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자의 모든 것 113화
“귀환자님. 이번 블랙 던전도 그렇고, 일전에 벤자민 사건 당시 그동안 보지 못했던 새로운 얼굴을 볼 수 있었는데요. 귀환자님께서 그를 명칭하길 청룡이라고 했었죠?”
MC김하준의 질문에 준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굉장히 어려 보였는데도 불구하고, 테러리스트였던 벤자민을 제압하기까지 했죠. 대체 누굽니까? 그 청룡이라는 분은.”
“제 신수입니다.”
“신수…… 요?”
준혁의 말에 MC김하준은 벙 찐 표정이 되었다.
버젓이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는데 신수라니.
관중석의 반응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모두 놀라고 있었고, 준혁의 말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했다.
“잠시, 정리가 안 되는데. 신수라면, 제가 알고 있는 그 신화 속 동물. 신수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네, 맞습니다.”
못을 박는 대답에, MC김하준을 필두로 2만 명의 관중이 충격에 빠졌다.
“대체 어떻게 신수를 만나게 된 겁니까?”
“차원계 관련이라 조금 대답하기 어렵지만 중요한 건 이들은 제 가족이라는 겁니다. 신수이기 이전에요.”
관객들이 일제히 감탄했다.
준혁의 결코 평범하지 않은, 새로운 가족에 대해 놀라면서도 대부분 어째서 준혁과 함께 있었는지.
그리고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청룡이 벤자민을 잡을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서도 관중들은 이제 조금은 알겠다는 얼굴이 되고 있었다.
“그럼. 그 두 분의 신수를 무대로 모셔 볼까요?”
MC김하준의 소개에 관중들이 눈이 빠질 것 같은 얼굴로 무대를 향해 목을 뺐다.
음악 소리와 함께, 넓은 무대 위로, 청룡과 백호가 나타났다.
선우는 무대에서 빠져 주었고, 그 자리를 청룡과 백호가 대신했다.
포커페이스의 청룡과 달리 백호는 긴장 백배로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MC김하준과 준혁 사이로 청룡과 백호가 의자에 앉아 자리에 위치했다.
“이분은 모두 잘 알고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더 월드를 통해서 봤기 때문이죠. 청룡님, 안녕하세요?”
MC김하준의 인사에, 청룡이 고개를 살짝 끄덕이는 걸로 대답을 대신했다.
차가운 태도에 MC김하준이 어색하게 웃었다.
당황스러웠지만 바로 다음 신수에게로 질문이 넘어갔다.
“옆에 계시는 분은 귀환자님이 거론한 적 있던, 백호. 맞나요?”
“맞습니다.”
준혁이 백호를 보며 마이크를 들고 답했다.
백호는 양 주먹을 꽉 말아 쥔 채, 무릎에 손을 얹은 채로 한껏 경직되어 있었다.
“많이 긴장한 것처럼 보이는데 하하. 백호군, 괜찮나요?”
대형 스크린 화면에 딱딱하게 굳어 있는 백호의 모습이 비치고 있었다.
잔뜩 긴장한 백호를 보고, 관중석에서 웃음을 터트렸다.
관중들이 웃자 백호의 얼굴은 더 긴장하면서 눈동자가 사정없이 떨리고 있었다.
“백호군?”
“네, 넷?”
백호가 마이크를 들고 허둥지둥 대답했다.
MC김하준이 귀엽다는 듯이 웃었다.
관객들 모두 같은 마음이었다.
인형 같은 외모에 잔뜩 얼어 있는 백호는 귀여움의 절정이었다.
더욱이 준혁의 신수이니 긴장한 모습도 예쁘게 봐 주고 있었다.
“지금 캐슬에서 귀환자님이랑 같이 지내고 있는 건가요?”
“네! 청룡 형아랑 같이 살고 있어요. 맛있는 것도 많이주고. 지우 누나도 잘해 주고. 엄청 좋아요!”
“하하, 그렇군요. 백호군은 던전에서 사냥을 해 본 경험이 있나요?”
“네, 열심히 실력을 키우고 있뜹니다.”
아직 어눌한 말투에, 관객들이 입가에서 웃음을 지우지 못했다.
“귀환자님, 백호의 실력은 어느 정도일까요?”
준혁이 마이크를 입가로 가져갔다.
“아직 많이 부족하긴 하지만, 잠재력도 높고. 기대했던 것 이상으로 훨씬 잘해 주고 있습니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정말 놀랄 만큼.”
준혁의 말에 관객들이 오오~! 하며 추임새를 넣었다.
“백호 귀엽다!”
“백호 멋있어~!”
“백호 파이팅!”
관객들이 이곳저곳에서 백호를 향한 응원의 외침을 보냈다.
그 소리를 듣고 기분이 좋아진 백호가 히이 하고 웃었다.
그 살인미소에 여자들이 하나같이 까르르 웃었다.
“그럼 이제 앞으로, 귀환자님은 던전 사냥을 신수들과 함께 가시는 건가요?”
“백호는 따로 성장시켜야 해서 고위 던전은 당분간 청룡과 함께 움직이게 될 것 같습니다.”
“언젠가 백호군도 함께 사냥을 다닐 모습이 기대되네요. 백호군도 그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죠?”
백호가 의자에서 내려와 불끈 쥔 주먹을 치켜들었다.
“네에에에에!”
무대에 적응한 듯, 힘차게 소리치는 백호를 보고 관객들이 빵 터졌다.
무대 백스테이지에서 몰래 지켜보고 있던 최설화는 못 말린다며 눈가를 짚었고 청룡은 창피하다는 듯이 외면했다.
백호는 벌써 무대에 적응하고선 언제 긴장했냐는 듯이 신이 나 있었다.
긴장이 가시자 경기장을 꽉 채운 관객들의 엄청난 숫자가 보인다.
백호는 헤에 하고 입을 벌리며 그 그림 같은 관중들을 넋을 잃고 바라봤다.
해가 지면서 살짝 어두워지자 조명이 하나둘 켜지기 시작했다.
곧 시작될 화려한 퍼포먼스팀. 그리고 유명 가수들의 공연을 앞두고 인터뷰가 막바지에 이르렀다.
현재 실시간 시청자들의 최대 검색어는 신수 백호였다.
백호에 대한 이야기가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었고 백호의 인기는 시간이 갈수록 날개 달린 듯 그 유명세가 퍼져 나가고 있었다.
그런 사실을 꿈에도 모른 채, 백호는 무대에서 싱글벙글 웃고 있었다.
* * *
폭죽이 하늘을 수놓고, 마법 장치로 만든 이펙트가 관중들의 눈을 현혹했다.
마치 개츠비를 보는 듯 화려한 파티가 새벽까지 이어졌다.
시작은 준혁이었지만 순전히 관객석을 채운 관중들을 위해 준비한 무대인 만큼 절정의 공연이 쉴 틈 없이 펼쳐졌다.
길었던 이벤트 파티의 마지막.
준혁의 마지막 무대 인사를 끝으로 행사는 성공적으로 끝이 났다.
“고생했어요.”
준혁은 무대를 빛내느라 고생한 연예인들과 공연을 한 공연팀과 악수를 하며 커튼콜과도 같은 마지막을 장식했다.
잊을 수 없는 하루가 될 것 같다며 저마다 이번 파티에 참여한 관객들이 만족한 얼굴로 실시간 후기를 업로드했다.
본 무대였던 올림픽 경기장 밖에서는, 아직도 새벽이 밝을 때까지 이 축제를 즐기겠다는 듯 젊은 열기가 끊이지 않고 있었다.
“나름 의미가 있었겠지?”
캐슬로 가는 차안.
선우가 피곤한지 눈 사이를 짚으며 말했다.
“충분해.”
준혁이 옅게 웃으며 말했다.
큰 규모로 행사가 치러질 거란 건 알고 있었지만, 자신조차 놀랄 정도로 멋진 무대였다.
적어도 축제와 같은 이 행사가 진행되는 동안은 준혁도 던전에 대한 생각을 안 할 수 있었고, 머릿속이 휴식하는 듯 편안함을 느꼈다.
무대를 지켜본 관객들 역시 마찬가지이리라.
“이제 어비스로 가면 언제 올지 모르는데 술 한잔해야지?”
선우의 말에 준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지.”
선우가 뒤를 돌아봤다.
매니저 지우와 청룡과 백호가 탄 차가 뒤따라오고 있었다.
“식구가 늘어난 게 여전히 실감이 안 난달까.”
선우가 다시 준혁을 보며 말을 이었다.
“북적북적하니 사람 사는 것 같아서 좋다.”
문뜩, 앞으로 신수들을 데리고 아우터 갓을 상대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자 다시 머리가 무거워졌다.
하지만 동생 선우가 오늘 파티를 준비한 만큼 주말까지는 그런 생각을 하지 않기로 했다.
머릿속을 깨끗이 비웠다.
“아직 셋이나 남았어.”
선우의 눈동자가 의아한 듯 이리저리 움직였다.
“셋?”
“어비스에서 데려와야 할 신수가 총 다섯이거든.”
선우가 놀란 표정으로 침음했다.
“캐슬이 감당할 수 있으려나?”
준혁이 픽 웃었다.
“사람 더 뽑아야 하는 거 아니야? 지우 매니저 완전 과로하겠는데?”
“먼저 캐슬에 들어온 청룡이 기강을 잡아 주겠지.”
선우가 고개를 갸웃했다.
“글쎄, 워낙 차가운 아이라.”
“마음은 뜨겁다.”
“그래?”
준혁은 청룡이 떠날 때의 모습이 기억났다.
“누구보다 뜨거운 아이지.”
“의외네. 늘 시니컬해서 감정의 폭이 좀처럼 안 보이는 것 같던데.”
“보이는 게 다는 아니니까.”
“형이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이런저런 대화를 하다 보니 캐슬에 이르고 있었다.
캐슬의 입구를 통과하고 긴 정원을 지나 본관 앞에 도착했다.
차에서 내리자 청룡이 기절한 백호를 어깨에 짊어지며 차에서 나오고 있었다.
파티장에서 춤까지 추면서 돌아다니더니 누가 업어 가도 모를 만큼 잠에 빠져들어 있는 백호였다.
“고생하셨어요.”
준혁이 지우의 어깨를 툭툭 쳤다.
“고생 많았어. 얼른 가서 푹 쉬어.”
“네, 귀환자님.”
캐슬로 들어가 샤워를 하고 다이닝 룸으로 갔다.
일찍 씻은 선우가 술을 고르고 있었다.
테이블에는 캐슬 메이드 직원이 만든 멋진 안주가 세팅되어 있었다.
준혁은 자리에 앉았다.
선우가 술을 골라와 맞은편에 앉았다.
“형은 위스키를 좋아하니까. 이번엔 꼬냑이야.”
“꼬냑도 위스키냐?”
“그건 아니지. 난 원래 청개구리라서.”
“무슨 차이야?”
“그냥 재료차이일 뿐이야. 위스키는 보리. 꼬냑은 과실. 원료 차이일 뿐이지.”
선우가 잔에 술을 따랐다.
“무사히 어비스를 다녀오기를.”
선우가 건배를 제의했다.
짠- 하고 잔이 부딪쳤다.
술을 넘기자 목이 화끈거렸다.
높은 도수의 술이라 냄새가 진했다.
“던전이 점점 위험해지고 있어.”
선우가 말했다.
시민들의 불안을 달래기 위해 연 이벤트는, 역설적으로 선우의 두려움에서 기인했을지도 몰랐다.
“별거 아니야.”
준혁이 말했다.
“언젠가 세상이 던전으로부터 평화로워진다면, 아니 애초에 그런 날이 정말 올까?”
“던전이 사라진다고 해서 세상이 평화로워지는 건 아니지. 어디서나 일들을 벌어지기 마련이니까.”
선우가 힘없이 웃었다.
“그렇긴 하지. 던전이 사라져도, 새로운 것들이 나타나겠지.”
“약해지지 마라.”
“그럼 내가 누구 동생인데.”
그날 밤.
선우는 여러 가지를 물었다.
마계에 대해서, 그리고 어비스에 대해서도.
과거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게 됐다.
기억나는 것들로 최대한.
선우는 주의 깊게 들었고 그 이야기에 꽤 심취해서인지 아니면 피곤해서 그런 건지 먼저 취했다.
준혁은 자신의 한쪽 팔을 베고 엎드려 있는 선우를 응시했다.
참 무던히도 열심히 사는 녀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도 한 잔 해도 되겠습니까?”
뒤를 보자 청룡이 서 있었다.
“와서 앉아.”
청룡이 자리에 앉고, 준혁이 술을 따라 주었다.
“중원에서 무공을 쓰고 살았으니, 술맛에 대해선 잘 알겠네.”
“모르진 않지요.”
청룡이 술을 한 잔 마시곤 깜짝 놀라며 감탄했다.
“엄청난 기술입니다. 이런 맛을 내는 술이라니.”
“내일 쉬고 나면 어비스로 가야 하니 편하게 마시고 푹 쉬어 둬.”
“새로운 신수를 만나러 가는 겁니까?”
“그래, 쉽진 않겠지. 백호도 그랬고. 너도 그랬고. 다 쉽진 않았다.”
단순히 물리적 과정의 문제가 아니었다.
신수를 구하러 가는 건, 누군가 만들어 놓은 세계로 들어가 그것을 깨 버리는 일이었다.
백호도 청룡도 모두 그랬다.
피할 수 없는 일이다.
차원이 다르고 세계가 달랐으니까.
“저희도 가니 이번엔 조금 쉽지 않겠습니까?”
“그럴지도.”
건배를 하고 술을 마셨다.
선우가 틀어 놓은 LP음악이 흘러나오는 다이닝 룸.
준혁은 휴일을 위한 술을 말없이 마셨다.
대화가 없었는데도 시간이 가는 줄 몰랐다.
때론 대화를 하지 않아도 더 많은 것이 오가는 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