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자의 모든 것 86화
준혁은 사람들 사이를 걸었다.
북적거리는 인파 사이에서 준혁의 시선이 한 곳으로 향했다.
[청화객잔]
객잔이라 하면 숙박과 함께 음식과 술도 판매하는 곳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나다니고 손님을 접대하는 곳이니만큼 신수에 대한 정보가 있을지도 몰랐다.
준혁은 객잔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손님을 환영하는 오색비단의 환문을 지났다.
준혁이 들어간 곳은 번루였다.
그런만큼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넓은 객잔의 1층에서 식사를 하거나 술을 마셨다.
특이한 차림새 때문에 사방에서 준혁을 흘겨봤다.
그 수많은 시선을 받으면서 준혁은 빈 창가에 가서 자리를 잡고 앉았다.
“어서오십시오. 어떤 메뉴로 준비해 드릴까요?”
객잔의 점소이가 준혁의 앞에 서서 씩씩하게 물었다.
점소이는 이제 겨우 열 다섯 정도로 되어 보였다.
“식사를 주문하기 전에 묻고 싶은 게 있는데.”
“네. 뭐든 말씀해 보십시오. 제가 아는 거라면 답해 드리겠습니다.”
“신수에 대해서 알고 있니?”
“신수……?”
어린 점소이가 뭔가 떠오르는 게 없는지 고민하다가 뚱한 표정을 지었다.
“잘 모르겠는데요?”
“그럼, 귀한 정보를 취급하는 곳은?”
“그건 알아요! 여기서 나가면…… 아야야!”
체격이 좋은 어른 점소이가 소년의 귀를 잡아당겼다.
“주문은 안 받고, 뭘 그리 떠들고 있는 거야.”
“그, 그게 자꾸 질문을 하니까 그렇지요.”
“저리 가. 주문은 내가 받는다.”
어린 점소이가 빨개진 귀를 붙잡고 자리를 떠났다.
“객잔의 운영 방식 때문이니 주문부터 해 주십시오.”
젊은 사내는 눈썹도 짙고, 눈도 부리부리했다.
웬만한 시정잡배들에게는 당하지 않을 것처럼 꽤 단단해 보였다.
준혁은 그런 그의 고집 있는 눈빛을 보다가 메뉴판을 보았다.
더 월드의 시스템 덕분에 글자를 읽는 데는 전혀 어려움이 없었다.
“탕수육과 술 한 잔. 대충 그렇게.”
준혁은 그렇게 말하면서 큐브에서 미리 챙겨 놓은 작은 금 조각을 꺼내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던전에서 구한 것들 중 하나였다.
“값은 이걸로 치러도 되겠습니까?”
점소이의 눈이 커졌다.
그리고 이내 준혁을 보는 그의 눈빛이 변했다.
“단순히 탕수육과 술 한 잔의 가격을 지불하는 것으로는 과한 값입니다.”
큐브 안에 있는 금덩이를 조각 냈다.
못해도 세 돈 정도는 될 것이었다.
“괜찮으니 이걸로 하죠.”
준혁이 값을 치르려 하자 점소이가 금 조각을 집었다.
“진짜 금인지 알아보고 음식을 내어드리겠습니다.”
“그 전에 조금 전에 주문을 받았던 아이가 정보를 취급하는 곳이 있다고 하던데. 어떻게 가야 합니까?”
“미화기루로 가시면 됩니다. 여기서 나가 오른쪽으로 쭉 가면 새빨갛고 큰 기루가 보일 겁니다. 그곳에서 ‘해월’을 찾으십시오. 만나줄지는 모르겠지만.”
그 말을 끝내고 점소이가 사라졌다.
“해월…….”
별로 배가 고프진 않았기 때문에 준혁은 곧장 객잔을 빠져나갔다.
잠시 후, 점소이가 식사를 가지고 돌아왔을 땐 준혁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어딜 가신 거지?”
점소이가 의아한 표정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 * *
점소이가 알려 준 대로 길을 나가 보니 새빨간 기루 건물이 보였다.
얼마나 화려하게 지었는지 밤이 되면 유혹적인 불빛을 뿌려 댈 것 같았다.
석양이 질 무렵, 준혁은 기루 앞에 이르렀다.
기루의 문은 열려 있었으나 아직 영업 중인 건 아닌 듯 누군가 입구의 마당을 쓸고 있었다.
“이 기루에서 일하는 사람입니까?”
준혁이 물었다.
마당을 쓸던 남자가 준혁을 위아래로 훑었다.
본 적 없는 형태의 옷을 입고 있으니 신기했던 것이다.
“뉘시우?”
“이곳의 해월이 정보를 취급한다고 들었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보시우.”
그는 기루 안으로 들어가더니, 잠시 후 두 명의 장정을 데리고 나타났다.
그들은 무인인 듯 허리에 칼을 차고 있었다.
“해월을 찾는다고?”
덥수룩한 수염을 가진 사내가 계단 위 입구에서 물었다.
준혁이 고개를 끄덕이자 그의 눈은 준혁의 곳곳을 살피고 있었다.
“어디서 온 누구냐?”
“신분을 밝히긴 어렵고. 정보의 값은 치를 수 있을 것 같은데.”
“들여보내라.”
그가 휙 돌아서자 남자의 옆에 서 있던 무인이 들어오라고 턱짓했다.
준혁이 안으로 들어가자 마당을 쓸던 남자가 문을 닫았다.
준혁은 그런 그를 흘깃 돌아보았다가 두 명의 무인을 따라 기루의 마당에 들어섰다.
본관과 별채로 이어져 있는 건물을 향해 가는 넓은 마당은 잘 꾸며져 있었다.
멋진 나무들이 심어져 있었고, 화단도 예쁘게 꾸며져 있었다.
그런 아주 큰 마당의 중앙쯤 이르렀을 때, 두 무인이 걸음을 멈추고 준혁을 향해 돌아섰다.
“신분을 밝히기가 어렵다?”
수염 난 사내가 처음보다 더 강해진 눈빛으로 준혁을 쏘아보며 말을 이었다.
“그렇다면 대체 내가 뭘 믿고 당신을 해월을 만나게 해 줘야 하지? 해월은 일패다. 아무나 만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뜻이야.”
“만나게 해 줄 생각이 없는 거라면, 왜 안으로 들인 거지?”
“매듭을 짓는 편이 좋으니까. 무림인?”
저렇게 대놓고 물어보는 걸 보면 꽤 자신의 실력에 자신이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준혁이 보기에 그는 평범했다.
단전에 맺혀 있는 마력은 그다지 크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뭐, 비슷해.”
준혁이 답하자, 수염 사내가 쯧 하고 혀를 찼다.
“역시 꺼림칙해.”
그가 그렇게 말했을 때, 사방에서 수십 명의 칼을 찬 사내들이 걸어 나왔다.
“해월을 만날 수 있는 건 아주 높은 사람이거나 명문파의 일류 고수 정도는 되어야 하건만. 내가 보기엔 넌 전혀 칼을 잡은 것 같지도 않고. 그렇다고 높은 집안의 자제라고 보기도 어렵군.”
수염 사내의 눈에 경멸이 어려 있었다.
시간을 할애할 수 없는바.
준혁은 곧장 마력을 개방했다.
마력의 힘이 미화기루의 앞마당에 퍼져 나갔다.
출렁이는 무형의 힘에 의해 무사들이 모두 중심을 잃고 비틀거렸다.
뒤이어 준혁을 마주한 수염 사내와 그 옆의 무인의 얼굴은 충격으로 물들었다.
준혁에게서 흘러나오는 기운은, 고수 앞에서 무지렁이나 다름없는 자신들조차 알 수 있을 만큼 대단했다.
준혁의 신원을 파악하기 위해 압박하던 이들 모두 칼을 뽑을 생각조차 하지 못 하고 덜덜 떨었다.
무림에서 힘은 곧 전부였다.
절정 고수. 아니 그 이상일지도 모를, 준혁의 분위기에 수염 사내는 무릎을 꿇었다.
“히, 힘을 거두어 주십시오. 해월에게 안내하겠습니다.”
수염 사내가 짜내듯이 겨우 목소리를 냈다.
그의 얼굴은 두려움에 질려 있었다.
힘을 거두자 그제야 살겠다는 듯 준혁의 주위를 둘러쌌던 무사들이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모두 물러가라.”
수염 사내가 말했다.
그의 명령에 무사들이 모두 떠났다.
수염 사내가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해월에게 안내하겠소.”
한층 온순해진 얼굴로, 그가 동료를 보내고 홀로 앞장섰다.
준혁은 그를 따라가며 기루를 보았다.
곧 영업이 시작될 예고인지 기루에 하나둘 사람이 나타나고 있었다.
기루의 뒤뜰로 가자 대나무에 가려져 있던 문이 있었다.
지하로 내려가는, 특이한 형태의 돌문이었다.
수염 사내가 작은 횃불을 만들었다. 그리고 어디 한 부분을 누르자 돌문이 그그극 소리를 내며 열렸다.
“따라 내려오면서 아무것도 만지지 마시오. 기관 장치가 작동할 수 있으니.”
준혁은 말없이 횃불을 들고 앞장서는 그를 따라 지하로 내려갔다.
꽤 긴 계단을 내려가자 넓은 복도가 나타났다.
넓은 복도를 이동한 끝에, 하나의 석실 앞에 이르렀다.
“해월은 이곳에서 만날 수 있소. 만남이 끝나거든 나가는 길은 해월이 안내해 줄 것이오.”
석실의 문이 열릴 때, 수염 사내가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그 사이 준혁은 석실 안으로 입성했다.
석실의 내부는 동방의 느낌으로 가득했다.
붉은 촛불이 향을 내며 불을 밝히고, 화려하게 수놓인 붉은 천들이 고풍 있는 분위기를 더한다.
깔끔하게 정돈된, 소품처럼 보이는 물건들이 보인다.
꽃을 표현한 멋진 벽화 앞에 나무로 된 큰 테이블과 마주 보고 앉을 수 있는 두 개의 의자가 있었다.
테이블 위로는 깃털이 달린 고급스러운 펜.
그리고 중요한 내용을 적을 서류들과, 도장이 눈에 들어왔다.
심리적으로 차분해지는 향이 점점 진해질 때쯤.
“이방인인가요?”
등 뒤로 고운 목소리가 들렸다.
뒤를 돌아보자 붉은색을 좋아하는 듯, 과감하게 용이 수놓인 전통 의상을 입은 여인이 서 있었다.
마치 한 폭의 그림 같은 미인이었다.
“문지기의 말로는, 절정의 고수같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신기하네요. 전혀 무인처럼 보이지 않는데. 말로만 듣던, 반박귀진. 설마 화경의 고수인가요?”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잘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놀랍네요. 이곳에서 정말 많은 사람들을 만났지만 당신같은 고수를 만나게 될 줄은 몰랐는데.”
그녀는 고혹적인 미소를 지으며 준혁을 지나쳤다.
“당신이 정보를 취급하는 집단의 수장입니까?”
준혁이 물었다.
“네, 저 해월이 하오문의 문주입니다.”
“하오문?”
그녀가 간략히 하오문에 대해 설명했다.
하오문은 점조직 형태로 중원 전체로부터 정보를 전달받아 운영하는 단체였다.
“아무리 절정의 고수라고 하여도 하오문의 규율은 따라 주셔야 해요.”
“뭡니까? 그 규율이.”
“절대로, 하오문과 관련된 모든 것을 비밀에 부칠 것. 그것은 저희가 제공해 드리는 정보까지 포함해요.”
별달리 어려울 것 없는 일이었다.
“만약 약속을 어긴다면 하오문의 모든 무림인이 공자를 노리게 될 거예요.”
준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약속하죠.”
해월이 섬섬옥수와 같은 하얀 손으로 의자를 가리켰다.
준혁이 자리에 앉자, 해월이 마주 보고 앉았다.
“무엇을 알고 싶으시죠?”
마치 해월은 자신이 모르는 것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자신 있어 했다.
그리고.
“신수.”
준혁의 입에서 그 두 글자가 나오는 순간 자신만만했던 그녀의 표정은 조금은 다른 의미로 굳어졌다.
“신수라고 하는 건…….”
“흔히 신화라 일컬어지는 것들.”
해월이 놀란 표정으로 어깨를 가늘게 떨었다.
준혁이 보기에 분명 뭔가를 알고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어디 있습니까? 그 신수?”
해월의 눈동자가 고민하는 듯 길을 잃었다.
그녀는 고심하고 있었다.
“약속한 대로, 하오문에 피해는 없을 겁니다.”
해월이 준혁의 눈을 보았다.
“당신이 거짓을 말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다만, 너무 위험한 접근일 뿐.”
그녀의 눈빛은 어딘가 슬픈 과거를 뒤적이고 있는 듯했다.
준혁은 참을성 있게 기다렸다.
그녀가 충분히 생각을 정리할 수 있도록.
한동안의 침묵 후, 해월이 도톰하고 붉은 입술을 열었다.
“신수와 관련하여선 슬픈 전설이 하나 있죠.”
“…….”
“읊어 드릴까요? 이 이야기를 들어보면 당신이 찾는 신수가 맞는지. 그 질문과 가까워질지 모르니.”
“들어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