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자의 모든 것 114화
이른 아침.
백호는 눈을 뜨자마자 침대 위에서 양팔을 번쩍 들었다.
“씬난다아아아!”
백호의 우렁찬 목소리가 캐슬 전체를 울릴 정도로 커다랗게 퍼져 나갔다.
캐슬의 직원들이 깜짝 놀랐지만 그건 잠깐이었다.
그들은 이제 익숙하다는 듯이 다시 하던 일을 이어 갔다.
타다다다다닥!
백호가 빠른 발소리를 내며 거실로 내려와 주변을 휘휘 둘러봤다.
“무얼 그리 찾으시는지?”
집사가 빙그레 미소 지으며 물었다.
“주인님!”
백호가 눈을 또랑또랑하게 뜨며 말했다.
“귀환자님이라면 지금쯤 호수 앞에 계실 겁니다.”
“청룡 형아는?”
“연무장에서 일찍 수련을 하신다고 나갔지요.”
“으음.”
백호는 고민하는 표정을 짓더니 결정을 내린 듯 고개를 끄덕였다.
“고마워, 집사님!”
“별 말씀을요.”
거실 유리문을 열고 마당으로 나간 백호가 호수가 있는 쪽으로 쏜살같이 내달렸다
집사는 그런 백호를 지켜보다가 흐뭇하게 웃음 지으며 걸음을 옮겼다.
“집사님, 좋은 아침입니다.”
선우가 술이 덜 깬 얼굴로 나오며 인사했다.
“좋은 아침입니다, 협회장님.”
선우는 소파에 앉아 머리를 감싸 쥐었다.
“와아, 이제 형한테 술로도 못 이기는구나.”
멍하니 천장을 보던 선우가 좌절감에 물든 얼굴로 이마를 탁 쳤다.
그 소리에 깜짝 놀란 지우가 다가왔다.
“협회장님?”
“아, 매니저님. 지금이 몇 시죠?”
“이제 7시예요.”
“으음, 조금 더 잘 걸 그랬나.”
“주무세요, 깨워 드릴게요.”
“아아, 괜찮아요. 다시 잠드는 건 잘 못 하는 타입이라.”
“하하, 그러시군요.”
지우는 거실 유리창 바깥을 내다보았다.
호수 앞에서 백호가 재롱을 떨듯이 준혁 앞에서 떠들고 있는 게 보였다.
“형은요?”
“지금 호수 앞에서 백호랑 놀아 주고 계시네요.”
“백호는 아침부터 펄쩍 펄쩍 뛰고 있겠죠?”
지우의 미소가 짙어졌다.
“그러네요.”
“체력도 좋지. 젊은 게 부럽구먼.”
할아버지처럼 말하는 선우를 지우가 재밌다는 듯 돌아보았다.
“식사하셔야죠?”
“네, 그래야죠.”
다이닝 룸에서 식사 준비가 거의 다 끝나 가고 있었다.
지우는 식사를 알리기 위해, 슬리퍼를 신고 정원으로 나갔다.
아침이라 그런지 바람이 시원했다.
지우는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호수가로 걸어갔다.
“그럼 우리 몇 시에 출발해요? 예? 예?”
“한 번만 물으라고 했지?”
준혁이 무형의 힘을 쓰자 백호가 허공으로 두둥실 떠올랐다.
“으갸갸!”
백호가 버둥거리며 안간힘을 썼지만 그 보이지 않는 힘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었다.
백호가 호수 위로 둥둥 뜬 채로 이동했다.
“으어어, 그, 그러지 마세요. 강물은 싫단 말이에요! 무서워요!”
“질문은 한 번만.”
“네! 알았어요! 알았어요, 주인님!”
준혁이 다시 백호의 위치를 옮겨 땅에 내려 주었다.
“출발 시간은 오전이다. 밥 먹고 나면 준비해.”
“헉! 헉! 네에... 주인님.”
백호가 가슴을 쓸어내리며 오버스럽게 심호흡을 했다.
“귀환자님, 식사하셔요.”
지우가 뒷짐을 진 채 다가와 말했다.
“백호. 가서 청룡 데려와.”
“네에에!”
백호가 연무장을 향해 짐승형 호랑이로 변해 출렁거리며 뛰어갔다.
“말썽쟁이가 귀환자님 말씀에는 꼼짝 못하네요.”
준혁이 멀어지는 백호를 보며 피식 웃었다.
“한 오전 10시쯤에 출발 할 거야. 최설화 힐러한테는 그쯤에 프로텍트 마법 좀 부탁한다고 전달해 주고.”
“네, 그럴게요. 이번에 가시면 또 새로운 신수가 오겠네요?”
“아마도. 특별한 일이 없다면 그렇겠지. 아니면 지금까지 운이 좋았던 걸 수도 있고.”
지우와 함께 거실로 들어가자 선우가 바람 빠진 풍선처럼 소파에 널브러져 있었다.
“숙취?”
준혁이 피식 웃으며 묻자 선우의 얼굴에 승부욕의 분노가 어렸다.
“어젠 피곤했을 뿐이야. 아침부터 제대로 달려 봐?”
“북어국이나 먹어.”
“윽…….”
준혁이 다이닝 룸으로 가면서 말하자 선우가 좀비처럼 따라붙었다.
“이렇게 속이 안 좋은 건 진짜 오랜만이라니까. 그러고 보니 형 마력으로 알콜 날린 거 아니야? 내가 그렇게 쉽게 뻗을 리가 없는데.”
“밥 먹어.”
해장국은 종류별로 펼쳐져 있었다.
선우는 팔팔 끓는 북어국을 그릇에 담은 뒤 힘없이 식사를 시작했고 마침 청룡과 백호도 들어왔다.
“식사가 끝나고 잠깐 쉬고 나면 어비스로 가야 하니 준비들 해. 딱히 준비할 건 없겠지만.”
준혁의 말에 청룡과 백호가 대답을 하곤 식사를 시작했다.
아침부터 고기를 뜯어먹는 백호를 신기하게 보며 청룡도 식사를 했다.
“청룡군, 식사는 입에 맞아요?”
메이드 직원의 물음에 청룡이 눈을 진지하게 떴다.
“예, 이곳 캐슬의 음식은 정말 맛있습니다. 제가 상당히 까다로운 입맛임에도 불구하고, 감탄할 정도입니다.”
“호호, 말도 얼마나 예쁘게 하는지. 많이 먹어요.”
메이드 팀장이 떠났다.
청룡이 기분좋게 반찬을 집으려고 하자 백호가 젓가락으로 휙 뺏어 갔다.
청룡이 의아한 눈으로 백호를 보았다.
백호는 청룡이 먹으려고 했던 장조림을 오물오물 먹으며 장난스런 표정으로 웃고 있었다.
“먹는 걸로 장난치지 마라.”
준혁의 목소리에 장조림을 오물거리던 백호의 얼굴 표정이 그대로 멈추었다.
웃고 있던 얼굴이 긴장으로 딱딱하게 굳어져 갔다.
그 모습을 보고 청룡은 얼굴을 절레절레 흔들며 나물 반찬을 먹었다.
* * *
오전 9시.
잠이 덜 깬 최설화가 연무장에 프로텍트를 설치하는 동안 준혁은 1시간 후에 출발이니 청룡과 백호에게 늦지 않게 준비하라고 일러두었다.
이후 준혁은 커피를 들고 정원으로 나와 스마트폰을 보며 걸었다.
현재까진 특별히 던전에 대한 뉴스가 뜨지 않고 있었다.
만약 던전과 관련된 정보가 뜬다면, 뉴스에 뜨기 전에 선우가 먼저 알려 줄 것이었지만 어비스에 가기전 아마도 마음이 조금 걸리는 모양이다.
자꾸 이렇게 세계 뉴스에 눈이 가는 걸 보면.
준혁은 혀를 차면서 스마트폰을 재킷 안 주머니에 넣었다.
‘대체 리더보더 1위부터 9위는 어디서 뭘 하고들 있는 거야?’
준혁은 나름의 불만을 뇌까리며 혀를 찼다.
그들이 제대로 힘을 합치기만 해도 블랙 던전 정도는 막을 수 있을 듯싶어서였다.
물론, 선우에게 만약 자신이 돌아오지 않은 상황에서 블랙 던전이 나타난다면 숨어 있는 리더보더를 찾아내 보라고 말해 두었다.
그게 가장 효과적인 방법일 테니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게 베스트이긴 했지만 무슨 일이 벌어질지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일본에서 블랙 던전의 게이트 파장으로 무려 112명의 헌터들이 던전핵이 된 것처럼.
준혁은 짧은 한숨을 뱉곤, 남은 커피를 마저 마셨다.
* * *
프로텍트는 완벽히 설치되어 있었다.
사람을 물리고, 준혁과 청룡, 그리고 백호만이 연무장 안에 위치했다.
청룡은 태연한 얼굴이었지만 백호는 긴장이 가득한 표정으로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있었다.
[어비스의 문을 생성합니다.]
균열의 조각과 열쇠가 하나로 합쳐지며 게이트를 만들어 냈다.
강대한 마력의 파장이 사방으로 뻗어져 나가 힐러 최설화가 만든 프로텍트 벽과 충돌했다.
굉음이 퍼지자 백호가 눈을 질끈 감으며 양손으로 귀를 틀어막았다.
그에 반해 준혁과 청룡은 푸른빛을 쏟아내며, 차원의 공간을 찢어 내는 눈부신 게이트를 응시했다.
준혁이 눈짓으로 신호를 주고 먼저, 어비스의 문을 넘었다.
청룡은 여전히 귀를 막고 눈을 감고서 떨고 있는 백호의 멱살을 잡아당겼다.
청룡이 백호를 데리고 준혁의 뒤를 따라 어비스의 문을 넘었다.
의식이 사라지고 아득한 차원을 넘어 새로운 세계에 발을 디뎠다.
눈을 뜨자 아름다운 풍경이 눈 안에 들어왔다.
숲이었다.
그동안 보아왔던 숲과는 질적으로 다른, 신비로움으로 가득했다.
“와아.”
백호가 숲의 나무들을 보며 감탄했다.
그도 그럴 것이 나무에는 신비로운 빛을 뿌리는 수많은 나비가 날아다녔다.
대낮부터 반짝반짝 오색찬란하게 빛나는 거대한 나무들은 가히 장관이었다.
일러스트에서나 볼 법한 장면이 눈앞의 현실인 것이다.
[새로운 차원으로 진입했습니다.]
[정보를 읽고 있습니다.]
[더 월드 시스템 업데이트 완료.]
[‘요정의 숲’에 도착했습니다.]
[언어 패치 완료.]
준혁은 천리안을 켜면서 지형부터 체크했다.
“백호, 들뜨지 말고 집중해라. 낯선 곳이다.”
준혁이 무게를 실은 목소리로 말했다.
백호가 마른침을 꼴깍 삼키며 얼굴을 크게 끄덕였다.
“네, 주인님.”
“청룡, 귀찮더라도 백호 좀 신경 써. 나도 여긴 처음 오는 곳이다. 정보가 없는 만큼 위험할 수 있어.”
“예, 백호는 걱정 마십시오.”
청룡이 주변을 경계하며 말했다.
준혁이 앞장서서 걸었다.
이곳은 신비로운 숲은 생명으로 가득했다.
특이한 외모의 작은 동물들이 보였고 새들은 순간이동을 통해 이동하기도 했다.
온통 긍정적인 에너지로 가득한 숲이었다.
걸음을 옮기던 준혁의 시선이 한 쪽으로 날아들었다.
나무 뒤에 숨어 이쪽을 지켜보고 있는 존재가 있었다.
아름다운 얼굴에 뾰족한 귀.
시스템이 [엘프 종족]이라고 알려 주었다.
엘프들이 사는 세계.
즉 어비스를 넘어 새로운 차원으로 도착한 이곳은 요정들의 숲이었다.
몰래 지켜보던 엘프 하나가 준혁의 시선을 눈치채고는 다람쥐처럼 사라졌다.
이방인의 침임을 확인했으니, 아마 전사들을 데리고 올 것이다.
구역을 지키는 것은 종족을 막론하고 공통적인 본능의 역할이니까.
아니나 다를까, 얼마 이동하지도 않아 준혁의 무리는 완전히 포위당하고 말았다.
미리 매복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수십 명의 엘프들이 나무 위에서 화살을 겨누고 있었다.
평범한 화살, 혹은 마나를 품은 화살이라고 해도 별달리 위협은 못 된다.
그 정도는 충분히 막아 낼 자신이 있었다.
‘아직까진 신수의 존재를 알아차리지 못하는 건가?’
준혁이 그렇게 생각했을 때.
수풀 사이로 누군가 나타났다.
건장1한 체구의 사내였는데, 우락부락한 근육과 어울리지 않게 매력이 쏟아지는 잘생긴 얼굴이었다.
그는 나무 위에서 화살을 겨누고 있는 엘프들과는 달리, 아주 얇은 검을 쥐고 있었다.
“감히 요정의 땅을 밟다니. 고작 셋이 전부인 건가?”
청룡과 백호는 사내의 말을 알아듣지 못했다.
더 월드의 시스템 해석으로 인해 말귀를 알아들을 수 있는 건 준혁이 유일했다.
“불필요한 싸움은 피하고 싶은데.”
준혁은 지난 기억을 떠올렸다.
하나같이 진득한 싸움을 해야 했던 건 유쾌한 기억이 아니었다.
“네놈들이 누군지 알고 너희를 받아 준단 말이냐?”
“다 죽는 것보단 낫겠지.”
여유롭던 눈빛이 곧 무겁게 굳어졌다.
“우리의 화살이 보이지 않나?”
“보여.”
“겁먹지 않는군.”
“그럴 만하니까.”
사내가 눈매를 가늘게 좁히며 고개를 갸웃했다.
“정말 대화를 원하는 거라면 왜, 요정의 땅을 밟았는지, 너희들이 누구인지, 말해 주시지?”
“신수를 찾기 위해 왔다.”
사내의 눈이 커졌다.
“……방금 뭐라고 했지? 신수?”
나무 위에서 화살을 겨누고 있던 엘프들이 놀라는 게 느껴졌다.
아주 작은 목소리로 술렁이기까지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