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자의 모든 것 79화
카메라가 멈출 때쯤, 선우는 진지한 얼굴로 브리핑 발표 전 심호흡을 했다.
[더 월드 라이브 커뮤니티]
- 한선우 개 잘생겼네.
- 갓준혁이 더 잘생김.
- 님들 좀 닥치셈…….
- 너나 닥쳐.
- 근데 협회장이 이 시점에 왜 나서지? 벌써 미국에서 헬퍼 요청 왔나?
- 그럴 만도 하지. 리더보더도 거의 반 죽다 살아왔는데 오죽하겠음.
- 어, 한선우 나왔다.
TV 화면에 선우가 나타났다.
수많은 카메라들이 선우를 향해 포커싱을 맞추었다.
“안녕하십니까. 협회장 한선우입니다. 현재 미국에서 발생 된 블랙 던전 사안에 대해 입장을 발표하고자 이 자리에 서게 되었습니다. 이번 브리핑을 통해 협회의 입장을 발표하려 합니다.”
선우는 손목시계로 시간을 체크한 후 단상 위에 설치된 마이크 쪽으로 상체를 살짝 기울였다.
“미국에서 귀환자님에게 헬퍼 요청이 있었습니다. 협의 결과 협회의 승인 아래 현재 파천 길드 소속의 귀환자님은 미국과의 계약이 완료된 상태입니다. 또한 12시간 안에 귀환자님의 블랙 던전 진입이 이루어질 예정입니다.”
기자들이 하나같이 질문을 위해 손을 들었다.
선우가 한 명을 짚었다.
“이번 블랙 던전도 귀환자님의 솔로 레이드입니까?”
“블랙 던전으로 진입하는 인원은…… 귀환자님 한 명입니다.”
- 미친
- ㅅㅂ;;; 혼자??
- 욕 나오네. 이거 진짜야?
- ㄹㅇ? 솔플이라고?
- 선 넘네. 이건 아니지. 귀환자님 다치기라도 하면 ㅈ되는 거 아니냐??
- 진정들 하셈. 갓준혁이 혼자 가겠다고 했겠지.
- 패기 미쳤다. 헬퍼 요청받자마자 바로 미국으로 날아가네.
- 근데 ㄹㅇ 헬퍼 승인 속도 개쩔긴 한닼ㅋㅋㅋㅋㅋ
- 그 블랙 던전 수준 보고도 갓준혁 혼자 들어간다닠ㅋㅋ
- 아 폐하…….
- 위험한데…….
- 갓준혁이라면 ㅇㅈ이지만;;; 걱정됨ㅠㅠ
- 블랙 던전 처리 조건으로 얼마 받았으려나?
시청자의 반응은 귀환자에 대한 무조건적인 응원과 귀환자의 안위를 걱정하는 쪽.
이렇게 두 파로 갈렸다.
하지만 이는 선우가 결정할 수 있는 방향성의 문제가 아니었다.
준혁의 결정이었다.
미국 쪽에서 헌터를 지원해 주겠다고 했지만 준혁은 단칼에 거절했다.
“그 좋은 걸 왜 남한테 줘?”
그게 준혁의 대답이었으니 더 이상의 설득이나 대화는 무의미한 수준이었다.
“현재 귀환자님은 미국으로 향하는 중입니다. 국민 여러분. 만약 대한민국에 블랙 던전이 나타난다면 귀환자님이 최우선으로 블랙 던전을 해결할 것입니다. 그러니 부디 귀환자님을 믿고 응원해 주시길 바랍니다.”
선우가 브리핑을 종료하고 화면 밖으로 사라졌다.
- 우리 형님 더 월드 라이브 하겠죠?
- 드디어 폐하를 볼 수 있는 것인가? 가슴이 웅장해진다.
- 그저 우리 다치지만 말기를. 그거면 된다.
- 와, 갓준혁 벌써 미국 가고 있구나 ;;
- 갓준혁이면 얘기가 다르지.
- 갓준혁 덕분에 한국이 미국한테 헬퍼하는 날이 다 오네ㅋㅋ
준혁이 벌서 미국으로 가고 있다는 소식이 방송을 타자 분위기는 급변했다.
블랙 던전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은 곧 귀환자를 향한 믿음으로 바뀌고 있었다.
* * *
“크오옹…….”
지우는 기력 없이 축 처져 있는 백호를 보며 한숨 쉬었다.
그도 그럴 것이 준혁이 백호를 매니저인 지우에게 맡기고 떠난 것이다.
캐슬이 안전하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로 인한 부작용으로 현재 백호는 바닥에 엉덩이를 붙인 채 거실 통유리 바깥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준혁이 돌아오기를 바라는 구슬픈 울음소리를 내면서.
“백호야, 귀환자님 일 하러 갔어. 우리 백호 밥 먹어야지?”
“…….”
“간식 줄까?”
간식이라면 점프까지 했던 백호였지만 지금의 백호는 간식이라는 필살기에도 전혀 반응하지 않고 있었다.
“상심이 큰가 보네.”
지우는 백호를 걱정스럽게 쳐다보면서 어떻게 하면 이 불안을 달래 줄 수 있을지 고민했다.
백호의 옆에서 한참을 고민한 지우는 한 가지 좋은 방법을 생각해 냈다.
그것은 바로 무한 애교 떨기!
지우는 백호 옆에서 춤도 추고 박수도 치고 장난감도 들고 와서 흔들어 봤지만, 백호의 반응은 없었다.
지우는 녹초가 돼 버린 채로 쓰러졌다가 스마트폰을 꺼냈다.
- 귀환자님. 도착하면 화상 전화 한 통만 걸어 주세요. 백호가 너무 기운이 없어서요.
지우는 백호의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 전송했다.
문자를 보낸 뒤 지우는 걱정스런 표정으로 양손으로 턱을 괸 채 백호를 주시했다.
* * *
“귀환자님.”
전용기 안에서 준혁은 안대를 쓰고 누워 있었다.
“……귀환자님?”
준혁은 안대를 벗고 잠이 덜 깬 채로 옆을 보았다.
전용기 담당 스튜어디스가 미소 짓고 있었다.
“이제 곧 공항에 도착합니다. 안전벨트 부탁드립니다.”
준혁이 의자를 세우고 창밖을 보았다.
미국에 온 건 이번이 두 번째.
준혁은 안전벨트를 매고 전용기가 공항에 도착하기를 기다렸다.
이번 미국행은 그들이 끝내지 못한 던전을 클리어하기 위해서였다.
전용기가 공항에 도착하고 준혁은 선글라스를 챙기며 움직였다.
“다음 비행에서 뵙겠습니다, 귀환자님.”
준혁은 가벼운 목례로 대답을 대신하곤 전용기에서 계단을 타고 내려왔다.
따스한 햇살 아래 준혁은 선글라스를 쓰면서 걸음을 옮겼다.
밖으로 나가면 아마 던전으로 안내할 미국 쪽 수행 기사들이 기다리고 있을 예정이었다.
준혁은 알림 진동을 느끼고서 스마트폰을 꺼냈다.
부재중 메시지가 있었다.
공항 로비 쪽으로 나오면서 매니저가 보낸 문자 메시지를 확인했다.
자신이 떠난 이후로 백호가 기력이 없다는 내용이었다.
“와아아아아아!”
“귀환자다!”
“한준혁이야!”
바리케이드 너머로 미국의 시민들이나 여행객들이 준혁을 향해 함성을 질렀다.
준혁은 그런 주변의 반응을 흘깃 봤다가 스마트폰으로 매니저에게 전화를 걸면서 이동했다.
“귀환자님, 미국 협회에서 온 직원입니다. 제가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까만 수트 차림의 사내가 다가와 말했다.
준혁은 그를 따라가면서 스마트폰을 보았다.
화상통화가 연결되었다.
스마트폰 화면 안에는 백호가 마치 하늘이라도 무너진 것처럼 무기력하게 창밖을 보고 있었다.
“백호야.”
지우의 부름에 힘없이 돌아본 백호가 스마트폰을 보곤 후다닥 뛰어왔다.
“크옹! 크옹!”
백호가 스마트폰에 발을 휘두르며 흥분했다.
기자들의 카메라 불빛이 선글라스를 쓴 준혁을 쉴 새 없이 비추었다.
주변의 반응과 카메라 불빛은 이제 익숙해서 별로 신경이 쓰이지 않았다.
공항 건물 밖으로 나와 스마트폰을 보며 웃고 있는 준혁의 주변에는 평소에는 보기 힘든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수많은 미국인들과 여행객들이 준혁을 조금이라도 가까이서 보기 위해 애썼다.
마치 콘서트장과도 같은 그곳의 도로엔 미국 협회임을 증명하는 표식과 깃발이 달린 세단 차량이 줄 서 있었다.
준혁은 그런 주변은 아랑곳하지 않고 스마트폰 안의 백호를 보고 있었다.
“신수씩이나 되는 놈이 품위 없게.”
준혁이 웃으며 말하자 목소리를 듣고 백호는 더 흥분했다.
제자리에서 펄쩍펄쩍 뛰기까지 했다.
“금방 돌아갈 거니까. 얌전히 기다리고 있어라.”
백호가 마치 늑대처럼 고개를 젖히며 “크오오옹!”하고 울었다.
준혁은 피식 웃으며 스마트폰을 안주머니에 넣었다.
앞을 보자 수트 차림의 사내들 10여 명이 좌우로 도열한 채 자신을 보고 있었고 도로에 정차한 세단 차량은 뒷문이 열려 있었다.
“던전까지 모시겠습니다.”
준혁은 미국 협회에서 준비한 차량을 타고 이동했다.
* * *
아리조나에 위치한 던전 앞에 도착하자 생각보다 많은 인원이 있었다.
일반인과 기자들을 통제하고 있어 꽤 한적할 거라고 생각했지만, 현장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차에서 내려 던전 부근으로 다가갔을 때 준혁은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반가워요, 귀환자. 미국의 협회장 로건입니다.”
금발 머리를 올백으로 넘긴 수트 차림의 사내가 준혁에게 악수를 청했다.
던전 앞을 가득 메운 건 미국 협회장의 경호 헌터들과 협회의 관계자들이었다.
준혁은 미국 협회장과 가볍게 악수하고 던전 부근에 설치된 천막 쪽으로 움직였다.
“귀환자님께서 흔쾌히 제안을 수락해 주신 덕분에, 빠른 시간 안에 시민들의 불안을 지울 수 있었습니다.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딱히 배려는 아닙니다.”
“네?”
“거래 조건에 변동은 없겠죠?”
준혁이 미국 협회장 로건의 눈을 똑바로 보며 물었다.
“물론입니다. 해당 블랙 던전에서 나오는 모든 물질을 귀환자님께 양도하는 조건입니다.”
준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파천 길드가 올 겁니다.”
마수만 처리하고 준혁 자신은 곧장 돌아가겠다는 뜻이었다.
“저, 귀환자님. 잠시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이쪽으로 오시죠.”
던전 게이트를 보던 준혁이 로건을 따라 텐트 안으로 들어갔다.
텐트 안에는 아늑한 공간이 마련되어 있었다.
랜턴도 있고 의자도 있고 간이침대도 있었다.
천장이 높았으며 공간도 넓은 고급스러운 대형 텐트였다.
“잠깐 앉으시죠.”
준혁이 간이의자에 앉자 로건도 부근에 의자를 놓고 앉았다.
“던전에 들어가시기 전에 미리 여쭙고 싶은 게 있어 자리로 모셨습니다.”
준혁이 말해 보라는 듯 고개를 짧게 끄덕이며 의자에 등을 편안하게 기댔다.
“하고 싶은 말은 두 가지 정도인데 우선 첫 번째는 이번 던전 진입에서 더 월드 라이브는 하지 않으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아무래도 아직 던전에서 헌터들의 시신이 모두 수습되지 않은 상황이라 시청하시는 분들에겐 좋지 않은 영향이 갈 수 있어서요.”
“두 번째는요?”
준혁이 상체를 기울이며 로건의 두 눈동자를 똑바로 응시했다.
로건이 심호흡을 하고 한 차례 생각을 정리한 뒤, 입을 열었다.
“리더보더들의 연합을 추진 중에 있습니다. 한 나라의 리더보더와 랭커들로 구성된 전력으로는 앞으로 나타나게 될 블랙 던전을 막아 내기 힘들다는 판단에서입니다. 하여, 이 부분에 대해 미리 귀환자님께 말씀드리고 싶었던 겁니다. 이는 시장 독점이 아니라 헌터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요. 아직 리더보더들의 답변이…….”
“이봐요, 로건.”
“……?”
“처음 블랙 던전에 진입할 때는 더 월드 라이브로 중계를 했는데 실패했으니 조용히 정리하자?”
“그런 뜻이…….”
“그게 아니면 뭡니까?”
준혁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눈빛만큼은 뜨거웠다.
로건이 살짝 놀란 얼굴로 할 말을 잃은 표정을 지었다.
“귀환자님, 굳이 아직 수습되지 않은 헌터들의 시체를 국민들에게 보여 주는 건 그들에게 힘든 일이 될 겁니다. 그리고 유가족들은…….”
준혁이 로건의 눈을 보며 고개를 짧게 저었다.
“내 생각은 다릅니다. 영상으로 보여 주지 않아도 이미 모두 경험했던 일들입니다. 그들의 기억 속에 헌터들의 죽음은 여전히 생생하겠죠.”
“…….”
“그러니 보여 줘야 할 거 아닙니까? 비극적인 죽음이 있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나은 내일이 있음을.”
로건이 준혁의 깊이를 알 수 없는 검은 눈을 보았다.
“보여 줘야 합니다. 왜 마수가 헌터를 두려워해야 하는지.”
준혁이 말을 이었다.
“보이지 않는 긍정적인 소문보다 눈에 보이는 진실이 중요할 때가 있는 법이죠.”
로건이 웃으며 얼굴을 절레절레 흔들었다.
“역시 귀환자님이라고 해야 할지. 제 생각이 짧았네요. 다른 누구도 아니고, 귀환자님이라는 걸 잊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
로건의 얼굴이 흠칫 굳어졌다.
“리더보더의 연합이든. 미국의 어떠한 작전이든 제게 보고할 필요도 상의할 필요도 없습니다. 미국이 가야 할 길은 스스로 나아가야 할 겁니다. 저 역시 제 길은 제가 갈 겁니다.”
로건이 준혁을 보며 마른침을 삼켰다.
“제가 모르는 일들이 있겠지만 자신을 가지세요. 로건.”
준혁이 일어서서 텐트를 나갔다.
대형 텐트 안에 혼자 남은 로건.
그는 생각이 많아진 눈으로 멍하니 초점을 잃었다.
무언가를 회상하는 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