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자의 모든 것 108화
- ㅁㅊ! 속도 실화냐!?
- 더 월드 카메라로 잡는 건데도 거의 안 보일 정도;;;
- 대체 얼마나 빠른 건데.
- 일반 헌터였으면 의식도 하기 전에 죽어 있었을 듯.
- ㄹㅇ 공속이 사기다 ;;;
- 아니 마수 공속도 공속인데, 그걸 피하는 청룡은 대체……?
- 청룡 너는 정체가 뭐냐? 어린 리더보더는 들어 본 적도 없다고.
- 저 나이에 10위 벤자민 이기는 것부터가 소름이긴 했음.
- 어쩐지 저번 블랙 던전보다 여기가 더 빡센 거 같냐.
- 난이도가 또 상향됐나?
청룡의 창이 가늘게 흔들렸다.
창에 담긴 무화신공의 힘이 당장이라도 적을 씹어삼킬 것처럼 울었다.
거세게 떨리기 시작하는 칼날은, 극도의 힘이 담긴, 마치 살아 있기라도 한 듯한 짐승의 울음 같았다.
그 창날이 마수를 향해 발출을 준비했다.
무화신공 창무난성.
청룡이 허리와 어깨를 비틀며 세 바퀴를 회전했다.
그에 따라 창도 뒤따라가며 거대한 힘이 휘둘러졌다.
세 줄기의 검강이 흑암을 향해 쇄도했다.
오른쪽 팔 하나, 몸통, 그리고 목이 잘렸다.
붕대가 풀리는가 싶더니 잘려 나갔던 신체가 금세 다시 합쳐졌다.
단 몇 초도 걸리지 않고 재생을 마친 흑암이 청룡을 향해 달렸다.
흑암의 양팔이 채찍처럼 휘어지며 청룡을 향해 칼처럼 휘둘러졌다.
마수 흑암의 손에, 고강한 힘이 맺혀 있었고, 흑암의 손과 청룡의 창이 부딪칠 때마다 불꽃과 함께 커다란 소리가 귓전을 때렸다.
준혁이 보기에 청룡은 당황하고 있었다.
이렇듯 재생하는 적을 만난 건 처음이기 때문일 것이다.
청룡이 스스로 해답을 찾을 수 있을까?
준혁은 우선 시간을 주기로 했다.
만약 흑암을 처치하기 위해 저주혼과 같은 마법이 필요한 거라면 준혁 자신이 나서야 했다.
하지만 우선은 지켜보기로 했다.
청룡이 스스로의 힘으로 흑암을 넘어설 수 있는지 보고 싶어서였다.
붕대 감긴 손과 청룡의 창이 어지럽게 뒤섞였다.
몇 번씩 공수가 오갈 때마다 청룡의 창날이 흑암을 베었지만, 흑암의 재생 능력에 의해 쉽사리 승부가 나지 않고 청룡의 내공만 소모되고 있는 형상이었다.
- 저렇게 재생하면 어떻게 잡는데 ;;;
- 반칙 아니냐고.
- 아, 잘 싸우는데 이건 좀 심하다. 베였으면 죽어야지 ㅅㅂ 사기네 완전.
- 이러다간 청룡이 먼저 지치겠는데?
“제가 나서야 할까요?”
준혁의 옆에서 청룡을 지켜보고 있던 최설화가 말했다.
“기다려.”
쉬운 해결은 성장을 방해하기 마련이다.
청룡에겐 이 모든 과정이 성장이자 경험이 될 수 있었다.
누군가의 도움은 오히려 정신을 나약하게 만들기 마련이었다.
그리고 그런 준혁의 기대를 받고 있는 만큼 청룡 역시 해결점을 찾기 위해 노력 중이었다.
‘약점이 없을 리 없다.’
완전무결한 존재는 존재할 수 없는 법. 답을 찾기 위한 공격이 이어졌다.
청룡은 포기하지 않았다.
내공이 실린 힘이 연속적으로 끊임없이 흑암의 급소를 찾아 나섰다.
그 결과, 청룡은 결국 답과 가까워졌다.
흑암의 심장이라 할 수 있는 재생의 원천은 머리에 있었다.
머리를 잘라 내자 그 안에 들어 있는 검은 룬 석을 발견할 수 있었다.
청룡은 그 룬이 사술의 원천이라는 것을 직감하고 창날을 휘둘러 깨트렸다.
퍼-석!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흑암의 전신을 휘감고 있던 붕대가 후루룩! 풀렸다.
붕대 안에는 아무것도 들어 있지 않았다.
오직 풀어진 붕대만이 조금 전까지 마수가 살아 움직였다는 사실을 알릴 뿐이었다.
처음 겪어 보는 형태의 싸움이라 청룡은 꽤 지친 표정으로 턱 끝에 맺힌 땀을 손등으로 닦아냈다.
“죄송합니다.”
청룡이 죄지은 사람처럼 준혁을 향해 말했다.
“사과할 필요 없어. 그 정도면 잘했다.”
- 대화 수준 무엇;;;
- ㅋㅋㅋㅋㅋ 아니, 저 말도 안 되는 마수 잡아 놓고 왜 죄송하다고 하는 건뎈ㅋㅋㅋㅋ
- 청룡도 진짜 대단하다. 어려 보이는데, 와아.
- 고등학생 정도로밖에 안 보이는데. 벌써 블랙 던전 클리어라니. 우리나라 미래가 정말 너무 밝다 ㅠ.ㅠ
- 괜히 갓준혁이랑 같이 다니는 게 아니구나.
- 창 쓰는 거 간지 폭풍일세. 허허.
육안으로 쫓기도 힘든 흑암의 공격을 막아 낸 것도 대단했지만 계속해서 재생을 통해 체력을 갉아먹는 흑암으로부터 약점을 찾아내 이윽고 쓰러트리기에 이르는 것은 평범한 자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중원에서 밥 먹고 무공만 갈고닦은 이들 중, 최정점에 선 청룡이었다.
겨우 이 정도로 위기에 몰릴 신수가 아니었던 것이다.
[청룡이 흑암을 쓰러트렸습니다.]
[청룡이 5%의 경험치를 획득했습니다.]
현재 청룡의 레벨은 벤자민을 잡은 후 91이다.
백호와 달리, 청룡에게는 5%의 경험치가 어마어마한 수치였다.
성장 여력이 많이 남은 백호와 달리, 청룡은 한 단계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려면 이미 강한 만큼 그에 상응하는 엄청난 노력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흑암을 잡아 5%의 경험치를 올릴 수 있다면 이곳은 청룡에게 있어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사냥터였다.
꾸준한 성장이 가능하다는 건 한계가 없다는 것과도 같다.
신수의 성장과 함께 준혁 역시 성장할 수 있었다.
블랙 던전은 전 세계에 재앙의 메시지를 던졌지만 준혁과 청룡에겐 가장 완벽한 발판이 되어 주고 있었다.
“백호도 그랬지만 이거 청룡도 제가 나설 일이 없겠는데요?”
최설화가 웃으며 말을 이었다.
“하나같이 천재들이네, 정말.”
그녀의 순수한 감탄은, 시청자들의 마음을 공감하기에 충분했다.
- 천재 맞지.
- 최설화 ㄹㅇ 숨 막히게 예쁘네. 옆에 있으면 난 그냥 녹아 부렸다.
- 웃는 거 봐라. 와 연예인은 상대도 안 돼.
- 여신이다, 여신 ㅎㅎ
- 근데 킹깐만. 청룡은 알겠는데, 최설화 힐러가 말한 백호? 그건 또 뭐야?
- 청룡과 백호라. 이거 약간 신화 속 동물 그런 거 아니냐?
- 신수?
- 사람 모습인데…….
- 그러고 보니 리더보더의 헌터라고 하기엔 너무 어려.
- 귀환자님 제발 알려 주세요. 정체가 뭡니까……?
준혁은 현재 청룡에게 집중하고 있어 채팅창을 보지 못하고 있었다.
시청자들이 청룡의 정체, 그리고 백호에 대해 궁금해하며 괴로움을 토로하고 있는 가운데, 청룡이 본격적으로 ‘사냥’을 시작했다.
방금 전 흑암과의 싸움이 하나의 탐색 전투였다면, 지금 흑암의 약점을 알아낸 청룡의 싸움은 약육강식을 따르는, 철저한 사냥이었다.
콰직-!
콱!
콰득-!
청룡이 화려한 무공을 펼치며 시야에 잡히는 흑암마다 머리를 쪼개 그 안에 숨겨진 룬석을 파괴했다.
사방으로 흘러내리는 붕대들.
[청룡이 경험치를 획득했습니다.]
[청룡이 경험치를 획득했습니다.]
[청룡이 경험치를 획득했습니다.]
사냥을 통해, 청룡은 경험치를 쓸어 담고 있었다.
그 사냥을 가만히 지켜보던 준혁은 주변 정글을 훑어보았다.
이 블랙 던전엔 흑암이라는 저 붕대 마수들뿐인가?
삭막하기 짝이 없는 풍경 속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건 흑암뿐이었다.
이대로라면 별달리 어려울 것도 없는 던전.
마음에 걸리는 건, 오히려 던전 밖에서 던전핵처럼 변해 버린 100여 명이 넘는 헌터들.
그들이다.
청룡의 성장도 좋지만 무고한 죽음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청룡 좀 맡고 있어. 난 지형 좀 돌아보고 올 테니.”
준혁은 최설화에게 청룡을 맡긴 후, 독단적으로 따로 움직이면서 멸마의 서를 펼쳤다.
멸마의 서가 가진 빛의 문자가 삭막한 땅속으로 파고들며 수색을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준혁은 한 줄기의 빛이 되어 정글 속을 달렸다.
* * *
‘휴우, 이제 좀 살겠네.’
지우는 손으로 자신의 얼굴에 부채질을 했다.
백호의 불만은 그야말로 하늘을 찔렀다.
준혁과 청룡이 자신만 빼놓고 떠났다는 사실에 엄청난 상실감과 배신감을 느낀 듯 하루 종일 표정을 풀지 않았던 것이다.
한 소리 했던 탓에 시끄럽게 굴진 않았지만 캐슬의 식구들 모두 불편함을 느낄 만큼 엄청난 어둠의 기운을 풍겨 낸 백호였다.
하지만 준혁이 블랙 던전으로 들어갔을 때 지우는 캐슬 거실에 걸린 영화관 극장 같은 초대형 TV를 통해 더 월드 라이브 방송을 보여 주자 백호의 불만 가득한 표정은 한순간에 풀어졌다.
마치 뽀뽀로를 보는 어린아이처럼 TV 화면 속으로 빠져들어 간 것이다.
거실 소파에 양반다리로 앉아 입을 벌린 채 더 월드를 시청했다.
불만으로 점철되어 있던 백호의 눈동자는 마치 은하계처럼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그 덕분에, 하루 종일 눈치를 보고 시달렸던 캐슬의 식구들은 이제야 마음이 놓인 듯 10년은 늙은 얼굴로 겨우 한숨 돌리며 휴식다운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백호야 저녁 시간인데 밥 먹어야지.”
입을 동그랗게 벌린 채로, 시선은 화면에 고정.
그렇게 마치 모니터와 연결된 듯한 백호는 지우를 쳐다보지도 않고 손을 휘휘 저었다.
“응. 괜찮아. 안 먹어.”
지우는 백호를 보며 웃었다.
방금 자신이 뭘 잘못 들었나 싶을 정도였다.
먹는 거라면 사족을 못 쓰는 게 백호였다.
그런 백호가, 그것도 저녁을 마다하다니.
은근히 사고뭉치이긴 하지만 자신의 주인이 준혁과 친형처럼 생각하며 따르는 청룡에 대한 관심과 마음이 얼마나 큰 지 알 수 있는 순간이었다.
“그럼 과일이라도 먹어.”
지우가 입 벌리고 더 월드를 보고 있는 백호의 입에 포도를 넣어 주었다.
백호는 더 월드를 보며 포도를 오물오물 씹었다.
지우는 백호를 지켜보다가 포도를 하나 더 넣어 주었다.
오물오물.
단 한 순간도 더 월드에서 눈을 떼지 않으면서도 백호는 입에 넣어 주는 포도를 잘도 먹고 있었다.
지우는 그 모습이 웃겨서 웃음을 참으며 백호의 입에 사과도 넣고 복숭아도 넣었다.
그 표정이 너무 웃겨서 사진을 찍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아 몰래 스마트폰으로 촬영했다.
이렇게 한 장 한 장도 추억이 되겠지.
찰-칵!
카메라 셔터 소리가 나자 백호가 고개를 돌렸다.
“그거 뭐야?”
백호가 복숭아를 먹으며 물었다.
“사진이라는 거야. 이렇게 촬영할 수 있어.”
지우가 찍은 사진을 보여 주었다.
“표정이 이상하네.”
“이런 걸 보고 귀엽다고 하는 거야.”
백호는 고개를 갸웃하고는 다시 TV 화면을 보았다.
또다시 입이 벌어진다.
“백호야. 어때? 백호 주인님이랑 청룡이 저렇게 화면에 나오는 걸 보니까?”
“신기해.”
“이제 기분 좀 풀렸어?”
“응. 어차피 내가 가도 어쩔 수 없었겠네. 적들이 엄청 세 보여. 내가 저기 있었으면 그냥 죽어 버렸을 것 같아.”
백호의 말을 들은 지우는 멍하니 눈을 깜박였다.
죽을 수도 있다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백호의 말이 조금 슬프게 들려서였다.
백호가 죽는다?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고 보니 백호가 얼마나 위험한 길을 가야 하는지. 얼마나 힘든 성장을 이루어 내야 하는지 실감이 났다.
“나도 빨리 강해져서 주인님이랑 청룡 형아랑 같이 다니고 싶어. 나도 저기 있고 싶어.”
백호가 진심이 뚝뚝 묻어나는 목소리로 말했다.
지우는 TV 화면 속에 비치는 청룡을 보며 미소 지었다.
“응, 백호도 저렇게 강해질 수 있을 거야. 신수니까.”
“복숭아 주라.”
백호가 화면을 보며 말했다.
지우는 웃으며 백호의 입에 복숭아 조각을 넣어 주었다.
복숭아를 먹으며 더 월드를 보고 있는 백호는 마치 공부를 하듯이 열정으로 빛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