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자의 모든 것 104화
준혁은 침음을 삼켰고 최설화는 눈가를 짚었다.
그도 그럴 것이 대체 어디서 보고 따라 하는 건지 백호는 어마어마한 기술력을 선보이고 있었다.
최설화에게 직접 당했던 자이언트 스윙부터 시작해 온갖 프로레슬링 기술을 쓰기 시작한 것이다.
“파워슬램!”
“헤드시저스!”
“드롭킥!”
“슈퍼킥!”
“롤링 엘보!”
최설화는 넋이 나간 채 땀을 흘렸다.
“휴우.”
무려 프로레슬링 기술로 마수들을 처치한 백호가 뿌듯한 표정으로 준혁과 최설화를 돌아봤다.
씨익 웃으며 엄지 손가락까지.
“여유있게 하랬지, 누가 장난 치랬냐!”
최설화가 빽 소리 질렀다.
“장난 아닌데…….”
백호가 시무룩하게 말했지만 최설화는 불끈 쥔 주먹을 부들부들 떨었다.
“장난치지 말고 제대로 해, 제대로.”
최설화가 이마에 참을 인자를 그리며 말했다.
그 사이 스탯 포인트를 결정한 준혁이 백호에게 스탯을 부여했다.
카리스마 스탯은 스킬에 아주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이 역시 무시하지 못할 스탯이었다.
준혁은 3개의 포인트를 카리스마에 투자하고 나머지는 힘에 투자했다.
아무래도 근접 공격이 우선인 녀석이다 보니 메인은 힘으로 그리고 보조는 민첩 스킬과의 연계를 생각해 카리스마 쪽으로.
이렇게 세 개의 주 방향을 잡았다.
[스탯 포인트에 의해 백호가 스킬을 획득했습니다.]
[백호가 패시브 스킬 ‘야수왕’을 배웠습니다.]
<야수왕>
: 백호는 야수들의 왕이자 동물의 왕이다. 적은 백호를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공포에 의해 움직임이 30% 둔화된다.
패시브 스킬이니 딱히 마력이 필요한 것도 아니었다. 이 것은 순수하게 카리스마에 스탯 포인트를 투자한 것으로 인해 얻은 결과였다.
‘성향이 성향이니만큼, 카리스마 스탯도 꾸준히 올려 줘야겠네.’
“크오오오오오!”
백호가 두 주먹을 불끈 쥐며 포효했다.
이젠 제법 우렁찬 목소리가 던전 안에 울려 퍼졌다.
스탯 포인트로 인해 힘이 세진 것을 느낀 모양이었다.
거기에 카리스마 증대까지.
백호는 어서 자신의 힘을 시험하고 싶다는 듯이 이동했다.
“벌써 보스몹인가?”
준혁이 살짝 놀란 표정으로 뒤를 돌아봤다.
어느새 백호는 일반 마수들을 모두 사냥해 버린 듯했다.
“크오오……!”
백호가 전방의 어둠을 주시했다.
어둠을 뚫고 나온 보스몹의 마수는 홉 고블린이었다.
일반 고블린이 그저 평범한 속도라고 한다면 홉 고블린은 그 덩치도 차원이 달랐으며 힘과 속도는 말할 것도 없다.
더욱이 뛰어난 지능까지 갖춘 마수다.
돌창을 쥐고 있는 홉고블린에게선 마력의 빛이 피부를 휘감고 있는 게 보일 정도였다.
전문 헌터들조차 어려워하는 것이 홉고블린이었다.
하지만 그런 홉고블린조차 백호의 패시브 스킬을 피해갈 순 없었다.
아주 가느다란 떨림.
그것은 백호의 패시브 스킬 <야수왕>이 자동적으로 발동되었기 때문이다.
홉고블린은 전투를 하기 전부터 이미 30퍼센트의 둔화 효과에 걸린 상태였다.
본래라면 민첩한 몸놀림을 보여 주는 홉고블린이었지만 백호를 상대함으로 인해 그 속도가 현저히 느려진 상태였다.
[백호가 스킬 백호참을 사용했습니다.]
[스킬 백호참이 실패했습니다.]
백호가 살짝 당황하더니 홉고블린의 공격을 피해 거리를 벌렸다.
지금까지 간단하게 해치워 왔던 적들과는 달리 최초의 공방이 이루어진 것이다.
홉고블린의 단단한 철방패가 백호의 스킬 공격을 무마시켰다.
뒤이어 홉고블린의 돌창이 백호를 향해 찔러 들어갔다.
바람을 가르며 날아든 돌칼이, 백호가 있던 땅에 박혀 들어갔다.
홉고블린이 창을 빼내기 위해 끙끙거렸다.
그 틈을 기회로 잡은 백호가 스킬을 연계했다.
[백호가 스킬 화룡참을 사용했습니다.]
[백호가 스킬 백호참을 사용했습니다.]
공포에 완전히 질려 버린 홉고블린이 방어 수단이 사라졌다.
그 순간 적중하는, 백호의 날카로운 공격.
백호의 오므린 손가락이 휘둘러지는 순간 홉고블린은 피를 뿌리며 뒤로 나동그라졌다.
스탯 업의 효과에 의해 백호의 공격력은 훨신 상향되어 있었다.
홉고블린이 팔과 몸통에 선명한 세 줄기의 찢어진 상처가 생겼다.
출혈에 의해 홉고블린은 시름시름 죽어 가는 상태로 꿈틀거렸다.
백호는, 망설임 없이 홉고블린의 마지막 숨통을 끊어 냈다.
콰-직!
뜯겨져 나가는 듯한 소리와 함께 홉고블린의 머리가 휘리릭 날아가 바닥에 푹 떨어졌다.
[백호의 레벨이 올랐습니다.]
[던전을 클리어했습니다.]
던전 클리어 와 함께 레벨 업까지 이룬 백호였다.
“다음 던전으로 가자. 당분간은 D급 던전에서 적응해야겠어.”
“이 정도 기세면 C급 던전도 가능하지 않을까요?”
“레벨 업 시스템이 없었다면 그렇게 했겠지.”
“레벨 업이요?”
최설화가 의아한 표정으로 준혁을 보았다.
준혁은 미소 지은 얼굴로 백호를 보고 있었다.
“신수는 게임처럼 레벨이 오르거든.”
“맙소사.”
“D급 던전에서 여전히 훌륭한 경험치를 주는 이상, 마다할 이유가 없지. 성장은 이게 더 빠르다.”
준혁이 걸음을 옮기며 말했다.
최설화는 얼굴을 절레절레 흔들며 준혁을 뒤따랐다.
레벨을 올릴 수 있는 시스템이라니.
‘대체 어디까지 강해질 수 있다는 거야, 그럼?’
백호의 한계가 최설화의 기준 안에서, 엄청난 규모로 확대되는 순간이었다.
“크옹!”
던전 클리어를 마친 백호가 신이 난 듯 준혁에게 뛰어와 안겼다.
* * *
백호가 레벨 업에 한창 열중하고 있는 사이, 일본 시부야의 비석은 점차 더 큰 변화를 맞이하고 있었다.
“……시작된다.”
애꾸눈이 하늘을 올려다보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게이트가 열릴 조짐이 일어나고 있었다.
마치 불이 번진듯한 하늘 아래, 빌딩처럼 거대해져 버린 비석 주변으로 검은 연기가 불꽃을 티웠다.
하늘을 향해 그 연기는 마치 정해진 길처럼 솟아 올랐다.
그 연기는 비석 위로 허공을 배회하듯 움직이더니 마치 벌떼처럼 새카맣게, 점점 더 그 흑빛을 더해 갔다.
비석 주변에는 많은 헌터들이 있었다.
그들 대부분은 이곳으로 오고 싶지 않은 자들이었다.
실력은 애매했고, 돈이 필요한 자들.
그런 자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들은 불안한 표정으로 비석의 변화를 지켜봤다.
그 수가 약 백여 명이었다.
이 중, 만약 명령이 떨어진다면 죽음을 불사하고 던전으로 들어갈 수 있는 이들은 몇 명 없었다.
블랙 던전이 얼마나 위험한 곳인지 다들 알고 있었다.
수색대로 던전에 진입하는 건 자살행위였다.
그걸 모르는 이들은 없다.
그렇기에 여기까지만이었다.
여기서 게이트가 열리고, 추가 명령이 떨어지면 거부할 생각이었다.
차라리 정부와 협회와 맞서 싸우는 일이 있더라도 던전에 들어갈 수는 없는 일이다.
던전은 사지나 다름없는 지옥이었음을 모두 알고 있었다.
일용직 노동자처럼 그들은 하루하루 돈을 받았다.
그 조건으로 던전 주변을 경계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의 마음은 모두 하나였다.
‘게이트가 열리면 이 일도 끝이다.’
모두 그렇게 생각했다.
게이트가 열린 후부터는, 상황이 언제 어떻게 변할지 모르니까.
미리 발을 빼야 했다.
골드 던전은 매물이 씨가 말랐다.
결국 이젠 수준에도 맞지 않는 저급 던전을 가야 했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살기 위해선.
모두 한마음으로 게이트가 열리길 기다렸다.
그게 신호일 테니.
모두의 시선이 한 곳으로 향했다.
비석 위로 시커먼 구슬 하나가 만들어졌다.
그 원형의 형체는 점차 크기가 불어났다.
게이트가 열릴 때의 마나 파장을 위한 보호 장치는 이미 다 설치가 되어 있는 상태.
굉음과 함께 검은빛이 사방으로 번졌다.
쩌저적-!
갈라지는 소리가 헌터들의 귓속으로 파고 들었다.
그것은 프로텍트가 갈라지고 있는 소리였다.
눈치 빠른 몇몇 헌터들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뒤늦게 사태를 파악했을 땐 이미 늦었다.
프로텍트가 파괴되었고 검은빛이 반경 1키로미터에 쫙 퍼졌다.
마치 액체 한 방울이 바닥에 떨어져 퍼지듯이 그렇게 검은빛이 퍼졌다.
콰지지지지직!
마력 에너지를 뿌리는 시커먼 게이트 아래, 경계근무를 서고 있었던 일본의 헌터들은 던전핵이 되어 있었다.
하나같이 돌처럼 굳어, 미동이 없었다.
게이트가 열림과 동시에 다수의 던전핵이 된 것이다.
무려 한 명도 아닌, 정확히 112명의 헌터들 전부.
뒤이어 비석 주변으로 건물들이 마치 과자부스러기처럼 무너져 내렸다.
우르르!
땅이 흔들리고 건물들이 잿빛이 되어 폭삭 내려앉았다.
으깨진 땅 위로 마치 혈관처럼 생긴 것들이 던전핵이 된 헌터들에게로 향했다.
그 것은 마치 바늘처럼 헌터들의 몸에 박혀 들어갔다.
뒤이어 던전핵이 된 비석과 연결되기 시작했다.
마치 링겔처럼 던전핵이 된 헌터들의 작은 생명의 파편들이 비석에게로 흘러 들어갔다.
비석에 새겨진 빨간 문자는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더 그 색이 핏빛으로 진해졌다.
한 순간에 비석의 1킬로미터 반경은 재해 현장이 되었다.
재앙에 휩쓸린 헌터들은, 인지하기도 전에 비석의 먹이가 되어 버린 후였다.
역사상 단 한 번도 없었던 이례적인 게이트의 형성이었다.
* * *
선우는 뉴스를 보고 있었다.
일본이 발칵 뒤집어졌다.
블랙 던전으로 추정되는, 비석이 만들어 낸 게이트의 재앙은 끔찍했다.
비석 부근에서 경계 근무를 섰던 헌터들은, 살아 있는 건지 죽어 있는 건지 모를 상태로 비석과 연결되어 있었다.
던전 부근으로 접근하지 못하며, 드론 카메라로 촬영된 영상.
그 영상 속 화면은 참담했다.
마치 조각상처럼 변해 버린 헌터들을, 비석이 마치 영양분을 섭취하듯 뭔가를 추출해 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비석과 헌터와 연결된 선은 마치 혈관처럼 꿈틀거리며 맥박이 뛰듯 출렁였다.
이는 일본 정부나 협회에서 숨기려고 해도 숨길 수 없는 일이었다.
던전 게이트 주변에서 일어난 일이었으니까.
처음 보는 게이트는 사태는 일본뿐만이 아니라 선우의 마음도 불안하게 만들었다.
최초는 언제나 위험하며, 어떠한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지 모른다.
정보의 부재는 곧, 리스크로 이어진다.
심각한 표정으로 영상 속 화면을 보고 있던 중 노크 소리가 들렸다.
비서였다.
“일본에서 협회장과 협회 간부들이 한국으로 출발했다고 합니다.”
선우는 헛웃음을 흘렸다.
누가 봐도 귀환자에게 도움을 청하기 위해 약속도 없이 막무가내로 쳐들어오는 꼴이었다.
물론, 그만큼 그들이 몰려 있는 것이기도 했다.
일본의 각종 커뮤니티에서는 재난 공포가 확산되고 있었다.
대응 방안에 대해 결정 난 것이 아무것도 없으니 도쿄 시민 뿐만이 아니라 일본 전부가 두려움에 떨었다.
선우는 혀를 차며 뉴스를 클릭했다.
한국 시민들은 한국에 발생될지도 모를 블랙 던전 발생을 대비하는 것이 우선이라며 일본의 도움을 거절하고 자국의 안전에 집중하자는 여론이 강해지고 있었다.
일본 정부의 헬퍼 요청.
그리고 한국의 여론.
선우는 그 두 선택지 앞에 서 있었다.
아무리 귀환자인 한준혁, 자신의 친형의 의견이 중요하다 할지라도 신중히 결정해야 할 문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