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자의 모든 것 84화
“뭘 그렇게 뜸을 들이고 그래?”
준혁이 채근하자 선우가 심호흡을 크게 하고는 용기를 냈다.
“형한테 검을 좀 배울 수 있을까?”
“검을?”
“순수하게 수련의 목적으로, 강해지고 싶은 마음이 있거든. 길드 마스터나 협회장은 지휘권 때문에 현장에 나갈 일은 특수 상황이 아니면 거의 드물지만, 사실 그동안 꾸준히 검을 잡아 오긴 했었고.”
“어렵게도 얘기한다.”
“그야 형이 귀환자니까.”
선우가 뒤통수를 긁적이며 웃었다.
“형 동생이기 이전에 나 역시 각성자고, 헌터이면서 검을 선택한 사람이야. 리더보드 1위에게 검을 배울 수 있다는 건. 내가 아무리 동생이라도 떨리는 일이거든.”
“그렇지 않아도 생각은 했었어. 네가 워낙 바쁘니까. 말은 안 꺼낸거지만.”
“정말?!”
선우가 뜻밖이라는 듯 놀란 표정으로 준혁을 보았다.
준혁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우선 연무장으로 가자.”
준혁이 앞장섰다.
선우는 빳빳하게 긴장한 얼굴로 준혁을 따라나섰다.
* * *
강함을 이루는 건 모든 각성자의 본능이자 목표였고 꿈이다.
어쩌면 형을 통해 한계에 막혀 있던 수준을 넘어설지도 모른다는 기대.
그 기대가 선우의 가슴을 떨리게 하고 있었다.
준혁이 두 자루의 목검을 들고 선우에게 목검 하나를 건넸다.
선우는 아주 가늘게 떨리는 손으로 목검을 받았다.
“시간 좀 가져. 긴장이 풀리도록.”
준혁이 목검을 어깨에 걸치고서 말했다.
선우는 준혁을 보았다.
편안하게 서 있는 자세.
이렇게 마주 보고 서 있으니 새삼 준혁의 존재감이 새롭게 선우의 머릿속을 강하게 눌렀다.
형이 돌아오기 전까지만 해도 리더보더와는 말도 섞을 수 없는 위치였다.
하지만 선우는 지금 형이기 이전에 무려 리더보드 1위를 앞에 두고 있다.
전 세계에서 가장 강한 남자에게 검을 배울 수 있는 기회였다.
‘떨지 말라고 해서 떨리지 않을 리가 없잖아.’
두근거리는 심장의 고동이 온전하게 느껴졌다.
‘다른 누구도 아닌 내 형이다. 존경과 동경의 마음으로, 형에게 검을 배울 기회야.’
가슴이 타듯이 뜨거웠다.
마음을 가다듬자 빠르게 뛰던 맥박의 속도가 조금씩 안정을 찾아갔다.
“우선 어느 정도인지 실력 좀 보자.”
준혁이 검을 휘릭 돌리며 말했다.
선우는 호흡을 가다듬고 목검을 꽉 잡았다.
파천 길드의 길드 마스터가 되기까지 목숨을 걸고 검을 잡아 던전에 뛰어들었다.
형이 깨어나리란 믿음 하나로 목숨을 걸고 마수와 싸웠다.
그렇게 국내 랭킹 5위까지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실력자가 되기까지 헤아릴 수 없는 시련을 겪었다.
오직 강함을 추구해 괄목할 만한 수준에 이르렀으나 시장을 장악해 버린 알파 길드와 적안 길드의 합작 공세로 인해 사냥터를 통제 당했다.
어중간한 힘으로 세상을 바꿀 수는 없었고, 결국 그때부터는 검이 아닌 기업가의 길을 걸어야 했다.
생존을 위해, 그리고 팀을 위해.
하지만 단 한 순간도 검에 대한 아쉬움을 잊어 본 적은 없었다.
그렇기에 더없이 지금 이 순간이 선우 자신에게는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스킬까지 최대 전력을 써 봐. 난 걱정하지 말고.”
준혁이 들어오라는 듯 눈짓했다.
선우가 호흡을 정리하며 마력을 끌어올렸다.
신체에서 흐르던 선우 특유의 금빛 마나 기류가 목검에 깃들었다.
스타 이펙트.
선우의 스킬 중 하나인, 화려한 검기가 준혁에게로 쏘아져 나갔다.
평범한 진검보다는 훨씬 강한 힘이 준혁에게 날아들었다.
그와 동시에 선우의 짧은 금발 머리가 흔들린다 싶더니, 빠르게 이동해 준혁의 사이드 쪽으로 돌아 들어갔다.
준혁이 목검으로 검기를 쳐 내는 동안 이미 거리를 좁힌 선우의 목검이 준혁의 허리로 향했다.
“깊어.”
준혁이 나지막이 말하며 선우의 어깨를 툭 밀었다.
다리가 꼬이면서 선우가 바닥에 툭 쓰러졌다.
“……어?”
“그렇게 공격이 깊어지면 방어할 수가 없게 되잖아.”
선우가 목검으로 땅을 짚고 일어섰다.
“공격과 동시에 방어를 생각해야 해. 그리고 애초에 공격할 때 적이 피할 수 없도록 완벽히 계산. 그 그림을 그릴 줄 알아야 한다. 그럼 너보다 강한 마력을 가진 상대도 넘어설 수 있어.”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었다.
자신보다 높은 마력을 가진 상대를 넘어서는 법에 대해서.
마력이 헌터 업계의 기준점이 된 건 상식에 가까웠으니까.
“집중하고 잘 봐.”
준혁이 예를 들어 주겠다는 듯 순식간에 선우에게 파고들며 목검을 움직였다.
준혁이 쥔 목검은 의식하기도 전에 선우의 목에 닿아 있었다.
“절대로 실패하지 않을 일검을 긋는 일. 그게 진짜 검이다.”
선우는 뒷목이 서늘해지며 등에 땀이 솟았다.
분명, 빠른 속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대응할 수 없었다.
친형이기에 자신을 해치지 않을 거라는 사실은 당연히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위압감을 느꼈다.
마치 심장이 멎을 것 같은 공포감마저 들었다.
어째서……?
“검의 묘리는 속도와 힘을 넘어설 수 있지.”
선우는 마른침을 삼켰다.
사실상 그건 준혁이 마계에서 천 년을 쌓아 완성한 검의 진리였다.
그 깨달음이 담긴 힘이 실로 파괴적인 영향력을 행사한 것.
그와 동시에 선우는 쓴웃음을 지었다.
“그렇게 쉽게 할 수 있는 것처럼 말하지 마.”
선우는 다른 의미로, 충격 먹은 상태였다.
단순히 마력만으로 고랭크로 올라갈 수 있다는 건 아마추어나 다름없는 발상이었다.
그 패배감이 선우의 머리를 묵직하게 눌렀다.
자신의 형은 얼마나 오랜 시간 동안, 고민하고 노력하고 싸워 왔을까?
그 시간을 단순히 배움으로써 가까워지겠다는 건 욕심을 넘어 지독한 오만이다.
귀환자에 대한 동경을 담아, 미약하지만 성장하는 것에 초점을 두어야 했다.
“하지만 무슨 뜻인지는 알겠어.”
선우가 달라진 눈빛으로 준혁을 보았다.
준혁이 마음에 든다는 듯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계산을 해 봤다.
오른쪽으로 치고 들어가 검을 휘두를 때, 반응을 예측하고 그 예측을 비틀어 빈틈을 찾았다.
하지만 아무리 봐도 편안히 서 있는 준혁에게서는 그 어떠한 방식의 접근에도, 빈틈이 보이지 않았다.
“잘 안 될 거야. 하지만 수를 생각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시간에 따라 검술의 깊이는 달라져.”
하나하나 심장에 박혀 드는 강의였다.
결국, 이기려고 하면 답이 없다.
마음을 다시 먹은, 선우가 금빛 기류가 소용돌이치는 목검을 들고 준혁을 향해 돌진했다.
* * *
‘귀환자님 아직 식사 전이실 텐데 늦어지네.’
매니저 지우가 시계를 봤다.
벌써 오후 8시로 저녁 시간을 훌쩍 넘긴 시간이었다.
‘가서 말씀드려 봐야겠다.’
지우는 메이드 팀장한테 연무장에 다녀오겠다고 말하곤 캐슬 본관 밖으로 나서기로 했다.
“백호야.”
지우가 박수를 짝짝 치자 통유리 너머의 풍경을 보고 있던 백호가 아장아장 뛰어왔다.
“귀여워 정말. 응? 왜 이렇게 귀여워.”
지우는 백호를 문지르듯이 만져 주곤 품에 안아 들었다.
연무장으로 가면서 지우는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백호야, 예쁘지?”
“크옹!”
캐슬은 아름답다.
밤의 풍경은 웅장한 느낌이 강한 낮과 달리 편안함을 주는 고급스러움이 있다.
“날씨가 너무 좋아.”
캐슬에 피는 꽃들이 환상적이었다.
“곧 여름이 오면 여름 소리가 멋지게 울려 퍼지겠지.”
지우는 조명이 밝혀 주는 연무장으로 가는 길 스마트폰을 꺼내 귀환자님의 SNS 계정에 들어갔다.
- 매니저님! 왜 귀환자님 사진이 안 올라오죠? 이건 직무유기인데요. ㅠㅠㅠㅠ
- 귀환자님 사냥 계획 없나요?
- 아, 사진이 너무 적어…….
- 녹화 영상으로 떼우세요, 님들…….
- 너무 보고 싶다. 귀환자님은 평소엔 어떨까?
- 세상에서 매니저가 제일 부러움 ㅠㅠ
- 매니저님은 대체 전생에 나라를 몇 번을 구하셨나요?
“음, 나름 자주 올린다고 올리는데도 부족하신가 보네.”
지우는 진지한 표정으로 댓글들을 하나하나 읽었다.
그리고 곧 지우는 작게 웃었다.
댓글들에서 귀환자님에 대한 애정이 얼마나 대단한지 느껴져서였다.
‘협회장님이 오셨으니 둘이 같이 있는 모습을 한 컷 찍으면 좋을 것 같기도 하고.’
지우는 예술혼을 불태우며 백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곧 가까워지는 연무장 건물을 보며 기분 좋게 걸음을 옮겼다.
쿠궁.
지우는 깜짝 놀란 얼굴로 연무장을 보았다.
불규칙하게 바닥이 큰 소리를 내며 진동했고, 연무장 건물이 마치 흔들리듯 울리고 있었다.
무슨 일이지?
백호를 보자 그런 소란은 별일 아니라는 듯 얌전했다.
지우는 조심스레 걸음을 옮겨 연무장의 문을 천천히 열었다.
그리고 이내 연무장 내부를 확인하고서야 안도할 수 있었다.
두 사람이 목검을 들고 있는 걸 보고 눈치를 챈 것이다.
“대련을 하셨던 거죠?”
지우가 가까이 다가가며 물었다가 협회장 선우를 보았다.
준혁과 다르게 선우는 창백한 얼굴로 가쁜 숨을 내쉬고 있었다.
“협회장님. 괜찮으세요?”
선우는 대답하지 못하고 쓴웃음을 짓고 있었다.
“많이 지쳤을 거야. 필요 이상으로 마력과 근육을 썼으니.”
준혁이 선우를 보며 옅게 웃었다.
“형에게 검을 배울 수 있어 영광이었어.”
선우가 눈을 지그시 감으며 말했다.
땀에 번진 그의 얼굴은 개운한 표정이었다.
“자주 찾아오기나 해. 바쁜 동생 얼굴도 자주 볼 수 있겠고. 좋네, 이 대련이라는 거.”
“다시 오기 무서운데 난.”
선우가 바닥에 철퍽 주저앉으며 웃었다.
“후우! 이지우 양.”
협회장의 부름에 지우가 차렷했다.
“네?”
“제가 귀환자와 대련을 했다는 건 비밀입니다.”
“……아, 네! 알겠습니다.”
지우가 백호를 안은 채 얼떨떨한 표정으로 답했다.
“근데 어떻게 온 거예요?”
“식사 시간이 지나셔서 여쭤보려고요.”
“가서 먹자. 내 동생이 수저를 들 힘은 있을지 모르겠지만. 아, 그리고 턱받침도 있어야 하려나?”
선우가 상처받은 듯 고개를 푹 떨구었다.
“일어나, 얼른. 지쳐 있을 때 쉬면 안 돼. 조금이라도 더 움직여야지.”
“녹다운이라고, 녹다운.”
선우가 준혁의 손을 탁! 잡고 일어섰다.
준혁이 선우의 팔을 들어 자신의 뒷목에 툭 걸쳐 주었다.
“걸을 만하냐?”
준혁이 웃으며 묻자 선우는 대답도 힘들다는 듯 얼굴을 절레절레 흔들었다.
연무장을 나서는 형제를 지우가 따라나섰다.
‘별일이 아니어서 다행이네. 깜짝 놀랐어.’
연무장의 문을 닫고, 앞서가던 형제를 뒤따르던 중 지우는 문뜩 예술혼의 충동을 느꼈다.
귀환자님에게 어깨동무를 하며 걸어가는 형제의 뒷모습이 캐슬의 밤 풍경과 어우러져 너무나 보기 좋아서였다.
전용 카메라를 가지고 오진 못했지만, 요즘은 스마트폰도 워낙 성능이 좋아서 SNS 계정용으로는 충분했다.
‘이 순간을 놓칠 수는 없지!’
지우는 카메라를 들고 형제의 뒷모습을 앵글에 담았다.
언제나 느끼는 거지만 카메라 각도 안에 대충 가져다 대기만 해도 그림인 사람들이다.
찰-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