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자의 모든 것 121화
지금까지는 차원에 의한 시간 차이 때문에 신경이 쓰였지만 더 이상 그럴 필요는 없었다.
덕분에 여유 있게 신물의 발견 가능성에 대해 시간을 사용할 수 있었다.
“지금 우리 어디로 가요?”
백호가 물었다.
“보물찾기다.”
준혁이 백호의 수준에 맞춰서 말해 주었다. 그러자 백호가 바로 눈을 반짝이며 반응했다.
“보물찾기요?”
백호의 본능이 바로 반응했다.
뒤에서 가만히 따라오고 있던 기린도 눈을 깜빡이며 흥미를 내비치는 눈빛이 되었다.
별달리 반응이 없는 건 청룡뿐이었다.
“우와! 재밌겠다! 그치 청룡 형아!”
백호가 제자리에서 방방 뛰었지만 청룡은 팔짱을 낀 채 반응해 주지 않았다.
재미없는 반응의 청룡을 뒤로하고 백호는 기린에게 알아듣지도 못할 말을 재잘거렸다.
“우린 어떤 보물을 찾게 될까? 응? 뭔가 번쩍번쩍한 게 나왔으면 좋겠어. 기린,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기린은 눈을 동그랗게 뜬 채로 백호를 신기하다는 듯이 쳐다봤다.
백호는 희희낙락하며 보물찾기에 대한 기대가 한가득이었다.
천리안을 보며 이동하다 보니 어느새 지도가 보여 주는 목적지와 가까워지고 있었다.
엘프와 드워프들이 경계를 두고 살고 있는 지역이다. 그런 곳에서 마수 사냥도 했던 것이 드워프였으니, 마수의 수준이라고 해 봐야 그리 위험한 정도는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편한 마음으로 목적지 앞에 이르게 되었다.
“으음, 이건 뭐지?”
호기심이 가득한 백호가 가장 먼저 비석 앞으로 뛰어갔다.
벌판 위에 툭 하고 튀어나와 있는 비석에는 빨간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마법의 힘이 담긴 룬 문자 같았다.
“함부로 나서지 마라, 백호.”
청룡이 백호의 뒷덜미를 잡아 들어올렸다.
들떠 있던 백호가 청룡을 째려봤다가 얌전히 청룡의 손에 붙들렸다.
‘마력 파장이 있으려나?’
준혁은 그런 생각을 하면서 비석에 손을 가져다 댔다.
차가운 비석에 자신의 힘을 불어넣었다. 그러자 비석은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곧장 반응했다.
빨간 룬 문자가 점점 더 그 빛이 진해지면서 비석에서는 검은 연기가 춤을 추듯 나풀거렸다.
그 연기는 점차 게이트의 형태로 타원형을 만들어 나갔다.
기린이 겁먹은 듯 백호의 뒤로 숨었다.
콰지직!
마치 전기가 튀기는 것 같은 소리를 내며 게이트가 열리자 준혁이 흥미로운 눈길로 완성되기를 기다리며 지켜보았다.
잠시 후, 게이트가 완성된 것을 확인한 준혁이 먼저 그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걸음을 옮겼다.
아무래도 그동안 드워프들은 이 비석에서 게이트를 열지 못했던 모양이다.
준혁이 게이트를 통과하고 나자 청룡이 백호에게 눈짓했다.
그러자 백호가 기린의 손을 잡았다.
“들어가자. 보물찾기를 하는 거야.”
백호가 빙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기린은 여전히 겁먹은 얼굴이었지만 백호가 당당하게 기린을 이끌며 씩씩하게 게이트로 걸어 들어갔다.
청룡은 백호를 보며 피식 웃고는 마지막으로 게이트를 통과했다.
* * *
[개미굴에 입장했습니다.]
시스템 문자가 이곳이 어디인지를 알려 주었다.
준혁의 큐브가 빛을 내며 어두운 개미굴을 환하게 비춰 주었다.
개미 형태의 마수가 살고 있는 던전 같았다.
그런 만큼 개미집과 같은 형태의 매끈한 통로가 끝없이 길게 이어져 있었다.
이동하다 보니 첫 번째 개미를 발견하게 됐다.
개미집 안에는 평범한 개미가 아닌 마수가 살고 있는 만큼, 이족 보행을 하는 개미가 존재했다.
키는 약 2미터가 조금 안 되는 정도였고 맹금류와 같은 발톱을 가진 팔로 일을 하고 있었다.
평범한 개미가 아닌 만큼 일을 하다가, 준혁의 존재를 알아차리고 돌아보는 모습이 범상치가 않았다.
한낱 개미였지만, 개미의 발톱에는 무려 오러가 맺혀 있었다.
적지 않은 힘인 데다 한눈에 봐도 체력과 방어력, 그리고 속도가 상상 이상일 듯했다.
만약 드워프가 이 개미집 안으로 들어갔다면 단언컨대 전멸을 피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만큼 준혁의 기대치도 올라갔다.
난이도가 높은 던전을 발견한 만큼, 신물에 대한 기대감이 생겨나고 있어서였다.
“제가 처리하겠습니다.”
청룡이 창을 들고 앞장섰다.
무인으로서 완성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만큼 청룡에게 굳이 주의하라고 조언할 필요는 없었다.
청룡이라면 상대와 칼을 섞어 보기 전에 방심하는 수준은 아니었을 테니까.
준혁은 백호와 기린이 다치지 않도록 경계 거리를 체크했다.
콰-앙!
엄청난 속도로 지그재그의 형태로 이동한 개미가 청룡을 향해 발톱을 휘둘렀다.
청룡의 창과 개미의 발톱이 충돌하면서 커다란 소리가 울려 퍼졌다.
기린은 놀라서 바들바들 떨었고, 백호는 커다랗게 뜬 눈으로 둘의 싸움을 지켜봤다.
개미의 발톱과 청룡의 창이 섞여 들면서 준혁은 청룡이 점차 우위를 가져가는 걸 볼 수 있었다.
‘몇 마리만 더 붙어도 위험하겠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상위의 수준이야.’
몇 마리의 개미만이라도 바깥으로 유출된다면 드워프와 엘프. 그 두 종족 모두 전멸할 수 있을 만큼의 수준이었다.
“흡!”
청룡의 짧은 기합과 함께, 청룡의 강기가 서린 창날이 개미를 두 동강으로 베어 냈다.
투명한 핏물을 뿌리며 잘려 나간 개미가 죽지 않고 버둥거렸다.
청룡이 창날로 개미의 단단한 대가리를 으깨자 마수는 완전한 죽음에 이르렀다.
“강하네요. 조금 놀랐습니다.”
청룡이 감탄한 표정으로 죽은 개미를 보며 말했다.
[청룡이 1퍼센트의 경험치를 획득했습니다.]
준혁이 이채를 띠었다.
청룡에게 1퍼센트에 달하는 경험치는 절대 적은 수치의 경험치가 아니었다.
이는 무려 개미 100마리만 잡아도 새로운 수준에 도달할 수 있을 만큼의 경험치였다.
“청룡. 저 개미들이 너에게 엄청난 보상이 될 거다. 눈에 보이는 모든 개미들을 죽여라.”
준혁으로부터 잔혹한 명령이 떨어졌다.
그것이 기회라는 것을 모르지 않는바 청룡이 준혁을 향해 고개를 끄덕여 보이곤, 본격적으로 사냥을 위해 이동했다.
첫 번째 개미가 죽고 난 이후, 더 이상 일을 하는 개미는 보이지 않았다. 아마도 동료의 죽음으로부터 적이 나타났다는 것을 알아차린 듯했다.
통로에서 숨어 있던 개미가 급습을 하듯이 청룡에게 달려들었다.
갑작스러운 공격이었지만 충분히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던 청룡은 가볍게 반사적인 대응을 통해 개미의 공격을 막아 냈다.
카-강!
개미의 발톱과 청룡의 창날이 붙음으로써 불꽃이 튀었다.
내공의 힘으로 개미의 엄청난 근력을 밀어냈다. 섬광처럼 내지른 창날이 개미의 몸통을 관통했다.
개미는 무려 창에 관통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죽지 않고 재공격을 하려고 버둥거렸다.
체력과 방어력도 좋은데, 끈질긴 생명력까지 가진 마수였다.
그렇게 창을 뽑지 못한 상태에서 또 다른 두 번째 개미가 나타났다.
무방의 옆구리를 향해 개미가 달려들 때, 준혁이 개미를 발로 밀어 찼다.
쾅!
달려들었던 개미가 개미굴 벽면에 처박히면서 벽에 금이 쩍 갔다.
“와아아!”
백호가 박수를 짝짝 쳤다.
기린은 여전히 백호의 등 뒤에 숨은 채 달달 떨고 있었다.
“칫!”
청룡이 창을 뽑아내면서 벽에 처박혔던 개미를 베어 냈다.
준혁의 도움으로 두 마리를 해치우자 2퍼센트의 경험치를 획득하는 청룡이었다.
‘청룡이 성장하기에 최고의 사냥터로군.’
준혁은 만족하고 있었지만 청룡은 그렇지가 않았다. 빈틈이 드러났다는 사실에 대해 뼈아픈 자책감에 시달리는 것이다.
“조급하게 성장하려고 들지 마. 하나하나 쌓아나가는 거다. 청룡.”
“……예, 주인님.”
청룡이 심호흡을 하며 멘탈을 다시 바로잡았다.
“제가 도와드릴 건 없나요? 주인님?”
백호가 초롱초롱한 눈으로 준혁에게 물었다.
“가만히 있는 게 돕는 거다. 백호.”
“……넵.”
백호가 머쓱한 표정으로 뒤통수를 긁적이며 히히 웃었다.
* * *
개미의 전투방식에 익숙해지고 나자 청룡은 더 이상 고전하거나 빈틈을 드러내지 않았다.
파죽지세의 기세로 개미굴을 뚫고 나가면서 이젠 세 마리의 개미들마저 여유 있게 상대할 수 있게 되었다.
개미의 공격형태가 뻔한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았기에, 엄청난 속도와 체력, 그리고 오러를 갖추고 있음에도 상대가 가능했던 것이다.
“청룡 형아 진짜 대단하다. 완전 잘 싸워.”
백호가 소리 나지 않게 박수를 쳤다.
동그랗게 말고 있는 입에서는 연신 오오! 하는 감탄사가 쉬지 않고 흘러나왔다.
눈으로 따라가기도 힘든 개미의 속도에, 하나하나 반응하면서 개미를 해치워 나가는 청룡의 모습은 백호에게 경이로운 수준이었다.
당장 싸우고 싶은 호승심이 가슴 안에서 부글부글 끓어 올랐지만 백호는 스스로도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의 실력으로는 아직 저런 강력한 개미 마수를 잡을 수 없다는 것을.
이에, 백호는 청룡처럼 강해지고 싶다는 마음이 어느 때보다 강하게 일렁이고 있었다.
기린 역시 백호 뒤에서 무서워하긴 했지만, 기린의 시선은 감탄에 젖은 채 청룡을 뒤쫓고 있었다.
백호와 기린에게 청룡은 가히 범접할 수 없는 경지였지만 준혁의 눈 안에는 아쉬움이 보이고 있었다.
‘중원에서 갈고닦은 무공 초식에 의한 습관이 너무 강해. 버리기 쉽지 않겠지.’
분명 훌륭한 초식이 바탕에 있긴 했지만, 그 초식에 갇혀 있으면 새로운 영역으로 나아가기에 반드시 한계가 생긴다.
물아일체를 넘어서서 필멸의 선을 볼 줄 알아야 한다.
물론 단기간에 불가능한 수준이기에 거기까지 바란다면 욕심이겠지만 청룡의 재능이라면 자신의 가르침을 통해 교정할 수 있을 듯 보였다.
‘이곳 개미굴 정도는 문제가 없겠군.’
청룡이 몸이 풀렸는지 개미들을 쓸어 담는 속도가 점점 더 빨라지고 있었다.
청룡은 마치 귀신같은 눈으로 개미들을 찾아내 접근하고 베어 냈다.
그렇게 길고 긴 개미굴의 통로를 이동하며 마수 개미를 처치한 끝에.
[청룡의 레벨이 올랐습니다.]
청룡은 레벨 업에 도달할 수 있었다.
[청룡의 힘과 체력, 그리고 속도가 상승합니다.]
청룡 역시 그 신비한 성장의 힘을 느낀 것인지 스스로의 육체를 돌아보며 놀라고 있었다.
“주인님.”
청룡이 준혁을 돌아보며 말했다.
준혁이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성장한 거다. 시스템을 통해.”
깨달음이 아닌 마수를 잡는 것만으로 성장이 가능하다는 것은 엄청난 이점이자 혜택이다.
일전에 레벨 업을 경험한 적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청룡은 여전히 낯선 황홀감에 빠지고 있었다.
“사냥을 통해 강해질 수 있다. 그게 너와 나의 신수 계약을 통한 힘이야.”
청룡은 이제야 비로소, 준혁이 처음, 훨씬 더 강하게 만들어 줄 수 있다는 말이 어떤 의미인지 깨닫고 있는 듯했다.
“아직 사냥이 끝나지 않았다. 청룡.”
집중하라는 의미를 던지자 청룡이 즉시 창대를 고쳐 잡았다.
저 멀리, 평범한 개미들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기운을 품고 있는 존재가 어둠 속에 숨어 있었다.
굳이 빛을 통해 실물을 확인하지 않아도 그 포스가 피부를 따갑게 긁어 올 만큼 굵직한 오러의 선율이 뻗어져 나오고 있었다.
백호는 저도 모르게 근육이 긴장한 채로 어깨를 움츠리고, 기린은 당장이라도 울 것처럼 다리를 달달 떨었다.
“거, 겁먹지 마. 기린. 우리에겐 주인님과 청룡 형아가 있으니깐.”
백호가 늠름한 척 말했다.
하지만 목소리는 본능적으로 기어 들어가고 있었다.
그만큼 범상치 않은 기도의 힘이 멀지 않은 곳에 도사리고 있음을 느끼는 것이다.
청룡 또한 그 힘의 수준을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조금의 표정 변화도 없이, 청룡은 창대를 들고 걸음을 옮겼다.
“다녀오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