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자의 모든 것 103화
온화한 미소를 짓고 있던 최설화의 새하얀 얼굴이 마치 깨진 유리 조각처럼 비틀렸다.
“아, 아줌마……?”
표정관리가 되지 않는 최설화의 뺨이 씰룩거렸다.
입술이 떨리고, 눈에서는 살기가 빗발쳤다.
심상치 않은 변화를 감지한 백호가 민첩하게 밖으로 뛰어나갔다.
“망할 흰 똥개 자식이……!”
주먹을 불끈 쥔 힐러 최설화가 빛을 뿌리며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지우는 입을 떡 벌렸다.
“순간이동까지?”
아래 거실에서 백호의 비명 소리가 울려 퍼졌다.
“크오오오오오옹!”
지우는 집사와 함께 웃으며 1층으로 내려갔다가 웃는 얼굴이 굳어져 버리고 말았다.
최설화가 분노의 극에 이르러 있었기 때문이다.
백호의 꼬리를 잡고 자이언트 스윙으로 360도 회전 중인 최설화의 눈빛은 진심이었다.
백호가 어지러운 듯 눈이 팽팽 돌아갔다.
한껏 화를 풀고서 놔주자 백호는 어지러운지 비틀비틀 걷다가 철퍽 쓰러졌다.
“후우, 꼬맹이라 봐줬다.”
‘그, 그게 봐준 건가요?’
지우는 땀을 삐질 흘리며 말을 삼켰다.
그래도 이렇게 한 차례 힐러님의 무서움을 알게 되었으니 앞으로는 조금 고분고분해질지도 몰랐다.
식사 시간이 지나고 오전.
준혁은 백호를 데리고 여김없이 던전에 가기 위해 출정했다.
오늘은 최설화도 함께였다.
“대체 넌 뭐가 그렇게 불만이 많은 거야! 응? 말을 해 봐. 난 도저히 모르겠단 말이지. 내가 얼마나 잘해 주려고 했는데. 그리고 오늘은 엄청 비싼 힐도 해 줬잖아.”
차 안에서 최설화가 백호에게 일장연설을 늘어놓았다.
백호는 모른 척 먼 곳을 보고 있었다.
지우에게 오늘 아침에 있었던 일에 대해 들었는데, 잠시 정원에 나가 있는 사이 있었던 일이었다.
준혁도 조금 놀라긴 했다.
“자이언트 스윙이라니. 그거 레슬링 기술 아니야?”
“너무 얄밉게 굴잖아요.”
“백호.”
준혁의 부름에 백호가 흠칫 어깨를 떨었다.
백호가 가장 무서워하는 건 오직 단 한 명.
자신의 주인 한준혁이었다.
“널 도와주는 사람을 귀하게 여겨라. 그러지 않으면 다른 이들 모두 널 귀하게 여기지 않을 테니.”
그 말인즉슨 주인인 준혁 역시 포함된다는 얘기일 수도 있었다.
계약된 신수는 주인을 향한 충성은 기본이고 주인의 마음을 얻고자 노력하는 것이 본능이었다.
그런 만큼 방금 준혁이 내뱉은 말은 그 여느 때보다 백호에게 강한 임팩트로 꽂힐 수밖에 없었다.
“죄송해요.”
백호가 시무룩하게 사과하자 최설화가 여전히 마음에 안 든다는 듯 팔짱을 낀 채 흥하고 콧방귀를 뀌었다.
그러자 퐁! 하는 소리가 나더니 백호가 짐승형으로 변했다.
“……!”
최설화가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방금 전까지 소년이던 백호는, 차량 뒷자리 반 이상을 차지할 정도의 덩치의 짐승형으로 변했다.
예전 강아지만 한 모습은 없었다.
“귀, 귀, 귀환자님.”
최설화가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녀는 본래 맹수형 짐승을 좋아하지 않았다.
생긴 게 무서웠기 때문이다.
백호가 커다란 머리를 들이밀며 최설화의 어깨를 핥았다.
나시 차림이던 최설화는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그대로 얼음처럼 얼어 버리고 말았다.
준혁도 놀란 얼굴로 덩치가 커진 백호를 보았고, 지우도 기절할 듯이 놀랐다.
새하얀 털에 검은 줄무니의 백호가 머리를 들이밀며 애교를 부렸지만 그건 최설화에게 애교가 아니라 오히려 공격이었다.
“아무래도 백호가, 자유자재로 변신할 수 있나 봐요.”
지우의 말에 준혁이 팔짱을 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 조절은 못 하는 줄 알았는데. 그럼 청룡도 가능하려나?”
짐승형 형태에선 어떤 전투력이 나올지 생각하고 있는 준혁이었다.
그사이.
“귀, 귀, 귀환자님. 사, 살려 주세요. 저, 너, 너무 무서워요.”
텔레포트조차 쓸 생각을 하지 못하고 굳어 있는 최설화였다.
준혁이 백호의 목덜미를 잡아 확 당겨 왔다.
“짐승형으로 변하면서 기운도 달라졌어.”
지우도 겁먹은 듯 차량 유리에 바짝 붙었다.
그도 그럴 것이, 덩치가 커지면서 신수 본연의 카리스마가 조금씩 흘러나오고 있어서였다.
백호의 털끝에는 반투명한 푸른빛이 맺혀 있었다.
백호가 얌전히 준혁의 팔에 목이 끼여 있는 동안 최설화가 창문을 열고 새파란 얼굴로 숨을 몰아쉬었다.
‘포스의 증가라…… 최대 전력은 어쩌면 짐승 형태에서 나오게 되는 걸지도.’
그럼 그건 곧 마력의 소모 역시도 많아진다는 걸 의미할 수도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오래되지 않아 백호는 팡! 하고 본래의 소년 모습으로 돌아왔다.
까불지 말라고 다그쳤던 최설화였지만 오히려 이번 계기로 백호를 더 무서워하게 된 그녀였다.
“신수는 신수구나.”
준혁이 피식 웃으며 백호의 머리를 헝클어트렸다.
백호는 멍하니 있다가 히이 하고 천진난만하게 웃었다.
조금 전, 신수의 포스와는 전혀 상반된 소년의 미소였다.
* * *
D급 던전.
흔히, 여기서부터 사람들은 진짜 던전이라고 취급했다.
하급이긴 해도 제대로 된 던전 물질을 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만큼 던전의 난이도는 E급과 대비해 매우 크게 올라간다.
현재 백호의 레벨이 과연 D급 던전에서도 통할까?
모른다. 하지만 정상급 힐러 최설화가 있으니, 설령 부상을 입는다고 하더라도 도전할 만한 던전이었다.
난이도가 높아진 만큼 레벨 업은 훨씬 더 빨라질 것이다.
“백호 파이팅!”
지우의 응원을 받으며 준혁은 최설화와 함께 백호를 데리고 던전 안으로 진입했다.
D급 던전의 주요 마수들은 대부분 방어력과 체력이 남다르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마수들의 속도도 E급과는 차원이 다른 정도.
준혁은 백호가 당황할 거라 생각했다.
갑작스러운 수준 차이는 패닉을 가져오니까.
반사신경과 민첩함이 좋은 편이지만, 공격력과 전투 경험을 생각해 봤을 때 준혁은 백호가 고전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역시 백호는 기대 그 이상의 천재성을 발휘해 내기 시작했다.
[백호가 스킬 백호참을 사용했습니다.]
[백호가 대형거미 옹골르를 처치했습니다.]
백호는 마수가 나타나자마자 마치 굶주린 듯 화끈하게 마수를 처치했다.
‘뭐지?’
준혁의 눈이 이채를 띠었다.
‘달라졌어.’
분명 어제 첫 던전 사냥을 할 때만 해도 다소 둔한 공격 형태였다.
전투 경험이 없기 때문에 그러리라 생각했다. 그리고 그건 던전 사냥의 횟수가 늘어감에 따라 좋아질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백호의 모습은 놀라웠다.
하루아침에 완전히 다른 존재가 된 듯했다.
[백호가 언데드베어를 처치했습니다.]
[백호가 대형거미 옹골르를 처치했습니다.]
[백호가 전기전갈을 처치했습니다.]
마치 던전을 뒤집어 놓듯이 백호의 파괴적인 할퀴기가 마수들을 찢고 파괴했다.
준혁은 백호의 전투를 보면서 왜 달라졌는지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근본적인 변화.
그 끝에는, 청룡이 있다.
백호로부터 청룡의 이미지가 겹쳐 보였다.
‘기본기를 배웠군.’
단순히 기본을 배웠다고 해서 확 달라질 수 없다.
뭐든지 단계가 있기 마련.
하지만 이로써 확실해졌다.
신수라는 것을 증명하듯 백호는 천재성을 여지없이 펼쳐 내고 있다.
‘연무장에서의 수련만으로 이 정도의 발전인가?’
준혁은 흐뭇하게 백호를 응시했다.
그저 어리광만 부릴 줄 아는, 눈앞이 캄캄한 녀석인 줄 알았더니 DNA가 엘리트다.
[백호의 레벨이 올랐습니다!]
[백호의 레벨이 올랐습니다!]
[백호의 레벨이 올랐습니다!]
[백호의 레벨이 올랐습니다!]
거침없이 D급 던전의 마수들을 돌파하더니.
[백호가 새로운 스킬을 습득했습니다.]
[스킬 사자후를 배웠습니다.]
스킬을 얻자마자, 깨달은 듯이 백호가 사자후를 내질렀다.
“으아아아아아!”
백호에게 다가서던 마수들이 그 자리에서 굳어 버리더니 사지를 떨기 시작했다.
마수들이 몸을 떠는 건 재미있는 광경이었다. 본디 마수들은 공포를 잘 모른다. 전투에 대한 흥분이 과열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수에게조차 공포의 본능을 일깨우는 백호의 스킬은 적들의 수적 우위를 무용지물로 만든다.
[백호가 아머울프를 처치했습니다.]
높은 체력과 단단한 방어력을 가진 마수들이었지만 마치 천적을 만난 것처럼 마수들은 종잇장처럼 찢겼다.
기본기가 탄탄해지면서 속도가 올랐고, 힘은 더 크게 실렸으며 마력은 훨씬 더 진해졌다.
거기서 끝이 아니다.
아직 성장 초기 단계라 백호는 마나가 충분하지 않았다.
그 점을 깨달은 듯 전투를 할 때를 제외하고는 마나를 갈무리하는 법을 스스로 터득한 것처럼 보였다.
백호의 전신을 감싸고 있는 마나의 빛이 반짝이는 것이 바로 그 근거였다.
‘누가 백호 아니랄까 봐 사냥에는 아주 타고 났군.’
백호의 사냥 모습에선 맹수의 특성을 자주 발견할 수 있게 되는데, 멍청한 마수들을 상대로는, 소리 없이 접근해 뒤에서 덮치듯이 공격했다.
그렇게 마나를 크게 소모하지 않은 채 마수를 잡아내는 것이다.
“……원래 백호가 저렇게 강했나요?”
힐러 최설화가 진지한 어조로 백호의 사냥을 지켜보며 물었다.
“나도 매번 놀라는 중이야.”
최설화는 최상위 헌터로서의 시각으로 백호를 체크하고 있었다.
만약 백호가 신수가 아닌 사람.
그러니까 헌터였다면, 어떤 평가를 받게 될까?
최설화는 백호가 1티어 잠재력으로 분류되어 최상급의 대우로 모셔가야 할 헌터라고 확신할 수 있었다.
그만큼 백호는 눈부신 활약으로 그 가능성을 입증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무려 귀환자의 신수이니 그 잠재력은 배가된다.
백호령의 성장 한계는 유추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어디까지, 얼마나 빠른 속도로 강해질 수 있을지 가늠할 수 없는 것이다.
[백호의 레벨이 올랐습니다!]
[백호의 레벨이 올랐습니다!]
[백호의 레벨이 올랐습니다!]
“……벌써 20레벨이라. 스탯을 어디로 줘야 하지?”
스탯포인트를 찍기도 전에 D급 던전의 마수를 삼키면서 엄청난 속도로 레벨업하고 있었던 터라 벌써 스탯이 쌓이고 밀리는 중이었다.
준혁이 스탯 포인트에 대해 고민하는 동안 최설화가 백호에게 다가갔다.
백호는 무릎을 붙잡고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쉴틈없이 몰아 친 만큼 체력 소모도 그만큼 심한 것이다.
“백호야, 충분히 잘해 주곤 있지만 너무 급해. 그렇게 서둘러서 사냥하다간 실수가 생길 수도 있고, 나쁜 습관으로 자리 잡을 수도 있어.”
최설화의 충고에 백호는 군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동의하는 내용이어서였다.
마음이 앞서고 있는 건 사실이었다.
잘 할 수 있다는 걸 보여 주고 싶었으니까.
“여유를 가져. 그럼 훨씬 귀환자님, 아니 백호의 주인님도 높이 평가할 거야.”
“여유가 곧 강한 것의 증명……?”
백호가 뭔가를 깨달은 듯이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최설화가 힐을 뿌려 주자 거칠었던 백호의 호흡이 순식간에 편안해지기 시작했다.
백호가 놀란 눈으로 최설화를 보았다.
감탄이 담긴 시선이었다.
“화이팅 해. 주인님에게 최고 점수를 받아야지?”
“응, 힐러님. 보여 줄게!”
백호가 눈을 반짝이며 나아가야 할 길을 바라보았다.
뜨거운 열정이 백호의 붉은 눈동자에 일렁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최설화는 당혹스러움에 뺨을 씰룩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