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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의 모든 것-78화 (78/175)

귀환자의 모든 것 78화

“……일단은 클리어됐네. 두 리더보더가 살아서 나오긴 했지만 너무 많은 헌터를 잃었어. 아니지, 사실상 리더보더를 제외하면 전멸이네.”

선우가 더 월드 라이브의 스크린을 끄면서 말했다.

“본보기가 될 거다. 추가적으로 나타날 블랙 던전에 대한 정보로써.”

생각이 많아진 얼굴로 잠시 침묵했던 선우가 준혁을 보았다.

“리더보더를 보유한 국가에서조차 도전하기도 전에 형에게 헬퍼 요청을 할지도 모르겠어.”

“넌 하던 대로 비즈니스를 해. 난 던전으로 갈 테니.”

“형, 그때 던전 분석기를 쓴다고 했었잖아. 만약 형이 찾는 게 없다면? 헬퍼 요청을 거절할 거야?”

“경우가 달라. 죽일 사람이 없다면 내가 죽여야지. 단 한 마리도 남김없이.”

준혁은 아우터 갓을 떠올렸다.

모든 악의 근원은 스스로를 외신이라 칭하는 그 더러운 쓰레기들이었다.

그리고 그 쓰레기가 배양한 것이 악마였으니 던전은 결국 아우터 갓과 이어져 있으리라.

‘작은 것부터 하나하나, 모조리 씹어서 소화해 주마.’

준혁이 낮게 가라앉은 눈으로 그들을 회상했다.

“일단 상황을 지켜보고 헬퍼 요청이 오면 바로 형에게 연락할게.”

준혁이 고개를 끄덕여 보였을 때.

“크오옹.”

백호가 늘어지는 울음소리를 내며 계단을 내려왔다. 그러곤 1층 거실에 도착하자 준혁을 향해 뒤뚱거리며 뛰어왔다.

선우가 그런 백호를 보고 웃었다.

“신수라 그런지 똑똑하네. 2층에서 1층까지 형 찾으러 오는 데 성공한 걸 보면.”

“별걸 다 칭찬한다.”

백호가 준혁의 다리 위로 올라가기 위해 버둥거렸다.

“가서 자야지? 조금 있으면 해 밝아. 너 한숨도 못 잤을 거 아니야?”

선우가 백호의 머리를 북북 쓰다듬었다.

“응, 이제 자러 가야지.”

“또 일하지 말고.”

“네, 네.”

선우가 잔소리 듣기 싫다는 듯 손을 흔들며 캐슬을 나갔다.

준혁은 쫄쫄 따라오는 백호를 데리고 선우를 마중 나갔다.

“안 나와도 되는데.”

“나온 김에 산책이나 할까 싶어서. 어서 가라.”

선우가 고개를 끄덕이곤 차 문을 열었다.

“간다.”

준혁은 선우가 차를 타고 떠나는 걸 지켜보다가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백호는 오랜 숙면으로 최고의 컨디션이라는 걸 자랑하기라도 하듯 짧은 다리로 꼬리를 흔들며 준혁의 주변을 뛰어다니고 있었다.

준혁은 주머니에 손을 꽂아 넣고 이른 새벽 아침의 캐슬 정원을 거닐었다.

백호가 자유롭게 뛰어다니며 쫓아왔다.

준혁은 여유의 시간을 가지며 백호와 함께 캐슬을 산책했다.

* * *

엑시트(Exit).

헌터들은 흔히 탈출 게이트가 열리면 던전을 클리어했다고 판단한다.

하지만 엑시트가 열렸음에도 불구하고 던전은 닫히지 않고 있었다.

클리어하게 될 경우 보통 30분 전후로 던전은 그 기능을 잃고 게이트를 닫는다.

하지만 역대 최악의 고위 헌터들의 사상자를 낸 이번 블랙 던전은 여전히 그 문을 닫지 않고 있었다.

“다 끝난 던전에 군단급 수색 팀이라니.”

미국 협회로부터 던전의 잔여 수색 임무를 명령받은, 협회의 간부 ‘리암’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신경질적으로 껌을 질겅질겅 씹었다.

리암이 타고 있던 밴 차량 문이 열렸다.

“대기 준비 끝났습니다.”

차량 안에서 화면을 보자 헌터 군단이 블랙 던전 앞에서 중무장을 한 채 대기 중이었다.

리암은 화면을 보며 무전기를 들었다.

“5분 후에 진입한다.”

리암이 부하를 돌아봤다.

“가서 준비해.”

부하가 경례를 올리고 던전 앞으로 뛰어갔다.

리암은 담배를 물면서 차량 밖으로 나와 불을 태웠다.

“스읍, 후우.”

리암은 담배를 피우면서 좀처럼 구겨져 있는 얼굴을 펴지 못했다.

그동안 숱하게 던전 임무를 수행하면서, 늘 불쾌한 기분이 지워지지 않을 때가 있었다.

그럴 때마다 안 좋은 사고가 발생하곤 했다.

리암은 오늘이 그랬다.

분명 무슨 일이 벌어질 것만 같은 안 좋은 직감이 등줄기를 싸늘하게 훑고 지나갔다.

“……Fuck.”

리암은 작은 목소리로 욕을 뱉었다.

재수 없는 하루를 직감했다고 해서 작전 수행을 취소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미국 협회에서 직접적으로 내려온 명령이었다.

“내가 예언가도 아니고 직감이야 틀릴 수도 있지.”

리암은 희망 사항을 중얼거리며 담배를 끄고 다시 차에 탔다.

그는 화면을 보면서 무전기를 들었다.

시간을 체크하고 약속된 시간이 된 순간.

“진입.”

리암이 명령을 내렸다.

블랙 던전 앞에서 대기하고 있던 헌터 군단이 진입을 시작했다.

리암은 화면을 보며 마른침을 삼켰다.

가뜩이나 이번 레이드 팀에서 사망자가 너무 많았던 탓에 여론이 좋지 않은 상황이었다.

이번 임무는 더 월드 라이브로 중계되지 않는 작전이었다.

던전 확인 마무리 과정에서 사건, 사고는 없어야 했다.

협회를 위해서도 그리고 국가를 위해서도.

* * *

마력탄이 들어 있는 총과 각종 장비들로 무장한 헌터들이 진입했다.

이미 고위 랭크 상당수가 사망했기 때문에 이번 작전에 고위 랭크의 헌터들이 포함된 건 소수였다.

하지만 어차피 엑시트 게이트가 열렸다는 것은 대부분의 마수가 죽음에 이르렀다는 걸 의미한다.

더욱이 일정 시간이 지나면 던전은 이미 생기를 잃기 때문에 굳이 헌터들이 공격하지 않아도 마수들은 병든 닭이나 다름없는 수준으로 약해지기 마련이었다.

잔여 마수들을 처리하기 위해 투입된 헌터들은 각 조를 이루어 사방으로 흩어졌다.

약 30분 정도가 흘렀다.

작전에 투입된 헌터들은 정신적으로 꽤 힘든 과정을 겪어야 했다.

마수들은 보이지 않았고 눈에 들어오는 건 레이드 팀으로써 처음 공략에 도전했던 랭커들의 시신이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헌터들이 시신을 발견하면 신호를 주고 시체 수습팀이 시신을 거둬 갔다.

A팀의 팀장 ‘헨리’는 혀를 찼다.

“개 같은 마수 새끼들.”

절절한 감정이 헨리의 입 밖으로 흘러나왔다.

분노를 품은 건 비단 팀장뿐만이 아니었다.

A팀 모두 마수들에 대한 증오로 가득했다.

그들은 침묵한 채 사체를 옮기는 걸 지켜봤다.

하나같이 병장기를 쥔 손에 힘이 꽉 들어갔다.

“전열!”

팀장 헨리가 소리쳤다.

허탈감과 분노가 섞인 감정들로 뒤엉켜 있던 팀원들이 하나둘 이성적으로 정신을 차리며 전열을 맞추었다.

작전을 수행하기 위해 A팀이 던전 수색에 나섰다.

“엑시트 게이트는 열렸지만, 더 월드 시스템이 클리어를 알리지 않았다. 절대 방심하지 마라.”

앞장서서 걷던 팀장 헨리는 움직임을 멈췄다.

팀원들의 목소리도, 발소리도 들리지 않아서였다.

일순 헨리의 얼굴에 불안감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헨리는 굵은 침을 삼키곤 천천히 뒤를 돌아봤다.

팀원들은 모두 종이 찢기듯 찢겨진 채로 죽어 있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 마수 하나가 소리 없이 서 있다.

마치 거대해진 허수아비 같았다.

몸통 쪽에는 거친 갈기털로 가득했다.

좌우로 쭉 펴진 팔다리는 살점 없이 뼈로만 이루어져 있었다.

뼈 손가락에는 팀원들을 죽였다는 증거처럼 피가 묻어나 있었다.

마치 커다란 수십 개의 가위를 달고 있는 듯한 뼈 손가락.

키는 약 3미터.

헨리는 천천히 얼굴을 들었다.

두 눈에서 붉은 안광이 도깨비불처럼 일렁인다.

그 짧은 시간, 소리도 없이 8명의 팀원이 죽은 것이다.

마수의 강함을 간접적으로 느꼈다.

죽음이 목전에 드리워서일까?

그 공포감에 근육이 굳어 몸이 움직여지지가 않았다.

움직이는 순간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생명이 자신에게서 떠나갈 것만 같았다.

- 헨리, 정신 차려. 팀원이 이동 중이다.

가슴 쪽에 달고 있는 무전기에서 간부 리암의 침착한 목소리가 들렸다.

헨리는 옷에 카메라를 달고 있었다.

그 카메라를 통해, 던전 밖에서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하는 간부, 리암이 지켜보고 있다.

리암이 이미 동료들을 이곳으로 보냈을 것이다.

‘……피해야 해.’

의식에 따라 몸이 움직이기도 전에 마수의 칼날 같은 손가락이 헨리의 복부를 찢고 파고들었다.

“콜록.”

기침과 함께 입 밖으로 핏물이 뿜어져 나왔다.

헨리가 자신의 아이 이름을 중얼거릴 때, 마수가 그의 내장을 뜯어냈다.

헨리는 피거품을 물며 고꾸라졌다.

마수는 어기적거리는 자세로 참혹한 현장으로부터 느릿하게 멀어지고 있었다.

* * *

“Fuuuuuuuuk!”

간부 리암은 울음 섞인 욕설을 뱉으며 밴 차량 내부의 물건을 집어던졌다.

“……지저스 크라이스트.”

리암은 자신의 두꺼운 양손으로 머리를 감싸 쥐며 좌절한 채 털썩 앉았다.

불길한 예감은 적중했다.

이로써 확실해진 것이다.

던전이 온전히 클리어되지 않았다.

리암이 울분을 씹어 삼키며 무전기를 손에 들었다.

들썩이는 숨을 고른 후.

“지금 즉시 엑시트 게이트를 통해 전원 철수한다.”

철수를 명령했다.

새로이 업데이트된 블랙 던전은 지금까지 본 적 없는 형태의 지옥이었다.

* * *

미국 뉴스에서 추가 사상자를 발표했다.

그로 인한 충격이 전 세계를 뒤흔들었다.

리더보더가 포함된 첫 레이드로도 비극적으로 끝난 가운데, 추가 던전 수색에서조차 사상자가 추가로 발생한 것이다.

A팀의 전멸 소식은 가뜩이나 다운되어 있는 분위기에 추모의 물결을 더했다.

[각성자 커뮤니티]

제목 : 블랙 던전에서 추가 사상자가 발생했습니다.

뉴스 링크 첨부했어요.

제가 지금 미국인데 상황이 심상치 않습니다.

현재 헌터 강대국이었던 미국이 엄청난 전력 손실을 입어 심각하게 몰린 상황입니다.

문제는 미국뿐만이 아니라 이 상황이 전 세계로 확대될 거라는 겁니다.

헌터들이 사상자와 부상자를 최소화시키면서 던전에 적응해서 어느 정도 마음을 놓고 있었는데 현실이 참 아프네요.

미국은 물론 전 세계에서 블랙 던전에 대해 철저히 대응해서 하루빨리 극복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게시판 댓글)

- 미국이 부러진 마당에 대응이랄 게 있음?

↳말을 해도 꼭.

↳틀린 말은 아니지.

↳상황을 냉정하게 봐야 하긴 한다…….

- 슬프다. 너무 많이 죽었다…….

- 각성자라는 게 원래 목숨을 거는 직업이라지만 시발 진짜 너무 안타깝다.

- 유가족들의 어떡하냐.

- 증시 나락 가는 중.

- 새삼 국가를 위한 헌터들의 희생이 얼마나 무거운지를 실감하게 됨.

- 솔직히 그동안 헌터들 잘 먹고 잘사는 거 배 아팠는데. 반성하게 된다.

- 헌터들이 갑질하고 졸부 행새한 건 맞지 뭐.

- 갓준혁이었으면 쓸어버렸을 텐데.

↳초딩이셈?

↳맞잖아?

↳에휴.

↳어쩔티비.

- 무려 리더보드 7위와 12위가 포함된 레이드였습니다. 그런 리더보더들도 겨우 생존한 게 블랙 던전이죠. 앞으로 확장될 블랙 던전 생각하니까 진짜 무섭네요.

- ㄹㅇ 심장 ㅈㄹ 빨리 뛴다. 지금 님들 심장에 손대 보셈.

↳에라이 쫄보얔ㅋㅋㅋㅋ

↳마수 앞에 있으면 똥오줌부터 지릴 게 센 척?

- 전 세계에서 한국으로 헬퍼 요청할 게 눈에 선하다. 귀환자가 아무리 세다고 해도 대한민국 최대 전력인데 저렇게 위험한 곳에 나서는 건 반대임.

↳ㅇㅇ 맞음. 한국을 위해서라도 전력을 아껴야 된다고 봄.

- 주식 쓸어 담아라. 갓준혁이 블랙 던전 들어가는 순간 증시 급반등한다.

↳오, 주식 초고수네.

↳이 상황에 돈 벌려는 너희들도 참. 그래서 뭐 사면 되냐?

- 어? 님들 뉴스 보셈. 지금 파천 길드에서 긴급 발표함.

↳진짜다. 다들 티비 틀어라.

H&TV 방송국 채널에서 곧 협회장 한선우의 블랙 던전의 재난에 대한 긴급브리핑이 곧 시작될 것임을 알렸다.

현재 시청률은 급속도로 치솟아 오르고 있었다.

숨죽인 현장에서 기자들의 카메라 소리만이 작게 울렸다.

잠시 후, 협회장 한선우가 단상 위로 서자 카메라가 차르르 불빛을 내며 선우를 비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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