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자의 모든 것 91화
거칠게 짖는 백호를 보던 청룡은 누군가 자신을 빤히 보는 시선에 날카로운 눈빛을 던졌다.
“안녕?”
전혀 두려움이 없는 얼굴로 자신을 보고 있다.
매니저 지우였다.
청룡은 한숨을 삼켰다.
자신의 주인인 준혁이 높고 낮음이 없다는 말을 하지만 않았어도, 감히 자신을 똑바로 보는 그녀에게 한 소리를 했을 것이다.
“앞으로 여기 있는 매니저 지우가 너를 관리해 줄 거야.”
“여인이 저를 관리한단 말입니까?”
전혀 알 수 없는 언어를 하는 청룡을 지우가 신기하다는 듯 보았다.
“지우야.”
“네, 귀환자님.”
“앞으로 언어, 그리고 문명과 역사에 대해서 전반적으로 좀 알려 줘. 똑똑하니까 금방 배울 거야.”
준혁이 지우에게 청룡의 등을 떠밀었다.
“선생님이니까 깍듯하게 모시고.”
청룡은 탐탁지 않았지만 주인의 명령이기에 입을 꾹 닫았다.
“잘 지내 보자?”
지우가 생긋 미소를 지으며 손을 내밀었다.
청룡은 여전히 불만을 풀지 못하는 표정으로 마지못해 지우의 손을 잡았다.
그러곤 크게 이는 혼란을 잠재우기 위해 심호흡을 하며 내공을 운용했다.
그러자 조금은 들끓는 마음이 가라앉는 듯했다.
그렇게 마음을 다스리던 때.
“앙!”
백호가 청룡의 다리를 깨물었다.
청룡의 뺨이 씰룩이고, 이마에는 혈관이 부풀어 올랐다.
주인만 아니었으면 당장 저 토실한 엉덩이를 걷어찼겠지만, 청룡은 필사의 의지로 참아 냈다.
천마로 사는 동안 전혀 필요할 일 없었던 새로운 인내심이 요구되는 순간이었다.
* * *
“수많은 각성자의 사상자가 발생했던 블랙 던전. 그곳에서 유출된 마수가 여전히 이 세상 어딘가를 떠돌고 있습니다. 녀석은 반드시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낼 겁니다.”
시사 토론의 프로그램이 TV 화면에서 흘러나왔다.
이동식 주택 차량인 캐러밴에서 TV를 보고 있는 남자의 이름은 벤자민이었다.
삐쩍 마른 체구에 다크서클이 유독 진한 사내는 TV에서 보여 주는 귀환자의 모습을 보며 불쾌한 듯 썩은 표정이 되었다.
“그놈의 귀환자, 귀환자. 귀에 딱지가 앉겠다.”
벤자민은 신경질적으로 TV를 끄고선 캐러밴 밖으로 나왔다.
그는 텅 빈 공터를 지나 공장 건물 앞에 이르렀다.
녹슨 문을 열고 들어가니, 그 건물의 내부에는 온통 잎사귀가 큰 식물들로 가득했다.
식물원을 보는 듯한 풍경이었는데, 하나같이 평범한 식물이 아니라 마치 동물처럼 미세하게 살아 움직이고 있었다.
식물들을 하나하나 확인한 벤자민이 짧게 한숨 쉬며 먼지 묻은 의자에 털썩 앉았다.
그러곤 맞은편 의자에 새장을 들어 툭 올려놓았다.
새장 안에는, 식물과 합쳐진 기괴한 모양새의 새 한 마리가 있었다.
벤자민이 그 새를 보며 새장을 툭툭 건드렸다.
자그마한 새가 키아악! 시끄러운 소리를 냈다.
마수나 다름없게 변해 버린 새를 보며 벤자민이 입을 열었다.
“빌어먹을 협회 놈들. 모두 죽여 버릴까?”
대답 없는 새를 보며 벤자민은 신음을 흘렸다.
블랙 던전이 나타난 이후로, 협회가 요청한 도움에 응하지 않는 리더보더들에게는 불이익을 주기로 결정했다.
매월 지급되던 연금 같은 돈이 사라진 것이다.
돈을 받기 위해선, 새로운 던전에 대비하기 위한 조직을 결성하는 데 나서 달라는 것이 협회의 요구였다.
식물마법 연구에 매진하다 보니 어느새 통장은 텅텅 비고 말았다.
연구를 계속 이어 나가기 위해서는 협회에서 지급해 주는 돈이 필요했다.
그렇다고 협회에 자신의 힘을 빌려주고 싶지도 않았다.
이 정도의 힘으로는, 어차피 언젠가 팽창하는 던전의 희생양이 될 수밖에 없다고 벤자민은 확신했다.
“안전한 곳에서 고기 방패나 내세우려는 작자들! 감히 리더보더를 그따위 사냥개로 쓰려고 들어?”
마음 같아서는 협회에 찾아가 전부 뒤집어 엎어 버리고 싶었지만 그러기엔 위험이 너무 컸다.
다른 리더보더들보다도, 귀환자가 문제였다.
귀환자가 자신을 잡기 위해 움직인다면?
그건 상상만으로도 끔찍한 결과가 눈앞으로 펼쳐졌다.
죽음을 피할 수 없겠지.
블랙 던전에서 사냥하던 귀환자의 모습이 생생했다.
리더보드 1위라고는 하지만 인간의 한계를 아득히 넘어선, 도저히 같은 인간이라고 느껴지지 않는 놈이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 속에서 벤자민은 삐쩍 마른 손으로 자신의 머리를 감싸 쥐었다.
“으으……!”
두통이 일었다.
깨질 듯이 머리가 아파 왔다.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린 후유증이었다.
그때, 낯선 인기척이 벤자민의 등줄기를 서늘하게 훑고 지나갔다.
벤자민은 얼굴을 확 들었다.
“누구냐?”
벤자민이 긴장한 얼굴로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물었다.
공장 내부는 고요했다.
하지만 평범한 기척이 아니라는 건 확실했다.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다고 해서 감각까지 죽은 것은 아니었다.
벤자민이 마법을 준비하자 그의 양손에 소형 마법진이 생성됐다.
캐스팅 없이 즉시 공격 마법을 사용할 수 잆는 무영창 특성이었다.
벤자민의 시선이 숨어든 놈을 찾기 위해 식물 사이사이를 누볐다.
-힘을 갖고 싶으냐?
보이지 않은 곳에서 목소리가 울렸다.
자신의 몸 안에서 전체적으로 울리는 듯한 소리였다.
-힘을 원한다면 주겠다. 그저 나를 받아들이기만 하면 되는 일.
내부 곳곳을 살펴봐도 목소리의 주인은 보이지 않았다.
-힘을 원하면 주겠다. 받을 것이냐?
벤자민은 혼란스러웠다.
힘을 주겠다니?
대체 누가?
-이 힘이 너와 합쳐진다면 너는 그 누구보다 강대한 힘을 갖게 될 것이다.
벤자민은 가슴이 두근거렸다.
귀환자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는 가슴 깊은 곳에서, 언제나 자리 잡고 있었다.
헌터 대전을 지나, 블랙 던전까지 클리어하는 모습을 보면서 도저히 이길 수 없는 벽이라 규정되었던 상대, 귀환자.
어쩌면 그런 놈을 이길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황이 코너에 몰리자 리더보더를 이용하려 했던 협회 놈들이 생각났다.
협회 놈들을 박살 내고 귀환자까지 이길 수 있을지도 모를, 기회의 아이디어가 벤자민의 머릿속에 선명하게 떠올랐다.
“조건은?!”
벤자민이 외치듯이 물었다.
- 너의 영혼. 오직 그것뿐이다.
“영혼? 영혼을 주면 무엇이 달라지지?”
- 달라지는 것은 없다. 단지 소유권을 잃는 것뿐.
영혼 따위 없다 한들 어떠한가?
살아가는 데 아무런 지장도 없는 일이다.
가볍게 합리화해 버린 벤자민이 양팔을 펼쳤다.
“다오. 네 말이 거짓이 아니라는 걸, 증명해라! 내게 힘을 다오. 너의 힘을 받을 것이다!”
벤자민이 소리쳤다.
허락이 떨어지자 공장 내의 식물들 위로, 검은 연기가 중앙을 구심점으로 잡아 소용돌이쳤다.
그것을 보며 벤자민이 웃음을 터트렸다.
“누군가 했더니 던전을 나왔다던 그 마수였구나! 하하하하하! 누구라도 좋다. 내게 힘을 줄 수만 있다면 받을 것이다. 정점에 이르러 내가 심판할 것이다.”
- 계약되었다.
회전하던 검은 연기가 벤자민의 심장을 관통했다.
쿵! 하고 몸이 흔들렸던 벤자민은 몸속으로 들어와 자리를 잡기 시작하는 검은 연기의 감각을 느끼며 웃었다.
고통스러운 압력이었지만 벤자민은 몸을 덜덜 떨면서도 그 통증을 즐겼다.
바닥을 기던 자존감이 하늘로 치솟는 듯했다.
격정적인 아드레날린의 분출로 벤자민은 고개를 젖히며 소리를 질렀다.
공장을 가득 채운 식물들이 태풍을 만난 듯이 사정없이 흔들렸다.
벤자민의 눈과 입에서 시커먼 연기가 흘러나왔다.
그와 함께 얼굴 반쪽에 하나둘, 새겨지는 문자들.
정체를 알 수 없는 글자가 벤자민의 얼굴 반쪽 피부에 새겨졌다.
“크아아아아악!”
비명인지, 기합인지 모를 소리가 벤자민의 입에서 터져 나왔다.
폭발하는 듯한 굉음이 울렸다.
공장 내의 식물들이 찢겨져 나가며 사방으로 잘려 나가고 터진 이파리들이 비산했다.
삽시간에 폐허처럼 변해 버린 공장 내부.
새장 속에 갇힌 기괴한 새가 새장에 부딪히다가 움직임이 멈추었다.
“……흐흐흐흐!”
벤자민의 입에서 낮은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크흐하하하하하!”
벤자민이 이내 광소를 터트렸다.
계약을 맺고 나자, 평소라면 꿈도 꿀 수 없었던 마력이 느껴져서였다.
“계획을 진행하기에 부족함이 없군.”
공장에서 나오자 공기가 평소와 달랐다.
폐부 깊숙이 숨을 들이켰다.
뒤이어 공장을 돌아보는 벤자민의 눈에서는 검은 연기가 풀풀 날렸다.
“더 이상 퀴퀴한 곳에 숨어지내는 일 따위는 하지 않아도 되겠어. 그래, 처음 각성자의 시대가 도래했을 때부터, 그때부터 나의 세계를 만들어야 했다.”
벤자민이 킬킬 웃으며 손을 휘두르자 무영창의 마법이 공장을 덮쳤다.
수십 개의 굵은 나뭇가지가 땅을 뚫고 올라와 거미줄처럼 건물을 휘감았다.
콰-앙!
순식간에 건물이 파괴되며 불꽃이 솟아올랐다.
“모든 방해 요소들을 제거하겠어. 그리고 나의 연구실을 건설할 거다.”
벤자민이 음침한 웃음을 흘리며 캐러반으로 돌아가 시동을 걸었다.
오래된 캐러반이 시끄러운 엔진 소리를 내며 바퀴를 굴렸다.
* * *
“음, 그러니까 새로 온 신수가 이 친구라는 거지?”
선우가 팔짱을 낀 채, 청룡을 응시했다.
호전적인 기질이 표정에서 뚝뚝 묻어 나왔다.
“인사해. 내 동생 한선우다.”
준혁이 말했다.
“친동생입니까?”
준혁이 고개를 끄덕이자, 그제야 청룡은 선우에게 나름의 인사를 건넸다.
“천마. 아니, 청룡이오.”
청룡이 입에 붙지 않는다는 듯 어렵게 자신의 이름을 밝혔다.
그런 청룡을 보고 선우가 웃었다.
“말투가 특이하네. 옷도 그렇고.”
“주인님의 친동생이라 하기엔 믿기 어려울 만큼 약골이군.”
청룡이 코웃음을 치곤 다이닝 룸으로 쑥 들어갔다.
선우의 입이 낚싯줄에라도 걸린 것처럼 씰룩거렸다.
“……저 꼬맹이가.”
선우가 욱 하고 올라왔던 감정을 겨우 추슬렀다.
“어른인 내가 참아야지. 후우.”
“그럴 일은 없겠지만 만에 하나라도 싸우지는 마. 쟤 못 이겨.”
준혁의 말에 선우는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
“형, 내가 비록 형 앞에서 명함을 못 내밀긴 해도 국내 랭킹…….”
“널 무시하는 게 아니라 저렇게 어려 보여도 레벨이 무려 90이거든.”
“……레벨?”
선우가 전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다이닝 룸 쪽을 보았다.
“형 요즘 게임해?”
준혁이 작게 웃으며 선우의 어깨를 툭 짚었다.
“그런 게 있다.”
준혁이 소파로 가면서 지우를 보았다.
“벌써 한국말을 잘하네?”
준혁이 묻자 지우가 얼굴을 절레절레 흔들었다.
“한국말 가르친 지 겨우 반나절인데 저보다 한국말을 잘한다니까요.”
준혁이 소파에 앉자, 선우가 바로 준혁의 옆자리에 앉았다.
“한국말 배운 지 이제 반나절 됐다고? 근데 한국말을 저렇게 한다고? 더 월드 시스템 때문이 아니라?”
준혁이 고개를 끄덕이자 선우가 충격을 먹은 듯 시선이 길을 잃은 듯 헤맸다.
“말도 안 돼.”
선우가 못 믿겠다는 듯 말하자 지우가 덧붙였다.
“이 정도 재능을 보고 천재라고 하나 봐요.”
매니저 지우의 말에 선우는 왠지 모를 패배감에 잠식당한 얼굴이 되었다.
멘탈이 나가 있는 선우에게 백호가 달려와 품에 안겼다.
선우는 허벅지 위에서 뒹굴거리는 백호를 쓰다듬으며 쓴웃음을 지었다.
“그럼 이 녀석도 청룡만큼이나 강해지겠지?”
선우의 물음에, 준혁은 TV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만들어야지.”
선우는 부럽다는 듯 백호를 꾹꾹 쓰다듬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캐슬 내에서 전투력 서열이 밀려나고 있는 선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