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자의 모든 것 96화
벼락 같은 한 줄기의 검강이 벤자민의 명치를 관통했다.
무리한 내공 운영으로 인한, 출혈 때문에 손이 흔들렸다.
정상적인 몸 상태였다면 심장을 꿰뚫었으리라.
“크읏!”
청룡이 바닥에 창을 찍으며 한쪽 무릎을 꿇었을 때, 벤자민이 피거품을 문 채 비틀거렸다.
뿌연 흙먼지가 모두 사라지고 두 사람의 모습이 준혁의 시야에 들어왔다.
“몸 상태가 아직 안 좋았던 거면 얘기를 했어야지.”
준혁이 안타까움을 삼키며 말했다.
“일검도 안 되는 놈이지만 생각보단 꽤 강하군요.”
육 할밖에 되지 않는 힘으로 리더보드 10위. 유출된 마수와 세계수를 등에 업은 벤자민을 상대한 것이었다.
“충분히 잘했다. 쉬고 있어.”
준혁이 청룡을 일으켜 주며 말했다.
“……대체 뭡니까, 저건?”
청룡이 놀란 눈으로 뭔가를 보고 있었다.
준혁의 시선이 청룡을 따라갔다.
그곳엔 벤자민의 신체에서 기괴한 반응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그의 찢어진 명치에선 검은 액체가 마치 젤리처럼 꾸물꾸물 흘러나오고 있었던 것이다.
“크, 크으읏. 대체, 어떻게, 내가…… 저따위 꼬맹이에게…… 푸우우우우!”
벤자민이 마치 분무기처럼 입 밖으로 피를 뿌리더니 철퍽, 양팔을 펼치며 쓰러졌다.
“던전에서 유출된 마수가 저놈 몸으로 들어간 것 같다.”
검은 액체가 곧 연기를 뿌리더니 서서히 형체를 만들고 있었다.
그걸 보고 청룡이 창대를 고쳐 잡았다.
“넌 쉬고 있으라고 했잖아. 무리할 필요까진 없어.”
준혁이 청룡의 어깨를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주인의 명령이니만큼 청룡은 숨을 고르며 바닥에 앉아 운기조식을 했다.
입 밖으로 자꾸만 비릿한 핏물이 나오려고 하고 있었다.
청룡은 준혁을 믿고, 눈을 질끈 감은 채 운기조식을 했다.
애초에 부상당한 몸으로 내공을 운용하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는 것이었지만 어서 증명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주인에게 힘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주인이 바라는 뜻에 한 걸음 가까워지고 싶었다.
‘빌어먹을 몸뚱어리.’
청룡이 자신의 나약한 육체를 탓하고 있는 사이 준혁은 형체를 완성시키고 있는 검은 연기를 향해 걸어가며 큐브에서 헬바인의 장검을 꺼내 들었다.
청룡이 운기를 하면서 천천히 눈을 떴다.
주인의 뒷모습이 보인다.
청룡은 주인이 들고 있는 헬바인의 장검을 보았다.
눈동자에 스치는 놀라움.
‘명검이다.’
한눈에 봐도 알 수 있을 만큼, 눈부신 검이었다.
검이 가진 강도는 그 어떠한 힘도 견뎌 낼 수 있을 만큼 단단해 보였다.
“벤자민. 그 힘을 얻고도 이따위라니. 아무 짝에 쓸모 없는 쓰레기같은 육체…!”
검은 연기가 탄식하듯 말했다.
벤자민은 이미 싸늘한 시체가 되어 있었다.
“전처럼 도망갈 생각 하지 마라.”
준혁이 칼등을 어깨에 걸치며 말했다.
검은 연기의 얼굴 쪽에서 검은 불꽃이 탁탁 튀었다.
“악마들을 닮았군.”
준혁이 걸음을 옮기며 나직이 말했다.
검은 연기가 몸체를 움츠렸다.
“지독한 필멸자 놈……! 네놈은 정녕 필멸자이긴 한 것이냐?”
“보면 모르냐?”
준혁이 장검의 칼자루를 꽉 쥐었다.
검은 연기가 이내 준혁 바깥쪽으로 날아가면서 운기조식 중인 청룡을 노렸다.
이미 그 상황의 수도 계산하고 있었던 준혁이었다.
멸마의 서가 만들어 낸 빛의 문자가 사슬처럼 변했다.
멸마의 서가 만든 빛의 사슬이 청룡의 앞에 이르러 손을 내뻗는 검은 연기의 사지를 묶었다.
“크르륵……!”
검은 연기에서 절절 끓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놈은 청룡을 향해 필사적으로 손을 내 뻗고 있었지만 멸마의 서에 의해 철저히 움직임이 제한 된 상태였다.
뒤이어 검은 연기가 괴성을 지르며 몸부림쳤지만 이미 멸마의 서가 만든 사슬에 붙잡힌 놈은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못했다.
“죽일 것이다. 죽일 것이야. 네놈의 신수를 죽일 것이다……!”
검은 연기에게 걸어가던 준혁의 귀가 꿈틀 움직였다.
“……신수를 알고 있어?”
준혁이 의문을 품은 눈으로 놈을 주시하며 가까이 다가섰다.
사슬에 묶여 몸부림치고 있는 놈의 시선은 오직 운기조식에 열중하는 청룡에게 향하고 있었다.
집요한 집념.
“처음부터 네 목표는 신수였구나.”
검은 연기가 안간힘을 다해 청룡을 향해 손을 내뻗고 있었다.
던전에서 유출되어 나와 벤자민의 몸을 지배하고 한국으로 온 건 모두 검은 연기의 통제하에 이루어진 것 같았다.
“설마…… 너 케르니안이 보냈냐?”
제 12마신 케르니안.
이미 준혁의 목적을 알고 있었으니 그것을 저지하기 위해 악령들을 인간계로 보냈다면 이 한낱 악령 따위가 신수의 존재에 대해 알고 있는 게 말이 됐다.
“마신을 모욕하지 마라. 마신은 마계의 지배자이자 마계의 주인. 필멸자 따위가 모욕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악령이 이렇듯 감정적으로 대꾸하는 걸 보니 확실한 것 같다.
“깡그리 다 소멸시켜 버리고 올 걸 그랬네. 아니지. 케르니안 덕분에 균열의 틈을 찾고 있으니 오히려 잘된 일일지도.”
준혁이 조용히 타오르는 눈동자로 청룡을 죽이기 위해 버둥거리는 검은 연기를 응시했다.
‘저놈도 보상을 줄까?’
준혁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헬바인의 장검을 대각으로 휘둘러 놈을 베었다.
“뀌아아아아아아아악!”
검은 연기가 소름 끼치는 비명을 내지르며 반으로 찢겨져 나갔다.
소멸되어 흩어지는 영혼.
그리고 그와 동시에 시스템 메시지가 나타났다.
[마족을 처치했습니다.]
[균열의 열쇠를 얻었습니다.]
[청룡의 레벨이 올랐습니다.]
준혁은 시스템 메시지를 보며 헛웃음을 흘렸다.
자신을 저지하기 위해 쓴 케르니안의 수가 오히려 준혁을 도와주고 있는 셈이 확실시되는 순간이었다.
시스템 보상을 통해 허공이 살짝 찢어지더니 그 틈을 통해 열쇠 하나가 뚝 떨어졌다.
준혁은 그것을 낚아채고 곧바로 큐브 속에 던져 넣었다.
“주인님, 이상합니다.”
운기조식을 하고 있던 청룡이 의아한 표정으로 스스로를 돌아보고 있었다.
“……내공이 확장된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청룡이 자신의 변화에 놀라고 있었다.
무공의 고수였던 만큼 힘의 확장을 벌써 눈치 챈 것이다.
“말했잖아. 날 따라오면 강해질 거라고.”
청룡이 믿어지지 않는다는 듯 커다랗게 뜬 눈으로 준혁을 보았다.
대체 그게 어떻게 가능하냐는 눈빛이었다.
준혁이 작게 웃었다.
“조금씩 익숙해질 거다.”
청룡에게 손을 내밀었다.
가부좌를 틀고 운기를 마친 청룡이 준혁의 손을 잡고 일어섰다.
청룡은 여전히 창백한 얼굴이었다.
“이 정도로 상태가 안 좋은 줄은 몰랐어. 처음 나랑 싸울 때부터 몸이 완전하지 않았던 거지?”
청룡이 고개를 끄덕였다.
운기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정사대전에 입은 치명상이 여전히 악독하게 몸을 괴롭히고 있었다.
준혁이 큐브에서 첫 번째 어비스 월드에서 구한 엘릭서를 한 병을 꺼냈다.
“마셔라.”
청룡은 준혁이 건네는 엘릭서를 의아한 눈빛으로 보았다.
“이건 무엇입니까?”
“약이다. 먹으면 몸이 정상으로 돌아올 거야.”
청룡이 고개를 갸웃하며 웃었다.
그럴 리가 없다.
누구보다 자신의 몸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청룡이었다.
몸에 좋다는 모든 영약을 섭취했음에도 불구하고 회복되지 않고 있는 몸이다.
단순히 육체가 손상에서 회복되는 과정이 아니다.
정파 고수의 순수한 내공과 천마였던 시절 자신이 가지고 있던 마기의 내공과 충돌하면서 생긴 공력의 뒤틀림.
이에 내공을 운용할 때마다 힘을 잃고 그 기운이 소실되곤 했다.
결단코 하루아침에 나을 수 있는 몸 상태가 아님을 청룡은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주인의 말에 토를 달지 않았다.
그저 주는 대로 감사히 먹을 뿐.
그의 성의가 담겨 있는 영약일 것이니.
청룡은 한 방울도 남김없이 엘릭서를 마셨다.
그러자 마치 전신을 흠뻑 적시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뭐지?’
체온이 올라간다.
잃어버린 생기가 되돌아오고 있었다.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길을 헤매고 있던 내공이 마치 제 눈을 찾은 듯이 혈맥을 타고 내공이 빠르게 순환하고 있었다.
운기를 하고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이론적으로 불가능한 소주천의 움직임이 이루어진다.
‘설마……?!’
청룡은 텅 빈 엘릭서 병을 보았다.
주인이 준 이 영약이 정말로, 몸을 정상으로 회복시킨단 말인가?
청룡은 정말이지 까무러칠 뻔했다.
새삼 주인을 의심했던 자신이 한심할 지경이었다.
자신의 주인은 이미 차원을 넘어선 신선과도 같은 존재.
인간의 눈으로 바라볼 수 있는 대상이 아니었다.
청룡은 굵은 침을 꿀꺽 삼키며 내공의 상태를 확인했다.
영약을 먹은 지 시간이 크게 흐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벌써 육체는 십 할의 공력을 펼칠 수 있을만큼 완전한 상태로 되돌아와 있었다.
“주, 주인님.”
청룡이 자신의 몸을 보며 더듬거리며 말했다.
준혁이 청룡을 돌아보곤 피식 웃었다.
“말했잖아. 고쳐 줄 수 있다고.”
그토록 애를 써도 회복할 수 없었던 몸이 한순간에 나았다.
믿어지지 않는 기적이었다.
“……감사합니다. 그렇게 귀한 것을 저에게 주시다니. 이 은혜를 어찌 갚아야 할지.”
“가족끼리 은혜 같은 건 없는 거야. 네가 나를 순수히 돕기로 결정했듯이, 나 또한 너를 귀하게 여기는 것뿐이다.”
청룡은 가슴에서 파문을 만들며 퍼지는 감정에 눈을 커다랗게 떴다.
가족.
그 두 글자가 주는 낯선 감정이 불편하면서도 순응되었기 때문이다.
청룡은 말없이 앞서가는 준혁을 따라갔다.
* * *
“……무슨 신수가 저렇게 세?”
준혁이 데려온 새로운 신수의 전력을 본 선우는 웃음지었다.
들은 바가 있어 실력이 출중할 건 알고 있었지만 벤자민을 쓰러트릴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신수 혼자서 무려 리더보드 10위의 벤자민을 꺾은 것이다.
자신의 형이 어째서 그토록 신수에 집착하고 신수를 찾으려고 했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연무장에서 붙으면 한 입 거리도 안 되겠네.”
선우는 착륙장을 걷는 준혁과 신수 청룡을 보며 헛웃음을 흘렸다.
전 세계를 공포에 떨게 만들었던 마수와 벤자민의 문제를 해결했다.
현재 파천 길드가 벤자민의 시신을 수습 중에 있었다.
이로써 미국은 귀환자에게 큰 빚을 진 셈이 됐다.
선우는 공항 VIP 라운지 안에서 노트북을 펼치고 앉았다.
앞으로의 미국과의 관계에 대해선 굳이 말할 필요도 없이 탄탄대로였다.
미국이 협조적으로 나오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협회장이 사망한 문제로 한동안 시끄럽겠군.’
무거운 표정으로 잠시 생각에 잠겼던 선우가 한숨을 쉬며 노트북을 펼쳤다.
“우선 해야 할 일부터 정리하자.”
선우는 드론 카메라로 녹화된 영상을 파천 길드 백인호 마스터에게 전송했다.
오늘 저녁쯤이면, 공지사항이 개재됨과 동시에 이 영상이 전 세계에 퍼져 나갈 것이다.
헤드라인을 장식할 뉴스들이 넘쳐 날 것이며 시민들이 안심하게 될 것이고 또다시 귀환자의 가치가 얼마나 귀중한지 깨닫게 될 것이다.
“정말이지, 세상을 쥐락펴락하는군.”
선우는 착륙장에서 공항으로 가고 있는 준혁과 청룡을 보며 쓴웃음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