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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의 모든 것-119화 (119/175)

귀환자의 모든 것 119화

드워프 전사들은 섣불리 나서지 못했다.

이미 준혁의 수준을 확인한 후였기 때문에 청룡을 쉽게 볼 수 없었던 것이다.

“나서지 마라! 나는 전사로서 싸우고 있는 중이다.”

팔콘이 성난 얼굴로 소리쳤다.

드워프 전사들이 침음을 삼키며 뒤로한 발자국 물러섰다.

전사에게 명예는 하늘과 같았다.

여기서 자신들이 나선다면 팔콘의 명예를 무시하는 셈이 된다.

그들은 얼굴이 일그러지고 있었지만 참고 지켜보았다.

“크으아아아아!”

팔콘이 다시 기합을 지르며 달려들었다.

처절한 감정이 느껴지는 공격이었다.

하지만 팔콘이 준혁을 넘어서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것은 지켜보고 있는 팔콘의 동료들조차 이미 느끼고 있는 점이었다.

막강한 힘을 가졌지만, 벨 수 없다면 그 힘은 무용지물인 셈.

“허억, 헉……!”

팔콘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거친 호흡이 그가 얼마나 심리적으로 지쳐 있는지를 증명하고 있었다.

닿지 않는 거리.

분명 눈앞에 손이 뻗으면 닿을 거리에 있었으나 팔콘에게 있어 준혁은 닿을 수 없는 존재였다.

아무리 좁히려고 해도 좁힐 수 없는 거리.

그게 팔콘과 준혁의 거리였다.

시간이 흐를수록 팔콘의 얼굴은 좌절과 절망으로 얼룩져 가고 있었다.

깨닫게 되는 것이다.

최선을 다하고 있지 않음을.

“왜 나를 베지 않는 것이냐? 전력을 다해라! 전력으로 나를 죽여라!”

“내가 왜 그래야 하지?”

준혁이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팔콘이 충격 먹은 표정으로, 어깨를 축 늘어트린 채 준혁을 보았다.

“나는 너희와 싸우러 온 게 아니다.”

“……?”

“자격을 갖추고, 신수를 찾으러 왔을 뿐이야.”

준혁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팔콘의 가슴을 사정없이 찔렀다.

자격이라는 말은 비수가 되어 팔콘의 심장에 틀어박혔다. 하지만 팔콘은 멈출 생각이 없었다.

싸우다 죽는 것이 전사의 혼이자 전사의 명예였으며 전사의 운명이었다.

팔콘이 어금니를 부서질 듯이 깨물며 준혁에게 달려들었다.

준혁이 목검으로 어깨를 후려쳤다.

뼈가 금이 갈 정도의 타격이었지만 팔콘은 고통을 참고 달려들어 양팔로 허리를 휘감았다.

“잡았다!”

팔콘이 핏발 선 눈으로 자신이 가진 최대의 힘으로 준혁을 조르기 직전.

쾅.

준혁이 왼손 주먹으로 팔콘의 등을 내리쳤다.

강한 충격과 함께 팔콘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팔콘은 이내 무릎을 꿇었다.

준혁의 허리를 잡고 있던 팔에 스르륵 힘이 빠졌다.

“쿨럭!”

팔콘이 한 움큼의 피를 토했다.

지켜보던 전사들이 움찔 몸을 떨었다.

안타까움이었다.

준혁은 팔콘을 내려다보면서 뒤로 물러섰다.

“그저 죽이고 빼앗는 것을 영광으로 아는 너희들에게 신수를 가질 자격은 없다.”

팔콘이 피로 물든 입을 손등으로 닦아 내며 웃었다.

“그러는 너는 대단히 거창한 이유라도 있나 보군.”

“거창하진 않을지 몰라도 더 나은 세상을 만들지.”

독기로 가득했던 팔콘의 얼굴이 흐려졌다.

“너희들보단 훨씬 의미 있는 일을 하려고 한다. 다시 말하지만 난 싸우러 온 게 아니야. 신수만 주면 물러간다. 탐욕 때문에 동족의 죽음과 희생을 당연한 것이라 생각하지 마라.”

“현자가 따로 없으시군.”

팔콘이 웃으며 천천히 일어섰다.

“잘 들어라. 드워프의 전사들아! 나 팔콘이 이곳에서 전사로서 공표한다. 내가 저자와 싸우다 죽는다면 신수를 내주어라. 이는 전사의 약속이니, 신수를 증표로 전사로서 나의 명예로움을 받아들여라.”

전사들의 일그러진 얼굴이 점차 전사의 명예로 물들기 시작했다.

준혁은 그들의 사고방식이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그들의 역사이자 문화가 시간을 쌓아 이루어져 온 것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너희들이 말하는 전사의 명예를 모욕하지 않겠다.”

준혁이 힘없이 웃으며 목검을 땅에 버렸다.

파지지직!

오러와 마력, 그리고 신성력이 뒤섞인 힘이 만들어 내는 힘과 함께 큐브 속에 들어 있던 헬바인의 장검이 나타났다.

드워프의 전사들이 눈이 빠질 것 같은 얼굴로 저절로 생성되는 검을 바라보았다.

“그대는 신인가? 신의 후예인가?”

팔콘이 넋이 나간 얼굴로 헬바인의 장검을 보다가 준혁을 향해 물었다.

“좋을 대로 생각해.”

팔콘이 각오를 굳힌 얼굴로, 전사의 혼을 담아 준혁을 향해 달렸다.

‘달라졌어.’

준혁이 살짝 놀란 눈으로 팔콘을 보았다.

큰 동작으로 빈틈을 드러내던 형태의 공격선이 달라졌다.

짧은 동선과, 직결성을 가진 공격이 들어왔다.

‘하지만 거기까지.’

수십 수백 가지 경우의 수를 1초도 되지 않아 계산하고, 최적의 검선을 찾아내는 것이 준혁이었다.

마계에서 천 년이 넘는 시간 동안 묵묵하게 쌓여 온 습관.

팔콘이 성장했다 하여도 그 간격을 메울 수는 없었다.

그의 도끼 공격을 피한 준혁이 검을 찔렀다.

헬바인의 장검이 팔콘의 심장을 찔렀다.

아니, 정확히는 심장 위였다.

“쿠륵!”

팔콘이 피거품을 문 채로 준혁을 보았다.

후련한 눈빛이었다.

그의 눈동자에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전사의 혼이 담겨 있었다.

전사의 명예를 지켰다는 안도감이기도 했다.

‘미안하지만, 그 명예보다는 네 목숨이 아깝다.’

준혁은 최대한 이 차원의 세계가 가진 운명을 망가트리고 싶지 않았다.

수호성과 달리 그들의 종족 간 순리는 자연스러웠다.

굳이 그 순리를 파괴하고 싶지는 않았다.

고민 끝에 내린 결정이었고 그 결정에는 청룡의 조언이 도움이 됐다.

털썩!

팔콘이 쓰러지자 몇몇 전사들이 침울한 표정이 되었다. 하지만 대부분은 명예로움 죽음을 정면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운이 좋다면 살 것이고, 운이 나쁘면 죽을 것이다.”

준혁의 말에, 전사들이 깜짝 놀란 얼굴이 되었다.

이내 그들 중 두 명의 전사가 의식을 잃고 쓰러져 있는 팔콘을 데리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준혁이 헬바인의 장검을 큐브 속으로 넣으면서 드워프의 전사들에게 걸어갔다.

“약속을 지켜야 할 차례다.”

팔콘을 죽이지 않았으니 명예를 지켜 주지 않았다고 다시 덤벼들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때를 대비했다.

정말 죽음을 원하는 거라면, 준혁으로서도 더 이상 방법이 없었다.

“마르코, 저 이방인에게 신수를 넘겨주어라.”

전사들 중 가장 어려 보이는 여전사가 우람한 체구의 드워프들 사이로 걸어 나왔다.

“……따라와라.”

강한 눈동자로 준혁을 노려본 여전사가 앞장섰다.

준혁이 뒤따라갔다.

백호를 허리에 끼고 있던 청룡도 준혁의 옆으로 사뿐하게 뛰어 따라붙었다.

“잘 해결됐군요.”

청룡이 앞서가는 여전사를 보면서 말했다.

“덕분이다, 청룡.”

청룡이 힐끔 곁눈질로 준혁을 보았다.

준혁은 미소 지은 얼굴로 여전사를 보고 있었다.

“도움이 됐다니 다행입니다.”

청룡도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드워프의 성은 아주 넓었다.

여기저기 대장간이 몇 개나 있었다.

무기와 방어구를 만드는 데 특출난 재능을 가진 자들이었고, 사냥한 마수를 통한 연구에도 꽤 열심인 듯했다.

드워프라는 종족도 나름의 문명 발전을 위해 노력 중인 것 같았다.

여전사를 따라가면서 드워프의 성 내부를 구경하던 준혁은 여전사가 멈춰 선 걸 보고 걸음을 멈추었다.

이곳은 주택가로 이루어진 곳의 중심가에 위치한 광장이었다.

분수대와 조금 떨어진 곳에 커다란 철창 우리가 있었다.

철창 우리 안에는 꾀죄죄한 몰골을 하고 있는 백호와 비슷한 나이를 가진 소년이 있었다.

다만 눈 밑은 다크서클로 가득했고 눈동자는 마치 죽어 있는 듯했다.

철창 우리 구석에서 무릎을 끌어안고 앉아 있는 녀석을 향해 다가갔다.

인간과 똑같은 모습을 한 아이었지만 다른 점은 이마에 뾰족한 뿔이 달려 있다는 것이었다.

멸마의 서에 의하면, 저 날카로운 뿔은 점점 성장함에 따라 부드러워진다.

어린 시절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가진 뿔이 점차 마력의 저장 기관으로 변하는 것이다.

기린임을 확신한 준혁은 철창 안에 갇힌 것을 보고서 서서히 분노가 들끓었다.

“왜 이렇게 가둬 둔 거지?”

준혁이 화난 눈으로 여전사를 보며 물었다.

여전사는 오히려 원망스럽다는 듯이 우리 안의 기린을 노려보고 있었다.

“스스로 원한 거다.”

“뭐? 스스로를 가둔다니.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나?”

여전사가 허망한 눈으로 기린을 응시한 채 입을 열었다.

“노력을 기울였지. 우리의 가족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저 녀석은 우리에게 마음을 열지 않았어.”

준혁이 다시 기린을 보았다.

기린은 고개를 푹 숙인 채 세상과 단절되어 있었다.

여전사의 말대로 마음의 벽이 닫혀 있는 듯했다.

“노래를 하면 밥을 주었다. 녀석은 그걸로 만족한다는 듯 그 이상 우리에게 어떠한 거리도 내주지 않았지.”

여전사가 어깨를 으쓱였다.

“그에 우리들은 이미 익숙해져 있었다.”

“그게 자랑인가? 차라리 그럴거면 엘프들한테 돌려줬어야지.”

“어째서? 우리는 죽을 만큼 노력하며 장비를 만들어 낸다. 스스로 진화하기 위해! 그에 반해 저 녀석은 노래 한 번만 하면 원하는 대로 살 수 있지.”

“저게 스스로가 원하는 삶인 것 같나? 결국 가둬 둔 건 너희들이야.”

“어떠한 존재도 희생을 피할 수는 없는 법이다. 원대로 살 수 없지.”

마음 같아선 얼굴을 한 대 날려 버리고 싶었지만 그들의 문화 안에서는 당연한 논리일지도 몰랐다.

그들에겐 아직 야만적인 본성이 남아 있어 보였으니까.

화를 낸다고 하더라도, 전혀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굳이 더 상대하고 싶지도 않아 준혁은 짧은 한숨을 뱉는 것으로 마무리를 대신했다.

그때.

“내려 줘. 청룡 형아.”

백호가 커다랗게 뜬 눈으로 철창 안의 신수, 기린을 바라본 채로 말했다.

청룡이 백호를 내려 주었다.

땅에 발을 디딘 백호가 타닥 소리를 내며 기린에게 뛰어갔다.

기린이 갑자기 뛰어오는 백호를 보고 화들짝 놀라며 어깨를 떨었다.

백호가 철창을 붙잡고 우리 안에 갇혀 있는 신수 기린을 내다보았다.

“안녕?”

백호가 동그랗게 뜬 큰 눈으로 철창 사이에서 인사를 건넸다.

겁에 질리고 경계심이 가득한 눈으로 무릎을 더 세게 끌어안았다.

대답이 없는 기린을 보고 백호가 “히이!”하고 웃었다.

기린이 뚱한 눈길로 그런 백호를 보았다.

여전히 내성적이고 경계심을 지우지 않은 눈빛이었지만 아주 약간, 일말의 호기심이 기린의 눈동자에 어리고 있었다.

“아직 우리 말을 못 알아듣나? 하긴 나도 배웠으니까. 모르는 게 당연한 거구나. 으음.”

백호가 빙긋 미소 지었다.

기린이 눈을 깜박이며 백호를 빤히 올려다보았다.

무릎을 끌어안은 폼이 아주 조금씩 풀리고 있었다.

“너 뿔 되게 멋지다!”

“……?”

백호가 히이 웃으며 자신의 이마를 툭툭 쳐 보였다.

신수 기린의 뿔을 가리키는 행동이었다.

기린도 그것을 눈치채고는 얼굴이 빨개졌다.

기린은 황급히 꾀죄죄한 손으로 자신의 이마에 달린 뿔을 가렸다.

마치 부끄럽다는 듯이. 그러고선 아주 몸을 가늘게 떨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기린은 그동안 다른 이들과 전혀 다른 외모를 갖고 있는 자신을 이상하다고 느낀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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