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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의 모든 것-95화 (95/175)

귀환자의 모든 것 95화

벤자민이 천천히 일어서자 기장이 벽에 붙어 숨을 몰아쉬었다.

“헉, 허억!”

죽음이 눈앞에 있었다.

“놀랍지 않나? 1서클의 마법만으로도 이렇게 많은 인간이 죽을 수 있다는 것이?”

벤자민이 천천히 팔을 젖히며 기장의 얼굴을 빤히 보았다.

죽음 직전에 머물러 있는 표정은 늘 재미있다.

그렇게 느릿하게 최대의 만족을 느꼈다.

“이 불과 함께 항공기는 추락할 것이다.”

이내 불덩어리를 집어던지기 직전.

눈부신 빛이 번쩍였다.

그 섬광 효과에 잠시 눈을 찌푸린 벤자민이 뒤를 돌아봤다.

그곳엔 메이즈 소속이었던, 준혁의 전담 힐러, 최설화가 있었다.

“……!”

적이 나타날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기 때문에 벤자민은 완전히 무방비 상태였다.

비록 특성이 힐러라고는 하나, 정상급 힐러의 물리 데미지는 A급 헌터에 필적한다.

최설화가 무방비로 열려 있는 벤자민의 옆구리를 하이힐로 밀어 찼다.

벤자민은 손에 쥔 불덩어리와 함께 항공기의 전면 유리를 뚫고 바깥으로 떨어져 나가 추락했다.

조종실로 거센 바람이 들어오자 최설화는 곧바로 프로텍트 마법을 실행했다.

뻥 뚫려 있던 전면 유리창의 문제를 마법을 해결하자 더 이상 바람은 치밀지 않았다.

하지만 곧 감각이 위험 신호를 알렸다.

추락하던 벤자민이 마법을 이용해 항공기를 향해 나무줄기를 쏜 것이다.

그가 가진 능력이라면 항공기를 파괴하는 건 손쉬운 일이었다.

하지만 벤자민의 마법은 최설화가 항공기 아래쪽에 미리 만들어 둔, 최대 마력으로 설치한 프로텍트 벽에 막혀 버리고 말았다.

최설화의 마법을 깨트릴 수는 있었지만, 항공기는 건드리지 못했다.

“크아아아악!”

벤자민의 울분에 찬 외침이 창공에 울려 퍼졌다.

항공기의 안전을 확인한 최설화기 가장을 보았다.

“괜찮아요?”

최설화가 물음에 기장이 가슴을 쓸어내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사이 최설화는 바닥에 쓰러진 부기장의 상태를 살펴봤다.

미약하게 숨이 붙어 있었다.

평범한 의사가 봤다면 가망이 없다고 판단했을지 모르나 최설화는 무려 메이즈 소속의 정상급 힐러.

그녀는 최대한의 집중력으로 부기장의 몸에 힐을 주입하기 시작했다.

부기장의 생명은 마치 꺼지기 일보 직전의 아주 미세한 불씨였다.

최설화는 그 불씨를 살리기 위해 아주 조심히, 섬세하게 생명의 힘을 불어넣었다.

치료하는 동안 최설화의 심상 안에서 부기장의 생명은 마치 촛불처럼 흔들렸다.

살아날 듯 살아나지 않는 미약한 생명의 불씨.

식은땀 한 줄기를 흘리며 집중한 끝에 최설화는 죽어 가던 부기장의 생명에 불꽃을 터트리는 데 성공했다.

한 번 불이 붙자 급속도로 부기장의 상태가 회복되기 시작했다.

멈춰있던 심장이 다시 강하게 뛰었다.

“됐어!”

최설화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다.

“맙소사!”

조종을 맡고 있던 기장이 기절할 것 같은 얼굴로 부기장을 보고 있었다.

배가 뚫렸던 상처도 빠르게 회복 중에 있었다.

이대로 도착 후, 응급실로 간다면 제대로 된 회복을 할 수 있으리라.

“힐러님, 곧 착륙합니다!”

최설화가 기장을 향해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녀의 얼굴에는 시원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 * *

“후우우……!”

자신이 만들어 낸 거대한 나무 위에 선 벤자민.

그의 얼굴은 지독한 분노로 가득했다.

고작 힐러 따위가 자신의 계획을 무마시키다니.

스트레스로 인해 뱃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벤자민은 악귀 같은 표정으로 저 멀리 착륙을 준비 중인 항공기를 올려다보았다.

벤자민은 착륙을 위해 항공기가 활주로로 오면 그대로 그 전체를 마법으로 날려 버릴 생각이었다.

벤자민의 양손에 커다란 마법진을 만들었다.

양손의 마법진에서는 마력을 품은 나무줄기가 마치 촉수처럼 줄줄 뻗어져 나왔다.

오래되지 않아 도착할 항공기를 바라보며 비틀린 웃음을 짓던 벤자민은 일순 싸늘한 기운을 느꼈다.

등줄기를 따갑게 찌르는 감각이 위험을 경고해서였다.

- 귀환자를 죽여라. 벤자민 레인.

마음 안에서 또다시 검은 목소리가 울렸다.

벤자민의 시선이 천천히 등 뒤로 향했다.

그곳엔, 귀환자 한준혁과 웬 어린놈 하나가 느긋하게 걸어오고 있었다.

‘뭐지?’

하나같이 여유만만한 모습이다.

벤자민의 눈에 핏발이 섰다.

귀환자를 죽여야 한다는 감정이 벤자민의 가슴을 망치질했다.

뿐만 아니라 귀환자와 함께 있는 흑발의 소년 역시도 검은 목소리는 죽여야 한다고 소리치고 있었다.

“……죽인다, 귀환자!”

마치 세뇌된 것처럼, 벤자민은 귀환자를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그래 와라. 내 나무의 양분으로 삼아 줄 테니.”

벤자민이 킬킬 웃으며 마력을 전신에 둘렀다.

“……?”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왜 귀환자가 아니라 저 꼬마 놈이 자신에게로 오는 건지 이해가 가질 않아서였다.

겨우 17살이나 될 법한 어린놈을 앞세워?

벤자민은 충격과 분노가 뒤섞이는 걸 느꼈다.

귀환자는 스스로가 아닌, 저 꼬마 놈을 앞세워 자신을 상대하게 만들 생각이었다.

“귀환자아아아아아!”

분노가 극에 달한 외침이 터져 나왔다.

그러나 여전히 꼬마가 어깨를 풀더니 자신을 향해 앞서 왔다.

오른손엔 낡고 오래 된 창을 쥔 채로.

* * *

겨우 한숨 돌린 선우는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었다.

간발의 차였다.

만약 조금만 늦었다면 무고한 목숨이 수도 없이 희생되었을 것이다.

최설화 힐러가 아니었다면 그 결과는 생각만으로도 끔찍했다.

그녀의 특성이 빛을 발한 순간이었다.

만약 일대일로 맞붙게 된다면, 힐러가 마법 계열인 리더보더 벤자민을 상대로 이길 수 있는 가능성은 제로다.

하지만 최설화는 상황을 비틀기에는 충분했다.

“그럼 지금부터 신수 대 리더보더인가?”

선우는 드론이 비추는 카메라를 통해 화면을 보고 있었다.

이제 겨우 청소년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녀석.

하지만 무려 형이 데려온 완성된 신수였다.

어느 정도의 실력일지, 과연 신수가 리더보더와 비빌 수 있을 실력인지 궁금했다.

분위기로 보아선 합공할 것 같은 모양새는 아니었다.

철저히, 신수 청룡이 벤자민을 상대하는 그림이다.

‘힘내라, 청룡!’

선우가 마음을 가득 담아 청룡을 응원했다.

* * *

준혁은 팔짱을 낀 채, 청룡과 벤자민의 대치를 지켜보았다.

중원에서 절정 고수였던, 청룡이다.

리더보드 10위 벤자민을 상대로 어떨까?

선우에게 들은 바에 의하면 벤자민은 세계수를 통해 더 강해진 상태였다.

하지만 수많은 전투 경험을 가진 청룡도 만만치 않은 실력자였다.

이긴다면 벤자민은 경험치가 될까?

의문의 해답은 결판이 나야 알 수 있다.

준혁은 고개를 젖혀 하늘을 보았다.

항공기가 방향을 틀었다.

이로써, 전투는 자유로워졌다.

벤자민을 활주로에 묶었고 항공기는 우회해서 항로를 틀었으니 마음 놓고 싸울 수 있었다.

준혁은 벤자민을 주시했다.

청룡에게 미리 일러두었다.

지금까지 전혀 상대해 본 적이 없는 유형일 것이라고.

마법. 즉, 사술과도 같은 힘을 부리니 그 힘에 주의하라고 했다.

준혁의 시선이 이윽고 청룡의 창날로 향했다.

이미 내공의 힘이 창날에 잔뜩 그 무게를 싣고 있었다.

언제든지 발출할 준비를 마친 힘이었다.

“귀환자 놈아. 내가 두려워 저런 꼬맹이를 앞세우는 것이냐?”

벤자민이 흐흐흐 웃으며 말했다.

준혁은 대꾸하지 않았다.

청룡은 계속해서 벤자민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곧 둘이 격돌할 것이다.

준혁은 첫 합에서 승패가 결정 날 거라고 봤다.

일단 마법을 쓰는 적의 전술을 파악하면, 기세는 청룡이 가져올 것이다.

백호와 달리 이미 성장해 있는 상태라 마음이 편했다.

모든 신수들이 백호처럼 초기부터 교육해야 했다면 다소 맥이 빠졌으리라.

“머리를 가져오겠습니다.”

청룡이 준혁을 곁눈질하며 말했다.

답은 없어도 된다는 듯이 청룡에게서 고요한 살기가 피어올랐다.

“뭐 하는 꼬맹이인가 싶었는데, 제법 실력은 있는 놈인가 보구나. 어째서 지금까지 숨어 지냈을까?”

벤자민이 음험한 웃음을 흘리며 마법을 발출했다.

마법진에서 튀어나온 마법의 나무줄기가 청룡을 향해 쇄도했다.

청룡이 신법을 밟았다.

주변으로 차가운 삭풍이 불었다.

신비스럽게 이동하며 공격을 피하는 청룡을 보고 벤자민의 눈동자가 커졌다.

예상 밖의 실력이었다.

아직 어린놈이 저런 움직임을 보일 거라곤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당혹스러워하는 벤자민의 가슴 안에서, 검은 목소리가 얄팍해진 그의 감정을 채찍질했다.

- 죽여라, 귀환자를. 너에겐 힘이 있다. 세상을 지배할 힘이.

용기가 솟은 듯 벤자민의 눈동자가 시커멓게 일렁였다.

들끓는 마력의 힘이 벤자민의 양손을 시커멓게 물들였다.

그 모습을 보고 준혁은 확신했다.

유출된 마수가 벤자민에게 들어갔군.

던전핵이 되지 않고, 저렇게 자유롭게 활보하는 게 이상했다.

하지만 던전이 확장되고 있는 만큼, 마수들의 변화 역시도 어떤 측면으로는 자연스러운 일들이었다.

청룡의 창에 묻어난 검강이 벤자민을 향해 날아갔다.

콰콰쾅!

청룡의 검강은 벤자민이 만들어 낸 나무 장막에 간단히 막혔다.

청룡은 당황하지 않고 벤자민을 주시하며 다시 포지션을 잡기 위해 천천히 반원을 그리듯 움직였다.

벤자민이 만들어 낸 나무줄기가 보랏빛의 불꽃을 터트리며 청룡을 향해 사방에서 휘몰아쳤다.

마치 재해처럼 청룡을 덮치자 청룡은 신공을 발휘해 벤자민의 등 뒤로 이동했다.

청룡의 눈동자가 벤자민의 등으로 향했다.

쾌속으로 휘둘러지는 창날.

엄청난 속도로 솟구친 나무가 만들어졌다.

창날이 나무를 가르자 마나가 허공으로 줄줄 뿜어져나왔다.

그 사이 벤자민이 만들어 낸 나무줄기가 청룡의 양다리를 휘감았다.

청룡은 그 나무줄기를 창으로 끊어 내고 신형을 날려 뒤로 물러났다.

청룡이 서 있던 자리에 나무줄기가 땅을 깨고 들어갔다.

굉음이 터지며 폭발이 일면서 뿌연 연기가 사방으로 자욱하게 번졌다.

청룡이 안개처럼 자욱한 연기 속에 서 있는 벤자민의 그림자를 보며 이를 꽉 물었다.

아직 몸이 제대로 회복된 상태가 아니라서 육 할의 힘밖에 쓰지 못하고 있는 상태였다.

정상적인 컨디션이었다면 주인에게 실망을 주지 않았을 텐데.

아쉬움이 가슴을 찔렀지만, 청룡은 마음을 다잡았다.

변명 따위가 통하는 세상은 존재하지 않는다.

어디든 오직 결과만이 중요할 뿐이다.

그 결과를 만들기 위해서는 오직, 벤자민을 죽이는 것에만 집념을 쏟아야 했다.

무화신공.

천마의 절기를 쓰기 위해 내공을 운용하자마자 입 밖으로 피가 울컥 흘러나왔지만 청룡은 개의치 않았다.

반드시 저 더러운 놈을 반쪽으로 쪼개 버려야 직성이 풀릴 것이었다.

준비를 마친 청룡이 벤자민을 향해 신형을 날렸다.

자욱한 흙먼지 속에서 벤자민이 만들어 낸 나무줄기가 고강한 마력을 뿌리며 청룡을 향해 날아들었다.

수십 개에 달하는 커다란 나무줄기였다.

청룡은 잔상을 남기는 움직임으로 나무줄기의 공격을 흘려버리며 벤자민과의 거리를 좁혔다.

나무로 만들어 낸 커다란 벽이 다시금 나타났다.

청룡의 눈에 새빨갛게 변하면서 자줏빛의 오러가 창날에 선명히 형성되었다.

무화신공 천마정.

자주색 빛의 검강이 벤자민이 만들어 낸 나무 벽을 찢어 냈다.

그 사이로 드러난 벤자민의 얼굴은 충격에 젖어 있었다.

“쿨럭……!”

청룡이 한 움큼의 피를 뿜으며 창을 내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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