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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의 모든 것-111화 (111/175)

귀환자의 모든 것 111화

준혁은 그들이 살아 있기를 바랐다.

더러운 악 앞에 숭고한 죽음이 생겨선 안 된다.

그건 비극이다.

아무것도 남는 것이 없는 죽음.

죽음은 끝이다.

준혁은 긴장을 품은 채, 게이트 밖으로 나왔다.

마른침을 삼키며 주변을 훑었다.

가장 먼저 보인 것은 비석이었다.

살아 숨 쉬듯 정중앙에 박힌 핏물 같은 문자는 죽은 듯이 잿빛으로 변해 있었다.

던전 클리어의 결과인 듯했다.

하지만 중요한 건 비석이 아니었다.

중요한 건 사람이다.

처음 게이트가 형성될 때 던전핵의 일부로 변한 사람들.

준혁은 걸음을 옮기며 주변으로 시선을 던졌다.

비석 주변에서 돌처럼 굳어 버린 헌터들은 그대로였다.

그들은 생명이 없는 조각처럼 그대로 멈춰 있었다.

준혁이 어금니를 깨물었을 때, 준혁의 뒤로 최설화와 청룡도 게이트를 뚫고 나와 상황을 파악했다.

최설화가 힘이 쭉 빠진 눈으로 살아나지 못한 헌터들을 보다가 고개를 떨구었다.

청룡 역시 어떤 상황인지 정도는 알고 있었다.

청룡의 고요한 눈빛이, 마치 전시회처럼 던전핵의 조각으로 굳어 있는 헌터들을 스쳐 지나갔다.

- 뭐야? 던전 클리어했는데 일본 헌터들 못 깨어난 거?

- 던전핵 그대로네…….

- 나 평소에 일본 별로 안 좋아했지만 이건 좀 안타깝네.

- 늦었나 보다. 개 같은 던전. 진화를 해도 이딴 식으로 하냐.

- 아아…… 갓준혁이 있어도 재앙의 희생자들이 나오는 건 못 막나.

- 일본 보면서 느껴야 해요. 우리도 저렇게 되지 말란 법 없음.

- 무섭다.

- 어쩌면 한국, 아니 전 세계도 이렇게…….

- 갓준혁 괴로워하네.

- 느껴진다, 진짜. 구하지 못했다는 슬픔이.

- 갓준혁은 어떤 책임과 무게를 견디고 있는 걸까?

채팅창의 분위기는 저승을 맴돌 듯이 어둡게 가라앉더니 점차 그 감정이 커지고 있었다.

뒤이어 준혁을 향한 연민이 퍼지고 있었다.

땅을 보며 소리 없이 심호흡을 하던 준혁의 눈썹이 꿈틀 움직였다.

준혁의 시선이 조각처럼 변해 버린 일본의 헌터들을 훑었다.

준혁이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최설화가 깜짝 놀란 눈으로 준혁을 보았고 청룡도 고요한 시선으로 준혁의 뒤를 쫓았다.

준혁은 크게 뜬 눈으로 시부야 비석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던전핵으로 변해 버린 애꾸눈의 헌터 앞에 섰다.

“……?”

준혁이 천천히 손을 들어 애꾸눈의 어깨를 잡았다.

그리고 그대로 마력을 주입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준혁이 손을 짚은 어깨부터 거미줄 같은 균열이 쩍 생겼다.

곧 알의 껍질이 벗겨지듯이 파편과도 같은 조각이 하나둘, 바닥으로 툭툭 떨어져 내렸다.

후두둑-!

돌과 같은 파편이 연쇄적으로 떨어져 내리더니 전신을 뒤덮고 있던 딱딱한 것이 깨져 나갔다.

이내 던전핵화를 시켰던 껍질이 모두 떨어져 나가자.

“허어억!”

애꾸눈이 숨을 폐부 깊숙이 들이마시며 호흡하기 시작했다.

애꾸눈이 영문을 모르는 얼굴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 ??

- 와, 뭐야!? 지금, 깨어난 거 맞지!?

- ㅁㅊ ㅁㅊ ㅁㅊ ㅁㅊ ㅁㅊ!!

- 우와아아아아!! ㅠㅠㅠㅠㅠ

- 살았어ㅠㅠㅠㅠ 어떡해ㅠㅠㅠㅠ

- 미친, 살았다. 갓준혁이 구해 냈다.

- 아니, 저 상황에서 어떻게 알아낸 거지. 아직 살아 있다는 걸?

- 신이 생명을 불어넣었습니다, 여러분.

- 와, 심장 터질 뻔했다. ㄹㅇ

- 미쳤네. 이걸 여기서 이렇게 살리네. 그것도 갓준혁이 ㅋㅋㅋㅋ

준혁이 마력을 담은 주먹을 시부야의 땅을 향해 내리쳤다.

그러자 순식간에 마력의 파장이 땅을 타고 사방으로 불이 번지듯이 퍼져 나갔다.

준혁이 만들어 낸 마력의 파동은, 마치 파문처럼 번져나갔다.

그 빛은 던전핵으로 만들었던 헌터들의 몸을 뒤덮고 있는 껍질을 벗겨 냈다.

후두두두둑!

112명의 헌터들 전원, 굳어 있던 껍질이 깨져 나가며 도미노처럼 숨을 쉬기 시작했다.

“허억!”

“커헉!”

“콜록! 콜록!”

한순간에 껍질이 벗겨져 나가며 숨을 쉬기 시작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마치 하늘에서 찍는 드론의 구도처럼 살아나는 사람들의 모습을 생생히 화면에 담아내는 더 월드 라이브.

뒤이어, 더 월드의 시스템 카메라는 고속으로 주변을 휩쓸고 난 이후, 준혁을 비추었다.

- 와아아아아아아아!

- 미쳤다아아아아아!

- 캬, 지렸음ㅠㅠㅠㅠㅠㅠㅠㅠ

- ㅅㅂ 솔직하게 말해. 더 월드 시스템 갓준혁 팬 아니냐고. 카메라 구도 뭔데?

- 와 ㅆ;;;;

- 소름 끼친다. ㄹㅇ

- 갓준혁이 신이 아니면 누가 신이냐? 말해 봐라.

- 당장 설득해라. 갓준혁이 갓준혁이 아닌 이유에 대해서.

- 일본인 전부를 감히 대신해 감사하다는 말을 전합니다. 정말로 감사합니다.

- 멋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다.

- 답을 찾는다. 그게 갓준혁이다.

정신을 차린 112명의 헌터들이 하나둘 정신을 차리곤 서서히 상황을 인지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죽어 있는 듯한 비석 앞에 선 준혁을 보고 깨닫고 있었다.

귀환자 한준혁이 던전을 클리어하고 자신들을 구해 냈다는 사실을.

헌터들은 멍한 표정으로 바닥을 보았다.

자신을 지배하고 있던 던전핵의 껍질의 잔해가 널려 있었다.

그사이, 준혁은 비석에 등을 대고 주르륵 주저앉았다.

“후우.”

준혁은 긴 숨을 뱉고는 힘없이 웃었다.

다리에 힘이 풀린 기분이 묘했다.

이렇게 긴장한 것도, 이렇게 긴장이 풀린 것도 오랜만이었다.

마계에서의 초창기를 제외하곤 언제 이런 기분을 느꼈었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준혁은 멍한 감각을 느끼며, 뒤통수를 비석에 대고 편하게 호흡했다.

단순히 자신 혼자 악마나 마수를 죽이는 것과는 전혀 다른 압박감이 가슴을 눌렀다가 해방되고 있었다.

“고생하셨어요, 귀환자님.”

최설화가 무릎을 굽혀 앉으며 준혁의 어깨에 손을 짚었다.

“괜찮으십니까?”

청룡이 다가와 진중한 눈빛으로 물었다.

준혁은 최설화와 청룡을 보다가 고개를 갸웃하며 웃었다.

입 밖으로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저 헛웃음만 흘러나올 뿐이었다.

- 미친 듯이 섹시하네.

- 확실하다. 난 갓준혁을 사랑하는 게 맞아.

- 우리 형 ㅠㅠㅠㅠ

- 최설화 힐러랑 청룡도 고생했다 진짜.

- 나 지금 울면서 박수 치고 있는 중.

- 경이롭다. 존재 자체가.

- 어서 귀국해서 쉬세요, 형님.

준혁의 앞으로, 던전핵이 되었던 헌터들이 하나둘 다가왔다.

이내 112명에 달하는 헌터들이 비석에 기대어 앉아 있는 준혁의 앞으로 모여들었다.

“정말로, 감사합니다!”

일본 헌터 112명이 동시에 준혁을 향해 90도로 머리를 숙였다.

느슨한 눈빛으로 그들을 보던 준혁은 눈을 지그시 감았다.

무너진 건물의 시멘트 가루가 섞인 바람이 불고 있었다.

* * *

준혁은 일본의 극진한 대우를 받으며 공항으로 향했다.

전용기를 타기 위해, 시부야를 벗어나 공항으로 가는 동안 동생 선우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다.

- 고생했어, 형. 그리고 축하해.

목소리에서 감정을 꾹꾹 누른 선우의 진심이 느껴졌다.

“팔자 좋아 보인다?”

괜한 농담 섞인 시비를 걸어 봤다.

이번 던전은, 여러 의미로 스트레스였다.

- 그럴 리가. 나도 바빴어. 새로운 행사 때문에.

준혁이 불안한 듯 한쪽 눈이 찌푸려졌다.

“새로운 행사?”

- 아마도 형은 이번 블랙 던전에서 균열의 세트를 완성했겠지?

역시 동생은 이렇게 가끔 귀신 같은 면이 있다.

“그래서?”

- 형이 떠나기 전에 해 줘야 할 일이 있어.

준혁이 창밖의 일본 거리 풍경을 보며 웃었다.

“무슨 일인데?”

- 국내에서 최대 규모의 행사를 열 생각이야. 날짜는 이틀 후. 타이트하게 잡은 건 너무 많은 인원이 몰릴 것을 대비하기 위해서고.

“행사?”

- 일본의 블랙 던전을 클리어했음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에서 여전히 불안감을 느끼고 있어. 당연히 귀환자를 보유한 국내 역시 마찬가지야. 이번 일본 사건이 트리거가 됐겠지.

단순히 던전을 클리어한다고 해서 안전을 보장할 수 없게 됐다.

모두가 비석의 등장과 함께 나타난 블랙 던전의 위험성을 알게 된 것이다.

동생이 어떤 의미로 행사를 열겠다는 건지 이해가 갔다.

- 번거롭더라도 무대 좀 빛내 줘. 형이 별로 좋아하지 않는 걸 알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걸 해야지.

“좋은 생각이야.”

- 정말?

“한선우. 난 네 판단을 항상 존중해.”

- 존중과 인정은 조금 다른 문제 같은데.

“충분히 인정하고 있으니 의심하지 말도록.”

- 어쨌든 이번 행사안은 통과네. 그럼 진행할 테니 그렇게 알고 준비는 매니저 통해서 하면 돼. 공항 가는 중이지? 가서 푹 쉬어.

“제발, 너도 좀 쉬고.”

- 누가 할 말을.

준혁은 쓴웃음을 지으며 전화를 끊었다.

“곧 공항에 도착합니다.”

운전대를 잡은 백인호 마스터가 말했다.

백인호는 파천 길드원들과 직원들을 데리고 블랙 던전에서 곧바로 던전 물질 작업을 시작할 예정이었다.

차량이 공항 근처에 이르자, 수많은 사람들이 피켓을 들고 준혁을 맞이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모습들이 보였다.

일본 현지인들이 준혁이 탄 차를 향해 환호했다.

차가 멈춰 서고 준혁이 차에서 내렸을 때는 공항이 흔들릴 정도의 함성이 쏟아졌다.

얼마나 큰 함성인지 귓전이 다 떨릴 정도였다.

이틀 후에 있을 행사가 꽤 거창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 준혁은 공항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전용기는 이미 준혁을 태우기 위해 준비되어 있었다.

* * *

파천 길드에서 공지사항을 업로드했다.

대한민국에서 최초로, 귀환자 한준혁이 참가하는 각성자 행사를 열겠다는 이벤트 개최 소식이었다.

이 소식은 공지사항이 공개되자마자 한국행 티켓은 단 5분도 되지 않아 모두 매진되었다.

티켓이 매진되고 나자 바다를 건너서라도 행사에 참여하겠다는 전 세계 시민들의 열정을 내비쳤다.

커뮤니티는 이번 파천 길드 야외 행사에 대한 이야기로 릴레이가 펼쳐졌다.

이번 축제 이벤트는 블랙 던전에 대한 시민들의 불안과 공포를 순식간에 씻어 냈다.

이번 이벤트 기획에 대한 협회장 한선우의 평가 역시 하늘을 찔렀다.

최악의 상황 속에서도, 긍정적인 빛을 찾는다는 한서우 협회장의 리더쉽에 전 세계가 박수를 보냈다.

다만 너무 타이트한 일정이 아니냐는 질문이 쇄도하자, 준혁이 캐슬로 향하는 동안 한선우는 인터뷰를 통해 인원을 수용하기 위한 결정이라고 답하자 모두 공감하고 있었다.

행사가 겨우 이틀밖에 남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이벤트 당일 한국의 교통 마비와, 사고를 대비하기 위해 한국 협회는 긴장해야 했다.

이번 프로젝트는 선우가 준혁이 일본으로 가기 전부터 미리 준비한 프로젝트였다.

던전에 의한 인간의 좌절을 예상해서였다.

마음을 하나로 모아 역경을 헤쳐 나가자는 의미의 슬로건이었다.

블랙 던전에 의한 불안이 가중되는 상황에 이번 야외 축제 이벤트는 가뭄의 단비와도 같이 던전의 위기를 지켜보던 시민들의 가슴을 적셔 주기에 충분했다.

캐슬 식구들도 모처럼 이번 축제 이벤트에 참석할 예정이었다.

특별히 VIP 공간을 만들어, 파티를 즐길 수 있게 준비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캐슬 식구 안에서 이번 행사 얘기를 듣고 가장 신난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백호였다.

마치 자신이 주인공이라도 되는 양, 이벤트 준비에 가장 열성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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