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자의 모든 것 83화
캐슬에 도착하자 모두 나와 있었다.
지우와 설화, 그리고 집사와 메이드까지.
“뭐 하러 나와 있어, 부담스럽게. 안 그래도 된다니까.”
준혁이 차에서 내리며 말하자 그래도 소용없다는 듯 하나같이 미소를 장착한 얼굴로 머리 숙여 인사했다.
준혁이 못 이기겠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었을 때 백호가 준혁을 향해 달렸다.
“크-오옹!”
백호가 기세 좋게 땅을 박차고 뛰어올랐다.
대(大)자로 공중에 날아오른 백호가 놀라운 점프력으로 준혁의 얼굴에 찰싹 붙었다.
“…….”
집사와 메이드, 그리고 지우와 최설화까지.
모두 깜짝 놀란 표정으로 준혁의 얼굴에 딱 붙어 버린 백호를 보았다.
그리고.
최설화가 “푸흡!”하고 웃음 참기에 실패하자 마치 도미노처럼 줄줄이 웃음이 전염되기 시작했다.
손으로 입을 틀어막거나 입술을 깨물거나, 심지어 혀까지 깨물며 웃음을 참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 웃음으로 인해 어쩌면 귀환자님의 기분이 불쾌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들은 죽을힘을 다해 웃음을 참고 있었다.
“음.”
준혁이 백호의 뒷덜미를 잡아 얼굴에서 뚝 떼어 냈다.
백호는 혈기왕성하게 짧은 다리를 허우적거렸다.
준혁은 미소 지은 채 백호를 보았다.
아직 신수에게 무언가를 기대하기엔 너무나 작고 연약한 상태였다.
띠링!
[신수 키우기가 시작됩니다.]
[신수 백호령과의 친밀도가 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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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태창]
이름 : 백호령
호칭 : 세상에 적응 중인
레벨 : 1
계열 : 물리, 신성
힘 15 체력 10
민첩 8 지능 7
지혜 9 카리스마 5
스킬 :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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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혁은 백호의 옆에 표시되고 있는 상태창을 빤히 보았다.
그동안 보이지 않았던 것이 지금 이렇게 나타난 게 신기해서였다.
상태창을 살펴보던 준혁이 뒤늦게 캐슬 식구들을 인식했다.
자신 때문에 다들 캐슬 입구에 서 있는 중이었다.
준혁은 백호의 몸통을 들고 걸음을 옮겼다.
“매니저는 잠깐 나랑 얘기 좀 하자.”
“네, 귀환자님.”
캐슬로 들어가 바닥에 백호를 내려놓고 다이닝 룸 쪽으로 향했다.
백호는 준혁의 뒤를 졸졸 따라갔다.
지우는 그런 백호를 보며 콧잔등을 찡그리며 웃음 지었다.
“누가 주인 아니랄까 봐. 잘 따르는 것 좀 봐.”
토실토실하고 새하얀 엉덩이를 씰룩이며 주인을 따라가는 모습이 실로 살인적인 매력을 쏟아 낸다.
가히 귀여움의 절정이었다.
지우는 태블릿을 챙긴 후 다이닝 룸으로 들어갔다.
준혁은 이미 자리에 앉아 테이블 위에 앉은 백호의 머리를 쓰다듬고 있었다.
“더 월드 라이브는 봤어?”
“네, 백호 챙기느라고 조금 놓치는 부분이 있긴 했지만요.”
“던전은 클리어됐지만 그 안에서 마수 하나가 유출된 것 같아.”
준혁이 테이블 위에서 뒹굴거리고 있는 백호를 보며 말했다.
“큰일이네요. 보통 던전 같지가 않았는데.”
“헌터가 나밖에 없는 것도 아니고, 그 정도는 미국에서 감당해야 할 문제지. 하지만 리더보더들이 나섰음에도 불구하고 일이 더 커진다면 아마 다시 내게 헬퍼 요청이 들어올 거야.”
“헬퍼 요청…… 만약에 온다면 수락하실 건가요?”
“선우에게 판단을 맡길 생각이야. 외교적인 건 나보다 선우가 훨씬 더 낫기도 하고. 협회장이잖아.”
지우가 작게 미소 지었다.
“그렇죠.”
“일단은 상황을 지켜보면서 선우한테 이 문제에 대해 결정하라고 연락은 남겨 놨어.”
“그럼…….”
준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선우가 답변을 줄 거야. 난 다녀와야 할 곳이 있고.”
지우는 일전에 준혁이 한동안 캐슬을 비웠던 때를 떠올렸다.
“생각보다 오래 걸릴 수도 있겠네요.”
“그럴지도.”
“백호도 데려가시나요?”
준혁이 고개를 저었다.
“그러기엔 조금 위험할지도 몰라서. 매니저가 잘 좀 지켜 줘야 할 것 같아.”
지우가 생긋 미소 지었다.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잘 돌보고 있을게요. 언제쯤 떠나세요?”
“사흘 후.”
“그럼 그때까지 미국 상황은 저도 계속 주시하고 있을게요.”
준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 그리고 귀환자님. 제가 잘못 본 걸 수도 있는데요. 잘못 봤다고 하기엔 너무 생생해서.”
“……?”
지우는 하고 싶은 말을 망설이고 있었다.
“괜찮아. 편하게 얘기해.”
지우가 한숨을 내쉬곤 오늘 있었던 백호에 대한 이야기를 전했다.
“하하, 제가 말하면서도 참 무슨 소리를 하는 건가 싶네요. 말도 안 되는 일인데.”
“매니저가 본 게 맞아.”
“네?”
“헛걸 본 게 아니라고.”
지우가 다물지 못하는 자신의 입을 손으로 가렸다.
준혁이 백호의 턱을 손가락으로 긁어 주었다.
백호는 좋아하며 얼굴을 비비적거렸다.
“처음 이 녀석을 만났을 때. 이런 모습은 아니었어. 소년의 모습이었지.”
지우가 얼굴을 위아래로 크게 끄덕거렸다.
“나도 이유는 모르지만, 아마 두 가지 외형을 가진 것 같다. 인간의 모습을 한 백호와. 지금처럼 짐승의 모습을 한 백호.”
“그래도 둘 다 백호인 거네요.”
지우가 반짝거리는 눈으로 백호를 보며 말했다.
“만약 내가 없는 동안, 인간형으로 변하게 된다면. 말을 가르쳐 줘. 인간의 언어를 배울 수 있도록.”
“네, 열심히 할게요!”
지우가 기합이 잔뜩 들어간 얼굴로 답했다
“백호 좀 보고 있어.”
준혁은 다이닝 룸을 나와 서재로 향했다.
서재에는 굉장히 많은 책들이 있었고, 그 책에는 신수와 관련된 서적. 그리고 어쩌면 신수를 빠르게 성장시킬 수 있는 방법이 있을지도 몰랐다.
캐슬의 서재에는 시중에서 팔지 않는 귀한 책들이 아주 많았기 때문이다.
신수와 관련된 정보를 찾기 위해 준혁은 노트북 앞에 앉았다.
서재에 비치된 노트북은 보유 도서를 검색할 수 있도록 준비되어 있었다.
‘신수’라는 두 글자를 검색하자 관련 도서가 주르륵 나타났다.
도서 제목 옆에는 어디에 책들이 위치해 있는지 표시되어 있다.
준혁이 위치를 확인하고 그곳으로 눈짓을 던질 때마다 섭물의 힘에 의해 책들이 마치 날개 달린 새처럼 준혁의 앞으로 날아왔다.
책은 두둥실 속도를 줄이며 준혁의 테이블 위로 사뿐히 자리를 잡았다.
신수 관련 도서뿐만이 아니라 신수를 키우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책들을 찾아보았다.
그러자 어느새 테이블 위로, 책들이 빽빽하며 쌓여 있었다.
어비스의 문이 열리기 위해선 시간이 필요했다.
그 시간 동안 이 책들을 읽어 두기로 했다.
독서를 위해 첫 책을 집었을 때 투툭 하고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뒤를 돌아보자, 창문에 빗물이 묻어나고 있었다.
봄비였다.
흐려진 하늘 아래, 추적추적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준혁은 빗소리를 들으며 책장의 페이지를 넘겼다.
첫 번째 책은 신수의 심리였다.
이 작가는 직접 신수를 만나 본 적이 있는 걸까?
멸마의 서를 통해 어비스의 문을 넘어 봉인된 신수.
그렇다면 봉인되기 전에 신수를 만났거나 그저 상상에 의해 쓰여진 소설일 것이다.
준혁은 반신반의하며 내용을 읽어 보자 우선 백호령에 대해 먼저 나왔다.
참 사설이 긴 내용이었지만 간단히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호전적이며 승부욕이 강하고, 밝은 성격.
신수 중에서도 가장 감정적이라 마치 인간을 보는 듯했다는 내용이었다.
준혁은 백호를 떠올려 보았다.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어느 정도 일리 있다고 동의하면서 준혁은 계속해서 책을 읽었다.
인간들에게 신이라 추앙받았던 청룡.
수많은 신비로운 등장의 일화를 남겼던 기린.
천사들과 함께 인간계를 다녀간 주작과 마치 재앙의 악마처럼 표현되며 태풍을 몰고 왔던 현무까지.
책을 읽다 보니 어느 정도는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내용 같기는 했다.
생각보다 디테일했고, 사진으로 남긴 신수들의 흔적이 꽤 그럴 듯했다.
진실일지 거짓일지는 알 수 없었다.
어차피 그런 진위를 확인하기 위해 책을 보는 건 아니었다.
그저 조금이나마 정보를 가지기 위해 서재를 찾았을 뿐이니까.
하지만 그런 의도로 서재를 찾은 것에 비해 준혁은 책 속으로 끊임없이 빠져들었다.
시간이 가는 줄 몰라 식사도 몇 번이나 걸렀다. 영양을 위해 최소한의 식사를 해야 할 땐 간단한 음식으로 서재에서 책을 읽으며 그 문제를 해결했다.
그렇게 서재에서 읽고 먹고 자다 보니 어느새 어비스의 문이 열리기까지 24시간이 채 남지 않았다.
창밖을 보자 끊임없이 내렸던 비가 멈추고 하늘은 맑게 개 있었다.
“서재에서 살고 있다더니, 진짜였네.”
노크를 하고 서재로 들어온 건 동생 선우였다.
“대체 뭘 그렇게 열심히 본 거야?”
“신수 관련 책들.”
준혁은 테이블을 보았다.
무수하게 쌓여 있던 책들은 이미 제자리로 돌아가 더 이상 남아 있는 책들이 없었다.
참 많이, 여러 가지를 읽었다.
“도움이 될 만한 책들은 있어?”
“생각했던 것 보단 훨씬.”
준혁이 걸음을 옮기며 말했다.
“미국 쪽은 상황이 어때?”
서재를 나가면서 준혁이 물었다.
선우는 준혁의 옆을 걸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아직 못 찾은 것 같아. 전혀 움직임이 없어.”
선우가 헛웃음을 흘리며 말을 이었다.
“마치 숨바꼭질이라도 하는 것처럼.”
준혁은 던전에서 빠져나간 검은 연기를 떠올렸다.
현장에서 자신이 봤던 것과는 달리 그 검은 연기는 이족보행을 하는 마수의 형태를 띠고 있다고 했었다.
3일이나 지났는데 움직임이 없다는 건 확실히 뭔가 이상했다.
“그쪽은 너무 신경 쓰지 마. 미국이잖아. 다른 나라도 아니고. 충분히 그 마수 문제는 해결할 거야.”
준혁도 동의하는 바였다.
“크옹!”
백호가 하루에 몇 번이나 서재 문을 긁어 대는 통에 어쩔 수 없이 문을 열어 두었다.
그러자 백호는 제 안방을 드나들 듯 활개를 치고 다녔다.
준혁이 전혀 반응을 해 주지 않자 다시 매니저에게 돌아가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었다.
백호는 서재에서 나온 게 반갑다는 듯 준혁의 다리에 대롱대롱 매달렸다.
“백호가 사람 모습을 했었다던데, 그거 진짜야?”
선우의 물음에 준혁이 백호를 보며 웃었다.
“평범한 짐승은 아니니까.”
“그렇다고 해도 신기하네.”
선우가 백호를 빤히 보았다.
그러자 백호가 선우를 향해 펄쩍 뛰어오르며 양발을 복싱선수처럼 휘둘렀다.
공격이 적중하진 않았지만 매서운 속도였다.
선우가 황당하다는 듯 허리에 손을 짚었다.
“성깔하고는. 얜 나한테만 까칠한 것 같다니까?”
“그건 아닐걸. 그래도 점점 익숙해지겠지. 근데 바쁜 사람이 어쩐 일이야? 캐슬까지.”
“모처럼 쉬는 날이거든. 그리고 형 곧 어비스로 가잖아? 얼마나 걸릴지도 모르는데 얼굴은 봐 놔야지.”
준혁이 그럴 만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돌이켜 보면 백호를 찾았을 때도 무려 한 달을 소비했으니까.
“형.”
“응?”
“부탁이 있는데. 해 주려나?”
“무슨 부탁?”
“저기 그게.”
선우가 뒤통수를 긁적이며 웃었다.
동생은 무슨 일인지 말을 꺼내기 곤란해 보이는 표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