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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의 모든 것-80화 (80/175)

귀환자의 모든 것 80화

던전 게이트 부근으로 가자 미국의 경비 헌터들이 좌우로 길을 터주었다.

이번 블랙 던전의 경우 굳이 던전 분석기로 균열의 틈을 찾을 필요가 없었다.

블랙 던전은 클리어되지 않았고 미국에선 클리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뵐 수 있어 영광입니다.”

던전 부근에서 외부인의 침입을 막는 역할의 경비 헌터가 슬쩍 다가와 말을 걸었다.

그를 보자 커다랗게 뜬 눈으로 잔뜩 긴장하고 있었다.

마치 자신의 얼굴을 뜯어먹기라도 할 것처럼 눈알을 이리저리 굴렸다.

다른 이들도 가까이 다가오지만 않았지 그와 다를 것 없었다.

“부디 엿 같은 마수들을 모두 죽여 주세요, 보스.”

준혁은 시커먼 게이트를 보며 한숨 쉬었다.

“난 너희들의 보스가 아니야.”

게이트를 응시하던 준혁이 걸음을 옮겼다.

* * *

[더 월드 라이브 ON]

[스트리밍이 시작됩니다.]

던전에 들어온 준혁이 스트리밍을 시작했다.

- 갓준혁이다. 소리 질러!

- 이 개 ♪ 같은 마수들. 지금부터 줄빠따 대기해라.

- 파티 타임. 아 유 레디?

- 자, 피의 축제를 즐겨 볼까?

- ㅋㅋㅋㅋㅋㅋ 다들 갓준혁에게 미쳐 가는구나.

- 지릴 준비 끝.

- 형님들, 기저귀 찼어요?

- 블랙 던전 혼자 들어건 거임, 진짜로?

- 왜 블랙 던전이 블랙 던전 같지가 않냨ㅋㅋ 갓준혁 효과인가?

- 심장이 고동친다.

- 갓준혁 포스는 언제 봐도 미쳐 버릴 것 같네.

- 복수의 시간이다 ㅠㅠ

- 그저 갓. 믿습니다.

준혁은 채팅창을 최소화시킨 후, 멸마의 서로 수색을 펼쳤다.

파란 불꽃 같은 마나의 파장이 사방으로 번져 나가면서 준혁이 걸음을 옮겼다.

“꼭꼭 잘 숨어라. 머리카락 보인다.”

준혁이 어깨를 가볍게 풀고, 큐브에서 헬바인의 장검을 꺼내며 노래를 불렀다.

마계에서 자주 하던 노래였는데 준혁은 자신도 모르게 노래가 입 밖으로 나왔다.

- ㅋㅋㅋㅋㅋ 숨바꼭질ㅋㅋㅋㅋ

- 우리 형 너무 터프하닼ㅋㅋㅋㅋ

- 심장이 뜨겁다 못해 탈 것 같다.

- 귀환자님 조금씩 스트리밍 실력이 느시는 듯 ㅋㅋㅋㅋ

- 블랙 던전에서 솔플로 술래잡기하는 갓준혁.

- 어? 무기 못 보던 건데. 새로 장만하셨나?

미국 협회장 로건이 말했던 대로 던전 지대를 이동하면서 레이드 팀원의 사체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질척거리는 땅과, 마치 불이라도 번진 것처럼 보이는 붉은색 하늘.

마계를 연상하게 하는 곳이라 향수마저 느낄 것 같은 풍경이다.

준혁은 칼등을 어깨에 걸치며 걷다가 걸음을 멈췄다.

등을 훑고 지나가는 싸늘한 기운.

마수가 가까워졌다는, 몸이 보내는 신호였다.

준혁은 천리안으로 지도를 켰다.

예상대로 지도를 통해 마수가 얼마나 가까워졌는지 볼 수 있었다.

굳이 천리안이 아니더라도 근접한 마수의 위치 정도는 파악할 수 있다.

뒤를 돌아보자 허수아비를 닮은 마수가 양팔을 벌린 채 서 있었다.

옅은 안개 속 붉은 안광을 빛내는 마수를 보며 준혁이 칼자루를 고쳐 잡고 움직였다.

잔상을 남기며 움직인 준혁이 마수를 지나치며 헬바인의 장검으로 마수의 머리통을 베었다.

마수의 머리가 으깨진 수박처럼 박살이 나면서 허공에 피가 튀었다.

단 한 칼에 블랙 던전의 마수가 힘을 잃고 쓰러졌다.

- 캬……!

- 이거지! ㅠㅠㅠㅠ

- 뭐냐, 저 섹시함은?

- 칼 선이 예술이다.

- 아 씨, 벌써 기저귀 가져와야 하네.

- 미켈란젤로가 살아 있어도 조각할 수 없는 존재.

- 폐하, 적수가 있긴 한 겁니까……!

천리안을 통해 마수들의 위치와 숫자가 확인되고 있다.

그런데 생각보다 그 숫자가 적지 않았다.

엑시트 게이트가 열렸음에도 불구하고 마수가 이 정도로 남았다는 건 일반 던전과 달리 마수의 아웃 브레이크가 전혀 다른 속도로 시작될 수 있는 가능성을 내포했다.

쿵.

준혁이 땅을 차고 뛰자 질퍽한 진흙 바닥이 원형으로 크게 번졌다.

그리고 그땐 이미 헬바인의 장검이 검기를 품은 선을 긋고 있었다.

그 선에 따라 마수들이 몸체가 찢겨 나갔다.

준혁이 핏방울 하나 맺혀 있지 않은 검을 내려다보았다.

준혁의 주변으로 다섯 마리의 마수 사체가 널려 있었다.

‘확실히 칼이 잘 드네.’

준혁이 날카로운 눈으로 천리안을 보았다.

마수들의 위치를 확인.

다시 지면을 밟았다.

땅이 미약하게 흔들렸다.

준혁은 마수들을 찾아내 하나하나 칼을 박았다.

마수들의 저항은 무의미해 보였다.

준혁은 검은 마치 신기루처럼, 예외 없이 마수들의 숨통을 끊었다.

- 갓준혁 앞에서는 블랙 던전도 골드 던전이랑 다를 바가 없네.

- 신기하다 ㄹㅇ

- 너무 쉬워 보여.

- 리더보더들이 고생한 그 던전 맞냐?

- 다른 던전에 온 것 같음 느낌 ㅋㅋ

하나하나 확실히 마수의 숨통을 끊으며 이동한 끝에 준혁은 보았다.

천리안에 보스를 가리키는 점이 나타났음을.

‘얼추 정리한 것 같은데. 보스만 잡으면 끝일까?’

그건 해 보면 알 일이다.

준혁은 신형을 날렸다.

빛도 희망도 없을 것 같은 대지를 달렸다.

큐브가 주변을 비추고 있었다.

더 이상 마수는 보이지 않았다.

준혁의 시야에도, 천리안의 지도에도.

지도에 나타난 것은 보스임을 가리키는 커다란 점 하나.

준혁은 그곳으로 향하고 있었다.

‘분명 지금까지의 던전과는 다르긴 해.’

준혁은 질주하면서 전방을 주시했다.

어둠을 가르며 뛰고 있으니 얼마 되지 않아 놈이 보일 것이다.

예상보다 훨씬 빨리 놈이 모습을 드러냈다.

준혁은 속도를 늦추었다.

어둠을 마치 날개처럼 배경으로 단 채, 보스몹이 서 있었다.

인간을 똑 닮은 마수였다.

차이점은 머리에 뿔이 달렸다는 것과 숯이라도 칠한 것처럼 시커먼 몸.

분칠한 것처럼 새하얀 얼굴.

굳이 하나 덧붙이자면 4개의 송곳니가 짐승처럼 단단해 보이고 컸다.

눈은 핏물이 오른 듯 붉었다.

마치 악귀를 보는 듯했다.

- 생긴 거 살벌하네 ㄷㄷ

- 와, 꿈에 나올까 무섭다 미친.

- 와꾸 보소.

- 짐승형 보다가 저런 면상 보니까 레알 몸 굳네.

- 보스몹인가?

- 범상치 않다 진짜;;;

오른손엔 커다란 창을 마치 단검 잡듯이 편하게 쥐고 있었다.

창 치고는 칼날이 길었다.

“필멸자 주제에 수를 헤아릴 수 없는 생명을 삼켰구나.”

몸이 저릿저릿해지는 음성.

지금까지 던전에서 만났던 마수와는 전혀 느낌이 달랐다.

마수로서의 본능이 살아 있는 녀석들에 비해 놈은 마치 인간처럼 지능이 높아 보였다.

그리고 높은 지능만큼의 실력을 갖춘 듯 예사롭지 않은 기운이 그의 창끝에 서려 있었다.

“내가 누군지 전혀 알아차리지 못하는 얼굴이군.”

마수가 말했다.

그는 마치 준혁을 잘 알고 있는 것처럼 말했다.

“내가 널 알아야 하나?”

“못 알아보는 것도 당연하다. 이렇듯 외형이 변했으니까.”

준혁은 마수를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놈은 자신을 기억하고 있는 듯 보였다.

‘날 기억하고 있는 놈들이라곤 마계의 놈들뿐일 텐데?’

쿠궁.

커다란 음향이 귓전을 때림과 동시에 마수로부터 새파란 마력의 파장이 사방으로 풀풀 날렸다.

그의 창에 푸른 기운이 마치 불꽃처럼 일렁였다.

[마수가 더 월드 라이브의 시스템에 영향을 끼쳤습니다.]

[더 월드 라이브의 소리가 차단됩니다.]

더 월드 라이브의 스트리밍이 음소거 모드가 됐다.

이로써 시청자들은 준혁과 마수 간의 대화를 더 이상 들을 수 없게 됐다.

- 뭐야? 갑자기 소리 안 들림.

- 아니 무슨 컴퓨터도 아니고 왜 갑자기 소리 안 들리냐?

- 이런 적은 한 번도 없었는데 황당하네. 관리자 놈아 소리 안 들린다고!

- 아, 빨리 고쳐!

- 미치겠네 ;;;

- 막힌 거야? 일부러 막은 거야?

시청자들 사이에 고통과 혼란이 일고 있었다.

“잔재주가 많은 놈이구나.”

채팅창을 확인한 준혁이 마수를 보며 말했다.

마수가 자신의 창을 홀린 듯이 보았다.

“이 창날에는 수많은 영혼이 섞여 있지. 바로 네가 소멸시켰던 영혼들이다.”

준혁이 고개를 갸웃했다.

“영혼을 부활시키기라도 했단 건가?”

“마계라면 몰라도, 인간계에선 가능하지. 그 방법을 찾기 위해 아주 오랜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결국 성공했지.”

“어차피 또다시 소멸될 운명인데 뭐 하러 그런 귀찮은 짓을 하는지.”

마수가 분노가 들끓는 눈으로 준혁을 쏘아보았다.

“걱정하지 마라. 네놈을 향한 복수가 오늘 이루어질 것이니.”

준혁이 비웃음을 던졌다.

“복수는 내가 하는 거지, 너희들이 하는 게 아니야.”

“왜 복수가 너만의 것이지? 내 육신에는 네가 소멸시킨 마왕들과 역대 마왕들의 혼이 담겨 있다. 이 마왕혼 앞에, 네놈은 신께서 원하시는 좌절과 절망을 내어놓게 될 것이다.”

“마왕? 능력도 없는 것들이 자리나 차지했던 것들? 잘 기억도 안 나. 너무 허접해서.”

“감히 나 마왕혼을 모욕한 죄. 그 죄까지 모두 값을 쳐 주마.”

“개소리 집어치우고 덤벼. 데리고 놀아 주마.”

준혁이 칼자루를 고쳐 잡았다.

마왕혼이 창대를 꽉 쥐며 준혁을 향해 달려들었다.

눈부신 속도로 거리를 좁힌 마왕혼의 창이 준혁을 향해 쇄도했다.

그동안의 마수들의 공격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가공한 힘과 속도가 붙어 있었다.

준혁은 헬바인의 장검으로 찔러 들어오는 창날을 쳐 냈다.

공격에 실패하여 창날이 튕겨져 나간 마왕혼은 그대로 허리를 비틀어 몸통을 회전하며 준혁을 향해 창을 휘둘렀다.

준혁이 상체를 숙이자, 준혁의 머리를 놀렸던 검기가 저 멀리 서 있던 바위를 그대로 잘라 냈다.

마왕을 상대했을 때보다 훨씬 빠르고 강한 공격이었다.

모든 마왕들의 혼을 하나로 모은 만큼, 일개의 마왕들과는 전혀 다른 실력이었다.

“필멸자 놈!”

마왕혼의 창이 환영처럼 수십 개로 변해 준혁을 향해 찔러 들어갔다. 하지만 놀랍게도 그 환영에는 실제와 같은 힘이 모두 서려 있었다.

준혁은 검으로 빈틈없이 날아드는 창을 하나하나 모두 쳐 낸 뒤, 마왕혼을 향해 검을 찔렀다.

어깨를 찔린 마왕혼이 신음을 뱉으며 뒷걸음질 쳤다.

그 사이 준혁의 검에 서린 힘은 이미 발출을 앞두고 있었다.

마왕혼과는 질적으로 차원이 다른 십여 개의 환영검이 준혁의 앞으로 떠올랐다.

헬바인의 장검이 가진 신물의 힘을 더해, 환영검은 마치 살아 있기라도 한 듯 생동감 넘치는 기운으로 마왕혼을 향해 날아들었다.

10개의 환영검이 단 한 자루도 놓치지 않고, 마왕혼의 육신을 꿰뚫었다.

가슴과 복부, 팔과 허벅지를 마치 화살처럼 날아들어 관통 한 것이다.

“쿨럭……!”

마왕혼이 시커먼 피를 울컥 토해 내며 비틀거렸다.

준혁의 공격에 의해 상처투성이가 된 채 서 있는 것조차 힘들었다.

그럼에도 마왕혼은 다시 공격하기 위해 준혁을 노려보고 있었다.

하지만 마왕혼의 마음과 달리 데미지가 너무 큰 탓에 한 발자국을 옮기는 것조차 어려운 일이었다.

“고작 전대 마왕 몇 마리 모아 온다고 이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나? 진심으로?”

준혁이 어이없다는 듯 마왕혼에게 걸어가며 물었다.

“……상징적인 의미가 있지.”

마왕혼은 죽음을 앞두고도 자신만만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준혁은 놈이 다른 꿍꿍이를 갖고 있음을 눈치챘다.

“뭘 준비하는 거지?”

준혁의 적개심을 품은 눈빛이 마왕혼에게로 향했다.

“거대한 혼란을 만드는 일. 그것은 신을 받드는 우리의 본성이자 원대한 숙명이니. 죄악의 빛이 필멸자를 검게 물들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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