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자의 모든 것 105화
커뮤니티의 힘은 강력하다.
눈 깜짝할 사이에 정보가 퍼져 나가며 불안은 더 빠른 속도로 커뮤니티 참여자의 가슴에 남는다.
(한국 각성자 커뮤니티)
- 헬퍼 요청했을 때 제일 안 도와줬던 것들이 뻔뻔하네.
- 우리 헬퍼 요청 무시할 땐 언제고 당당한 거 봐라.
- 일본 도와주다가 우리나라 블랙 던전으로 피해 발생하면 어떻게 됨?
- 일본도 뭐 이런 식 아니곤 방법이 없긴 한데…….
- 일본인들 감성팔이 시전 중.
- 갓준혁의 결정이 중요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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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각성자 커뮤니티)
- 우리에겐 귀환자가 필요하다…….
- 일본은 끝났다. 귀환자가 없다면.
- 우리 일본에는 왜 귀환자와 같은 헌터가 없는 건가?
- 최악의 상황이다. 시부야의 모습을 봐라. 믿어지지 않는다.
- 재앙을 막기 위해 정부와 협회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귀환자를 모셔와야 한다.
- 한국을 존중한다. 우리가 헬퍼를 받지 않았던 건 자국 내의 문제가 훨씬 더 심각했기 때문이다.
- 한국의 힘이 필요해 우린... 도와줘.
- 시작은 시부야지만 어디까지 확장될지 알 수 없다.
- 일이 커지기 전에 막아야 해. 막을 수 있는 건 귀환자뿐이야.
- 일본 협회장 키무라 겐지는 어째서 한국과의 기자회견을 열지 않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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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일하게 포커스가 귀환자로 좁혀지는 가운데 서로 다른 양단에서 입장 차이가 극에 달하고 있었다.
중도에 위치한 이들도 적지 않았으나 의견이 갈린 이들끼리의 주장이 훨씬 강한 어조로 퍼져 나가고 있었다.
일본의 협회장 키무라 겐지.
간부진을 이끌고 한국 공항에 도착한 그는 심호흡을 했다.
헌터의 시대는 끝났다.
미국 협회장 로건의 죽음으로 헌터의 화려한 문명 발전의 시대는 종말로 치닫고 있었다.
재난 사태로 변질된 상황을 타파할 수 있는 건 한국의 귀환자가 유일했다.
유일한 열쇠이자, 유일한 해답.
자존심은 일본에 내려 두고 왔다.
협회장으로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면 체면 따윈 생각하지 않고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야 했다.
실력 있는 헌터들이 통째로 던전에 의한 희생양으로 변한 지금 일본으로써는 한시가 급한 상황이었다.
협회장 겐지는 공항에서 미리 준비된 차량을 타고 귀환자가 머물고 있다는 캐슬로 향했다.
“협회장님, 한국의 여론이 좋지 않습니다.”
현재 겐지가 모든 한국의 인터뷰 요청을 거절하고 캐슬로 가는 이유가 거기에 있었다.
여론을 뒤집을 수 있는 건 처세 따위가 아니다.
오랫동안 쌓인 감정을 하루아침에 바꾸기란 어려운 일.
지금처럼 시간이 촉박한 상태에서 여론을 건드리는 것보단 귀환자를 설득하는 것이 훨씬 더 빨랐다.
처절하리만큼 깊은 각오를 심장에 새기고 한국을 찾았다.
부족한 시간과 일본의 재앙과도 같은 상황을 역전할 수 있는 건 오직 귀환자의 선택.
그 하나뿐이었다.
“들어가실 수 없습니다.”
약속 없이 캐슬을 찾아온 협회 무리를 캐슬의 경비 헌터들은 받아 주지 않았다.
설령 그가 일본의 협회장이라 할지라도.
이는 이미 예상했던 바였다.
“……!”
일본 협회장 키무라 겐지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캐슬 입구를 지키던 경비 헌터들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키무라 겐지가 캐슬 입구 앞에 무릎을 꿇은 것이다.
두 주먹을 허벅지에 얹은 채, 결연한 표정을 하고서, 그 자리에 뿌리를 내렸다.
“오실 때까지 이 자리에서 기다리겠습니다.”
협회장의 무릎 이후로 간부진들 다섯 명이 키무라 켄지의 뒤로 모두 무릎을 꿇었다.
캐슬을 향한, 일본 협회의 의지를 보여 주는 것이었다.
‘일본을 구제할 수 있다면 이 무릎 따위 얼마든지 꿇을 수 있다.’
키무라 겐지의 두 눈에서는 반드시 귀환자를 데리고 돌아가, 일본을 구하겠다는 의지가 결연하게 서 있었다.
일본 협회의 움직임을 쫓던 기자들은 먹이를 발견한 하이에나처럼 셔터를 눌렀다.
번쩍- 번쩍!
캐슬의 입구 앞에서 무릎을 꿇고 있는 협회장과 간부진들을 향해 카메라 불빛이 빗발쳤다.
키무라 겐지의 얼굴은 흔들림 없이 초연했으나 간부진들은 그렇지 않았다.
그들은 표정을 지키지 못하고 있었다.
일그러지고, 뒤틀린 표정.
간부진들이 표정 관리를 하지 못하는 건 협회장 키무라 겐지 때문이었다.
리더의 바닥에 닿은 무릎을 바라보자 억장이 무너져서였다.
“이는 수치도 수모도 아니다. 오직 생명을 지키기 위한 숭고함이다. 부끄러울 것도 가슴 아플 것도 없다. 반드시 귀환자님을 일본으로 모시는 데 온 마음을 다해야 한다.”
마치 간부들의 속을 읽기라도 한 듯이 키무라 겐지가 말했다.
흔들리던 간부진들의 얼굴이 하나둘 펴지기 시작했다.
어째서 한국의 땅을 밟게 되었는지.
얼마나 큰 각오로 한국으로 왔는지.
간부진들은 협회장 키무라 겐지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은 한마음이 되어 기원했다.
일본의 대재앙을 막을 수 있도록 귀환자가 확실한 결정을 내려 주기를.
끊임없이 연속되는 카메라의 시선을 받으며 일본 협회의 간절한 마음이 시간 속에 흐르기 시작했다.
(한국 커뮤니티 게시판)
- 뉴스 봤냐? 협회장 키무라 겐지 무릎 꿇었다. 그것도 캐슬 앞에서.
- 의외네, 꽤 거만한 이미지였는데.
- 이건 좀 인정한다. 자국을 위해 무릎을 꿇는 건 쉬워 보여도 쉬운 일이 아니지.
- 상황 보니까 나라도 저렇게 하겠다. 귀환자 없으면 일본 침몰은 기정사실이나 다름없는 수준이니;;;
- 아웃 브레이크 일어나기 전에 막아야 하는 건 맞지.
- 간잽이들 뭐 무릎 꿇으면 다 해결이 되나?
- 님들 영상 봤음? 지금 일반적인 게이트가 아님;;;
- 상황이 꽤 심각하긴 하더라. 분위기 쉣이던데.
- 가까운 나라라 브레이크 사태는 우리한테까지 불이 번질지도.
- 귀환자님, 캐슬 안에 계시는 건가?
한국 커뮤니티의 여론이 우호적으로 돌아서고 있었다.
일본 협회장 키무라 겐지의 무릎이 통한 것이다.
하지만 단순히 일본 협회의 처세 때문만은 아니었다.
뒤늦게 일본 시부야의 던전 형태가 일반적이지 않은, 아주 위험한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는 소식이 퍼져 나가고 있어서였다.
일본의 불안이 한국을 넘어 전 세계로 확대되고 있는 시점이었다.
* * *
백호는 무아지경이었다.
처음 눈을 떴을 때만 해도 이런 세상이 존재하는지 몰랐다.
백호는 자신이 그저 그런 평범한 생명체인 줄 알았다.
배가 고프면 울고, 배가 부르면 기분이 좋았다.
그러면서 주인을 인식하게 되고 인간을 인식하게 되었다.
사물과 언어를 배우면서 지능이 향상됨에 따라 눈에 보이는 모든 시야는 하나같이 다시금 새롭게 해석되었다.
백호 자신이 세상 밖에 있음을 인지한 것이다.
이후 청룡이라는 동질감이 느껴지는 존재에게 친밀감을 느꼈다.
함께 다니다 보니 싸우는 놀이를 하였고, 그 놀이에 재미가 붙었다.
그리고 그 놀이가 가진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는 바로 이곳 던전에서 깨닫게 되었다.
신세계였다.
야수성의 본능이 던전 안에서 폭발할 때마다 백호는 살아 있는 기분이었다.
그동안 모든 것이 뿌연 안개였다면, 지금은 선명한 미래가 보이는 시점이었다.
강해지고 싶다.
더 강해져서, 주인을 지킬 수 있는 힘을 갖고 싶었다.
‘청룡 형아처럼 강해지고 싶어.’
백호는 쉬지 않고 쉴 틈 없이 마수들을 처치했다.
신기하게도 하나하나 죽일 때마다 강해지는 게 느껴졌다.
몸속에 흐르는 피가, 마수를 처치할 때마다 강해지고 있다고 소리치는 듯했다.
그것은 중독적인 쾌감이었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자신의 앞을 가로막은 마수가 보였다.
백호는 야수성을 터트렸다.
입 밖으로 포효가 터져 나옴과 동시에 백호는 자신도 모르게 변화를 경험했다.
인간형의 모습에서 짐승형으로 바뀌었다.
커다란 호랑이처럼 변해 버린 백호는, 유려한 마나의 잔상을 남기며 마수에게 돌진했다.
마수는 감히 움직일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
나약한 마수는 먹잇감이다.
경험치이자 강함의 척도의 기준이 되는 놈들.
마수 백호의 진짜 발톱이 거대거미의 몸체를 찢어발겼다.
* * *
반복되는 D급 던전의 사냥.
레벨이 오르고 경험이 축적되면서 백호는 D급 던전의 패왕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었다.
백호에게 있어 D급 던전은 이제 놀이터에 불과할 정도로 익숙하고 편안한 사냥터였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변화가 시작됐다.
갑작스레 인간형에서 짐승형으로 변한 것이다.
그와 함께 새로운 시스템 메시지가 나타났다.
[백호가 각성했습니다.]
[백호가 본체를 드러냅니다.]
[공격력과 민첩이 두 배로 증가합니다.]
짐승형으로 변하자 훨씬 더 강력해진 백호였다.
[백호가 독거미를 처치했습니다.]
[0.2%의 경험치를 획득했습니다.]
‘확실히 경험치가 확 줄었네. 무엇보다…….’
준혁이 눈살을 구겼다.
‘각성으로 인해 스스로의 통제력을 상실하고 있어.’
사냥이 길어지면서 일정 레벨을 넘어가게 되자 더 이상 D급 던전은 경험치를 쌓기 힘들어지고 있었다.
“이번 던전만 클리어하고. 오늘은 여기까지 해야겠다.”
짐승형으로 변한 백호를 보던 최설화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사냥이 쉬워지긴 했지만 오래된 사냥으로 마력을 소모가 커진 탓에 백호는 꽤 지친 상태였다.
그때마다 최설화가 힐을 써 주긴 했지만 심리적 피로도의 누적은 피할 수 없다.
백호는 전투력에 강점이 있었지만 아직 멘탈적으로는 완성된 상태가 아니었다.
그런 만큼 사냥이 길어지자 집중력이 저하되었고 그 집중력 저하가 오히려 백호의 마음에 불을 당기며 각성을 일으킨 원인이 된 듯했다.
통제할 수 없는 힘은 힘이 아니다.
그것은 자신의 힘에 잡아먹힌 괴물일 뿐이었다.
얼마나 위험한 감정인지 준혁은 잘 알고 있었다.
마계에서 준혁 자신조차 경험해 본 적 있던 일이었다.
그 감정에서 벗어나기까지 얼마나 힘든 시간을 보냈었는지 지금도 여전히 생생히 기억났다.
광적인 전투 본능은 내면을 갉아먹기 마련이었다.
아무것도 눈에 보이지 않는 상태.
그 미친 광적인 힘은 그저 주변을 파괴하는 무의미한 힘에 불과했다.
“그만해라 백호. 여기까지다.”
백호가 말을 듣지 않고 사냥감을 찾아나섰다.
준혁이 빠르게 움직여, 백호에게 이르렀다.
뒷덜미를 움켜잡자.
“크워어엉!”
백호가 이를 드러내며 준혁을 돌아봤다.
이미 눈이 반쯤 돌아 있었다.
‘계속 체크하고 있지 않았으면 큰일 날 뻔했어.’
신수는 인간이 아니다.
신화를 품은 생명체일 뿐, 백호가 야수인 것은 결국 같았다.
그 한계를 넘어서면 신수 역시 인간만큼이나 특별한 존재가 될 수 있을 것이었다.
“정신 차려, 난 네 주인이다.”
준혁이 백호의 두 눈을 마주 보며 말했다.
공격성에 잠겨 있던 백호의 눈이 준혁의 눈을 빤히 보자 서서히 정상으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곧이어 백호는 자신이 언제 사나운 맹수의 외형을 했었냐는 듯이 인형 같은 아름다운 외모로 되돌아왔다.
소년의 모습이 된 백호가 준혁을 보며 순진무구하게 눈을 깜빡였다.
“……응? 주인님?”
백호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이 혼잣말처럼 준혁을 보며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