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자의 모든 것 85화
캐슬 본관에 도착할 때쯤, 두 형제의 사진이 업로드되자 SNS 유저들의 반응은 마치 화산이 폭발하는 듯 엄청났다.
기자들이 기다렸다는 듯 뉴스를 뿌렸고 SNS 댓글은 순식간에 10만 개에 이르고 있었다.
- 예술을 찍어 놨네 ㅠㅠ
- 캐슬인가요? 너무 멋지네요!
- 갓준혁과 협회장의 투샷이라니. 으아아.
- 아, 내 심장……!
- 정면샷도 좀 부탁드릴게요…….
- 매니저의 사진 실력이 나날이 늘어나고 있당. ㅎㅎ
- 아니, 저 형님들 왜 이렇게 멋있게 사냐?
- 사는 게 영화네 아주.
- 아니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건데 ㅠㅠ
- 영화보다 더 영화임.
- 갓준혁 더 월드 라이브로 봤을 땐 시크하던데 동생한테 스윗하네. 어깨도 빌려 주고ㅋㅋㅋㅋㅋㅋ
- 협회장님 무슨 일 있나?
- 상세한 설명을 해 달라고 제발…… ㅠㅠ
- 갓준혁 매니저 성덕 맞다. 성덕이 아니면 이런 아트를 만들 수 없어!
지우는 댓글들을 보며 웃음 지었다.
자세한 설명을 해 주는 게 팬들 입장에서 좋긴 하겠지만 캐슬엔 어느 정도의 비밀도 필요했다.
‘아쉬운 만큼 더 빠져드는 법이기도 하겠지.’
지우는 웃으며 먼저 들어간 형제를 따라 캐슬 본관으로 뛰어 들어갔다.
“백호도 밥 먹자?”
“크옹!”
* * *
미국의 협회장 로건은 이마가 뜨거웠다.
상황은 최악이다.
처음 블랙 던전에 헌터들이 들어갔을 때부터, 모든 게 꼬이기 시작했다.
너무 많은 사상자가 나왔다.
리더보더를 규합하여 블랙 던전에 대한 대응을 준비하려 했으나 그조차 쉽지 않았다.
리더보더들은 반정부 세력이나 다름없었다.
항상 집단의 권력보단 개인의 성장에 더 목말라 있었다.
그리고 그런 만큼 그들의 힘을 빌리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블랙 던전이 나타나 사상자가 속출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전혀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는 상황.
그 상황에 블랙 던전의 마수가 유출됐다.
그것도 일반적인 헌터들로는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의 강한 마수가.
더욱이 미국 전 지역을 총력으로 감시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유출된 마수는 사흘이 다 되어 가도록 나타나지 않고 있었다.
언제 터질지 모를 시한폭탄이었다.
- 자신감을 가져요, 로건.
게이트 앞 텐트 안.
그곳에서 귀환자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10년 동안 병원에서 의식이 없었던 사람이. 대체 어떻게 그렇게 강할 수 있단 말인가? 세상을 보는 의지마저도 남다를 만큼.”
로건이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웃었다.
새삼 화려한 시절이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무서울 것 없이, 역시 미국이라며 고도의 성장력으로 앞장섰던 나날들이.
그 과거의 영광이 참담한 패배감으로 돌아와 비수처럼 가슴에 꽂혀 있었다.
“귀한 대접을 받다 보니 많이도 물러졌군.”
로건은 주먹을 꽉 쥐었다.
떨리는 주먹에서 무력감이 솟구쳤다.
그 무력감을 씹어 삼키면서 마음을 다잡았다.
로건은 보좌관에게 전화를 걸었다.
“미국 내 리더보더들의 주소, 아니 위치를 찾아내.”
- 리더보더들을 말입니까?
“내가 직접 찾아가서 설득한다.”
- 하지만 협회장님. 그건 대외적으로 너무…….
“대외적인 게 아니라 정치적인 이유겠지. 보좌관. 묻겠다. 그게 우리 헌터들의 목숨과 미래보다 중요한가?”
침묵이 내려앉았다.
잠시 후.
- 제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찾아내서 보고 드리겠습니다.
로건은 눈을 지그시 감았다.
- 협회장님.
전화를 끊으려던 로건이 다시 눈을 뜨며 스마트폰을 귀에 붙였다.
“음? 불렀나?”
- 협회장이 협회장님이라 다행입니다.
잠시 무슨 소린가 싶었던 로건은 피식 웃었다.
- 위치 알아내는 즉시 보고 드리겠습니다. 그때까지 조금이나마 눈 좀 붙이세요.
“그래, 수고해라.”
- 예, 마스터.
로건은 전화를 끊고 숨을 크게 내쉬었다.
“……평화가 길었더니 날이 무뎌졌군.”
리더보더가 골드 던전을 클리어할 수 있었던 세상.
하지만 그 골드 천하는 끝이 났다.
새로운 시대를 준비해야 할 때였다.
* * *
[균열의 시간이 모두 완료되었습니다.]
준혁은 어비스의 문을 넘기 위해 미리 준비하고 있었다.
던전용 의복 중 가벼운 바람막이 형태의 검은 아우터를 걸쳤다.
허벅지까지 내려오는 긴 아우터였는데 매니저 지우가 구하기 힘들었다며 입이 마르도록 칭찬한 물건이다.
1층으로 내려가면서 옷을 만져 보자 확실히 스며든 마력의 구조 자체가 단단해 보였다.
“앗 귀환자님! 신상 아우터 입으셨네요.”
지우가 양손을 깍지 끼며 눈을 반짝반짝 빛냈다.
매니저는 어째서인지 이런 패션 쪽으로 과한 집착이 있는 듯했다.
“최설화는?”
“연무장에서 대기 중입니다.”
준혁이 짧게 고개를 끄덕이곤 턱짓했다.
“같이 가자. 가면서 할 얘기도 있고.”
“네!”
준혁은 지우와 함께 집사의 배웅을 받으며 캐슬 본관 밖으로 나섰다.
백호가 엉덩이를 흔들며 앞서갔다.
마치 어디로 가는지 알고 있기라도 한 듯이.
“이번에도 새로운 신수를 데려오시는 건가요?”
지우가 기대감이 어린 눈길로 물렀다.
“아마도.”
멸마의 서가 찾아내는 균열의 틈 자체가, 천사들이 몰래 숨긴 공간이었다.
그러니만큼 신수를 찾을 가능성은 거의 확정적이었다.
다만 그 세상이 어떻게 변해 있을지, 어떤 세상일지는 알 수 없었다.
“이번에 어비스를 넘게 되면 돌아오기까지 얼마나 걸릴지 몰라. 그때까지 백호를 잘 관리해 줘. 인간형으로 변하면 교육도 해 주고.”
“네, 걱정 마세요. 최선을 다할게요.”
“널 잘 따라서 다행이다.”
준혁이 백호를 보며 말했다.
지우도 백호를 보며 웃음 지었다.
“백호는 이제 저뿐만이 아니라 캐슬 식구 모두에게 잘하고 있어요. 물지도 않고. 장난이 조금 심하긴 하지만.”
지우는 그릇과 각종 인테리어 소품들을 깨트리고 다닌 걸 떠올리며 어색하게 웃었다.
평상시엔 순둥이 같지만 그렇게 사고를 칠 때만큼은 정말이지 악동이 따로 없었다.
“저기 힐러님이 계시네요.”
최설화는 조각상 위에 걸터앉아 목련꽃 한 송이를 흔들며 보고 있었다.
“힐러님!”
지우가 최설화를 부르곤 손을 흔들었다.
최설화가 목련꽃을 휙 버리고, 조각상 아래로 내려와 뒷짐을 지고 허리를 세웠다.
“오셨네요.”
최설화의 인사를 받으며 준혁이 턱짓으로 연무장을 가리켰다.
“프로텍트 준비는?”
“완벽히 끝내 놓았어요.”
백호가 연무장 안으로 뛰어들어가려 하자 준혁이 뒷덜미를 잡아챘다.
“얌전히 기다리고 있어라. 네 친구를 데려올 거니까.”
준혁이 지우에게 백호를 넘겼다.
백호가 못마땅하다는 듯 몸부림쳤으나 지우의 품을 벗어날 수는 없었다.
“위험하니까 캐슬로 돌아가도록 하고. 혹시나 새로 온 캐슬 직원들이 모르고 접근하는 건 아닌지 체크 좀 해 주고.”
“네, 귀환자님.”
“네!”
최설화와 지우가 동시에 대답했다.
준혁은 연무장 안으로 들어가 출입문을 닫았다.
쿵.
꽉 닫힌 연무장의 문을 보고 백호가 끄응 하고 앓는 소리를 냈다.
“곧 돌아오실 거야.”
지우가 백호를 뭉텅뭉텅 쓰다듬곤 연무장을 응시했다.
하루빨리 돌아오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그럼 우린 이제 그만 돌아갈까?”
최설화가 미소 지으며 말했다.
“네, 언니.”
자리를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연무장 쪽에서 굉장한 소리가 났다.
땅이 흔들리고, 새들이 날아올랐으며 마치 전기가 흐르는 것처럼 마력의 파문이 피부를 진동시켰다.
귀환자님이 어비스의 문을 열었다는 증거였다.
“떠나셨나 보네요.”
지우의 말에 최설화도 연무장을 돌아보며 웃음 지었다.
“지체하실 분이 아니니까.”
지우는 조금 걱정이 어린 표정으로 웃었다.
“귀환자님이 돌아오실 때까지 별일 없겠죠?”
“매니저가 이렇게 겁이 많은 줄 몰랐네?”
캐슬 본관으로 가면서 최설화가 놀리듯이 말했다.
“아무래도 백호를 케어해야 하다 보니까. 괜히 부담되기도 하고 그래서요.”
최설화가 지우의 어깨를 잡으며 윙크했다.
“혼자가 아니잖아.”
“힐러님은 정말 너무 든든하고 멋져요. 항상 화려하고, 아름답고.”
“내가 무슨.”
최설화가 가당치도 않다는 듯 멀리 보며 피식 웃었다.
“힐러님도 스타잖아요. 저같이 평범한 사람과는 비교도 안 되는.”
최설화가 뺨을 씰룩이며 지우를 보았다.
“무슨 소리야 그게. 귀환자님의 총애를 한 몸에 받고 있으면서. 놀리는 거야?”
“네? 그거야 제가 매니저라서 업무량이 많은 만큼 잘 챙겨 주시는 거겠…….”
지우가 말을 잇지 못하고 당황했다.
최설화가 고개를 푹 숙인 채 우울감의 절정을 표출해 내고 있어서였다.
“히, 힐러님!”
지우가 어쩔 줄 몰라 하며 허둥거리자 최설화가 힘없이 웃었다.
“괜찮아. 다시 태어나지 뭐.”
점점 더 깊은 땅굴 속으로 들어가는 최설화를 보며 지우는 식은땀을 흘렸다.
“언니, 우리 케이크 먹을까요?”
지우가 어깨를 붙이며 말하자 응답한 것은 최설화가 아니라 백호였다.
“크옹!”
지우와 최설화가 황당하다는 듯 백호를 보곤 웃음을 터트렸다.
* * *
어둠의 의식 속에서 먼저 반응한 것은 청각이었다.
가장 먼저 귓속으로 들려온 건 발소리.
그다음은 아주 멀리까지 섞여 드는 인간의 목소리였다.
준혁은 천천히 눈을 떴다.
[새로운 차원으로 진입했습니다.]
[정보를 읽고 있습니다.]
[더 월드 시스템 업데이트 완료.]
[중원 지대에 도착했습니다.]
[언어 패치 완료.]
‘중원?’
준혁은 설마 하며 걸음을 옮겼다.
게이트가 열린 곳은 깊숙한 골목 안이었다.
구불구불한 골목길을 빠져나오자 시장 풍경이 펼쳐졌다.
장사꾼들과 거리를 다니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준혁은 확신했다.
영화나 소설 속에서 보던 무림 중원의 풍경이었다.
칼을 차고 다니는 무림인들에게서 마력과 비슷한 기운을 가진 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이곳은 중원 무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