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자의 모든 것 122화
츠츠츠츠츠!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어둠 속에 숨어 있는 마수의 마력이 더 진하게 소용돌이쳤다.
청룡이 마수를 향해 깊이 들어가고 큐브가 어둠을 비추었다.
어둠 속에서 강대한 기운을 뿌렸던 존재.
여왕개미.
알을 배고 있는 여왕개미 앞에 세 마리의 병정개미가 있었다.
개미에서 진화를 한 마수들인 만큼 병정개미 역시 존재했다.
세 마리의 병정개미는 지금까지 상대해 온 일개미보다 훨씬 강한 수준이라는 걸 외모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일개미의 1.5배에 달하는 덩치에, 발톱의 크기 역시 남달랐다.
“안 도와줘도 되겠어?”
준혁의 물음에 청룡이 병정개미들을 보며 웃음 지었다.
“이 정도도 처리 못 해서야, 신수가 아니죠.”
병정개미들이 청룡의 말뜻을 알아차리기라도 한 것처럼 날카로운 쇳덩어리 같은 발톱에 오러의 힘이 단단하게 맺혀 있었다.
청룡의 강기만큼이나 선명하고 굵직한 오러였다.
그 수가 무려 셋. 하지만 청룡은 전혀 주눅 들지 않고, 병정개미들을 향해 전진했다.
백호가 주먹과 뱃심에 힘을 꽉 준 채, 지켜보았다.
기린은 백호의 등에 거의 업혀 있다시피 했다.
평온하게 지켜보는 건 준혁뿐이었다.
정 위험하면 자신이 나서면 되는 일이었지만 과연 어떨까?
츠팟-!
거대한 병정개미가 덩치에 어울리지 않는 속도로 접근해 공격했다.
병정개미의 공격을 막아 내긴 했지만 그 힘에 밀려 튕겨져 나가는 청룡의 창.
“읏……!”
청룡이 어금니를 까드득 갈며 무너지려는 중심을 바로잡았다.
재공격과 동시에 먹잇감을 노리는 두 마리의 병정개미의 공격이 추가로 이어졌다.
청룡이 보법을 통행 병정개미들의 공격을 회피하고 막아 나갔다.
하지만 거기까지.
청룡은 좀처럼 공격권을 가져오지 못했다.
수적 우위에 의해 청룡이 밀리고 있었다.
그로 인해 하나둘 늘어가는 상처들.
준혁은 고민했다.
편하게 사냥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할지, 아니면 청룡이 스스로의 싸움을 펼칠 수 있게 믿고 지켜봐 줘야 할지.
하지만 준혁의 걱정은 기우였다.
천무신공 자하공.
청룡이 딛고 서 있는 땅이 으깨져 나가며 사방으로 내공의 힘이 병정개미들의 단단한 껍질을 깨트렸다.
그 내공의 힘에 의해 준혁이 백호와 기린을 보호하기 위해 마력의 장막을 만들어야 할 정도였다.
개미들의 몸 곳곳이 깨져 나가는 순간 청룡이 신공의 극성을 펼쳤다.
거대한 강기의 흐름이 강철 같은 병정개미를 도륙했다.
몸통과 다리가 잘려 나가며 병정개미들이 사방으로 튕겨져 날아갔다.
초식으로만 상대하던 청룡의 무공 비기가 그 힘을 드러낸 순간이었다.
내공의 힘으로 무게 중심을 흐트러트리고, 신공의 극성을 담은 초식이 병정개미들을 박살 낸 것이다.
청룡은 새하얀 연기가 피어오르는 창을 고쳐 쥐며 심호흡을 통해 내공을 갈무리했다.
뒤이어 모든 상황을 편하게 지켜보고 있던 새하얀 여왕개미를 향해 뛰어들었다.
신법으로 순식간에 거리를 좁히며 강렬한 강기가 실린 창을 휘두르기 직전.
번-쩍!
여왕개미의 마법에 의해, 청룡은 사지가 새하얀 실줄 같은 것에 휘감기고 말았다.
그대로 신체가 완전히 묶여 버린 청룡이 당황한 눈초리로 여왕개미를 노려보았다.
내공을 운용할 때마다 팔다리와 몸통을 휘감은 새하얀 마법의 실줄이 내공을 빼앗갔다.
이에, 마법에 취약한 청룡이 힘을 전혀 쓰지 못하고 버둥거렸다.
“……크읏!”
청룡이 눈살을 찌푸렸다.
마치 커다란 구멍이라도 뚫린 것처럼 내공이 새어 나가고 있었다.
그 상태에서 평범한 육체의 힘만으로는 여왕개미의 마법이 만들어 낸 그 단단한 줄로부터 벗어날 수는 없었다.
꾸드드드득!
하얀 실줄이 청룡의 팔다리를 끊어 낼 것처럼 압박해 들어가고, 마나의 압력이 청룡을 짓눌렀다.
금세 청룡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리고 말았다.
준혁이 보기에 더 이상, 싸움은 불가하다고 판단.
지켜보던 준혁이 헬바인의 장검을 들고 뛰어들었다.
서걱! 서걱! 서걱!
준혁의 검이, 절대 끊어질 것 같지 않던 여왕개미의 마법을 끊어 냈다.
털썩!
청룡이 바닥에 떨어지며 한 움큼의 피를 뿜었다.
“쿨럭!”
마법에 의한 데미지였다.
아직까지 청룡에게 고차원의 마법을 쓰는 마수를 상대하기엔 무리였다.
“수고했다. 저놈은 내가 상대할 테니, 쉬고 있어.”
청룡은 더 싸우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으나, 주인의 명령을 어길 수는 없는 일.
입가의 피를 손등으로 닦아 내고 비틀거리며 일어서서 뒤로 물러섰다.
자연스러운 자세로 여왕개미와 대치하고 있던 준혁은 주변을 눈으로 살폈다.
별다른 장치는 없었고 오직 여왕개미 자신의 마법 능력을 쓰는 것 같았다.
마법을 마치 자신의 신체를 쓰듯이 자유롭게 활용하는 여왕개미의 공격은 결코 만만히 볼 것이 아니었다.
준혁은 집중을 잃지 않으면서 헬바인의 장검을 늘어트린 채 여왕개미를 향해 걸어갔다.
“신물은 아마 너를 통해 얻을 수 있겠지.”
개미굴의 주인이자, 개미굴의 여왕.
저 여왕개미로부터 신물을 얻을 수 있으리라.
준혁의 시선이 여왕개미에게 고정되었다.
여왕개미 역시 준혁의 존재가 범상치 않다는 걸 느낀 것인지 강대한 마법 주문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청룡과, 백호, 그리고 기린이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여왕개미의 마법이 준혁을 향해 발동되었다.
수백 개에 달하는 실줄이 준혁을 감싸기 위해 날아들었다.
준혁이 마력이 넘실거리는 눈동자로 여왕개미를 노려보며 헬바인의 장검을 휘둘렀다.
하나의 성마저 으깨 버릴 수 있는 힘이 실린 마법이 준혁의 힘에 의해 힘없이 끊어져 나갔다.
차르르륵!
단 한순간에 파괴되어 흩어지는 마법.
당황한 여왕개미가 놀라며 뒤로 스르륵 물러날 때, 준혁은 이미 여왕개미의 바로 앞에 이르러 있었다.
“신물을 가져와라.”
준혁의 냉혹한 음성과 함께, 헬바인의 장검이 알을 품은 여왕개미의 몸통을 찔렀다.
푸부북!
개미인 주제에 마치 인간처럼 새빨깐 피가 튀었다.
칼을 뽑아내자 새빨간 피를 대량으로 출혈하는 여왕개미가 전신을 뒤흔들며 비명을 내질렀다.
‘확실히 신수를 찾으면서 나 역시 강해졌어.’
준혁은 태연하게 스스로의 힘을 돌아보고 있었지만, 개미굴을 진동시키는 괴성에 백호와 기린은 얼굴을 구기며 귀를 틀어막았다.
내장이 진동할 정도의 마력이 실린 비명 소리였다.
뒤이어 여왕개미의 아래로 커다란 마법진이 빛을 뿌리며 나타났다.
마치 폭탄처럼 마력의 힘을 터트리는 마법진.
그와 함께 여왕개미는 잿빛으로 타 버리며 개미굴을 무너트릴 만큼의 마력 폭발을 만들어 냈다.
그 힘이 개미굴을 무너트리도록 내버려 둘리 없었던 준혁이다.
준혁은 신성력의 힘을 극대화 시켜 여왕개미의 전신을 마력의 장막으로 가두어 버렸다.
콰콰콰콰콰콰쾅!
원형의 마력 장막 안에서 여왕개미의 전신이 터져 나가며 폭발음을 터트렸다.
쿠르르르-!
준혁이 만든 마력의 구체 안에서 핏물과 살점이 묻어난 채, 잿빛의 연기가 흩날렸다.
“우와……!”
“……!”
백호가 두 손을 맞잡은 채로 넋을 놓고 바라보았고, 기린은 생전 처음 보는 엄청난 능력에 기절할 것처럼 눈을 끔뻑였다.
청룡 역시, 준혁의 능력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엄청난 마법을 부리는 여왕개미를 잡은 것도 놀라웠지만 그 이후 자살 마법과도 같은 여왕개미의 마법 폭발을 잠재우는 능력은 가히 신의 수준이었다.
청룡으로서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경지였다.
* * *
마력의 장막 안에, 파괴되는 마력 폭발의 힘을 잠시 막아 놓은 것뿐.
장막이 사라지면 그 파괴의 여운은 다시 재폭발을 일으킬 것이었다.
장막을 유지시켜 놓은 채, 우선 개미굴을 나가야 했다.
하지만 그 전에 처리해야 할 일이 하나 있었다.
[멸마의 서가 가진 힘으로 여왕개미가 남긴 신물을 복구하시겠습니까?]
[멸마의 서가 권능을 발현했습니다.]
[망가진 신물을 재생시켜 완전한 신물로 완성합니다.]
[여왕개미의 날개를 획득했습니다.]
<여왕개미의 날개>
등급 : SS+
설명 : 착용 시 여왕개미의 날개 비늘이 피부로 옮겨붙는다.
효과 : 신성력 +5퍼센트, 암흑내성 +20퍼센트, 신체 마법방어 +15퍼센트. 물리방어력 +30퍼센트
굉장한 수치였다.
현재 준혁의 수준에 이 정도의 퍼센트를 더할 수 있다는 것은 엄청난 효율.
신물을 찾아 나선 보람 그 이상의 결과물이었다.
[여왕개미의 날개를 사용했습니다.]
멸마의 서가 완성시킨 아이템. 여왕개미의 날개가 시커먼 연기로 변하더니 준혁의 등에 달라붙어 스며들었다.
[여왕개미의 날개를 착용했습니다.]
아이템을 착용하자 즉각적으로 신체가 달라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신물의 힘에 의해 능력이 사기적으로 향상된 것이다.
당장이라도 아우터 갓의 세계로 가고 싶었지만,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야 했다.
아우터 갓은 최선을 다해 준비를 해도, 장담할 수 없는 상대이니까.
“돌아가자.”
준혁은 자신이 마력의 장막 안에 가둔 폭발 된 여왕개미의 사체를 곁눈질하곤 걸음을 옮겼다.
청룡과 백호, 그리고 기린을 데리고 게이트를 통해 개미굴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그와 거의 동시에 마력을 해제하자마자 게이트가 닫히며, 비석이 퍽! 하고 부서져 나갔다.
준혁은 산산조각 난 비석의 조각들을 내려다보다가 천리안을 보았다.
어차피 주작의 신수를 찾게 되면 언제든 차원을 넘어설 수 있었기에 굳이 지금 오랜 시간을 할애해 가며 신물을 찾을 필요는 없었다.
이 정도의 수확만으로도 충분했다.
준혁은 인간계로 돌아가기 위한 게이트를 생성했다.
“가자, 집으로.”
기린은 정신이 하나도 없는 얼굴이었고 백호는 긴장이 풀려 잠이 오는 듯 눈을 끔뻑거렸다.
청룡이 그런 어린 신수들을 차원 게이트를 향해 등을 떠밀었다.
* * *
“새로 온 식구. 신수 기린입니다. 다들 잘 챙겨 주세요. 신입인 만큼.”
준혁의 말에 지우를 비롯한 집사와 캐슬의 식구들이 모두 박수를 치며 환한 미소로 기린을 환영했다.
기린은 겁먹은 표정으로 백호의 등 뒤로 숨었다.
백호는 그런 기린을 숨겨줄 수 있는 자신이 대단하다는 양 허리에 손을 얹고 으하하하 웃었다.
“지우는 전처럼 기린에게 언어를 가르쳐 주고.”
“네, 귀환자님.”
지우가 생긋 미소 짓고는 기린을 향해 미소 지으며 손을 흔들었다.
더벅머리에 겁을 잔뜩 먹은 기린의 눈이 어디를 봐야 할지 몰라 헤매고 있었다.
이마에 나 있는 뾰족한 뿔이 특징이었는데 지우가 뿔을 쳐다보자 기린이 손으로 그 뿔을 가렸다.
“우선 긴 머리부터 좀 자르고, 샤워시켜야겠다. 샤워는 백호가 같이 도와줄 수 있지?”
“응, 당연하지!”
백호가 신난다는 듯이 커다랗게 대답했다.
기린의 일정이 정해진 후, 준혁과 청룡은 쉬기 위해 각자 이동했고 지우는 기린의 케어를 바로 시작했다.
언어 강사의 일정을 잡은 뒤 지우는 기린을 데리고 청룡의 머리를 잘랐던 것처럼 정원에서 기린의 머리도 잘라 주기로 했다.
기린은 낯선 상황이었지만 캐슬이라는 곳은 묘하게 안정되는 분위기라서 지우의 말을 고분고분 잘 따랐다.
“그동안 본 신수 중에서 가장 순해 보이네.”
머리카락을 자르기 전 지우가 웃으며 기린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기린은 그 손길에 움찔 놀랐고 지우는 앞으로 조심해야겠다 생각하며 상냥한 미소를 보냈다.
“미안.”
지우는 조심스레 기린의 머리카락을 손질했다.
미용을 하는 동안 노곤노곤한 졸음이 몰려오는 듯 기린이 눈을 끔뻑였다.
지우는 웃음을 참으며 꾸벅꾸벅 졸고 있는 신수 기린의 머리카락을 커트했다.
최대한 기린의 신비한 뿔을 건드리지 않으려고 노력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