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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의 모든 것-75화 (75/175)

귀환자의 모든 것 75화

백호가 한없이 귀여운 울음을 터트리며 메이드를 할퀴거나 깨물기 위해 뛰어다녔다.

평범한 사람이었던 집사와 메이드로서는 감당할 수 없는 힘이어서 상처가 난 사람들이 있을 정도였다.

발톱을 세워, 깨물고 할퀴기 위해 뛰어다니는 백호는 그야말로 무법천지였다.

기세등등한 백호였지만 준혁이 걸어가서 뒷덜미를 잡자 백호는 화들짝 놀라며 무력한 상태로 얌전해졌다.

언제 사납게 굴었냐는 듯 저항도 없이 그저 불쌍해 보일 정도로 축 늘어졌다.

선우가 배를 잡고 웃었고 지우는 걱정스레 다친 메이드들에게 다가갔다.

준혁이 말썽을 일으킨 백호를 얼굴 앞으로 바짝 당겨 노려보았다.

백호는 현재 집사와 메이드를 괴롭힐 때의 기세는 온데간데 없었다.

백호는 준혁으로부터 머리를 돌려 시선을 회피하더니 그대로 가만히 있는 것이다.

“이놈 봐라.”

준혁이 보기에 백호는 이미 자신을 이길 수 없는 주인이라고 인식한 것 같았다.

집사나 메이드에게 보인 공격성은 눈곱만큼도 볼 수 없었다.

준혁이 다시 백호를 바닥에 내려놓자, 백호는 기다렸다는 듯이 메이드들을 향해 크옹 하고 울었다.

“얌전히 좀 있어라.”

준혁이 손바닥으로 백호의 머리를 슥슥 문질렀다.

“……크옹.”

백호는 준혁의 손길에 기죽은 듯 눈치를 살피다가 또다시 메이드들을 향해 뛰었다.

워낙 몸집이 작은 새끼라 뛰어도 뒤뚱거리면서 걷는 속도 수준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메이드들은 트라우마가 걸린 듯 백호로부터 달아났다.

집사는 기둥 뒤에 숨은 채 머리만 내민 채로 백호를 지켜보고 있었다.

“사고뭉치가 따로없네.”

준혁이 짧게 한숨 쉬었다.

아마도 이 캐슬에서 직원들이 백호에게 적응하려면 시간이 조금 걸릴 듯했다.

“이런 귀여운…… 꺅!”

백호가 여지없이 최설화의 손도 물었다.

준혁을 바라보느라 백호의 존재 유무조차 몰랐던 최설화는 자신의 손을 깨문 백호 때문에 마치 전기에 감전당한 것처럼 몸을 부르르 떨었다.

준혁이 백호의 뒷덜미를 잡아 최설화로부터 떼어 냈다.

최설화가 눈물 맺힌 얼굴로 백호를 노려보았다.

“새끼 백호인가요?”

“신수 백호령이다.”

“어, 신수라면?”

“이래 보여도 살아 있는 신화 그 자체야. 지금은 좀 한심하지만.”

준혁이 백호를 보았다가 최설화의 다친 손을 보았다.

“치료부터 해. 아파 보이는데.”

“아, 네.”

최설화가 자가 힐 치료를 했다.

“어?”

그녀는 놀란 듯 자신의 손을 보았다.

본래라면 순식간에 언제 다쳤냐는 듯 멀쩡하게 치료되어야 할 손이 잘 회복되지 않고 있었다.

여전히 최설화의 손에는 백호가 깨문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준혁이 놀란 얼굴로 메이드들을 돌아보았다.

“다친 정도는 어때? 괜찮아?”

지우에게 물었다.

“일단 연고는 발랐는데 다행히 크게 다친 건 아니…… 앗?! 설화 언니도 다쳤어요?”

지우가 최설화에게 다가가 그녀의 손을 살폈다.

“힐을 해도 치유가 안 돼.”

최설화가 울적하게 말했다.

세계 최정상급 힐러의 힐로도 치료가 안 된다니.

지우가 놀란 눈으로 백호를 보았다.

백호는 지우에게 가서 머리를 비비적거렸다.

공격성이 없는 건 준혁에게만이 아니었다.

백호는 지우에게도 친밀감을 느끼는지 다리 위로 올라가려고 버둥거렸다.

최설화는 그런 백호를 보며 헛웃음을 흘렸다.

“하! 진짜 어이가 없네. 사람 차별하니?”

“크옹!”

백호가 최설화를 향해 으르렁거렸다.

최설화는 깜짝 놀라 어깨를 웅크리며 굳었다.

지우가 그런 최설화와 백호를 번갈아 보다가 어색하게 웃었다.

“그나마 매니저 말은 잘 듣게 생겼으니 다행이네. 내가 못 볼 때 잘 좀 케어 해 줘.”

준혁이 부탁하듯 말했다.

“……네, 귀환자님.”

지우가 얼떨떨한 표정을 대답하고는 백호를 내려다보았다.

백호는 지우의 다리 위에서 잠들어 있었다.

사고를 쳐 놓고도 참 태평한 수면이었다.

준혁이 연고를 달라고 손짓했다. 지우에게 받은 연고를 들고 준혁은 최설화 앞에 다리를 굽혀 앉았다.

“손 줘 봐.”

“네, 네?”

최설화가 깜짝 놀랐다가 조심스레 가늘고 긴 하얀 손을 내밀었다.

“신수는 신수네. 힐 치료도 잘 안 되는 걸 보면.”

준혁이 최설화의 손에 난 상처에 연고를 발라 주었다.

최설화는 새빨개진 얼굴로 숨을 참았다.

“자주 보게 될 거니까. 친해지려고 노력해 봐.”

최설화는 새빨간 얼굴로 자신의 상처에 연고를 발라 주는 준혁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준혁을 바라보는 그녀의 눈은 완전히 몰입되어 있었다.

마치 준혁 이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는 듯이.

“조금 지나면 괜찮아 질거야. 본인이 더 잘 알겠지만.”

준혁이 지우에게 연고를 돌려주고 선우를 찾아 나섰다.

“나 일주일 동안 손 안 씻을 거야.”

최설화의 말에 옆에서 지켜봤던 지우가 하하 웃었다.

“크오.”

백호가 지우의 다리 위에서 코를 골았다.

준혁의 손길에 취해 있던 최설화가 미소를 지으며 백호를 보았다.

“종종 깨물려도 괜찮을 것 같아.”

“어, 언니. 그래도 그건 좀.”

“다시 보니 귀엽긴 하다. 이 조그마한 게 신수라니.”

“하하, 귀엽긴 하죠?”

“응, 너한테만 살갑게 굴어서 배아프긴 하지만.”

“아마 잠들어 있을 때 제가 계속 데리고 있어서 그런 것 같아요.”

“아, 그랬구나! 본능적으로 냄새를 기억하는 걸지도.”

지우가 고개를 끄덕이며 코를 골고 자고 있는 백호의 등을 쓰다듬었다.

백호는 기분 좋은 듯 지우의 다리 위에서 꼼지락거렸다.

최설화는 여전히 백호가 얄밉다는 듯 쏘아보았다.

* * *

D-100일이었던 던전 재설정.

그 디데이가 도래했다.

명칭, 블랙 던전.

더 월드 업데이트와 함께 최초로 미국에 새로운 던전이 나타났다.

새로운 레벨의 던전의 등장이었지만, 미국 시민들은 고인물이 되어 버린 랭커들의 활약을 기대했다.

과거, 골드 던전이 처음 나타났을 때, 단 한 명의 사상자도 없이 클리어했다.

그 이유는 제대로 된 랭커로 이루어진 군단을 이루었고 헌터들은 이미 경험과 실력으로 무장이 되어 있는 상태였기 때문이다.

블랙 던전 역시 철저한 준비 끝에 헌터들이 군대를 이루어 투입되었지만 전과 달리 미국은 투입된 전력을 모두 잃고 말았다.

전원 사망.

충격적인 뉴스였다.

시민들은 늘 고위 헌터들이 던전으로부터 지켜 줄 것이란 믿음이 있었다. 하지만 그 믿음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전멸이라는 두 단어가 공포로 변하였기 때문이다.

현시점, 모든 관심은 리더보더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블랙 던전을 막을 수 있는 건 리더보더뿐이었다.

귀환자가 침묵하고 있던 가운데 미국은 리더보더를 필두로 하는 헌터 군단을 꾸렸다.

그렇게 오늘 밤 미국은 블랙 던전에 최대 전력을 투입하게 됐다.

“너희들을 지켜 줄 거라 생각하지 마라. 살고 싶으면 집중해라.”

미국의 리더보드 15위 제임스가 말했다.

그의 옆에 선 17위 마크가 재밌다는 듯 낄낄 웃었고 그를 뒤따르는 고위 랭커들이 잔뜩 긴장한 채로 리더보더들을 뒤따랐다.

제임스의 말대로였다.

그는 상황에 따라 언제든지 필요 없는 병력은 버릴 수 있는 자였다.

그와 함께 던전행에 나선 마크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오히려 방해가 된다면 아군마저 마수의 먹이로 던질 수 있는 자들.

그들과 함께 블랙 던전에 들어온다는 건 목숨을 걸어야 한다는 뜻이었다.

그런 절박함에 물든 자들과 리더보더들이 블랙 던전에 진입해 사냥터를 전진하고 있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이번 레이드는 더 월드를 통해 전 세계에 최초 공개되고 있었다.

귀환자 이후로 첫 상위 리더보더의 출연이었다.

* * *

“미국에서 두 명의 리더보더가 랭커들 데리고 들어간 거지?”

준혁이 소파에서 대형 TV를 보며 물었다.

“맞아.”

선우가 답했다.

준혁이 사과를 먹으면서 더 월드를 시청했다. 미국의 레이드팀은 이제 막 던전에 입장해 마수들을 수색하고 있었다.

선우가 그런 준혁을 보며 웃었다.

“블랙 던전 레이드를 영화관 온 사람처럼 보고 있다니.”

선우의 말대로 마나석과 연결된 TV를 통해 더 월드를 보는 준혁은 마치 영화를 보는 듯한 모습이었다.

긴장감이라고는 눈을 씻고 다시 봐도 찾아볼 수 없었다.

“백호는?”

뒤에 서서 대기하고 있던 집사가 바짝 다가왔다.

“이지우 매니저가 메이드 도움을 받아 백호의 음식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다이닝 룸 쪽에 있는 듯했다.

준혁은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스크린 화면을 보며 사과를 한 입 베어 물었다.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지만, 만약 이번 레이드팀에서 사상자가 나오거나. 만약 리더보더까지 힘들어진다면.”

선우가 어두워진 얼굴로 준혁을 보았다.

“아마, 형이 나서야 할 거야.”

준혁은 스크린을 보며 웃었다.

“그럼 난 마수 쪽을 응원해야 하나?”

선우는 놀란 얼굴로 준혁을 보았다.

“……진심이야?”

“농담이야. 인간이 마수 따위에게 다치는 것보단, 부상 없이 클리어해야겠지. 하지만 그들이 실패한다면, 기회라는 것도 부정 못 할 사실이지. 블랙 던전 수량은 한정되어 있으니까. 물론 그렇다고 사상을 바라는 건 아니야.”

선우는 준혁의 말에 할 말을 잃었다.

리더보더의 패배는 대재앙의 선포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준혁은 그보다 기회를 생각하고 있었다.

오직 자신이 마수들을 처리할 수 있는 기회.

그것이 준혁에겐 가장 중요한 포인트였다.

“형은 두려움이라는 게 없는 거야?”

준혁이 무슨 그런 질문이 있냐는 듯 선우를 보았다.

“난 마수를 상대할 때 생각 같은 거 안 해. 그냥 죽이는 거지.”

선우가 혀를 내둘렀다.

“내 형이지만. 진짜 대단해, 형은.”

준혁은 이상하다는 듯 선우를 보다가 다시 스크린을 보았다.

레이드 팀 앞으로 블랙 던전의 마수 한 마리가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준혁은 더 월드를 보면서 몸 안에서 피가 뜨겁게 끓어오르는 걸 느꼈다.

당장이라도 저 화면 속으로 들어가고 싶다는 충동이 치솟아 올랐다.

하지만 아직 준혁의 차례가 아니었다.

블랙 던전은 미국에 나타난 재앙이었고, 그 재앙을 막고자 미국 최대의 레이드 팀이 꾸려졌다.

‘어디 한번 수준 좀 볼까?’

준혁이 흥미로운 눈길로 더 월드를 응시했다.

* * *

“진형을 갖춰라! 패닉에 빠지는 새끼는 내가 갈라 버린 마수의 내장 속에서 날 만나게 될 거다!”

거대한 롱소드를 들고 있는 제임스가 마수를 보며 소리쳤다.

리더보더 15위 제임스와 17위 마크는 비교적 마수에게 집중하고 있었지만, 그의 뒤로 포지션을 잡고 있는 고위 랭크의 헌터들은 얼굴이 조금씩 일그러지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블랙 던전에서 처음 만난 마수는 지금까지 보아 왔던 그 어떠한 마수들보다 흉측하고, 기괴했으며, 강해 보였기 때문이다.

단지 마주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기세가 꺾일 만큼 무서운 외양이었다.

대략 높이는 7미터.

몸통은 해골이었으며 악마의 얼굴을 한 머리 쪽에는 거친 갈기털이 무성하게 자라 있었다.

다리는 마치 황소처럼 두꺼운 근육질이었고, 이족 보행의 마수는 거대한 창을 들고 있었다.

창을 한 번 휘두르면 한 번에 10명은 베어 낼 수 있을 만큼 컸다.

“우리가 전방을 맡으면 너희들은 후방을 노린다.”

“예-!”

우렁찬 대답을 들은 제임스가 마수를 보며 웃음 지었다.

“간만의 전장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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