저었다.

“이렇게 데리고 와 주신 것만으로도 기적 같은 걸요.”

“마음에 든다니 다행이다.”

준혁은 정원을 구경하고 있는 기린을 힐끔 보았다.

여전히 정적인 마음.

기린이 안정감을 느끼고 있긴 하지만 아직 마음을 열 수 있는 상태는 아니었다.

다른 신수들의 성장과 달리 기린은 아마도 제대로 된 신수로서의 출발을 하기까지 오래 걸릴지도 몰랐다.

백호가 기대 이상으로 잘해 주긴 했지만, 기린도 그렇게 할 수 있을까?

성격상 어려울 것이다.

마음을 여는 것도, 사냥의 본능을 깨우치기까지도 아마 오래 걸리겠지.

그 어려운 벽을 넘어서기 위해선 스스로 자신의 알을 깨고 나와 본능을 드러내야 한다.

같은 신수의 성장이, 좋은 자극이 될 수도 비교의 트라우마가 될 수도 있겠지만 준혁은 믿었다.

기린이 잘 성장해 주리라고.

“잘 지내 보자. 네가 새로이 지내야 할 이곳에서.”

호수 앞에서 준혁이 말했다.

“……네, 주인님.”

기린은 비어 있는 듯한 눈동자로 호스를 응시했다.

하지만 아주 조금씩 반짝이는 빛이 기린의 눈동자에 유성처럼 스쳐 지나갔다.

* * *

이탈리아의 골드 던전 앞.

세계 최상위 랭커들이 천막을 치고 진입을 대기 중에 있었다.

아직 도착하지 않은 인원들이 있었고, 곧 약속 시간이 다 되어 가고 있어 미리 도착해 있던 헌터들은 장비를 점검하고 있었다.

“리더보더라고 지각하는 거 진짜 짜증나지 않냐? 지가 무슨 귀환자도 아니고.”

짧은 곱슬머리의 사내가 담배를 문 채 구시렁구시렁 중얼거렸다.

“말조심해. 혹여나 듣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단발머리를 귀 뒤로 넘긴 사내가 옆에서 워커 끈을 고쳐 매며 말했다.

“내가 어떻게 된 게 한 번도 지각 안 하는 꼴을 본 적이 없어. 요즘 같은 때에 지가 무슨 슈퍼스타라고.”

곱슬머리가 불을 붙이고 담배를 뻑뻑 피웠다.

“하루 이틀이냐? 그냥 그런가 보다 해.”

단발머리가 못 말린다는 듯 얼굴을 절레절레 흔들며 웃었다.

본래 골드 던전 진입 시간은 오후 4시였다.

현재 시간은 3시 58분.

레이드 공대 팀은 던전 진입 한 시간 전에 모이는 것이 규칙이었다.

대부분 시간을 준수하는 편인데, 특별한 경우가 없는 한 시간을 지키지 않는 자들은 리더보더가 거의 유일했다.

일반 헌터들의 경우 아무리 최상위 헌터라고 하더라도 목숨을 걸고 함께 팀을 맞추는 만큼 규칙을 지키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하지만 리더보더의 경우 높은 수준을 가진 만큼 지각을 해도 별소리 없이 눈감아주는 것이 관례가 되어 버린 지 오래였다.

“이번에 오는 리더보더들이 두 명이랬지?”

곱슬머리가 담배를 문 채 하늘을 보며 물었다.

“두 명 맞아.”

끈을 모두 묶은 단발머리 헌터가 답했다.

“몇 위라고 했었지?”

“내가 네 매니저냐?”

“내가 기억력이 나쁘잖냐.”

“11위랑 9위. 11위가 마법사고 9위가 탱커.”

“초 엘리트 리더보더들이긴 하네.”

곱슬머리가 씁쓸한 표정으로 담배를 바닥에 던지며 말했다.

“늦어도 20분 안에는 오겠지.”

“20분이 적냐? 여기 인원이 몇 명인데.”

“이따가 직접 따질 거 아니면 그만 투덜거려.”

그럴 자신은 없어서 곱슬머리는 그저 먼 곳을 보며 코를 훌쩍이는 걸로 대답을 대신했다.

“골드 던전이라고 해도 이 정도면 지나치게 안정적이네. 리더보더도 있고, 상위 레벨의 헌터들 숫자도 많고 말이야.”

단발머리가 말했다.

“그래도 조심해야 돼. 언제 어디서 사고가 생길지 모르니까. 이기적인 리더보더들이 언제 버릴지 몰라. 그 부분도 유의해야 하고.”

단발머리는 이번에 한 곱슬머리 사내의 말 만큼은 반박하지 않았다.

그의 말을 공감했기 때문이다.

리더보더들은 냉정했다. 최상위 랭커라고 하더라도 골드 던전은 위험한 곳이었고 그런 곳에서 리더보더만 믿고 안일하게 전투를 할 수는 없었다.

애초에 군대급 전력이 투입되어야 할 골드 던전이다. 최상위 랭커와 리더보더가 들어가게 되면 적은 인원수로도 공략이 가능하지만 얻는 게 많은 만큼 그와 동시에 위험도 역시 올라간다.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상위 랭커들의 던전 공략은 늘 이 장점과 단점을 피해갈 수 없었다.

“그래도 지오반니가 적자를 조금이나마 메운 덕분에 이렇게 골드 던전이라도 공략이 가능해졌네.”

단발머리가 간만의 사냥에 웃음 지을 때 곱슬머리는 똥물을 뒤집어쓴 얼굴이 됐다.

“넌 그게 할 말이냐? 그 자식이 괜히 귀환자를 건드리지만 않았어도 유럽이 이 꼴은 안 났어.”

“그렇게 치면 귀환자가 골드 던전을 독식했어도 할 말은 없지. 귀환자가 골드 던전을 다시 매각했고, 지오반니의 재정 덕분에 유럽이 다시 숨통이 트인 거니까. 결국 서로 상생한 거야.”

“퍽이나 아름답네.”

“너 그렇게 불만 많으면 언젠가 큰일 치른다?”

“내 걱정은 내가 할 테니 넣어 둬.”

“하하. 어? 저기 리더보더들이 오는군.”

“흥. 20분 꽉 채울 줄 알았더니 생각보다 빠르시군. 감사의 인사라도 전해야 하나.”

“슬슬 입에 지퍼 채우자고. 뒷담화는 사냥이 끝나고 해도 돼.”

곱슬머리가 얼굴을 흔들며 괜히 늦장을 부렸던 장비체크를 이제야 시작했다.

그 사이, 고급 차량에서 내린 리더보더 두 명이 골드 던전 앞 진영으로 들어왔다.

헌터들이 리더보더들에게 활기차게 인사했다.

리더보더에게 잘 보이는 편이 사냥이 훨씬 수월하기 때문이기도 했고, 무엇보다 그들은 리더보더 중에서도 최상위 헌터들이었다.

그들에게 아부하지 않고 장비 점검을 하고 있는 건, 리더보더에 대한 안 좋은 인식을 갖고 있었던 곱슬머리뿐이었다.

“저 자식도 공대 팀 일원인가?”

곱슬머리의 속을 훤히 꿰뚫고 있는 리더보더 11위의 마법사가 말했다.

단발머리가 어색하게 웃으며 친구를 돕기 위해 나섰다.

“제가 뭘 잃어버려서 좀 찾아 주느라고 개인 정비가 조금 늦습니다. 제가 대신 사과드리겠습니다.”

곱슬머리가 눈살을 구기며 장비 점검을 서두르고는 마지못해 일어서서 억지 미소를 지으며 인사했다.

마법사가 관심 없다는 듯 곱슬머리에게서 시선을 거두었다.

“5분 후에 출발하도록 하지.”

리더보드 9위의 탱커가 큐브에서 거대한 방패를 꺼내며 말했다. 그리고 그는 묵묵히 자신의 방패를 닦았다.

11위의 마법사가 담배를 피우는 사이, 곱슬머리는 한숨을 푸욱 내쉬며 바람을 쐬기 위해 잠시 천막 밖으로 이탈했다.

‘이 빌어먹을 직업은 해도 해도, 설거지를 벗어날 수가 없네.’

나름 최상위 랭커로서의 경력이 쌓였지만, 여전히 최고의 수익을 올리기 위해서는 더러운 리더보더들의 비위를 맞춰야 했다.

이번 골드 던전만 하고 좀 쉬자고 생각하며 곱슬머리를 연거푸 한숨을 쉬며 담배를 물었다.

불을 붙이려고 할 때, 곱슬머리가 한쪽 눈을 찌푸렸다.

‘뭐야 저건?’

골드던전의 금빛 게이트 옆에서 특이한 빛이 아주 작게 반짝이고 있었다.

녹색을 띠는 빛이었는데 그 빛은 점차 커지기 시작하더니 이내 손바닥만 하게 변했다. 그리고 그 빛은 아주 조금씩 더 그 규모가 팽창하고 있었다.

묘한 불안감이 등줄기를 훑었다.

가끔 이럴 때가 있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꺼림칙한 불안을 주는 특이점을 발견할 때가. 그리고 그럴 땐 언제나 나쁜 상황을 맞이하곤 했다.

믿고 싶지 않았지만, 늘 안 좋은 예감은 적중하곤 했었다.

그리고 이번에도 그 예감은 틀릴 것 같지 않았다. 곱슬머리는 피우려던 담배를 다시 담뱃갑에 넣으면서 공대 팀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레이드를 준비 중인 친구 단발머리의 팔을 잡아당겼다.

“왜?”

“이리 와 봐. 어서. 잠깐 얘기 좀 하게.”

“곧 출발이야.”

“빨리 오라고.”

단발머리가 주변 눈치를 살짝 봤다가 곱슬머리를 따라갔다.

“뭔데 그래? 어서 말해. 이러다 진짜 미움이라도 사면 어쩌려고. 너 또 괜한 소리 하려고 하지?”

팀에서 살짝 벗어나자 단발머리가 친구의 팔을 뿌리치며 한 소리 했다.

“이상해.”

단발머리가 친구 곱슬머리의 눈빛을 보고 뭔가 평소 같지 않은 기운을 느끼곤 표정을 고쳤다.

“이상하다니?”

“골드 던전 게이트 바로 옆에서 이상 현상을 발견했어.”

“이상 현상?”

“녹색 빛의 에너지 같았는데. 어쩌면 게이트일지도 몰라.”

“녹색의 빛의 띠는 게이트는 들어 본 적 없는데…….”

“내 말이 그 말이야. 아무래도 이번 레이드는 포기해야겠어.”

“야, 너 위약금이 얼만지 알아?”

“위약금보다는 목숨값이 더 귀하지 않겠어? 너 내가 이런 쪽으로 감이 좋다는 건 알지?”

“푸우우.”

단발머리가 스트레스받는 듯 목을 벅벅 긁었다.

“돈 필요한데. 하아. 진짜 확실히 봤어?”

“내 판단은 고민할 시간도 아깝다는 거야.”

곱슬머리의 말과는 달리 단발머리는 허리에 손을 얹은 채, 먼 곳을 보며 고민했다.

친구가 말하는 불안감이 늘 높은 확률로 적중했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었다.

하지만 돈이 필요한 상황이라 그런지 자꾸만 좋은 쪽으로 해석하고 싶어졌다.

“어쩌면 네 감이 틀렸을지도 모르잖아. 가서 말해 보고 별로 위험할 것 같지 않으면 그대로 진행해야겠어. 네가 예언가는 아니잖아? 안 그래?”

곱슬머리가 얼굴을 절레절레 흔들었다.

“어지간히도 급한가 보네. 난 분명히 얘기했다?”

곱슬머리는 각오를 굳힌 듯 레이드 팀으로 돌아가 팀에서 빠지겠다고 말했다.

사방에서 욕설과 비난이 난무했지만, 곱슬머리는 개의치 않고 짐을 챙겨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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