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자의 모든 것-118화 (118/175)

귀환자의 모든 것 118화

골절을 입은 드워프들은 연신 앓는 소리를 냈다.

지독한 통증 때문에 다시 일어서는 것도 곤욕이었고 괴물 같은 준혁에게 다시 덤벼들고 싶은 마음도 들지 않았다.

고요하게 서 있는 준혁은 거대한 존재감으로 드워프들에게 공포를 주고 있었다.

적당히 정리를 했다 싶은 준혁이 성벽 아래, 드워프들의 성 안쪽으로 휙 뛰어내렸다.

높은 성벽 아래, 지면으로 착지하자 도끼를 든 드워프들이 우르르 뛰어오고 있었다.

그 수가 약 50여 숫자에 달했다.

준혁은 그들을 훑어보며 엘프들이 왜 저들 드워프에게 당한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단단해 보이는 갑옷과 튼튼한 무기들.

눈에 박혀 있는 의지에서 볼 수 있는 멘탈.

그리고 수적 우위.

아마 그 차이에 엘프들이 주도권을 잃고, 침략을 당해 왔으리라.

“신수를 찾으러 왔다. 내 것이니 저항하지 말고 길을 열도록.”

준혁이 목검을 아래로 늘어트린 채, 느긋한 목소리로 말했다.

준혁의 앞으로 반원 형태로 진을 친 드워프들 얼굴이 울그락불그락 달아올랐다.

“우린 드워프 전사다. 두려워하지 마라!”

“감히 신수를 들먹이다니.”

“이방인을 죽여라!”

준혁은 떼거리로 달려드는 드워프들을 보며 짧은 한숨을 뱉었다.

그러곤 목검을 길게 휘둘렀다.

준혁의 목검은 청룡이 나무를 잘라 급조하여 만든 것이지만 그것조차 준혁이 들면 굉장한 힘을 발휘한다.

신성력이 깃든 마력이 달려오는 드워프들을 휩쓸었다.

후우웅!

최대한 적은 마력을 썼는데, 죽이지 않기 위해 마력을 컨트롤 하는 것이 훨씬 더 어려운 일이었다.

자유롭게 마력을 분출하던 습관 때문이었다.

나름 신경을 써서 마력을 제어하자 다행히 그 효과를 봤다.

드워프들이 태풍에 휩쓸려가는 개미처럼 허공을 날았다.

그들은 줄줄이 바닥으로 쓰러져 나가며 신음을 흘렸다.

개중엔 크게 다친 이들도 없지 않아 있었다.

힘을 조절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준혁이 가진 힘의 특성 때문이었다.

준혁의 힘에는 세 가지의 힘이 깃들어 있었다.

인간계 대기에 흐르는 마나의 힘 오러. 그리고 악마를 사냥하며 키운 마력의 힘과 멸마의 서를 통해 얻은 신성력까지.

그렇게 세 가지의 힘이 들어 있다 보니 힘을 조절한다고 하더라도 부작용은 생길 수밖에 없었다.

다행인 점은 크게 다친 드워프는 있어도 죽은 드워프는 없었다는 것이었다.

“우와, 한 방에 날아가 버렸어. 쪼그만 아저씨들 말이야.”

청룡이 준혁의 뒤로 착지할 때 여전히 옆구리에 매달려 있는 백호가 청중처럼 말했다.

마치 연극을 보는 듯이 반응하고 있는 백호였다.

반면 청룡은 의문이 담긴 시선으로 드워프들을 보고 있었다.

비록 엘프들에 비해 더 나은 환경에 있다고는 하나 그렇다고 해서 이 정도만으로 엘프들의 숲을 침략하여 약탈할 만큼이라고는 느껴지지 않아서였다.

그런 청룡의 의문을 풀어 줄 목소리가 어디선가 흘러나왔다.

“드워프의 진짜 전사들이 올 것이다! 굴복하지 말고 싸워라! 굴복하는 자신의 노여움을 살 것이니!”

한 늙은 드워프가 소리쳤다.

하지만 드워프들은 이미 부상당한 상태라 좀처럼 몸을 일으키지 못하고 있었다.

진짜 전사라 함은 이들은 전사가 아닌 평범한 계급의 사내란 뜻일까?

준혁 역시 의문을 품은 눈으로 진짜 전사가 오기를 기다렸다.

어차피 이들의 전력을 무너트리고 의지마저 박살 내야 했다.

그럼 순순히 투항의 의지를 내비칠 것이다.

준혁은 목검으로 목을 툭툭 안마하듯이 두드리며 그들이 말한 진짜 전사가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그렇게 대기하기를 잠시 커다란 성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준혁은 느긋하게 성문을 돌아봤다.

바깥으로 사냥을 나갔던 드워프 전사들이 성문을 통해 들어오고 있었다.

여러 수레에는 마수로 추정되는 뭔가가 조각난 채 실려 있었다.

준혁의 눈동자가 일순 반짝였다.

성문을 통과하며 들어오는 드워프들은 방금 전까지 싸웠던 드워프들이랑은 전혀 달라서였다.

일단 피지컬부터가 전혀 다르다.

허리까지밖에 안 오는 키의 드워프들과 달리 사냥을 나갔다가 돌아오는 드워프들은 보통 인간의 평범한 키를 갖고 있었다.

게다가 근육이 굉장했고 전체적으로 하나같이 헤비급의 육체였다.

마치 스파르타 군대를 보는 듯했다.

흉흉한 눈빛은 전사의 혼이라 할 만했다.

드워프의 전사들은 땅에 나뒹굴고 있는 드워프 일꾼들을 보며 인상을 썼다.

스무 명의 드워프 전사들의 시선이 곧 준혁에게 향했다.

그들의 눈은 마치 귀신처럼 번쩍이고 있었다.

마치 전투를 위해 태어난 것 같은 눈동자를 하고 있는 자들이었다.

준혁은 그들을 보면서 손에 쥐고 있는 목검을 내려다보았다.

“어디서 나타난 놈이냐?”

전사들 중, 상처가 유독 얼굴에 많은 사내가 준혁의 앞으로 걸어 나왔다.

드워프 전사의 우두머리는 칼을 쥐지 않은 채였다.

준혁은 목검을 다시 어깨에 걸치며 그의 눈동자를 똑바로 보았다.

“봐서 알겠지만, 이방인이고 목적은 신수다.”

“……신수?”

“데려가려고 왔지.”

우두머리가 기가 찬다는 듯이 어깨를 들썩이며 헛웃음 소리를 냈다.

“미쳐도 단단히 미쳤군. 여기가 어딘 줄 알고.”

“다들 그런 반응이었다.”

준혁이 목검을 보며 말을 이었다.

“나한테 맞기 전까진.”

이가 갈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준혁은 느긋하게 드워프의 전사들을 훑어보았다.

아마 한 번에 덤벼들겠지.

준혁은 그렇게 생각하며 드워프 전사들을 보았다.

‘평범한 놈들이 아니라서 적당히 두드려 팬다고 말을 들을 것 같진 않지만.’

본래 전사란 고집이 세고 자존심이 강했다.

쇠심줄처럼 질긴 성격을 꺾기란 어려워 보였다.

‘정 안 될 것 같으면 서큐버스를 쓰는 것도 방법이긴 하나.’

준혁이 씁쓸하게 혀를 찼다.

서큐버스의 힘은 한 번 대상의 정신 속으로 들어가게 되면 대상의 영혼을 갈기갈기 찢어 버린다.

결국 깨어나도 점점 미쳐 버린 상태로 변해 버릴 수밖에 없게 된다.

마계의 힘은 그런 식으로 항상 찜찜하고 더러운 능력이라 준혁이 싫어하는 것이었다.

백호를 찾을 땐 방법이 없었지만 가급적이면 최대한 대화 안에서 해결하고 싶었다.

“분명히 말해 두지만 난 신수의 주인이 될 자격을 갖고 이곳으로 왔다. 단순히 너희들처럼 무작정 신수를 빼앗아 드는 놈들은 아니라는 거야.”

드워프 전사들은 말없이 전투 본능을 깨우고 있었다.

“말이 통할 것 같진 않지만, 굳이 싸우겠다면 가르쳐주마. 격차를 느낄 수 있도록.”

우두머리가 비릿하게 웃으며 준혁의 앞으로 몇 발자국 더 가까이 걸어 나왔다.

그러곤 턱짓으로 준혁이 들고 있는 목검을 가리켰다.

“겨우 그딴 걸 가지고 우리를 상대하겠다는 말이냐?”

우두머리가 자신들의 동료 전사들을 돌아보며 웃었다. 동료들이 커다랗게 웃었다.

“나무를 잘라 만든 이 목검에 저 친구들이 저렇게 누워 있지. 부끄러움을 모르는군.”

“우리가 일반적인 일꾼들과 같을 거라고 생각하면 오산이지. 우린 진짜 전사다!”

“내가 진짜 검을 들면 너희들은 죽는다.”

준혁의 고요한 눈빛을 보고 드워프 전사들의 얼굴에 웃음기가 사라졌다.

“그러니 기도해라. 내가 검을 들지 않기를.”

우두머리가 어금니를 빠드득 갈았다.

“거만함과 오만함이 도를 넘는구나.”

우두머리가 치렁치렁 긴 머리를 질끈 묶더니 도끼자루를 꽉 잡았다.

“드워프가 전사가 없었다 해도. 고작 그 인원으로 이 드워프의 성안으로 들어온 건 그래. 칭찬해 주지. 하지만 거기까지다. 나 드워프의 제왕 하콘.”

자신의 이름을 하콘이라 밝힌 우두머리가 도끼날을 준혁을 향해 세우며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웃었다.

“너희 이방인들을 신의 제물로 삼아 주지.”

“혼자?”

준혁이 의아한 눈으로 그를 보며 물었다.

“너 같은 피라미를 잡는 데에는 나 하나면 충분하지.”

“음.”

준혁이 의외라는 듯 하콘을 보며 목검을 어깨에 툭툭 쳤다.

“어차피 패배하면 종족을 위해 자존심 따윈 버리고 총공세를 쏟아부을 놈들이. 하나같이 입만 살아서는.”

그의 동료들이 불끈하여 나서려 하자 하콘이 도끼를 들어 보이며 막았다.

하콘의 에메랄드빛 눈동자에 전사의 의지와 열정이 서렸다.

“나 하콘이 약속하지. 만약 그대가 나와의 승부에서 이긴다면 신수를 내주겠다.”

전사 동료들과 일꾼 드워프들이 깜짝 놀랐지만, 우두머리 하콘은 흔들림이 없었다.

준혁은 내심 쾌재를 불렀다.

설마 했는데, 도발이 통했다.

“약속은 지켜라.”

“그 자신감, 죽음 속에서 후회하게 될 거다.”

하콘의 동료 전사들이 팔짱을 끼거나 허리에 손을 얹은 채 강한 눈빛으로 둘의 싸움을 지켜보기 위해 하나둘, 관람하기 좋은 곳에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대결이라니.”

준혁이 옅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한 수 가르쳐 주마. 이 배움의 기회를 감사히 여겨라. 하콘.”

하콘의 얼굴이 분노로 상기됐다.

준혁의 진심이었지만 하콘은 그렇게 받아들이지 않는 듯했다.

그는 모욕을 갚기 위해 목숨을 걸 수 있는 자였다.

“건방진! 전사의 명예는 곧 하늘과도 같다. 너의 입을 잘라, 신에게 받칠 것이다.”

“대체 뭐가 그토록 빛나는 명예야? 내가 볼 땐 결국 너도 불안과 두려움으로 신에게 기대는 나약한 존재일 뿐이다. 하콘.”

더 이상의 입씨름은 필요 없다는 듯이 하콘의 도끼에 본격적인 싸움을 예고하듯 새파란 오러의 힘이 맺혀 들기 시작했다.

준혁은 제법이라는 생각을 했다.

엘프와 비교하면, 지금 팔콘의 힘은 그야말로 압도적이었다.

어떠한 엘프도 저 정도 힘에는 저항할 수 없으리라.

단단하게 준비한 엘프의 수성조차 단신으로 뚫을 법한 수준의 힘이었다.

“제법이네.”

준혁이 말에 팔콘의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다.

팔콘이 디디고 서 있는 땅이 금이 가며 깨져 나갔다.

오러에 의한 반응이었다.

뒤이어 질풍처럼 달려온 팔콘이 도끼를 크게 휘둘렀다.

하지만 그 전에 가볍게 찌른 목검이 팔콘의 목젖을 찔렀다.

퍽-!

“커억!”

팔콘이 목을 붙잡고 켁켁거렸다.

“별로 빠르지도 않으면서 동작이 크니까 당하는 거다. 공격의 선 자체를 모르는군.”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었다.

문명의 발전이 늦은 만큼 효율적인 싸움에 대한 기본기조차 갖춰져 있지 않았다.

비상식적으로 강한 힘과 타고난 마나감응력으로 쌓아 올린 실력일 것이다.

준혁의 예상과 크게 다르지 않은 정도였다.

다만 저 팔콘이라는 자가 휘두르는 도끼와 이 목검이 정면 충돌하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마력을 두른다고 해도 어쩌면 목검이 부러져 나갈지도 몰랐다.

준혁이 평가하기에 그의 오러는 상당했다.

‘무에 대한 기본 이해가 없어서 굳이 목검을 맞댈 필요도 없어 보이긴 하지만.’

“크으윽……!”

팔콘이 분한 얼굴로 다시 준혁에게 달려들었다.

‘다시 큰 동작.’

준혁이 도끼를 피하자 도끼는 그대로 땅을 찍었다.

오러의 힘이 땅을 깨트리고, 그 파장으로 준혁의 중심이 살짝 흔들렸다.

팔콘이 그 틈을 노리고 다시 도끼를 휘둘렀다.

‘생각이라는 걸 한 모양이지만.’

준혁이 냉정한 표정으로 팔콘을 보며 그의 허벅지를 목검으로 후려쳤다.

단순한 목검이 아닌 꽤 힘이 실린 타격.

“크흑……!”

팔콘이 잇새로 신음을 뱉으며 한쪽 무릎을 꿇었다.

“무식한 힘만 믿고 도취되어 살고 있으니 그 모양인 거다. 침략으로 편하게 탈취할 머리 밖에 안 되니 그 수준이겠지만.”

준혁의 말에 분노한 동료들이 나서려고 하자 그 길을 청룡이 막았다.

전사들이 우뚝 멈추었다.

“뭐야? 이 꼬맹이는?”

청룡이 무표정한 얼굴로 그들을 향해 창을 거꾸로 들었다.

“지금부터 한 발자국만 더 움직여라. 그럼 내가 교육해 주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