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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의 모든 것-112화 (112/175)

귀환자의 모든 것 112화

이벤트 당일.

엄청난 인파가 행사장으로 몰려들었다.

공항부터 야외 공연 행사장까지 몰려드는 인파로 인해 통제가 어려울 정도였다.

준혁은 지우와 청룡, 그리고 백호를 데리고 대기실에 있었다.

조금 있으면 선우도 대기실로 들어올 예정이었다.

“귀환자님, 여기 오늘 대본이요. 저도 한 번 체크해 봤는데, 오늘 신수에 대해서도 공개하시는 건가요?”

“궁금해하는 사람도 많고. 굳이 숨길 필요도 없고.”

준혁은 대본 큐 카드를 받으면서 말했다.

지우는 생글 웃으며 백호와 청룡을 보았다.

두 신수의 정체가 세상에 드러나게 된다면 어떤 반응을 불러일으키게 될까?

최소한 귀환자의 신수이니 분명, 큰 환대를 받게 되리라.

“예쁘기도 하지.”

백호의 메이크업을 담당한 미용사가 거울을 보며 웃음 지었다.

꽃단장을 한 백호는 생애 처음 축제, 파티라는 것을 한다는 것에 기대감이 잔뜩 부풀어 올라 있었다.

지우는 치장을 하고 있는 백호와 청룡을 보면서 저절로 입가에 미소가 진하게 그려졌다.

백호는 가뜩이나 귀여운 얼굴에 메이크업까지 하니 인형보다 더 인형 같은 외모였다.

그에 반해 청룡은, 웬만한 아이돌은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의 아우라가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두 존재가 신수라는 걸 모르는 메이크업 아티스트들은 자신들이 미용을 하면서도 빠져들 정도였다.

미리, 메이크업을 먼저 마친 준혁도 빛이 나는 외모였다.

“끝났어요, 왕자님?”

헤어와 메이크업이 끝나자, 백호는 과자부터 까먹기 시작했고, 청룡은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거울 속의 자신을 뜯어보고 있었다.

“……사내가 화장이라니.”

청룡은 새로운 문화에 충격받은 듯 거울 속 외모에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주인인 준혁도 메이크업을 했으니, 불만 없이 받긴 했지만 청룡에겐 적잖은 충격을 선사한 모양이었다.

지우가 청룡을 보며 웃음을 참을 때, 노크 소리에 이어 문이 열렸다.

대기실로 들어온 건 선우였다.

“삼추우우우운!”

백호가 달려가서 선우에게 코알라처럼 덥석 안겼다.

“응? 뭐야? 하하, 그렇게 싫어할 땐 언제고. 게다가 내가 왜 삼촌이야?”

선우가 귀엽다는 듯이 백호의 머리를 슥슥 문질렀다.

“왔어?”

스마트폰으로 뉴스를 보고 있던 준혁이 대기실로 들어온 선우를 돌아봤다.

헤어와 메이크업에 이어 수트를 쫙 빼입고 온 선우도 배우나 모델 못지않은 포스를 뿜어냈다.

“휴우, 헬기로 오는 동안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이거 봐 봐.”

선우가 헬기에서 찍은 사진을 보여 주었다.

행사장은 올림픽 경기장에서 치러질 예정이었는데, 경기장 바깥에도 사람들로 가득했다.

대형 모니터 주변으로 사람들이 몰려 있었고, 바깥에서도 축제가 진행되는 듯 여러 이벤트 행사를 펼치고 있었다.

단 며칠 만에 준비한 이벤트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의 참여였다.

“엄청나네.”

사진을 보면서 준혁이 순수한 감탄을 담아 말했다.

“던전 확장을 두려워하던 사람들 같지가 않지?”

준혁이 잘했다는 듯 선우의 허리를 툭 쳤다.

“어비스는 언제쯤 가는 거야?”

선우가 준혁의 옆에 앉으면서 물었다.

“주말이 지나고 나서니까, 월요일?”

“신수도 데려간다고 했었지?”

데려간다는 말에 백호가 즉각 반응했다.

“주인님! 저도 데려가요? 저도 가요? 저도 갈 수 있어요?”

백호가 땡그란 눈이 박힌 얼굴을 들이밀면서 랩을 하듯이 속사포로 물었다.

“그래, 너도 데려갈 거다.”

준혁이 작은 미소를 지으며 말하자, 백호가 눈을 질끈 감으며 제자리에서 펄쩍 뛰었다.

“예-에! 예!”

백호는 날아갈 듯이 기뻐했고, 지우가 뒷덜미를 잡고 가서 조용시킨 후, 흐트러진 헤어를 다시 만져 주었다.

“전에 듣긴 했지만, 형이 가는 어비스.”

선우가 쓴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진짜 궁금해. 어떤 곳일지.”

“공무에 바쁜 한선우의 시간을 뺏을 만큼은 아니야.”

“형이 없는 동안 던전에 의한 문제만 생기지 않으면 될 텐데. 괜찮겠지?”

“던전 게이트가 열린다고 해도 난이도만큼 클리어 조건까지는 꽤 긴 시간이 있으니까. 괜찮을 거야.”

선우가 웃을 때, 노크 소리에 이어 행사 직원이 나타났다.

“이제 나가셔야 합니다.”

직원이 무대로 나가야 할 때라고 알렸다.

준혁은 선우와 먼저 대기실을 나섰다.

백호와 청룡은, 행사 중간에 등장할 예정이었다.

청룡은 무료한 듯 스마트폰이라는 신문물을 만지면서 시간을 보냈고 백호는 입을 벌린 채 멍하니, 행사장 화면을 비추는 TV 모니터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사이, 복도를 걷는 동안 무대와 가까워질수록 준혁의 이름을 연호하는 목소리가 점점 크게 들리고 있었다.

블랙 수트 차림의 준혁과 선우가 직원의 안내를 받으며 무대로 가기 위해 이동했다.

* * *

오늘 무대 행사의 MC를 맡은 건 유명한 배우 김하진이었다.

큰 키에, 적당히 근육이 붙은 몸매. 훤한 얼굴의 사내가 준혁과 선우가 나타나자 큐 카드를 들고 박수를 쳤다.

“와아아아아아아아!”

솜털이 쭈뼛 설 정도의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무려, 올림픽 경기장을 가득 채운 2만 명의 관중이 우레와 같은 함성을 질렀다.

준혁과 선우는 꾸벅 인사를 하면서 준비된 자리에 앉았다.

“영광스럽게도 제가 이번 행사의 MC를 맡게 됐는데요. 와, 관중들 보이세요? 정말 대단합니다.”

또다시 퍼지는 엄청난 환호성.

준혁을 촬영하기 위해 커다란 카메라를 들고 온 이들이 수도 없었다.

대형 모니터 화면에 준혁과 선우의 얼굴이 비치고 있었다.

“우선 한선우 협회장님, 블랙 던전을 클리어한 이후에, 이런 이벤트 행사를 열게 된 이유에 대해서 듣고 싶은데요. 어떤 의미의 행사일까요?”

MC김하진이 물었다.

“많은 분들이 새로운 던전의 업데이트에 의해 불안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헌터들이 더 나은 미래를 만들 수 있다는 믿음을 전해 주고 싶었습니다.”

2만 명의 관중이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웅장한 소리가 올림픽 경기장에 울려 퍼졌다.

“그런 의미가 있었군요. 오늘 행사에 참석하신 귀환자님.”

준혁이 마이크를 건네받자, 진행이 되지 않을 정도의 함성이 무대로 융단폭격됐다.

MC김하진은 웃음 지으며 소리가 진정되기를 기다렸다.

잠시 후, 겨우 함성이 잦아들었다.

“본격적인 인터뷰를 하기 전에 우선 한 말씀 해 주시죠.”

준혁은 관중들을 보며 마이크를 입가로 가져갔다.

뜨거운 함성과 휘파람 소리. 준혁의 이름을 연호하는 사람들에 의해 무대 행사의 전반적인 진행이 어려울 정도다.

“안녕하십니까, 한준혁입니다.”

준혁이 마이크를 아래로 내리고 마력이 담긴 목소리를 냈다.

관중들의 환호를 뚫고, 준혁의 목소리가 선명하게 울려 퍼졌다.

이에, 관중들이 감탄하며 숨을 삼키자 준혁이 마이크를 다시 들고 보통의 평범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우선 동생이기 이전에 존경하는 협회장의 이벤트 행사에 이렇게 많이 참여해 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이런 인터뷰는 몇 번 겪어 봐서인지 어렵지 않게 말이 나왔다.

“던전은 분명 시민과 헌터에게 아주 위험한 재앙입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잘 막아 왔고, 새로운 문명의 시대가 열리고 있는 만큼 두려움보단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도록 모두가 한마음으로 힘을 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준혁이 관객들을 보며 말을 이었다.

“저뿐만이 아니라 많은 헌터들이 던전과 힘겨운 싸움을 이어 가고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어느 누군가는 마수를 사냥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나서겠죠.”

2만 관중이 엄숙해진 채로, 준혁을 지켜보았다.

“비극이 있을지언정, 좌절하거나 절망하지 말아야 합니다. 계속 싸워 나가, 언젠가 이 싸움을 끝내야 하겠죠. 그러기 위해선, 굽혀지지 않는 용기를 가져야만 합니다. 헌터들뿐만이 아니라, 헌터들을 지지해 주는 여러분들 역시도.”

관중들이 말없이 박수를 쳤다.

“저 역시 한 사람의 헌터로서, 끊임없이 싸우고 나아가겠습니다.”

준혁의 말이 끝나자 관중들이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서며 박수를 보냈다.

준혁은 마이크를 내리며 머쓱하게 웃었고, 선우도 옆에서 미소를 지으며 박수를 보냈다.

간단한 첫인사 후, 본격적인 인터뷰가 시작됐다.

블랙 던전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루었고 개인적인 사생활에 대한 질문도 이어졌다.

그렇게 행사가 이제 막 무르익고 있을 무렵 대기실에서 백호는 배를 부여잡고 있었다.

* * *

“백호야, 왜 그래? 어디 아파?”

지우가 놀란 얼굴로 백호를 살폈다.

소파에 벌렁 누운 백호는 배를 붙잡고 끙끙거리고 있었다.

“왜 그런지 모르겠어. 배가 너무 아파, 으으.”

금방이라도 데굴데굴 구를 것처럼 아파하는 백호였다.

이래서야 도저히 무대로 올라갈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청룡이 한심하게 백호를 보고 있는 사이 지우는 힐러 최설화에게 다급히 전화를 걸었다.

“언니, 백호가 배가 아프다고 제대로 서지도 못 하는데. 대기실로 좀 와 줄 수 있어요? 무대로 가야 하는데 이대로는 힘들 것 같아서요.”

지우가 그렇게 말을 끝맺었을 때.

번-쩍! 하고 빛을 뿌리며 최설화가 나타났다.

그녀는 방금 전까지만 해도 파티를 즐기고 있었던 듯, 칵테일을 손에 들고, 아름다운 드레스 차림이었다.

“앗! 깜짝이야.”

최설화가 소파에 누워 있는 백호를 보고 웃었다.

“무대공포증 같은 거 아니야?”

최설화가 말했다

“무대공포증이요?”

“긴장해서 위경련이라도 난 거겠지. 캐슬에서 설칠 때부터 알아봤어.”

최설화가 쿡쿡 웃었다.

“긴장 많이 했나 보네. 언니, 치료해 줄 수 있어요?”

“당연하지. 무대 올라간 후에도 상태 안 좋으면 내가 몰래 힐 치료를 해야겠어. 귀환자님의 행사에 차질이 생겨선 안 되지.”

최설화가 그렇게 말하며 백호를 향해 섬섬옥수와도 같은 손가락을 가져다 댔다.

그러자 하얀빛의 가루가 백호의 몸에 떨어져 내렸다.

흑빛이 된 얼굴로 거의 죽어 가다시피 하던 백호의 일그러진 표정이 곧 다리미로 편 것처럼 편안해지기 시작했다.

“휴우우.”

백호가 이제 살겠다는 듯이 표정이 풀어지고 있었다.

“살다 살다 위경련 때문에 힐을 쓰는 건 또 처음이네.”

최설화가 황당하다는 듯 웃었다.

“으으으.”

백호는 힐 치료를 받고서도, 여전히 긴장이 풀리지 않는지 추위마저 느끼고 있었다.

“백호야. 그냥 재밌게 논다고 생각하면 되는 거야. 알겠지?”

백호가 소파에서 내려와 청룡에게 다가갔다.

“혀, 형아. 저기로 갈 때 손잡고 가면 안 돼?”

청룡이 멸시가 담긴 시선으로 백호를 쏘아보았다.

“주인님께서 퍽이나 자랑스러워하시겠군.”

청룡의 차가운 한마디에 백호는 울적한 표정이 되었다.

“청룡아, 그래도 백호가 아직 어리니까…….”

“흥.”

청룡은 콧방귀를 뀌더니 그대로 대기실을 나가 버렸다.

축 처진 채, 소파에 앉은 백호는 기운이 하나도 없어 보였다.

지우는 그런 백호 앞으로 가서 무릎을 굽혀 앉았다.

“백호야, 떨려도 괜찮아. 당연한거야. 누구나 처음은 그런 거니까.”

“그치만 청룡 형아는 하나도 안 떠는걸?”

“백호보다 이런 경험이 훨씬 많지, 청룡은.”

“정말?”

지우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백호도 언젠가 아주 자연스러워질 거야. 그러니까 최대한 즐겨. 오늘은 축제니까.”

“축제…….”

멍하니 축제라는 단어를 중얼거리던 백호가 이내 비장한 표정으로 지우를 보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나 안 떨고 잘할 거야. 그냥 나가서 묻는 말에 대답만 하면 돼. 그렇잖아?”

“백호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와. 그렇게 놀고 오는 거야.”

“좋았어어어어어!”

백호가 주먹을 치켜들며 소리쳤다.

최설화는 또 시작이네. 라고 중얼거리며 얼굴을 절레절레 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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